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날짜: 
2006/11/05
설교: 

고후4:7-11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낮선 외국 땅에서의 삶은 익숙한 고향 땅에서의 삶보다 더욱 힘이 들기 마련입니다. 더욱이 외국에서 살면서 때때로 심한 고난을 당하면 누구나 한번쯤은 이런 노래가 생각이 납니다. “울려고 내가 왔던가? 웃으려고 왔던가?” 여러분, 사람은 누구나 문제가 다가오고 그에 따른 고통이 나를 엄습할 때 본능적으로 이를 극복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도저히 그 고통에서 헤쳐 나갈 방도가 없을 때에는 이런 말을 씁니다. “막다른 골목에 다다랐다.”
오늘의 본문에도 보면 깨지기 쉬운 질그릇으로 만든 한 사람이 나옵니다. 그는 참으로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사람입니다. 그는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고, 답답한 일을 당하고, 핍박을 받고, 꺼꾸러트림을 당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본문의 사람은 ‘이제 나는 죽었다. 이제 나는 끝장났다. 이제 나는 못살겠다.’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런 절망적인 환경 속에서도 이를 극복할 수 있다는 위대한 신앙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 위대한 신앙고백을 살펴보고 같이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1.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여러분, 겉으로 볼 때는 문제와 고난의 적군이 사방으로 나를 포위하고 나는 사면초가가 된 것 같을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이제 피할 길이 없다’고 좌절하고 절망할 수밖에 없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예수님과 함께 있고, 예수님을 품고 있으면 실상은 나는 싸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일어난 역사적인 사건을 봐서 우리는 잘 알 수 있습니다. 던커크는 도버해협에서 영국을 바라보는 프랑스 항구로 오늘날에는 인구 7만이 거주하며 전자 및 조선과 각종 제조업이 발전한 도시입니다. 그런데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인 1940년 5월 하순 영국군을 비롯한 연합군 30만 명이 바로 이곳 던커크에서 독일의 기계화 부대에 포위되어 전멸 위기에 처했습니다. 그 30만 명이 전멸하면 구라파는 독일의 손에 떨어지고 영국까지도 독일의 손에 떨어지게 되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영국의 처칠 수상은 전 국민에게 기도해줄 것을 요청하면서 자신도 웨스트민스터 교회의 성가대 앞에 엎드려 식음을 전폐하고 기도했습니다. 사람이 절망에 처하고 인간의 수단과 방법이 다 끝나면 하나님께 의지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때처럼 전 영국 국민이 모두다 교회에서 학교에서 직장에서 엎드려 기도하기는 처음이었습니다.
그 결과 갑자기 던커크만 일대에 큰 폭풍우가 다가와서 비바람이 치고 파도가 높았기 때문에 영국의 30만 군대가 포위된 그 하늘에 독일 비행기가 뜰 수가 없어서 폭격을 못했습니다. 그리고 던커크만에 진치고 있던 독일 잠수함이 다 철수를 해버렸습니다. 그리고 5월 24일 영국의 모든 작은 배들이 연합군 구조의 임무를 띠고 순식간에 던커크만으로 들어갔습니다. 때를 같이하여 독일의 기계화 부대인 구데리안 장군의 지휘 아래 던커크 마지막 방어선인 운하를 깨치고 쳐들어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히틀러가 구데리안 장군에게 즉시 철수하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이것은 역사가들에게 아직까지 수수께끼로 남아있는 사건들 중에 하나입니다. 그러나 믿는 자들은 이것이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도우심이라는 것을 압니다. 하나님께서는 영국 국민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폭풍우를 보내셔서 독일의 비행기가 뜨지 못하게 하고 던커크만에 있는 모든 잠수함이 철수하게 하고 난 다음 기계화 부대가 진격해 들어오니 히틀러의 마음을 움직여서 공격을 중단하고 철수하라는 명령을 내리게 된 것입니다. 그때에 철수한 30만 명이 영국에서 재정비하고 이집트로 진출해서 결국엔 이것이 독일멸망의 시초가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여러분, 잊지 마십시오.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안에 계신이가 세상에 있는 이보다 크기 때문인 것입니다. 물론 이 세상은 어느 곳을 보아도 죄와 마귀와 병과 가난과 죽음이 우리를 겹겹이 포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염려, 근심, 불안, 초조, 절망을 떠날 수가 없고 살아남기 위해서 발버둥을 칩니다. 그러나 우리 속에 계신 예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 보십시오.
예수님은 십자가에 매달려 우리 죄와 불의, 추악과 저주, 절망과 저주를 다 짊어지시고 힘껏 싸워서 그 몸을 찢고 피를 흘려 다 이기시고 ‘내가 다 이루었다.’고 외치신 것입니다. 주님이 십자가에서 죄를 멸하시고 세상과 마귀를 이기시고, 질병을 속하시고, 저주와 가난을 짓밟으시고, 죽음을 폐하시고, 다 승리를 이루어 놓으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안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겹겹이 둘러싸고 있는 포위망은 무너져 버리고 만 것입니다. 고로 우리 주위에 포위망이 있는 것 같으나 실상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2천년 전에 그 포위망은 이미 무너져 버리고 만 것입니다.
2.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여러분, 우리가 세상에 살면서 답답한 일을 얼마나 많이 당합니까? 부부간에 갈등, 자녀를 기르는데 어려움, 이웃 간의 갈등, 사회생활에 갈등, 우리 생활은 일평생을 통하여 갈등천지입니다. 그러나 갈등을 당하고 답답한 일을 당해도 우리가 낙심해서 거꾸러질 줄 알아도 실상은 7전 8기하여 일어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얼마 전 한국에는 감동적인 이야기가 뉴스를 타고 전해졌습니다. 다름 아닌 자폐아인 김진호 선수가 세계 장애인 선수권 대회에서 금메달을 딴 것입니다. 그러나 김진호 선수의 어머니는 처음에 자기 아들이 자폐아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너무나 절망했습니다. 그 문제로 인하여 하나님을 믿게 되어 4년간 하나님께 주야로 부르짖어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이여, 자폐아 된 진호를 고쳐 주옵소서.”
그러나 4년 동안 열심히 기도해도 고침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녀는 더욱 답답하여지고 더욱 큰 좌절감에 사로잡혔습니다. 그때 이런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네 자녀를 사랑하라. 내가 진호를 사랑하니까 내게 맡겨버리고, 내가 기르는 데로 너도 진호를 사랑하고 따라가라!” 이 같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순간 그녀는 회개기도가 쏟아져 나왔습니다. “아~ 내가 진호를 사랑하는 것보다도 주님이 더 사랑하시고, 주님이 이 아들을 책임지겠다고 하시니 나는 주님을 의지하고 진호를 사랑할 수밖에 없겠구나!
그녀는 진호를 지체장애자학교에 입학시켜 공부를 시키고, 재능을 살려 수영을 가르치고, 드디어 세계장애인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타게 된 것입니다. 비록 자폐아로써 그 어머니가 그 아들을 데리고 좌절했지만 하나님이 그를 사랑하고 계신다는 것을 알고 마음에 낙심이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나를 지극히 사랑하는 이가 하늘에 계신다는 것을 알게 되면 낙심이 사라지지 않습니까? 그토록 나를 사랑하는 하나님이 내 속에 계시고, 하나님이 나의 일생을 다 알고 계시고, 나의 인생을 위하여 각종 좋은 것을 다 예비하고 계신다는 것을 알게 될 때 왜 내가 낙심하겠습니까? 성경 고린도전서 2장 9절에는 이렇게 기록합니다. “기록된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물론 우리의 생각에는 도대체 이러한 어둡고 캄캄한 길에다, 더욱이 이 외국 땅에다 하나님이 나를 위해 무엇을 예비해 놓았을까 의심도 하겠지만 우리보다 지혜와 총명이 뛰어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장 좋은 길을 예비해 놓으신 것을 굳게 믿고 아무리 답답한 일을 당해도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3. 핍박을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아니하며
여러분, 때때로 사람들은 우리를 멸시합니다. 핍박합니다. 왕따를 시키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 속에 예수님이 들어와서 우리와 같이 계시고 주님이 붙잡고 계시기 때문에 사람들로부터 멸시를 당하고, 왕따를 당하고, 핍박을 당해도 결코 버린바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핍박당한 유대민족의 역사를 보십시오. 유대민족은 어떻게 되었든 하나님의 선민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택하시고 이삭과 야곱을 택하시고 그 후손들을 택하셨습니다. 때때로 그들은 하나님을 배반하고 우상을 섬겼으나 하나님의 부르심과 택하시면 후회함이 없었습니다. 고로 하나님이 징계를 하셔도 택한 자식인 이스라엘 백성들을 결코 버리지 않았습니다. 주후 70년 로마에 박멸을 당하고 온 천하에 나라 없는 민족으로 2천년 동안 방랑하며 엄청난 핍박을 받았어도 유대인들은 버린바 되지 않고 지금도 살아남았습니다. 왜 이렇게 유대인들이 끈질기게 살아남습니까? 다른 아닌 하나님이 그들을 버리지 않기 때문인 것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엄청난 핍박을 당했습니다. 마귀는 로마의 10대 황제를 통하여 교회를 연속적으로 핍박했습니다. 국력을 기울여 처참하게 예수교인들을 잡아서 원형극장에서 짐승들과 싸워서 죽게 하고, 나무에 달아 기름을 붓고 횃불로써 태우기도 한 것입니다. 네로황제로부터 시작해서 디오클레시안 황제까지 3백년간 어마어마하게 교회를 핍박하고 교인들을 잡아 죽였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죽지 않았습니다. 왜 이렇게 교회가 끈질길까요? 다름 아닌 부활하셔서 교회의 머리가 되신 예수님이 교회를 결코 버리지 않고 교회와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한국의 기독교 역사와 그 핍박을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대원군 시대에 프랑스 선교사 12명중에 6명이 순교를 당하고, 예수 믿는 사람은 6촌까지 처형을 해서 대원군이 8천명의 기독교 신자들을 처형했습니다. 그래서 한국의 기독교의 불씨를 완전히 꺼버렸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 불씨가 꺼졌나요? 또한 일정 30년 동안에 일본 사람들이 2백 교회를 폐쇄하고 2천여 명의 성도들을 투옥시키고 죽이고 고통을 가했습니다. 그렇다고 교회가 망했나요?
또한 북한의 공산당이 들어오고 난 다음 당시 북한에 있던 2천개 교회의 재산을 모두 국유화해서 교회를 강제적으로 폐쇄하고 교인들을 풍비박산 흩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6.25전쟁 때에는 수많은 교회를 불태우고, 수많은 교회 지도자들을 죽이고 기독교를 말살하려고 했지만, 전쟁이 끝난 지금 한국에는 5만 교회, 10만 주의 종, 1,200만 성도가 있고, 미국 다음으로 두 번째로 선교사를 많이 파견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여러분, 우리에게 다가오는 고난은 우리에게 훈장을 달아주는 것에 불과한 것입니다. 즉 고난을 당하면 당할수록 그것이 장차 우리 하나님께 나아갈 때 영광의 상을 받게 되는 증거가 됩니다. 마태복음 5장 10절로 12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
4. 꺼꾸러트림을 당해도 망하지 아니하고
여기서 ‘거꾸러뜨린다.’는 것은 죽인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망한다.’는 것은 파멸 당함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아무리 거꾸러뜨리고 죽여도 결코 파멸당하지 않습니다. 마귀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오히려 부활하셔서 사망과 음부를 철폐하시고 영원히 만왕의 왕, 만주의 주로 다스리고 계십니다.
우리는 누구를 불문하고 모두 다 죽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죽음이 겁나지 않는 것은 죽기는 죽되 속에 부활이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안 믿는 사람은 부활이 없이 죽지만, 우리는 부활을 끌어안고 죽기 때문에 죽었다가도 마치 고치에서 나비가 나와서 창공을 훨훨 날듯이 부활한 사람이 되어 그리스도와 함께 찬란한 영광을 누리게 됩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 외국 땅에 웃으려고 왔습니다. 살려고 왔습니다. 죽으려고 오지 않았습니다. 울려고도 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외국 땅에서 나와 내 가족에게 죽음이 나에게 다가올 때 우리는 그 죽음 앞에 굴복당하고 맙니다. 어쩔 수 없이 울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영원히 죽음에게 정복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영원히 우리가
우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죽음과 함께 천국을 소유하며, 부활의 소망을 갖게 됩니다. 고로 죽음은 잠시 나와 나의 가족들을 망하게 하는 것 같지만 실지는 나와 나의 가족들을 가장 흥하게 하고 가장 영광스럽게 하는 도구에 불과합니다.
고로 사도 바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기록된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며 도살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8:35-39)
여러분, 십자가는 죽음과 부활의 징검다리입니다. 사람들은 우리를 죽이겠다고 십자가에 못 박지만 십자가 다음에는 부활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못 박으면 못 박을수록 더 부활하고, 핍박을 할수록 더 주님께 가까워지고, 우겨 싸이면 싸일수록 해방되고, 답답한 일을 당할수록 예수님의 사랑을 더 체험하게 되는 정말 역설적이고 놀라운 기적적인 은혜가 예수님의 안에 있는 것입니다.
질그릇에 불과한 우리가 보배 되신 예수님을 마음속에 모시면 우리는 보배 되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우겨 싸일 때 해방되고, 답답한 일을 당할 때 낙심하지 않고, 핍박을 당할 때에도 버린바 되지 아니하고,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부활하여 영원한 영광을 누리게 됩니다. 이러한 보배 되신 예수님을 이 외국 땅에서도 꼭 품고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