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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이 수많은 전쟁 후에 왕이 되었을 때, 반지를 만드는 직공을 불러 명령했습니다. "특별한 반지를 하나 만들어 주게. 내가 힘들어 낙심하고 지쳐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을 때 보고서 힘을 얻고, 또 모든 것이 다 잘 풀려 교만하려 할 때 겸손하게 해줄 글귀가 새긴 반지를 하나 만들어 주게나." 세공은 보석이 박힌 아름다운 반지를 만들고, 어떤 글귀를 새겨 놓을지 궁리를 했지만 뾰족한 게 떠오르지 않자 지혜로운 왕자 솔로몬에게 갔습니다. "왕자님. 부친 다윗 왕이 제게 반지를 만들어 글귀 한 줄을 새겨놓으라고 하셨는데... 도무지 좋은 글귀가 생각나지 않습니다. 실패하고 모든 것이 무너지는 것처럼 느껴질 때 힘을 줄 수 있는 글귀, 또한 모든 것이 잘 풀려서 교만해지려 할 때 겸손하게 해줄 수 있는 글귀가 없을까요?“ 이 말을 들은 솔로몬은 한참 말없이 있다가 "이렇게 써 놓으세요. ”이것도 곧 지나가리라.(This, too, shall pass away)“ 이 말은 유대인의 지혜서인 '미드라쉬'에 나오는 말인데 유대인들이 항상 즐겨 읽는 구절입니다. 나치 학살 시에도 그들은 이 구절을 붙잡고 이겨낼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를 근거로 랜터 윌슨 스미스(Lanta Wilson Smith)라는 사람이 이런 글을 남겼습니다. “거대한 슬픔이 노도의 강처럼 평안을 파괴하는 힘으로 그대의 삶으로 쳐들어오고, 소중한 것들이 눈앞에서 사라져 갈 때, 그대의 마음에 이렇게 말하라. ‘이것도 곧 지나가리라.‘
끊임없는 근심으로 피곤에 지쳐 기도조차 할 수 없을 때, 이 진실의 말로 당신의 슬픔을 줄이고, 힘든 나날의 무거운 짐들을 가볍게 하도록 하라. ‘이것도 곧 지나가리라.’ 행운이 그대에게 미소 짓고 근심걱정 없는 나날로 환희와 기쁨이 다가올 때 그대가 세속적인 보물들에만 안주하지 않도록 이 진실의 말을 그대의 마음에 깊이 새기어라. ‘이것도 곧 지나가리라.’
그대에게 많은 사람들로부터 큰 명성과 찬란한 영광이 다가오고, 사람들이 그대에게 칭찬의 아름다운 말과 함께 환한 미소를 지을 때, 삶의 가장 길고 장대한 이야기도 이 세상사에서는 짧은 한 순간에 불과하다는 것을 기억하고 이렇게 고백하라. ‘이것도 곧 지나가리라.’“
여러분! 인생은 누구나 굴곡이 있습니다. 힘들고 어려운 순간도 있고, 즐겁고 행복한 순간도 있습니다. 물론 사람들은 모두가 어려운 시절을 겪기 보다는 행복한 시절을 누리기를 고대합니다. 그러나 거의 모든 사람들의 인생은 어렵습니다. 이에 대해 성경도 이렇게 말씀합니다.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시90:10)
이러한 짧은 인생길을 지나면서 우리는 두 가지 조심할 것이 있습니다. 첫째, 잘될 때에 교만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다니엘서에 보면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나옵니다. 그는 전쟁터에서 큰 승리도 거두고, 나라가 너무 잘되니까 슬슬 교만해지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왕궁 지붕 위에서 바벨론 도시를 바라보면서 이렇게 교만한 말을 합니다. “이 큰 바벨론은 내가 능력과 권세로 건설하여 나의 도성을 삼고 이것으로 내 위엄의 영광을 나타낸 것이 아니냐?”(단4:30)
이런 교만한 말을 하나님이 듣고 말씀합니다. “느부갓네살왕아 네게 말하노니 나라의 위가 네게서 떠났느니라. 네가 사람에게서 쫓겨나서 들짐승과 함께 거하며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요, 이와 같이 일곱 때를 지내서 지극히 높으신 자가 인간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그것을 누구에게든지 주시는 줄을 알기까지 이르리라.”(단4:31-32)
느부갓네살 왕은 자기 잘나서 큰 나라를 세우고, 자기가 잘나서 전쟁에서 승리하고, 자기가 잘나서 모든 것이 형통한 줄 알았습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교만해지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성경이 말씀한대로 되고 말았습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잠16:18)
결국 교만한 느부갓네살 왕이 왕좌에서 쫓겨나 7년 동안 하늘의 이슬을 맞으며 짐승처럼 살면서 다시 겸손해졌습니다. 그리고 하늘의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러자 다시 그에게 총명이 돌아왔고 왕권도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그가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나 느부갓네살이 하늘의 왕을 찬양하며 칭송하며 존경하노니 그의 일이 다 진실하고 그의 행하심이 의로우시므로 무릇 교만하게 행하는 자를 그가 능히 낮추심이니라.”(단4:37)
여러분! 사람은 조금만 잘되면 교만해지기가 참 쉽습니다. 내가 누구보다 더 배웠다고 교만해지기 쉽고, 내가 누구보다 더 잘생겼다고 교만해지기 쉽고, 내가 누구보다 돈이 더 있다고, 더 잘나간다고 교만해지기 쉽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시는 사람이 바로 그런 교만한 사람입니다. 사실 그 가진 것은 모두 하나님이 주신 것이고, 그 잘생긴 것도 하나님이 만드신 솜씨고, 그 배운 지식도 하나님이 주신 지혜로 배운 것인데.... 사람들이 왜 그리 교만해질까요?
그렇게 모든 것을 가지고 교만해져서 하나님과 멀어지는 것보다 차라리 가진 것이 부족하고, 배운 것도 부족하고, 못생겨서 겸손하여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 수 있고, 하나님께 은혜를 얻고 사는 것이 더 낫지 않겠습니까? 왜 아멘 소리가 안 나옵니까? 한 번 아멘을 크게 해보십시오.
제가 여기 캐나나 이민 목회를 하면서 느끼는 것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비자와 영주권을 얻기 위해 애를 많이 씁니다. 때로는 노예계약을 하고 심한 고생을 합니다. 그러다가 비자가 나오고 영주권이 나오면 사람이 변합니다. 더 좋은 모습으로 변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대부분이 신앙이 변질되고 나태해지고 교만해지고 맙니다.
사실 영주권이 있고, 시민권이 있고, 돈도 있어도 하나님이 도와주시지 않으면 인생 살기는 여전히 힘든데, 왜들 그런지 모르겠습니다. 예수님은 배우고 가졌다고 하는 교만한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기뻐하지 않으셨습니다. 차라리 못 가졌고, 못 배웠어도 겸손한 사람들을 가까이 하셨습니다.
그런데 보기에 아주 꼴불견인 것이 있습니다. 그렇게 잘나지도 않고, 그렇게 가지지도 않고, 그렇게 배우지도 못했으면서도 교만한 사람입니다. 아- 이건 진짜 비극입니다. 같이 한 번 따라서 해봅시다. “하나님! 이런 비극의 주인공이 되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제발 잘될 때에도 겸손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둘째, 인생길을 가면서 조심할 것이 있습니다. 안 될 때에 낙심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요즘 우리 교회 성도님들 중에 힘이 떨어진 분들이 있습니다. 얼굴 표정이 그리 밝지 못한 분들이 있습니다. 그 이유 중 큰 원인은 돈이 떨어졌다는 것입니다. 이런 분들에게 목사님이 설교를 합니다. “항상 기뻐하라.”
이때 성도님은 옳은 말씀인 것은 뻔히 알면서도 자칫 반발하기 쉽습니다. “하나님도 돈 떨어져 봐요. 항상 기뻐하실 수 있는지... 하기야 하나님은 렌트비, 모기지 걱정도 안하시고, 먹고 마시는 것도 걱정이 없으신 분이시니까 그렇게 속 편하게 말하실 수 있겠지요? 그러나 솔직히 하나님이 내 입장이 되어 봐요? 항상 기뻐할 수 있는가?”
아- 저도 목사이기 전에 한 집안의 가장으로서 이해가 됩니다. 사실 여기 외국 땅까지 와서 궁핍하게 산다는 것은 우리들의 계획에는 전혀 없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경제가 안 좋아지고, 그에 따라 우리 성도님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이 미치고 있습니다. 직장을 잃고 돈이 떨어지니까 하나님께 기도도 해보았겠지요. 그런데 여전히 어려운 것은 ing입니다.
이때 믿음이 약하신 분은 또 이런 불평을 늘어놓기 쉽습니다. “하나님! 제가 기도했는데 왜 안 들어 주십니까? 저 지금 많이 힘들다고요. 앞으로 언제까지 제 기도 안 들어 주시면 저 하나님 안 믿을런지 모릅니다. 그때 가서 저보고 믿음이 없다고, 왜 교회 안 나오냐고 탓하지 마십시오. 저도 참을 만큼 참았습니다.“
이런 분을 위해 생각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누가복음 18장의 예수님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 비유로 말씀하여 이르시되 어떤 도시에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는 한 재판장이 있는데 그 도시에 한 과부가 있어 자주 그에게 가서 내 원수에 대한 나의 원한을 풀어 주소서 하되 그가 얼마 동안 듣지 아니하다가 후에 속으로 생각하되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나 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내가 그 원한을 풀어 주리라.
그렇지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 하였느니라. 주께서 또 이르시되 불의한 재판장이 말한 것을 들으라.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눅18:1-8)
제가 여기 캐나다에서 살다 보니 한국과 다른 현상이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한국에서는 빨리빨리의 영이 있어서 기도도 빨리빨리 응답이 되는데 여기 캐나다는 느려 터져서 기도를 해도 응답이 오는 건지 안 오는 건지 도무지 늘 안개 낀 장충단 공원입니다. 그러니 낙심이 더 많이 되는 겁니다. 그렇다고 어디 다른 방법을 찾기도 쉽지 않습니다. 서쪽에는 로키산맥이 막혔고, 동쪽으로는 가도 가도 끝없는 평원이고, 북쪽은 여기보다 추운 알라스카 동네요, 남쪽으로는 국경이 막혀 있습니다.
아- 답답합니다. 짜증납니다. 자연스럽게 인상이 찡그려지고 맙니다. 그래서 아내에게 남편에게 자녀에게 화풀이를 해봅니다. 그러다보니 가정 분위기가 좋지 않습니다. 교회에 와도 싸우고 오는 경우가 생겨납니다. 예배를 마치고 나서 성도 간에 교제고 식사고 뭐고 간에 다 싫습니다. 어디론지 멀리 떠나고 싶습니다.
이렇게 낙심이 오래 쌓이다 보니, 피곤이 몰려오고 삶의 의욕이 떨어집니다. 그렇게 의욕이 떨어져 외국 땅에서 살다보니 우울증과 조울증이 쉽게 찾아옵니다. 그리고 그 다음엔 정상적인 행동과 말이 아닌 파괴적이고 부정적인 말과 행동이 나오기 쉽습니다. 이때를 위하여 우리 교회는 합심하여 기도하고 있습니다. “한 번 더 기도하게 하시옵소서. 한 번 더 인내하게 하시옵소서. 한 번 더 쓰임 받게 하시옵소서.”
오늘의 본문도 말씀합니다. “너희 중에 고난당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찬송할지니라.” 여러분! 오늘의 삶이 힘이 듭니까? 그것도 곧 지나갑니다. 그러니 조금만 더 인내하십시오. 한 번만 더 인내하십시오. 그리고 이 고난을 통하여 내가 좀더 하나님께 합당한 모습으로 갖추어지는 계기로 삼아보십시오. 그리고 다시 고난이 떠나가고, 형통이 다가오며, 좋은 일이 일어나고 만사가 잘 될 때에 교만하지 않도록 하십시오. 오늘의 결론입니다. “잘될 때에 교만 금지! 안 될 때에 낙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