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본분을 망각하지 마라

날짜: 
2006/05/21
설교: 

전12:12-13 인간의 본분을 망각하지 마라
제가 청년 시절에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성경 구절이 있었습니다. 다름 아닌 오늘의 본문 전도서 12:12의 말씀입니다. “내 아들아 또 경계를 받으라 여러 책을 짓는 것은 끝이 없고 많이 공부하는 것은 몸을 피곤케 하느니라.” 이 말씀을 들으면서 “아니, 이거 공부를 하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 하고 말씀이 이상하게 생각이 되었습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학생 시절에 가장 싫어하는 것 중의 하나가 공부요, 공부를 하면서 몸이 피곤한 것을 여러 번 경험하지 않았습니까? 특히 한국의 입시 전쟁을 치러본 경험이 있으면 이해가 빨리 되실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이 말씀에 어느 정도 공감이 되는 것이 있었습니다. 당시에 저는 군대를 제대하고 나와서 아주 공부를 열심히 하여 박사가 되고, 그 명성으로 정계에 진출하여 국회의원이 되고, 마침내 대통령이 좀 되어봐야 되겠다고 생각을 했는데 공부를 많이 하는 것은 몸을 피곤케 한다는 구절에 “뭐야 이거? 공부를 해도 몸만 피곤하고 성과가 없을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 구절에 대한 해석을 돕는 구절이 바로 다음 구절에 있었습니다.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문이니라.”(전12:13) 이 구절을 대하면서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아하, 하나님을 제대로 경외하지도 않고 공부하는 것은 괜히 몸만 피곤하고 결과가 별로 좋지 않겠구나!”
여러분, 우리 주위에 보면 공부를 위한 공부를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굉장히 열심히 공부를 합니다. 노력을 많이 합니다. 그러나 그 공부에 파묻혀 하나님을 경외하는 시간을 놓치고 맙니다. 예배에 빠지고 맙니다. 그 사람이 나쁜 일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좋은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좋은 일을 해도 먼저 하나님 경외가 우선이지 공부가 우선이 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세상 사람들 중에도 선하고 착하고 훌륭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어찌 보면 그 사람들 중에는 우리 크리스천들 보다 더욱 열심히 공부하고, 더욱 열심히 선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들을 안타깝게 바라보며 하는 말은 무엇입니까? “아 열심히 공부하는구나! 아 열심히 일하는구나! 그러나 먼저 하나님을 경외해야 할 텐데! 쯧쯧쯧...”
세상 사람들 중에는 이런 종류의 사람들이 상당히 많이 있습니다. 자기 나름대로 철학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철학과 목표를 이루기 위하여 아주 열심히 공부도 하고 선한 일도 합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성경 말씀이 무엇입니까? 바로 오늘의 성경 구절입니다. “내 아들아 또 경계를 받으라 여러 책을 짓는 것은 끝이 없고 많이 공부하는 것은 몸을 피곤케 하느니라.”(전12:12)
베드로의 경우를 보십시오. 그가 예수님께 부름을 받을 때에 어떤 일이 있었습니까? 갈릴리 바닷가에서 그의 동료들과 아주 열심히 밤새도록 철야하며 고기를 잡고 있었습니다. 어부가 열심히 고기를 잡는 것이 어찌 나쁜 일입니까? 당연한 일이요, 더욱이 장모님이 몸이 안 좋아 약값도 벌어야 하고, 처자식이 있으므로 수입을 가지고 집에 와야 가장 노릇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베드로는 가장으로서 최선을 다한 것입니다. 아주 성실한 남편이요, 아주 책임감 있는 아빠입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무엇입니까? 한 마리의 고기도 잡지 못하고 기진맥진하고 피곤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여러분, 사람들은 자기 생각에 사로 잡혀 자기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며 인생을 삽니다. 그러나 한 가지 아주 중요한 것을 모르는 것입니다. 사람의 본분은 처자식을 벌여 먹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이것을 바르게 깨달으면 전도서의 결론을 파악한 것입니다. 솔로몬의 지혜를 배운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을 깨닫지 못하면 몸은 몸대로 피곤하고, 성과는 성과대로 없고, 참으로 딱하고 고달픈 인생을 사는 것입니다. 특히 외국 땅에 이민이나 유학 와서 열심히 공부하고, 열심히 일하고 살지만 나중에 그 결과는 몸만 피곤해지고 그 결과는 별로 없다면, 그리고 그렇게 일생이 다 지나가면 얼마나 안타깝겠습니까? 참으로 인생무상이 되고 맙니다.
천국에 가신 우리 배정옥 집사님을 봅니다. 그 분이 한국에서 있을 때 자꾸 캐나다로 이민을 가려니까 천사가 나타나서 이렇게 말을 하더랍니다. “네가 캐나다에 보내 달라고 자꾸 떼를 쓰니까 보내는 주는데 너 거기 가서 어떻게 살려고 하느냐?” 즉 천사는 알고 있었습니다. “네가 캐나다에 가서 먹고 살기 위해 애를 쓰느라고 몸은 몸대로 지치고, 시간은 시간대로 바빠서 하나님도 제대로 섬기지 못하고, 기도할 사람이 기도를 제대로 못하니 그것이 어찌 바르게 인생을 사는 것이냐? 그것이 어찌 하나님이 기쁘시게 하는 삶이냐?”라는 의미가 아닙니까?
배집사님이 바쁘게 식당의 주방 일을 하면서 늘 저에게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목사님, 어떡해요. 제가 이렇게 일을 하지 않으면 안되는 형편이에요. 저도 알고 있어요. 저는 기도하지 않으면 안되요. 목사님,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제가 빨리 이 일을 마무리 하고, 열심히 철야 예배도 나오고, 목사님을 도와 열심히 주의 일을 할게요.” 그런데 배집사님이 극심한 피로와 스트레스로 그만 병이 들고 말았습니다.
천사가 예언한대로 아무리 좋은 캐나다 땅이라도 건강을 잃으니 진짜 살기가 어려워지고 말았습니다. 그제야 깨닫는 진리가 있습니다. “내 아들아 또 경계를 받으라 여러 책을 짓는 것은 끝이 없고 많이 공부하는 것은 몸을 피곤케 하느니라.”(전12:12) 여러분, 공부도 중요하지만 건강을 잃으면 안됩니다. 돈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건강을 잃으면 안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건강을 잃고 난 후에야 후회를 하고, 평범한 진리를 깨닫는 것을 봅니다.
그러면 어떡합니까? 공부를 하지 말라는 뜻입니까? 일하지 말라는 뜻입니까? 그것이 아니라 공부를 해도 먼저 주님을 섬기는 데에 주력을 하라는 것입니다. 일을 해도 예배를 드리고, 기도하는 시간을 놓치지 말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순서를 망각합니다. 그냥 열심히 일하는 것, 그냥 열심히 공부하는 것을 최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오늘의 성경은 그렇게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을 가장 우선적으로 하지 않고, 공부하고 일을 하는 것은 몸만 피곤해지고 건강을 해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누구나 환경에 지배를 당하는 나약함이 있습니다. 당장 집에 쌀이 떨어지고 돈이 필요하면 가장인 남편은 열심히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함정이 될 수가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이 말씀하신바 생활의 염려로 인하여 신앙의 결실을 제대로 못하는 경우입니다. 마태복음 13장에 보면 예수님이 씨 뿌리는 자의 비유를 하시면서 길가 밭에 씨가 떨어지면 새들이 와서 먹어버리므로 결실치 못한다고 하셨고, 즉 이 사람은 말씀을 듣지만 진리를 깨닫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자갈밭에 씨가 떨어지면 잠시 싹이 나오는 것 같지만 해가 강하게 비추면 뿌리가 없으므로 그만 시들어 버리는 사람, 즉 환난이나 핍박이나 문제가 터지면 그만 믿음을 포기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씨가 가시밭에 떨어지면 그 가시가 기운을 막아 결실치 못하는 사람, 즉 세상의 염려와 유혹으로 인하여, 그것에다 에너지를 쏟으므로 하나님을 제대로 믿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마지막 좋은 땅에 씨가 떨어지면 30배 60배 100배 결실을 하게 되는데 이 사람은 진리의 말씀을 듣고 깨닫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저는 전도서 12장 12-13절의 말씀을 모두가 깨닫기 원합니다. 그래서 이곳 캐나다 땅에 와서 몸만 피곤케 하다가 신앙의 결실을 제대로 못 맺는 안타까운 자리가 아니라 먼저 하나님을 경외하는데 주력하여 영혼이 잘되고, 육체도 강건하여 지며, 범사에도 잘되기를 원합니다. 여러분, 사람에게는 공부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는데, 일보다도 더 중요한 것이 있는데, 다름 아닌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경외하는 데에 후회 없이 일생을 보내야 합니다. 그것이 인생의 본분입니다.
베드로가 아무리 밤이 맞도록 애를 썼지만 한 마리의 고기도 잡지 못하고 허탈해 있을 때 예수님이 그의 배를 빌려 말씀을 전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그렇게 말씀을 들고 난 후 베드로에게 “깊은 데에 가서 고기를 잡으라.”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때 베드로가 뭐라고 고백했습니까?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리리이다.“라고 했습니다. 즉 내 생각대로, 내 경험대로, 내 의지대로, 내 방식대로 살지 않고 말씀에 입각하여 살겠다는 것입니다. 먼저 예배드리고, 말씀 듣고 살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여러분이 잘 아실 것입니다. 베드로는 생전 경험해보지 못한 엄청난 고기를 잡고 입이 떡 벌어지도록 놀랐습니다. 그리고 그가 예수님에게 뭐라고 고백했습니까?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고 했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내 방식, 내 방법, 내 고집, 내 경험, 내 의지대로 사는 것은 죄인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결국 몸만 피곤케 하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못난 죄인을 찾아오셨으니 나는 몸 둘 바를 모르겠다는 뜻입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에이, 이 못난 놈!” 하고 그를 버리고 떠나가신 것이 아니라 “이제 너는 나를 따르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라.”고 하셨습니다. 즉 고기 잡는 것도 좋지만 너는 나와 함께 더욱 뜻 깊은 하나님의 일을 하자고 하신 것입니다. 이때 “사람들은 이런 질문을 합니다.” “주님, 제가 주님을 따르면 우리 처자식은 누가 먹여 살립니까? 내가 열심히 일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베드로는 깨달았습니다. “아하, 이렇게 고기를 많이 잡게 하신 저 분의 능력이라면 내 처자식도 다 책임지실 수 있을 거야!” 할렐루야! 이런 깨달음이 있으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리고 이런 귀한 진리를 깨달았다면 베드로처럼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주님과 같이 사람 낚는 어부가 되려고 즉시 주님을 좇아가야 합니다. 괜히 어물어물 하다가는 결심이 약해지고 또 다시 갈릴리 바닷가의 어부로 지내게 됩니다. 물론 어부가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일하는 것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공부하는 것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사람 낚는 어부가 사명을 망각하고 산다는 것이 인간의 본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명심하십시오. 인간의 본분은 돈 버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의 본분은 공부하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의 본분은 선한 일, 착한 일도 좋지만 먼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곳 캐나다 땅에 와서도 인간의 본분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다름 아닌 하나님을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섬기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몸 된 교회를 잘 보양하고 헌신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먼저 하나님의 만족을 채우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입니다. 이것이 바로 저와 여러분의 본분이요, 인간의 본분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종종 우리의 본분을 잊고 삽니다. 그냥 열심히 일하면 그것이 본분일 줄 생각합니다. 그냥 열심히 공부하면 그것이 바르게 사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몸만 피곤케 하는 일입니다. 솔로몬 왕이 그렇게 외치고 또 외쳤던 헛되고 헛된 삶을 사는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은 우리가 이 외국 땅에 와서 헛되고 헛된 삶을 살다가 인생을 마치기를 원하고 있지 않습니다. 고로 다시 한번 바르게 깨닫고, 다시 한번 결단하십시오.
“주여, 저는 죄인이로소이다!”라고 고백하며 다시 인생사는 법을 배우십시오. 이 외국 땅에서도 먼저 하나님을 경외하십시오. 베드로가 이 사실을 깨닫고 주님을 따라 갔으나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자 그는 다시 이 본분, 이 사명을 망각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갈릴리 바닷가에서 밤새도록 또 고기를 잡습니다. 예수님과 같이 다닐 때에는 처자식도 잘 살았는데 예수님이 주신 사명을 저버리자 그에게는 당장 처자식과 먹을 것이 염려 되었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무엇입니까? 또 허탕입니다. 또 피곤합니다. 그때 부활의 예수님이 나타나시어 말씀하셨습니다. “배 오른편에다 그물을 내리라.” 그러자 베드로는 또 엄청난 고기를 잡게 되었습니다. 그 사건은 베드로에게 옛날의 사건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아하, 내가 옛날의 진리를 또 망각했구나! 나는 주님을 따라서 사람 낚는 어부가 되어야 하는데... 그것이 나의 사명이요, 나의 본분인데...” 여러분, 베드로의 사건이 우리에게도 진리를 깨닫는 기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우리도 베드로처럼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그 본문을 다하므로 우리의 먹을 것 마실 것 입을 것 처자식 모든 것을 책임지시는 예수님을 굳게 신뢰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