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싸 신자, 아싸 신자

날짜: 
2020/12/27
말씀: 
요15:1-10
말씀구절: 

1 나는 참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

2 무릇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시고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시느니라

3 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여졌으니

4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6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마르나니 사람들이 그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7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8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

9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10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설교: 

최근 온라인 신조어 중에 ‘인싸’와 ‘아싸’라는 말이 있습니다. 들어본 사람 손들어 보세요? 젊은 분들은 자주 사용하는 단어지만 연세가 드신 분들은 잘 모르는 단어입니다. ‘인싸’는 영어 '인사이더(Insider)'라는 뜻이고, ‘아싸’는 영어 ‘아웃사이더(Outsider)'의 뜻입니다.

‘인싸’는 글자 그대로 안에 있는 사람이란 뜻이고, ‘아싸’는 밖에 있는 사람이란 뜻입니다. 이 말을 우리의 신앙생활에 적용해 볼 수 있습니다. 묻고 싶습니다. 당신은 인싸 신자입니까? 아싸 신자입니까? 저의 경우 고등학교 때 예수님을 믿었지만 26살 때까지 아싸 신자였습니다.

즉 밖으로 떠도는 신자입니다. 왔다리 갔다리 신자입니다. 믿기는 믿지만 확신이 없는 신자입니다. 그러다가 26살에 오산리 순복음 기도원에서 성령을 받고 난 후 인싸 신자가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예수님은 우리들에게 아싸 신자가 되지 말고 인싸 신자가 되라고 말씀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믿는 하나님, 기독교의 신은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 성령 하나님, 이 세 분이 하나가 되는 삼위일체 하나님입니다. 그리고 이 삼위일체 하나님이 내 안에 들어오실 수 있고, 나도 그 분 안에 들어 갈 수 있습니다. 즉 하나님과 내가 같이 사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의 신앙은 단순히 종교 의식만을 행하거나 교주의 가르침만을 따르는 피동적인 정도가 아니라 아예 그 분과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말씀합니다. “나와 아버지는 하나니라.”(요10:30) 오늘 본문에도 보면 예수님이 말씀합니다.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내 안에 거하면 열매를 많이 맺지만, 내 안에 거하지 않으면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말라진다.”(요15:4-6)

즉 저와 여러분의 신앙의 성공과 실패는 그 분이 내 안에, 내가 그 분 안에 거하느냐 아니냐에 달려있습니다. 고린도후서 13:5절의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리운 자니라.” 즉 예수님이 내 안에, 내가 예수님 안에 있는 것을 모르는 신자, 아싸 신자는 버리운 자요, 공동번역으로는 낙제생이라는 것입니다.

NIV 영어 성경으로는 Fail 했다는 뜻입니다. 오늘 본문에도 보면 포도나무에서 떨어진 가지, 아싸 신자는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도 없고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그런 아싸 신자는 나중에 떨어진 가지처럼 말라비틀어져 땔감신세가 되고 만다는 것입니다.

혹시 다중인격(Multi Personality), 이중인격(Dual Personality)이란 말을 들어보셨나요? 한 사람 안에 여러 인격체가 같이 사는 것입니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처럼 내 안에 착한 인격체가 있을 수도 있고, 악한 인격체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악한 인격체인 하이드가 강하게 나타나면 악인의 행동을 합니다.

반면 선한 인격체인 지킬 박사가 나타나면 선한 사람의 행동을 합니다. 한때 사형수들의 교도소장을 했던 박효진 장로님의 간증입니다. 일가족 5명을 죽인 사형수 이호성이란 분이 있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이 사람은 도저히 사람을 죽일 것 같아 보이지 않았습니다.

체구도 작고 아주 착하고 순하게 생겼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고백합니다. “내 속에서 누군가가 자꾸 그들을 죽이라고 강하게 말을 했다. 나는 그것을 거스를 수 없었다.” 즉 우리를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나쁜 인격체인 귀신이 이 사람 속에 들어가서 사람을 5명이나 죽이도록 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에서 영적인 세계를 알면 이게 이해가 됩니다. 구약의 이스라엘 초대 왕인 사울도 귀신이 강하게 역사하니까 사위인 다윗을 창으로 찔러 죽이려고 합니다. 그러다가 또 제 정신이 들면 자기가 언제 그랬듯이 다윗을 아무렇지 않게 대합니다. 그리고 신약에도 보면 거라사 지방의 귀신들인 사람이 나옵니다.

한 사람에게 2000마리가 되는 귀신이 들어갔습니다. 그러니까 전혀 다른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쇠고랑도 끊을 정도로 굉장한 힘을 갖게 되고, 보통 사람들이 가기 싫어하는 공동묘지를 거처로 삼고 지냅니다. 그리고 꽥꽥 소리를 지릅니다. 저 사람 도대체 왜 그래? 왜 그러긴요? 그 안에 다른 인격체인 귀신이 들어가서 그러는 겁니다.

예수님은 우리들에게 이런 나쁜 인격체인 귀신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쫒아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지 않으면 우리의 인생이 힘들어진다는 겁니다. 반면 우리들에게 가장 좋은 인격체인 삼위일체 하나님이 들어올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내 안에 들어오면 내가 하나님처럼 선하고 착하게 됩니다.

사랑이 없는 사람도 사랑이 생깁니다. 세상 죄악과 쾌락을 쫒던 사람이 하늘의 신령한 은혜를 사모하게 됩니다. 찬송을 부르고 말씀을 가까이 하게 됩니다. 수줍어서 남에게 말도 제대로 못하던 사람이 남을 전도하게 됩니다. 즉 내 안에 내가 아닌 예수님이 나타나는 겁니다.

저의 경우 목사이기 때문에 매주 설교를 해야 합니다. 그런데 목사님들에게는 영감이란 것이 있습니다. 설교는 내가 내 실력, 내 지식으로, 혹은 책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실력이 나타나야 합니다. 즉 내 안에 주님이 영감을 주셔야 합니다. 목사님들이 죽을 맛이 나는 것 중에 하나는 설교를 준비해야 하는데 영감이 떠오르지 않을 때입니다.

즉 내 안에 예수님이 약해지면 제대로 영감을 받지 못합니다. 그렇게 되면 목사는 힘이 듭니다. 자신감이 떨어집니다. 고로 목사님들의 삶은 영감이 떨어지지 않도록 늘 그 분과 같이 지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새벽이고, 낮이고, 밤이고 언제든지 영감이 올 때 펜을 들고 종이에다가 신속히 영감을 받아 적습니다.

제가 오늘의 설교를 준비할 때도 새벽 5시에 잠이 깨었습니다. 그리고 영감이 옵니다. 그래서 종이에다가 막 적고... 그 영감들을 모아서 설교를 완성시키는 것입니다. 목사가 이렇게 영감이 와서 준비한 설교를 들고 강단에 서면 자신감이 생깁니다. 힘이 나고 기분이 좋습니다.

그러나 영감 없는 설교를 하면 뭔가 모르게 힘이 떨어집니다. 하나님과 성도님들에게 미안합니다. 마치 신선한 음식을 막 요리해서 내는 것이 아닌 인스턴트식품이나 먹다 남은 음식을 다시 데워서 내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같이 먹는 설교자도 썩- 기분이 좋지 않습니다.

고로 목사님들은 매번 영감을 받아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늘 기도하고, 늘 찬송하고, 영적으로 깨어 있어야 합니다. 이런 과정을 잘 모르는 분들은 혹 이렇게 말합니다. “아- 목사님은 좋겠다. 일주일에 한 번 설교를 하고...” 그게 아닙니다. 일주일에 한 번이 아니라 일주일 동안 전체를 준비한 것이 영감을 통해서 한 번의 설교로 나오는 것입니다.

좀 더 자세히 말하면 인생 전체를 통해 주님으로부터 배운 것이 그때마다 내 안에서 영감으로 나오는 겁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고백합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4:13) 신약 성경의 반을 쓴 바울이 그 많은 걸 어떻게 썼을까요? 그의 안에서 예수님이 영감을 주셔서 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바울은 고백합니다.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다.”(고전15:10) 성도님들 중에 보면 “목사님, 솔직히 신앙생활 하기가 너무 힘들어요. 기도하기가 힘들어요. 그 사람 사랑하기가 힘들어요.” 하고 고백하는 분이 있습니다.

그건 목사인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힘으로 하면 힘듭니다. 내 안에 주님이 해주셔야 합니다. 인생사는 것도 그렇습니다. 이 험한 인생을 내가 내 힘으로 살려면 힘듭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나와 같이 내 인생을 살면 힘들지 않습니다. 바울의 고백입니다.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갈2:20)

예수님과 떨어져 사는 아싸 신자는 인생을 혼자 살려니 참 힘듭니다. 그러나 예수님과 같이 사는 인싸 신자는 능히 감당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을 떠나시기 전에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옵소서.”(요17:21)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요14:20)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계3:20) 여러분, 예수님은 우리 안에 들어와서 같이 살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많은 분들이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습니다. 밖에다가 오랫동안 세워둡니다. 문전박대합니다. 혹은 마음의 방을 쓰레기장이나 오물처리장처럼 더럽게 만들어 나서 깨끗하신 예수님이 도저히 들어가실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과 따로 노는 아싸 신자가 되는 겁니다.

여러분, 진짜 점쟁이나 진짜 무당이 되기 위해서는 신 내림 굿을 합니다. 즉 점쟁이 귀신, 무당 귀신이 임해야 그 짓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 크리스천들도 진짜 크리스천이 되기 위해서는, 크리스천으로 바르게 살려면 예수님의 신, 성령님이 내 안에 들어와서 역사를 해줘야 합니다. 즉 인싸 신자가 되어야 합니다.

결론입니다. 요즘 COVID-19으로 인해 잘못하면 아싸 신자로 전락될 위험이 커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럴수록 우리는 더욱 인싸 신자가 되어야 합니다. 주님이 내 안에, 내가 주님 안에 거하며 늘 주님을 느끼며, 주님과 동행하며, 주님이 주시는 힘으로 살아야 합니다. 아무쪼록 이 험한 세상 속에 내 안에 계신 주님과 함께 용기 있게 행복하게 사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