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달란트 비유(눅 19:11-27)> 또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갈 때 그 종들을 불러 자기 소유를 맡김과 같으니
15 각각 그 재능대로 한 사람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
16 다섯 달란트 받은 자는 바로 가서 그것으로 장사하여 또 다섯 달란트를 남기고
17 두 달란트 받은 자도 그같이 하여 또 두 달란트를 남겼으되
18 한 달란트 받은 자는 가서 땅을 파고 그 주인의 돈을 감추어 두었더니
19 오랜 후에 그 종들의 주인이 돌아와 그들과 결산할새
20 다섯 달란트 받았던 자는 다섯 달란트를 더 가지고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내게 다섯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다섯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21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22 두 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내게 두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두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23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24 한 달란트 받았던 자는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25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가지셨나이다
26 그 주인이 대답하여 이르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27 그러면 네가 마땅히 내 돈을 취리하는 자들에게나 맡겼다가 내가 돌아와서 내 원금과 이자를 받게 하였을 것이니라 하고
28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라
29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30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하니라
이민 목회를 하다 보면 성도님들이 더욱 귀합니다. 더구나 요즘은 캐나다 이민정책이 바뀌어 한국에서 오는 분들의 수가 줄어들면서 이민 목회를 하시는 목사님들은 성도님들에게 더욱 신경이 쓰이게 됩니다. 그런데 가끔 이민 목회를 하시는 목사님들 중에 "나는 성도님들의 숫자에 연연해하지 않는다."고 말씀을 하시는 분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말씀하시는 목사님들의 심정을 제가 잘 압니다. 그리고 속으로 생각합니다. "오죽하면 그런 말을 할까? 저 양반 지금 좀 힘이 드는 모양이구나!" 여러분! 사실 목사님들이 "나는 성도님들의 숫자에 연연해하지 않는다."고 하는 말은 거짓말입니다. 목자가 양떼들의 숫자에 관심이 없다면 이미 목자가 아니든지 아마 삯꾼 목자일겁니다.
그럼에도 그렇게 말씀하시는 목사님들은 도리어 성도님들의 숫자에 너무 스트레스를 받다 보니까 그것에서 탈피하고 싶고, 또 스스로 위로를 하려고 그런 말씀을 하는 겁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성도님들의 수가 줄어들면 그것만큼 목사에게 스트레스가 되는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런 귀한 성도님들이 주일 예배 때는 꼭 나왔으면 좋겠는데, 늘 혹은 가끔 빠지시는 분들도 있어서 제 마음이 안타깝습니다. 제가 주일 예배의 마지막 순서인 축도를 마치고 뒤로 퇴장하면서 늘 기도하며 나갑니다. "주여! 보시지요. 지금 이 자리가 비어 있습니다. 채워주시옵소서." 그런데 주님은 도리어 우리에게 이렇게 명령합니다. "길과 산울 가로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눅14:23)
오늘도 본문에 보면 주인이 세 명의 종들에게 각각 달란트를 나눠주며 명령을 합니다. "이것을 가지고 장사를 하라." 그리고 나중에주인이 돌아 와서 결산을 하는데,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를 받은 종들은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 칭찬을 받고, 주인의 즐거움과 행복에 참여하게 됩니다. 반면 한 달란트 받은 종은 어두운 데로 쫓겨나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됩니다. 도대체 무엇이 이들을 이렇게 갈라놓았을까요?
생각의 차이입니다. 올바른 생각은 올바른 행동을 낳고, 잘못된 생각은 잘못된 행동을 낳습니다. 이 두 부류의 차이점 중에 한 부류는 있는 자의 긍정적인 생각을 가졌고, 또 한 사람은 없는 자의 부정적인 생각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있는 자의 긍정적 생각을 가진 자는 더욱 풍족하게 되고, 스스로 없는 자로서 부정적인 생각을 가진 자는 있는 것까지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오늘은 그 차이점을 알아보면서 같이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먼저 본문에 있는 자들에게 있었던 것은 달란트였습니다. 두 달란트, 다섯 달란트 맡은 종은 주인이 자기들에게 맡겨준 달란트가 있는 것으로 봤습니다. 그러나 한 달란트 받은 종은 없는 것으로 봤습니다. 왜요? 적게 받았으니까요. 그런데 문제는 이 달란트는 잘 아시겠지만 푼돈이 아닙니다. 원래 달란트는 금 무게를 재는 단위입니다. 그래서 한 달란트라고 하면 금 33kg 정도를 말하는데 우리가 보통 금 한 돈이라고 하는 것이 몇 그램이지요? 3.75 그램입니다.
요즘 금 한 돈 가격이 시세로 191,400 원입니다. 이것을 환산하면 금 한 달란트는 18억 3천만 원입니다. 그러니까 두 달란트는 대략 37억이고, 다섯 달란트는 100억입니다. 즉 하나님이 주신 것은 하나 둘 다섯 밖에 안 되는 것 같지만, 실제 가치로 따지면 그건 어마어마하게 가치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두 달란트, 다섯 달란트 받은 종뿐만 아니라 한 달란트를 받은 종도 실지는 어마어마하게 받은 겁니다.
그런데 한 달란트를 받은 종은 "뭐야! 쟤네들은 37억과 100억 받았는데 나는 18억 밖에 못 받았네. 나는 이게 뭐야?" 그러면서 자기의 없는 것만 보니 그는 없는 자입니다. 여러분! 18억은 작은 돈입니까? 여러분이 하나님께 받은 게 과연 적습니까? 꼭 물질만 말하는 게 아닙니다. 사도 바울은 그의 편지에서 자신은 그저 물질이 풍요하다고 말하지 않고, 쓸 것이 풍요하다고 말을 합니다. 즉 많이 있어도 늘 부족하게 궁핍하게 사는 사람이 있고, 그렇게 많지 않은데도 늘 풍요롭게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비결은 적게 받았어도 자기가 가진 것을 보고, 그것을 풍성한 것으로 여기면서 감사하며 살면 그 분은 있는 자입니다. 여러분! 있는 것, 받은 것을 보세요. 없는 것만 보면서 "아- 나는 뭐도 없고, 뭐도 없고 불행하구나!" 생각하지 마시고, 있는 것을 보시면서 "아- 내가 이렇게 풍족하구나!" 감사하면서 사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리고 본문의 있는 자들에게 있었던 것은 재능이었습니다. 주인이 종들에게 달란트를 나눠 줄 때, 그냥 나눠 줬던 게 아니라 재능에 따라, 거기 맞게 주셨다는 겁니다. 여기서 재능이란 능력이란 말로 바꿔 써도 무방한데, 무엇보다도 나의 능력은 나보다 하나님이 더 잘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나에게 한 달란트를 주셨을 때 "아! 하나님이 내 재능을 보고 주셨기 때문에 나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넉넉히 할 수 있어!”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없는 사람들은 왜 없느냐? 남들과 비교해서 없는 겁니다. 그게 없는 사람, 부요하지 못한 사람들의 특징입니다. 그들은 끊임없이 있는 자들과 비교합니다. 그러면 늘 불행하고 감사보다는 불평이 나옵니다. 여러분! 잊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나에게 능력에 따라서 알맞게 주었으니 나도 있는 자입니다. 나도 가진 자입니다. 고로 나도 떳떳합니다. 나도 할 수 있습니다.
제가 17년 전에 여기 캐나다에 오서 보니 참 신기한 것이 있었습니다. 다름 아닌 자동차가 참 종류가 많습니다. 더욱 신기한 것은 당시 한국에서도 유행이 지나서 거의 타지 않는 엑셀 승용차도 있고, 골동품 수준인 포니 승용차도 기어 다니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더 기가 막힌 것은 차가 아예 녹이 쓸어서 "저것도 차냐?" 할 정도로 낡은 차를 버젓이 타고 다닙니다. 한국사람 같으면 남의 차와 비교해서 창피해서 도저히 못타고 다닐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 캐나다 사람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부부간에도 그렇습니다. 남편이나 아내가 못생기거나 장애자인 배우자를 데리고 다녀도 여기 사람들은 아주 떳떳합니다. 여러 사람들 앞에서 자기 배우자를 당당히 소개합니다. 그러나 한국 사람들은 자꾸 남의 아내와 남의 남편과 자기 배우자를 비교합니다. 그래서 밖에 외출하고 오면 기분이 나빠집니다. 자기는 없는 것 같고, 자기는 불행한 사람 같습니다. 아닙니다. 같이 따라해 봅시다. "나도 있는 자다. 나도 가진 자다."
또한 본문에 있는 자들에게는 주인에 대한 신뢰가 있었습니다. 한 번 가만히 생각해 보세요.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뭘 걱정했지요? 그 한 달란트를 잃어 버릴까봐, 그걸 날릴까 봐 걱정했습니다. 즉 그걸 날리면 주인한테 야단맞을 것, 그걸 걱정한 겁니다. 즉 주인에 대한 신뢰가 없었습니다.
오늘 달란트 비유에서 주인이 종들에게 맡긴 달란트가 모두 몇 달란트지요? 1+2+5 하니까 모두 8 달란트지요. 그러면 그게 주인의 전 재산일까요? 200억 원 정도를 맡기고 해외로 훌쩍 떠난 사람이 그 200억 원이 전 재산이겠냐구요? 아마 이럴 정도의 주인은 한 2조원정도는 가지고 있지 않았겠습니까? 즉 주인은 자기의 전 재산 중에서 한 10% 정도만 종들에게 맡겼을 겁니다. 무슨 얘기냐? 우리는 종종 내가 뭔가를 잘못하면 하나님이 큰 피해를 보시는 것으로 착각합니다.
그러나 이것 잊지 마십시오. 우리는 하나님께 큰 피해를 끼칠 만한 능력이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에 엄청난 데미지를 끼칠 능력이 없다고요. 설령 내게 맡긴 것을 다 날려 버린다 해도 하나님께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이 한 시간만 굴려도 다 복구가 될걸요? 우리는 주인에 대한 이런 신뢰가 있어야 합니다. 이게 있는 자의 여유로운 태도입니다. 이게 풍족한 자의 믿음입니다.
두 달란트나 다섯 달란트 받은 종들은 바로 이런 주인에 대한 신뢰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내게 맡겨 주셨으니 나는 최선을 다해서 장사를 해보지만, 결국 하나님이 책임지실 거야. 그래서 안 되면 하나님이 얼마든지 지켜주실 거야." 이게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는 마음가짐입니다. 여러분! 걱정하지 마시고, 주인 되시는 하나님을 믿고 이 외국 땅에서도 용감하게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또한 분문에 있는 자에게는 순종이 있었습니다. 본문에 두 달란트 다섯 달란트 받은 종은 바로 가서 장사했다고 했습니다. 바로 갔다는 게 순종입니다. 순종은 복잡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반면 불순종은 복잡합니다. 불순종은 이유가 많고 변명도 많습니다. 그래서 한 달란트를 받은 자는 장사를 못합니다. 순종을 못합니다. "주인은 굳은 사람이다. 지금은 경기가 안 좋아서 장사할 때가 아니다. 혹시 내가 장사해서 실패하면 주인이 나를 책망할 것이다." 하고 변명을 늘어놓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 각자에게 일을 맡기셨습니다. 이때 우리는 얼마든지 핑계를 대고 빠져나갈 수 있습니다. 주인의 단점과 불합리함을 얼마든지 늘어놓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의 불순종을 타당화시킬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로 인해 자기에게 돌아오는 것은 결국 불행이었습니다. 어두운 데서 슬피 울며 이를 갈아야 했습니다.
여러분! 없는 것만 보고 부정적인 것만 보면 인생은 결국 불행해지고 맙니다. 있는 것을 보시면서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있는 것을 보면서 용기를 가지시기 바랍니다. 정말 우리는 가진 게 많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나오신 분들은 믿음이 있습니다. 여기에 나올 수 있는 건강도 있습니다. 지금 앉은 자리에서 교회를 둘러보십시오. 있는 것이 보입니까? 없는 것만 보입니까?
저는 이 자리에 있는 것이 보입니다. 저 그랜드 피아노도 보이고, 각종 음향 장치도 보이고, 성가대도 보이고, 천하보다 귀한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보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이 외국 땅에서 우리에게 주신 아름다운 성전도 보입니다. 솔직히 지금 우리는 여전히 많은 것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가진 것으로도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다시 한 번 마음을 잡고 새로운 믿음의 길로 나아가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자기의 있는 것을 바라보고 나아가는 자를 하나님이 반드시 복 주시고 은혜 주셔서 여러분 모두는 있는 중에 더욱 풍족해지실 겁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많이 주었는데도 없다고 생각하고 늘 불평하는 자는 있는 것까지 빼앗기게 됩니다. 아무쪼록 하나님이 주신 그 풍족함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더 확장시켜 나가는 저와 여러분의 인생이 되시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