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자랑 주님 자랑

날짜: 
2005/09/18
설교: 

렘9:23-24 자기 자랑 주님 자랑
옛날 어느 숲 속에 공작새 부부가 살고 있었습니다. 하루는 그들에게 예쁜 딸이 태어났습니다. 딸 공작새는 곱게 잘 자랐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다른 숲에 살고 있는 공작새 총각에게 시집을 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시집을 간지 채 한 달도 안되어서 딸 공작새가 풀이 푹 죽은 채 친정으로 날아왔습니다. 어미 공작새는 걱정이 되어서 딸 공작새에게 물었습니다. "얘, 왜 그러느냐? 도대체 무슨 일이냐?"
딸 공작새는 어미 공작새에게 하소연했습니다. "엄마, 도무지 외로워서 살 수가 없어요. 숲의 새들이 다 나를 따돌리고 있어요. 그러니 내가 어떻게 살아갈 수 있겠어요?" 딸 공작새의 말을 들은 어미 공작새의 마음속에 무엇인가 집히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딸 공작새에게 물었습니다. "얘, 너 아무데서나 네 꽁지를 활짝 펴 보이면서 뽐내었지? 어때? 내 말이 틀림없지?"
딸 공작새는 그 소리를 듣고 깜짝 놀란 듯이 어미 공작새에게 물었습니다. "엄마, 이 아름다운 꼬리는 우리 공작새에게만 있는 것이잖아요. 그러니 다른 새들에게 그것을 조금 펼쳐 보여주는 것이 뭐가 그리 잘못되었나요?" 그때 어미 공작새는 딸 공작새에게 이렇게 일러주었습니다. "얘야, 내가 한 번은 숲에서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를 우연히 엿들은 적이 있었단다. 그때 어떤 사람이 자기 친구를 이렇듯 점잖게 타이르더구나! '여보게, 자네의 대화 가운데서 골프에 대한 이야기는 그만 좀 빼게나. 영국의 골퍼들 사이에서는 젠틀맨 골프 상식이라는 말이 있다네. 만일 좌중에 한 사람이라도 골프를 치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그들은 절대로 골프에 대한 이야기를 화제로 올리지 않는다는 걸세.‘“
이렇게 말하고 어미 공작새는 딸 공작새에게 말했습니다. “얘야, 내가 한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아듣겠니?" 딸 공작새는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리고는 다시 시집으로 날아갔습니다. 그 뒤 그녀는 다시는 풀이 죽은 채 친정으로 날아오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때부터는 숲 속에 있는 다른 새들과 잘 어울려서 살아가는 법을 배웠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사람은 누구를 막론하고 자랑하고 뽐내기를 좋아합니다. 이것은 심리학적으로 인정감(recognition)이라는 본능에서 나온다고 합니다. 즉 사람은 누구나 남에게 인정을 받고 싶어 하고 칭찬 받고 싶은 욕망이 있습니다. 그래서 자기에게 자랑거리가 있으면 막 하고 싶고 없는 경우엔 아들 자랑, 딸 자랑, 남편 자랑 아내 자랑, 권세 자랑, 물질 자랑, 외모 자랑, 그 외에도 많은 것으로 자랑을 합니다. 그런데 방금 말한 공작새의 이야기처럼 자랑도 잘못하면 다른 이의 마음을 상하게 하고, 인정을 받기는커녕 미움만 사게 되고, 되레 왕따가 되는 경우도 생길 수가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요셉이라는 사람이 나옵니다. 그는 아버지 야곱의 11번째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위로 10명의 배 다른 형들이 있었고, 아래로는 막내 남동생 베냐민이 있었습니다. 요셉은 아버지로부터 사랑을 독차지하였습니다. 형들은 평범한 옷을 입을 때에도 요셉은 채색 옷을 입었습니다. 더구나 그는 하나님으로부터도 사랑을 받아 기막히게 좋은 꿈의 계시를 받았습니다.
요셉은 형들에게 자기의 꿈을 자랑합니다. “형들이여, 나의 꾼 꿈을 들으시오. 우리가 밭에서 곡식을 묶더니 내 단은 일어서고 당신들의 단은 내 단을 둘러서서 절하더이다.” 그러자 형들이 화를 내며 말합니다. “뭐야! 네가 참으로 우리의 왕이 되겠느냐? 참으로 네가 우리를 다스리겠느냐?”
그러잖아도 형들은 요셉이 아버지로부터 더 많은 사랑을 받아서 미워죽겠는데 자기가 하나님께 이런 꿈을 꾸었다고 자랑을 하니까 더욱 야곱을 미워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한술 더 떠 요셉이 이번에는 이런 자랑을 합니다. “형들이여, 내가 또 꿈을 꾼즉 해와 달과 열 한 별이 내게 절하더이다.” 이런 자랑으로 인해 요셉은 형들로부터 극한 미움을 사게 되었고, 나중에는 형들에게 인신매매를 당하는 고통도 당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요셉에게 이렇게 꿈의 계시를 주신 것은 장래의 될 일을 미리 가르쳐주시므로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게 하고, 나중에 어려운 일을 당할 때 용기를 잃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지 결코 자랑하고 뽐내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각종 좋은 선물을 주신 이유는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게 하고, 또한 주님의 몸인 교회를 아름답게 세우고, 성도 간에 화목과 사랑을 이루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이런 목적을 바로 깨닫지 못하고 자기를 내세우고 자랑하다가 도리어 하나님께 영광이 되지도 못하고, 하나님의 일을 그르치고, 성도 간에도 미움과 질시를 일으키는 경우가 생길 수가 있습니다.
물론 사람은 제 잘난 맛에 산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가 아무리 잘나도 자기를 너무 과시하고 자랑하면 다른 사람으로부터 미움을 받게 되고, 그렇게 되면 결국 인간관계가 나빠지고, 그 결과 하나님의 일을 하는 데에도 큰 장애가 되고 맙니다. 얼마 전 인터넷에 이런 상담의 이야기를 보았습니다.
『친구가 있는데 자기자랑이 너무 심해요. 저는 지금 취업이 잘 안되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거든요. 이 친구는 회사에 취업해서 다니고 있고요. 얼마 전에는 그 친구가.. 자기 월급명세서를 띠어와 저한테 보여주더군요. 자기가 몇 달 동안 이렇게 많이 벌었대나..뭐래나.. 그리고 자기가 사둔 땅이 지금 몇 배로 뛰어서 지금 팔면 몇 억이 된다는 얘기.. 등등.. 듣다보면 다 자기 자랑입니다.
그러면서.. 돈쓸 일이 있을 때는 굉장히 인색합니다. 제가 좀 둔한 편이어서.. 사실 웬만해서는.. 이런 일에 민감하지가 않거든요. 그런데 계속 자기 자랑이 반복되다 보니... 요즘엔 신경이 쓰이네요. 제가 남에게 싫은 소리도 잘 못하는 성격이어서.. 더더욱.. 그렇지만.. 충고를 안해줄 수는 없는 거구.. 어떻게 충고를 해주는 게 좋을까요? 참고로 그 친구는 자존심이 무척세구, 남의 말 잘 안듣는.. 그런 스타일이거든요. 좋은 방법 좀 알려주세요.』
이에 대해 어떤 분이 이렇게 답변을 했습니다. 『그런 종류의 자랑에는 관심이 없다는 표현을 해주는 것도 좋을 듯 합니다. "우와~ 우리 집의 땅값이 작년보다 벌써 2배나 올랐어! 그럼 몇 억이야... 왕..." 이런 질문에 "짭... 배고프다..." 하는 등의 엉뚱한 대답을 한다거나 아예 다른 얘깃거리를 꺼내서 '네가 하는 그런 자랑은 전혀 관심 없어' 하는 반응을 보이면 효과가 있을 듯합니다. "어머 좋겠다. 얘..", 한다던가 "웅..쫌 버네.." 라는 대답보다는 말이죠...』
이 글을 읽고 또 다른 분도 이렇게 답변을 했습니다. 『자랑거리를 많이 하는 친구가 있으면 현명한 사람은 그냥 그러려니 할 것 같네요. 하지만 맞붙고 싶다면 약간 비꼬는 식으로 얘기해보세요. 예를 들어 "나 이거 어제 샀다!"하고 자랑하면 "응, 난 몇 달 전부터 그거 갖고 있었어." 이런 식으로요... 그럼 아마 말문이 꽉 막힐 거예요....ㅋㅋㅋ』
여러분, 물론 이들 대답은 추천할만한 답변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런 답변을 해주는 사람들의 심정에는 그렇게 자기 자랑을 하는 사람들에 대해 좋은 감정을 갖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자기 자랑을 늘어놓는 사람하고는 사귀고 싶지 않다는 마음을 읽을 수 있습니다. 즉 자기 자랑은 인간관계를 좋게 하기 보다는 나쁘게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자기 자랑의 폐단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제 너희가 허탄한 자랑을 자랑하니 이러한 자랑은 다 악한 것이라”(약4:16)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요일2:16) “여호와께서 모든 아첨하는 입술과 자랑하는 혀를 끊으시리라.”(시12:3)
여러분, 인간이 자기를 자랑하는 것은 그다지 아름답지 않습니다. 본문에도 보면 “지혜로운 자는 그 지혜를 자랑치 말라. 용사는 그 용맹을 자랑치 말라. 부자는 그 부함을 자랑치 말라”고 했습니다(렘9:23). 그리고 성경은 거듭 말씀합니다. “너는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라 하루 동안에 무슨 일이 날는지 네가 알 수 없음이니라.”(잠27:1) 또한 고린도 전서 13:4에도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한다고 했습니다.
성경에 보면 사도 바울은 자랑할 만한 것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는 유대인이면서 로마의 시민권을 가졌으니 사회적인 신분을 자랑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학문적으로도 당대의 명문인 가말리엘 문하에서 배웠으니 학벌을 자랑할 수도 있었습니다. 종교적으로 보아도 그는 바리새인 중의 바리새인이었으니 종교적으로도 자랑거리가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런 자랑거리를 다 배설물로 여긴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빌3:8)
여러분, 세상에 누가 “자기가 배설한 것을 자랑하겠습니까?” 어린이들조차도 자기가 배설한 것은 자랑거리로 삼지 않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세상 자랑을 배설물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마치 보석처럼 여기고 그것을 자랑하는데 인생을 걸고 있습니다. 그러나 명심하십시오. 세상 자랑의 결과는 좋지 않습니다. 성경에 보면 세상 자랑하다가 재미없는 일이 터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사야 39장에 보면 히스기야 왕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는 죽을병에 걸렸을 때 하나님께 진정으로 회개하고 눈물로 기도하여 15년의 수명을 연장 받았습니다. 그때 바벨론의 왕이 이 소식을 듣고 축하 사절단을 보냈습니다. 그러자 히스기야 왕은 사절단에게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지 않고, 궁중에 있는 보물과 향료와 각종 보화들, 그리고 무기 창고까지 보여주면서 자랑을 했습니다.
그것을 보신 하나님이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이렇게 예언하셨습니다. “보라 날이 이르리니 네 집에 있는 모든 소유와 네 열조가 오늘날까지 쌓아 둔 것이 모두 바벨론으로 옮긴바 되고 남을 것이 없으리라.”(사39:6) 여러분, 히스기야는 하나님의 은혜를 많이 받아서 부강하게 되었고, 적의 침입도 막아서 보화도 많이 저장할 수 있었고, 죽을병도 나았습니다. 그렇다면 히스기야는 하나님을 나타내고 하나님을 자랑해야 하는데 오히려 자기만 자랑했으니 결국 하나님께 미움을 사고 만 것입니다.
여러분, 자기 자랑은 자칫 자만과 교만에 빠지기 쉽고 하나님의 진노를 불러오기 쉽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자랑을 늘어놓는 사람을 지혜롭다거나 똑똑하다고 말씀하지 않습니다. 성경에 보면 은혜 받은 사람들은 자기를 자랑하는 사람이 아니라 오히려 주님을 자랑하고 주님께 영광을 돌리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성경은 그들의 고백을 이렇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내 영혼이 여호와로 자랑하리니 곤고한 자가 이를 듣고 기뻐하리로다.”(시34:2) “혹은 병거, 혹은 말을 의지하나 우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자랑하리로다.”(시20:7)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느니라.”(갈6:14) 오늘의 본문도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자랑하는 자는 이것으로 자랑할찌니 곧 명철하여 나를 아는 것과 나 여호와는 인애와 공평과 정직을 땅에 행하는 자인줄 깨닫는 것이라 나는 이 일을 기뻐하노라 여호와의 말이니라.”(렘9:24)
여러분, 예수님의 12제자들은 세상적으로 유력한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갈릴리 해변가의 무식한 어부들이거나 죄인처럼 멸시받던 세리였습니다. 예수님이 이렇게 세상의 어리석은 자, 힘없는 자를 택하시고 사용하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다름 아닌 그들로 자기를 자랑하는 교만을 막으려 하기 위함이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을 구원하실 때에도 행위로 하지 않고 단지 믿음으로 하시는 것도 우리 스스로 ‘나는 잘났다. 나는 깨끗하다’고 하는 자랑을 막기 위함입니다. 이에 대해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희가 그 은혜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엡2:8-9) “그런즉 자랑할 데가 어디뇨 있을 수가 없느니라 무슨 법으로냐 행위로냐 아니라 오직 믿음의 법으로니라”(롬3:27)
여러분, 진정한 자랑은 자기를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자랑하는 것입니다. 나 같은 죄인을 살리기 위해 낮고 천한 이 땅에 오셔서 자기 몸을 깨트리신 예수님을 자랑하는 것, 그리고 예수님의 그 크신 은혜의 복음을 자랑하며 사는 것이 우리의 간절한 소원입니다. 이렇게 우리 주님을 자랑할 수 있는 우리의 입술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외 외국 땅에서도 주님의 십자가를 자랑하는 데에 익숙하고 용감한 우리들이 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