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된 자존심 올바른 자존심

날짜: 
2015/03/29
말씀: 
시51:1-19
말씀구절: 

...

설교: 

한 초등학교 교실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지영이는 오늘도 혼자 외롭게 집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주위의 친구들이 지영이에게 가까이 가지 않으려 했다. 아이들은 모두 지영이를 보면 따가운 눈총을 줄 뿐 말을 건네지 않았다.

지영이는 공부도 잘하고 운동도 참 잘했다. 게다가 얼굴도 예쁘고 야무져서 반장까지 맡고 있는 똑똑한 아이였다. 그런 지영이가 갑자기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받기 시작한 것은 얼마 전의 일 때문이었다.

그 날 지영이는 선생님이 안 계셔서 앞으로 나가 아이들에게 조용히 하라고 말했다. 그런데 아이들은 듣는 둥 마는 둥 옆 짝꿍과 신나게 떠들어댔다. 그 중에서도 용철이의 목소리가 제일 컸다. "쳇, 공부도 못하고 가난한 주제에......" 지영이는 칠판 한 귀퉁이에다 ‘떠든 사람 이용철’이라고 적었다.

그러자 용철이가 씩씩거리며 대들었다. “야, 차지영! 왜 나만 적냐? 다른 아이들도 다 떠들었는데!” 지영이도 화를 내며 대꾸했다. “야, 이용철! 넌 무식하게끔 내가 왜 적는지도 모르냐? 저러니 만날 꼴찌만 하지. 아버지도 없이 가난한 주제에 떠들기만 해?”

아이들이 모두 깜짝 놀랐다. 평소에도 말을 함부로 하는 지영이지만 이번엔 너무 심한 것 같았다. 용철이는 까만 얼굴이 빨개졌다. 그러더니 주먹을 불끈 쥐고 앞으로 나가 지영이의 멱살을 움켜쥐었다. 그러나 지영이는 용철이의 손을 도도하게 뿌리쳤다. “왜 내가 틀린 말했니? 넌 공부도 못하고 아버지도 없잖아?”

“짝-” 그 순간 용철이가 지영이의 뺨을 철썩 때렸다. 지영이의 눈에는 금방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 “야, 이 거지야! 네가 뭔데 나를 때려? 공부 못하면 다야?” 지영이가 악을 쓰며 욕을 퍼부었다. 그러자 용철이는 주눅이 들어 조용히 제자리로 돌아왔다. 아이들은 지영이가 잘못했다고 수군거렸다. 그리고 앞으로는 지영이와는 상대도 하지 말자고 서로들 의견을 모았다.

그러나 지영이는 자존심 때문에 사과를 하지 않았다. 며칠이 지나도록 지영이는 외톨이로 지냈다. 지영이는 집에 오자마자 책가방을 획 던져 놓고 흐느껴 울었다. 너무나 슬퍼서 목이 메어 왔다. 지영이는 눈물을 흘리며 밖으로 뛰어나갔다. 지영이는 놀이터의 그네에 앉아 하늘을 보았다. 한 점 뭉게구름이 지영이를 굽어보며 나무라는 것만 같았다. 지영이는 얼굴이 뜨거워졌다.

“나는 왜 용철이에게 그렇게 심한 말을 했을까? 남의 마음을 상하게 해 놓고도 왜 사과를 하지 않았을까? 그래, 내가 지키려고 했던 자존심은 잘못된 것이야. 내일 어린이회 시간에 반성문을 발표해서 아이들에게 사과를 해야지. 용철이가 내 진심을 이해해 주었으면 좋겠는데. 다신 안 그럴 거야!” 지영이는 쏟아지려는 눈물을 억지로 참았다. 그리고 뭉게구름을 바라보며 두 손을 꼬옥 쥐고 기도를 했다.』

또 다른 이야기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강철왕 카네기는 그와 함께 회사를 운영해 나갈 사람을 찾고 있었다. 공장을 순시하던 카네기에게 한 철공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그 철공은 말없이 열심히 일만 했다. 온몸에 땀이 비 오듯 쏟아지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의 얼굴은 일에 대한 기쁨과 자신감이 넘쳐흘렀다.

“저 사람이야말로 이 회사를 맡겨도 책임 있게 운영할 수 있겠구나!” 카네기는 그 철공을 사장실로 불렀다. 그리고 회사를 위해 공장장의 일을 맡아 달라고 간곡히 부탁했다. 그러나 철공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사장님, 전 다른 일은 못합니다. 제가 평생 해 본 일이라곤 쇳물에서 철관을 뽑는 일밖에 없습니다. 철공 일이야 대통령이죠. 다른 일은 사양하겠습니다.”

철공의 단호한 말에 카네기는 잠시 어리둥절했다. 지금보다 훨씬 나은 자리로 승진을 시켜 준다는데도 마다하는 철공을 금방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곧 철공의 심정을 이해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내 생각이 부족했소. 당신이야말로 우리 회사의 가장 중요한 사람입니다. 당신은 세계 제일의 철공이니 오늘부터 대통령 봉급을 지불하겠소.” 그래서 철공은 대통령과 똑같은 봉급을 받고, 카네기 회사에서 가장 봉급이 많은 사원이 되었다.』

여러분, 오늘 우리는 이 두 이야기를 통해 잘못된 자존심과 올바른 자존심에 대하여 관찰했습니다. 잘못된 자존심은 빨리 버리는 것이 상책인데, 그것을 지키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한다면 그것은 시간 낭비요, 도리어 더 나쁜 결과를 초래하고, 스스로 무덤을 파는 어리석은 짓입니다.

이스라엘의 초대왕 사울이 바로 그런 경우입니다. 그는 참으로 인물이 잘난 사람이요, 또한 효자요, 예의 바르고, 너그럽고, 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특별히 뽑혀 이스라엘의 초대왕이 되었고, 하나님의 신이 크게 임하므로 예언도 하고 암몬과 아말렉을 무찌르는 위대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아말렉을 무찌르고 승전가 높이 부르고 돌아오는 길에 선지자 사무엘이 사울왕을 꾸짖는 것이었습니다. “왕이여, 당신이 스스로 작게 여기실 그 때에 이스라엘 지파의 머리가 되지 아나하셨나이까? 여호와께서 왕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을 삼으시고 아말렉 사람을 진멸하라 하셨거늘 어찌하여 왕이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고 탈취하기에만 급하여 여호와의 악하게 여기시는 것을 행하였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낫습니다.”(삼상15:17-19, 22)

이러한 꾸지람을 들은 사울왕은 자존심이 몹시 상했습니다. “아니, 목숨 걸고 전쟁터에 나가 큰 승리를 하고 돌아온 나를 칭찬은 못해 줄지언정 모든 신하들 앞에서 이런 면박을 주다니!” 그는 얼굴이 울그락 불그락해지고 화가 머리끝까지 났습니다. 그러나 간신히 마음을 안정시키고 말합니다. “어허, 당신의 하나님께 제사 드리기 위해서 양과 소를 가지고 왔는데 왜 그리 야단만 치시오. 아, 나 혼자 잘 먹고 나 혼자 잘살자고 한 것이 아니란 말이요. 다 하나님을 위해서 그런 것 아니오. 남자가 쩨쩨하게 그러지 말고 좀 봐 주시오.”

그는 왕으로서의 자기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그럴듯한 이유를 댔습니다. 그리고는 속으로 사무엘을 향해 “어디 니가 내 자존심을 짓밟고 잘 되는가 두고 보자!” 하고 원한을 품었습니다. 이러한 올바르지 못한 태도, 즉 자신의 잘못된 자존심을 빨리 버리지 않고 오히려 원한만을 품었던 사울왕은 나중에 하나님의 신이 떠나고 악신이 들므로 결국 전쟁터에서 패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극의 주인공이 되고 말았습니다.

명심해야 합니다. 잘못된 자존심은 하루라도 빨리 버려야 합니다. 이것을 빨리 버리지 못하면 결국 하나님도 못 말리는 고집불통의 사람이 되고 맙니다. 그리고 그 결국은 불행이라는 단어가 찾아오고 맙니다. 반면 이스라엘의 둘째 왕 다윗을 봅니다. 하루는 나단 선지자가 다윗왕을 심히 꾸짖습니다. “왕이여, 어찌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업신여기고 당신의 충실한 신하 우리야를 죽이고, 그 처와 간음을 저지르나이까?”(삼하12:9)

이러한 꾸지람을 들은 다윗은 역시 사울왕처럼 자존심이 매우 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뭐가 어쩌구 어째! 너 내가 이스라엘 왕인 줄 모르냐? 여봐라, 이 놈의 목을 당장 잘라라.”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는 왕으로서의 자존심도 체면도 다 던져 버리고 왕의 보좌에서 내려와 눈물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좇아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주의 많은 자비를 좇아 내 죄과를 도말 하소서. 대저 나는 내 죄과를 아오니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 우슬초로 나를 정결케 하소서. 내가 정하리이다. 나를 씻기소서. 내가 눈보다 희리이다.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시51:1,3,7,10)

다윗왕은 사울왕처럼 헛된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그럴듯한 이유도 대지 않았습니다. 그는 누구보다도 자신의 잘못된 자존심을 버리는데 용감한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이 같이 신속히 자신의 잘못된 자존심을 버릴 수 있었기에 그는 신앙과 인격의 발전이 있었고, 하나님께 불쌍히 여김을 받고, 결국은 하나님께 합한 사람이요, 이스라엘의 가장 위대한 왕이 될 수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묻고 싶습니다. 당신은 어떤 사람입니까? 사울왕처럼 잘못된 자존심을 끝까지 버리지 않고 원한을 품고 지내는 사람입니까? 아니면 다윗왕처럼 잘못된 자존심을 과감히 버리는 용감한 사람입니까?

부탁합니다. 잘못된 자존심은 버리십시다. 다윗처럼 용감하게 그리고 신속하게 버리십시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올바른 자존심을 갖고, 그 자존심을 잘 지켜나가십시다. 하늘나라의 거룩한 성도로서 좀 더 정직하고, 좀 더 깨끗한 삶을 살기 위해 우리의 자존심을 간직하십시다. 그리고 하늘나라 일군으로서 좀 더 성실하게, 좀 더 충성스럽게, 좀 더 기쁨을 가지고 헌신하는 일군으로서의 자존심도 지켜나가십시다.

비록 사람들이 나를 그렇게 많이 인정하지 않더라도 하나님이 주신 올바르고 고귀한 자존심을 꿋꿋이 지켜나가십시다. 생각해 보십시오, 나는 하나님께 얼마나 귀중한 사람입니까? 이 세상의 수많은 사람들 중에 유독 하나님은 너와 나를 택하고 사랑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할 자녀로 만들어 주었습니다. 세상에 하나님의 자녀보다 귀하고 보배로운 존재가 또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는 이것 한 가지, 즉 내가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에 큰 자존감을 느낍니다. 올바른 자존감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보다 정직하게, 보다 성실하게, 보다 깨끗하게 살려고 오늘도 노력하고 있습니다. 누가 보든지 안 보든지 이곳 캐나다에서도, 그리고 캘거리에서도, 어디를 가든지 하나님의 자녀로서 떳떳하게 보람 있게 인생을 살 것입니다.

다시 한 번 스스로를 살펴보십시오. 우리가 지금은 육체를 입고 여러 가지 고난을 당하고 살지만 잠시 후 우리는 천사들도 부러워하는 부활의 영광된 모습으로 예수님처럼 변하게 됩니다. 고로 오늘의 힘든 모습만 바라보지 말고 장차 나타날 영광도 바라보십시오. 그리고 조금만 더 참아보십시오. 인생은 그리 길지 않습니다. 잠시 후 우리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이 세상을 떠나서 하나님 아버지께로 돌아갑니다. 그때까지 서로를 격려하고, 주어진 사명을 잘 감당하고, 그래도 행복하게 살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 하나님, 우리에게 세상을 이길 수 있는 올바른 양심, 올바른 자존심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그러나 때로는 내 주장, 내 고집, 내 잘못된 자존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일을 그르치는 안타까운 경우를 보게 됩니다. 하나님, 원합니다. 잘못된 자존심을 버리고 올바른 자존심을 갖고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특히 하나님의 자녀로서 가슴 뿌듯한 행복함과 귀한 자존감을 갖게 하여 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