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10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제가 한국에서 여의도 순복음 교회 청년회 조장으로 있을 때의 일입니다. 한 자매님이 제가 속한 조에 들어왔습니다. 이 자매님은 한 때 자신의 말에 의하면 정신이 좀 이상해진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 그녀가 이제는 정신을 차리고 청년 구역장이 되고 신앙생활을 아주 열심히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그녀가 우리들에게 간증을 했습니다. “제가 미치기 전에 만날 입에서 이런 말을 달고 살았습니다. ‘아- 미치겠네. 나- 미쳐!’ 그랬더니 진짜 미치고 말았습니다. 이로 인해 저는 몇 년간 목이 뻣뻣해지고, 눈동자도 초점이 이상해지고, 제 몸을 제대로 가눌 수 없을 지경이었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저도 그녀가 하나님을 믿기 전에 동네에서 몇 번 본 적이 있습니다. 그 당시 그녀의 어머니가 항상 그녀를 부축해서 다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속으로 “아- 저 자매님이 어딘가 좀 많이 아픈 모양이다.”고 생각을 했었는데 그런 사연이 있었습니다.
여러분, 성경은 말씀합니다. “네 입의 말로 네가 얽혔으며 네 입의 말로 인하여 잡히게 되었느니라.”(잠6:2) “사람은 입에서 나오는 열매로 말미암아 배부르게 되나니 곧 그의 입술에서 나는 것으로 말미암아 만족하게 되느니라. 죽고 사는 것이 혀의 힘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혀의 열매를 먹으니라.”(잠18:20-21)
한국의 부모님들이 옛날에 참 안 좋은 언어 습관이 있었습니다. 자기의 자녀들에게조차 욕을 하는 것입니다. 그것도 아주 심한 저주의 욕을 합니다. 예를 들면 “이 때려죽일 놈아! 이 우라질 놈아! 이 빌어먹을 놈아! 이 문둥이 같은 놈아! 이 염병할 놈아! 이 육시랄 놈아”
요즘은 자녀들에게 이렇게 말하는 부모는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합니다. “형제에 대하여 라가(바보)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마5:22) 그런데 자기 자녀를 ‘미련한 놈(바보)' 정도가 아니라 이런 식으로 저주하는 부모는 과연 정상적인 부모일까요?
요즘 10대 청소년들의 대화를 듣다보면 욕이 난무합니다. 욕으로 시작해서 욕으로 끝납니다. 그런 욕들을 쓰는 청소년들을 우리는 모범생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도리어 그런 아이들을 걱정하면서 “아이고- 재들 앞으로 어떻게 되려고 하나!” 하고 심히 염려하게 됩니다.
여러분, 사람을 평가할 때 그가 쓰는 말을 들어보면 대개 알 수가 있습니다. 좋은 말을 하면 그는 좋은 사람이고, 착한 말을 하면 그는 착한 사람이고, 긍정적인 말을 하면 그는 긍정적인 사람이고, 용기 있는 말을 하면 그는 용기 있는 사람이고, 감사하는 말을 많이 하면 그는 감사의 사람입니다.
반대로 나쁜 말을 하면 그는 나쁜 사람이고, 이간하는 말을 하면 그는 이간하는 사람이고, 거짓말을 하면 그는 거짓말쟁이이고, 불평하는 말을 많이 하면 그는 인격이 좋지 않고 신앙이 형편없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합니다.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마12:34)
요즘 여러분의 언어습관은 어떻습니까? 아마 대부분이 예수님을 믿고, 혹은 은혜를 받고나서 언어가 많이 달라졌을 겁니다. 예전에는 무심코 ‘죽겠다’ ‘못살아’라는 말을 자주 했던 사람도 은혜를 받은 후에는 ‘죽겠다’ ‘못살아’라는 말이 분명히 줄어들었거나 아예 하지 않을 겁니다.
생명의 주인이신 예수님을 영접하고 나서도 만날 죽겠다고 하고 못살겠다고 하면 이것은 뭔가 크게 잘못된 겁니다. 잘못된 언어와 말은 빨리 고치셔야 합니다. 같이 따라서 해봅시다. “죽겠다. → 살겠다.” “짜증나! → 행복해!” “우울해! → 기분 좋아!” “답답해! → 상쾌해!”
저의 경우도 은혜를 받은 후에 ‘죽겠다’라는 말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죽을 나를 살리셨는데 내가 죽겠다고 하면 다시 신앙이 도루묵이 되고 마는 겁니다. 그러나 우울증에 걸린 사람들을 보면 주로 하는 말이 있습니다. 무엇이지요? ‘죽겠다’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우울증은 일명 죽음의 병 ‘자살병’이라고도 합니다. 이런 자살병인 우울증에서 놓여나기 위한 방법 중 하나는 ‘죽겠다’는 말을 생각뿐만 아니라 입에서 제거하는 겁니다. 같이 따라해 봅시다. “죽겠다. → 살겠다.” "죽겠다 귀신아, 예수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물러가라.“
성경에 보면 동방의 의인이라고 하는 욥이라는 사람이 나옵니다. 그런데 그가 순식간에 모든 재산을 잃었습니다. 7남 3녀도 집이 무너져 모두 압사를 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자신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악창이 생겨 괴로워서 죽을 지경입니다. 그의 아내는 “차라리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고 합니다.
즉 너는 소망이 없으니 차라리 자살하라는 겁니다. 그것도 하나님을 원망하고 믿음을 포기하고 자살하라는 겁니다. 그러나 성경에 보면 이런 욥의 위대한 신앙고백이 나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화도 받지 아니하겠느냐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입술로 범죄하지 아니하니라.”(욥2:10)
여러분, 우리는 죽을 때에도 하나님의 정해준 시기에 하나님의 뜻을 좇아 죽어야 합니다. 아직 하나님이 정해준 죽을 시기가 아닌데 자기 스스로 힘이 든다고 만날 입으로 죽겠다고 말을 하면 하나님께 크게 죄를 범하게 되는 겁니다. 그리고 사망의 귀신만 좋아하게 만드는 겁니다. 고로 ‘죽겠다.’는 말은 신앙인에게 결코 합당하지 않습니다. 따라 해봅시다. “주여 내 입에 파수꾼을 세우시고 내 입술의 문을 지키소서.”(시141:3)
예수님의 육신의 친동생이었던 야고보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라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 몸도 굴레 씌우리라.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삶의 수레바퀴를 불 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약3:2, 6)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 이것으로 우리가 주 아버지를 찬송하고 또 이것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을 저주하나니 한 입에서 찬송가 저주가 나오는도다. 내 형제들아, 이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약3:8-10) “누구든지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며 자기 혀를 재갈 물리지 아니하면 그 사람의 경건은 헛것이라.”(약1:26)
하루는 이사야 선지자가 환상 중에 하나님의 보좌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가 이런 고백을 합니다.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나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사6:5) 즉 이사야는 자기를 포함해 모든 사람들이 입으로, 말로 범죄를 하여 하나님 앞에 깨끗하지 못하다는 겁니다. 그래서 죽을 운명에 처했다는 겁니다.
이때 천사 중의 하나가 부젓가락으로 하나님의 제단에서 집은 숯불을 가지고 그의 입술에 대며 말합니다. “보라. 이것이 네 입에 닿았으니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사6:7) 즉 성령의 불로 그의 입술을 정결하게 했다는 겁니다. 고로 이제 죽을 운명이 변하여 사는 운명으로 바뀌게 되었다는 겁니다.
성령의 9가지 은사 중에 ‘발성의 은사’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에 해당되는 것이 방언의 은사, 방언 통역의 은사, 예언의 은사입니다. 즉 성령님이 나의 입, 나의 혀, 나의 말을 제어하고 사용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은혜 받은 사람, 성령 받은 사람은 일단 혀와 말이 변하게 됩니다.
오순절 날에 120명의 사람들에게 성령이 임할 때에 세 가지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첫째,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온 집안에 가득하고, 둘째, 불이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각 사람 위에 있고, 셋째,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다른 언어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행2:2-4)
은혜 받기 전에는 불평의 말을 하던 사람이 은혜를 받은 후에는 감사의 말을 합니다. 은혜 받기 전에는 늘 부정의 말을 하는 사람이 은혜를 받은 후에는 긍정의 말을 합니다. 은혜 받기 전에는 의심과 불신의 말을 하는 사람이 은혜를 받은 후에는 믿음의 고백을 합니다. 그로 인해 좋은 일이 생기고 인생이 변하게 됩니다.
하루는 예수님에게 이방 여인인 수로보니게 여인이 나타나 간청을 합니다. “주여, 내 딸이 흉악한 귀신이 들렸사오니 고쳐주시옵소서.” 그러나 예수님이 이렇게 대답합니다.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지는 것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이때 여자가 이런 귀한 신앙의 말을 합니다. “주여, 옳습니다마는 개들도 자녀의 상에서 떨어진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그러자 예수님이 이 여자의 말에 감동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합니다. “이 말을 하였으니 돌아가라. 귀신이 네 딸에게서 나갔느니라.”(막7:29) 여러분, 이 세상에는 귀신을 끌어들이는 말이 있고, 반대로 귀신을 쫓아내는 말이 있습니다. 그 말로 인하여 귀신이 들어오면 인생은 망하는 것이요, 그 말로 인하여 귀신이 나가고 예수님이 들어오면 인생은 흥하는 겁니다.
오늘의 본문은 말씀합니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롬10:9-10)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행2:21)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거짓을 말하지 말지어다.”(벧전3:10)
초대교회 당시에는 사람들이 로마 황제를 신으로 모셨었습니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은 황제를 신으로 모시지 않습니다. 그래서 기독교인들이 크게 박해를 당했습니다. 그들을 찾아내고 벌주는 것은 아주 간단했습니다. 입으로 “나는 예수님을 믿지 않습니다. 로마 황제가 나의 신입니다.”라고 시인하게 만드는 겁니다.
혹 어떤 분은 “아- 그들 앞에서는 입으로 예수님을 부인하고 마음으로는 부인하지 않으면 되지 않느냐?” 하고 생각하지만 예수님은 그렇게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요,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부인하리라.”(마10:32-33)
그래서 당시 기독교인들이 입으로 주를 부인하지 않아서 죽임을 당하고 크게 박해를 받았습니다. 성경은 입술의 시인, 즉 신앙 고백을 아주 중요시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배드릴 때 입으로 신앙고백을 합니다. 지금은 우리가 여기 캐나다 땅에서 혹은 한국 땅에서 편안하게 신앙고백을 합니다.
그러나 만약 여기가 북한 땅이거나 이슬람 나라 땅이라면 사람 앞에서 이렇게 신앙 고백을 하기가 참 어렵게 됩니다. 생사가 달린 문제가 됩니다. 저와 여러분이라면 그런 상황이 온다면 과연 입으로 주님을 시인할 수 있을까요? 즉 이때에는 입술의 고백으로 말미암아 쭉정이 신자와 알곡 신자, 진짜 신자와 가짜 신자가 구별이 될 것입니다.
결론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였느니라.”(빌23:11) “주여 내 입술을 열어 주소서. 내 입이 주를 찬송하여 전파하리이다.”(시51:15) “우리가 수송아지를 대신하여 입술의 열매를 주께 드리리이다.”(호14:2)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