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자는 은혜 잠깨는 은혜

날짜: 
2006/02/06
설교: 

시127:2 잠자는 은혜 잠깨는 은혜
여러분에게 묻고 싶습니다. 잠을 자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까? 잠을 깨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까? 정답은 영어로 말하면 “It depends!"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즉 상황에 따라 다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불면증 환자에게는 잠을 자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일 것이고, 전쟁터에서 보초를 서는 병사에게는 잠을 깨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일 것입니다. 즉 어떤 때는 잠을 자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가 될 수가 있고, 어떤 때는 잠을 깨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가 될 수가 있습니다.
보통 사람들의 경우 갓 태어난 아기 시절에는 잠자는 시간이 굉장히 많습니다. 그리고 유년기 시절에도 잠을 자는 시간이 꽤 많습니다. 그러다가 성인이 되면서 점차 잠이 줄어들고, 환경을 비롯해 여러 가지 요인에 따라 잠을 자는 시간과 패턴에 변화가 생기게 됩니다. 그리고 육체가 피곤하고 늙고 병들어서 도저히 견디지 못할 때 의식 불명이라고 하는 상당히 깊은 잠에 빠지게 되고, 더 나아가 죽음이라고 하는 영원한 잠을 자게 됩니다.
그리고 저의 경우를 비롯해 여러분의 경우도 학생 시절, 특히 고등학교 시절에 시험을 준비할 때에는 잠을 줄이려고 무척 애를 썼던 기억이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제가 처음 하나님을 만났을 때에는 귀한 세월을 잠을 자며 보내는 것이 너무도 안타까워 어찌하든지 잠을 줄이려고 노력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의 말씀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라는 구절을 대하면서 “아하, 잠은 하나님이 주시는 귀한 은혜가 될 수가 있구나!”라고 깨닫게 됩니다.
먼저 잠에 대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기를 원합니다. 본문에 나온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라는 구절은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다른 번역본을 비교해보면 그 뜻을 더욱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먼저 우리말 쉬운 성경에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는 그의 사랑하는 자들이 편하게 잠을 잘 수 있도록 하십니다.“ 즉 여기서의 뜻은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자에게 숙면을 하게 하므로 건강을 유지하도록 해주신다는 뜻이 있습니다.
예레미야 31장 25-26절에 보면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이는 내가 그 피곤한 심령을 만족케 하며 무릇 슬픈 심령을 상쾌케 하였음이니라 하시기로 내가 깨어보니 내 잠이 달았더라.” 즉 예레미야는 유다 나라가 바벨론에 의하여 멸망을 당하고 머나먼 이국땅에서 포로생활을 하는 동족의 모습을 생각하면 늘 마음이 슬프고 좋지를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예레미야에게 앞으로 유다 민족이 포로에서 돌아오게 되고 황폐해진 예루살렘이 다시 건설이 된다고 계시해주셨습니다. 그 예언의 말씀을 들은 예레미야는 편히 단잠을 잘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공동번역에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야훼께서는 사랑하시는 자에게 잘 때에도 배불리신다.” 이 말씀은 다이어트를 하는 분들에게는 별로 기분이 좋지 않은 말씀으로 들릴지 모릅니다. 그러나 식량이 절대적으로 모자라 먹는 것에 한이 맺혀있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이 잠잘 때에도 배부르게 하신다는 말은 굉장한 은혜가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표준새번역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진실로 주님께서는, 사랑하시는 사람에게는 그가 잠을 자는 동안에도 복을 주신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 번역이 굉장히 마음에 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깰 때에도 복을 주시지만 잠을 자는 동안에도 복을 주신다니 참으로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 사람이 잠들어 있는 동안에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아십시오. 하나님은 당신이 잠자고 있는 동안에도 부지런히 복을 날라다 주십니다. 고로 잠에서 깨어보면 어느덧 당신 앞에 복이 쌓여져 있습니다.
마치 동화책에 나오는 이야기 같습니다. 신데렐라가 여러 가지 집안일이 많아서 고민하며 피곤하여 지쳐서 잠을 자는 동안에 요정들이 나타나 모든 일을 완벽하게 해놓았습니다. 깨어보니 집안이 번쩍번쩍합니다. 그리고 잠자는 동안에 다 무너질 듯한 초가집에 아름다운 궁궐로 바뀌어졌습니다. 거지같은 자신의 모습은 공주가 되어 있었습니다. 이렇게 동화책에서 밤새 요정이 나타나 일을 하듯이 하나님이 우리가 잠을 자는 동안에도 쉬지 않고 일을 하셔서 우리가 잠에서 깨어나면 문제가 해결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좋은 소식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창세기 2장에 보면 하나님이 아담에게 가장 좋은 선물을 줍니다. 그게 무엇입니까? 다름 아닌 그의 아내 하와였습니다. 그런데 아담이 하와를 얻기 위해서 무엇을 했나요? 힘든 노동을 했나요? 밤새도록 컴퓨터 작업을 했나요? 심한 고생을 했나요? 아닙니다. 그가 한 것은 단지 잠을 자고 일어난 것뿐입니다. 잠을 자고 일어났더니, 그곳에 하나님의 최대의 선물과 축복이 그의 앞에 쟌- 하고 나타난 것입니다.
이에 대해 창세기 2장 21절에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마치 성탄절에 어린이가 잠자고 있는 동안 산타할아버지가 밤에 선물을 놓고 가는 것처럼 아담은 잠을 자는 중에 가장 좋은 선물을 받은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들도 잠을 자는 중에도 하나님의 복과 선물과 은혜를 풍성히 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
마가복음 4장 26-17절에 보면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또 가라사대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이 땅에 씨를 뿌림과 같으니, 저가 밤낮 자고 깨고 하는 중에 씨가 나서 자라되 그 어떻게 된 것을 알지 못하느니라.” 즉 농부가 씨를 뿌리고 자고 일어났더니, 자기도 모르는 중에 하나님이 그 씨를 자라게 하시고 열매 맺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은 우리가 잠을 자는 중에도, 전혀 의식하지 못하는 방법으로도 온갖 필요한 복을 채워주신다는 것입니다.
구약성경에 보면 요셉과 다니엘이란 사람이 나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꿈으로 여러 가지 계시를 해주신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꿈이란 것은 잠을 잘 때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까? 혹시 이 가운데 잠을 자지 않고도 꿈을 꾸는 아주 신령한 사람이 있습니까? 즉 하나님은 자신의 뜻을 잠자는 동안에도 나타내주신다는 것입니다. 저의 경우, 거의 매일 꿈을 꿉니다. 그 가운데 어떤 복잡한 문제 때문에 굉장히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는데 잠을 자는 중에 꾸는 계시로 말미암아 문제가 해결이 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이런 경우에도 “하나님이 잠을 자는 동안에도 복을 주신다.”는 구절이 성립이 됩니다.
그런데 성격이 아주 급하셔서 지금 당장 이 자리에서 계시를 받고 복을 받겠다고 잠을 청하시는 분들이 있지 않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본문을 표준새번역 성경으로 보면 “잠을 자는 동안에도 복을 주신다.”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 깨어 있을 때에도 복을 주시지만 잠을 자고 있을 때에도 복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잠이 오지 않는데 복을 받겠다고 억지로 이곳에서 잠을 청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성경은 잠을 자게 하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지만 잠을 깨게 하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씀합니다. 특히 성경에는 ‘깨어 있으라. 일어나라“ 하는 구절이 상당히 많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피곤하여 잠을 자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에게 오사 그 자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되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 동안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마26:40-41)
그리고 성경은 이렇게 잠을 자는 것에 대하여 경고하고 있습니다. “너는 잠자기를 좋아하지 말라 네가 빈궁하게 될까 두려우니라. 네 눈을 뜨라 그리하면 양식이 족하리라”(잠20:13) “게으름이 사람으로 깊이 잠들게 하나니 태만한 사람은 주릴 것이니라.(잠19:15) ”네 눈을 잠들게 하지 말며 눈꺼풀을 감기게 하지 말라.“(잠6:4) 이 구절들에서 잠을 깨라는 뜻은 게으르지 말라. 마음을 새롭게 하라, 영적으로 각성하라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어떤 노인 한 분이 다른 노인 분에게 이렇게 투덜거렸습니다. “아- 한밤중에 자꾸 깨는 것은 성가신 일이야!” 그러자 다른 노인 분이 이렇게 대답을 합니다. “안 깨면 어떡하려고?” 흠- 여러분, 잠자다가 안 깨어나면 죽는 것을 의미하지요. 물론 죽음을 앞둔 노인 분들 중에는 상당수가 잠을 자다가 죽음을 맞이하는 것을 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숨 잠을 자고 깨어보니 천국이더라.” 이런 고백을 하고 싶어 합니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이 잠을 깨우는 장면을 종종 봅니다. 나사로라는 사람이 병들어 죽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합니다.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도다. 그러나 내가 깨우러 가노라”(요11:11) 그리고 회당장 야이로의 딸이 죽었을 때에도 “달리다굼! 소녀야 일어나라!”고 하셨고, 나인성 과부의 외아들이 죽었을 때에도 “청년아 일어나라!” 말씀하시므로 잠자는 자들, 즉 죽은 자들을 깨우셨습니다.
그리고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 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라“(고전15:51) 즉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에 죽은 사람들, 즉 잠자는 자들이 깨어나서 부활의 몸을 입고 주님을 맞이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새로운 부활의 몸을 입고 깨어나는 것이 최대의 소원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나타난 사상을 보면 우리가 먹든지 마시든지 감사하고, 좋을 일이 있을 때나 나쁜 일이 있을 때나 감사하고, 잠을 자게 해도 감사하고 잠을 깨어주어도 감사하라는 사상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내가 잠을 자고 있는 순간에도 복을 주시고, 잠이 깨어 있는 순간에도 축복을 주시는 분이심을 확실하게 인식해야 합니다.
만약 잠을 자고 있는 순간은 감사하지 못한다면 우리 인생의 3분의 1이 잠을 자기 때문에 3분의 2만 감사하는 불완전한 모습을 할 것입니다. 그러나 잠을 자는 그 순간에도 하나님이 나에게 복을 주시는 순간임을 인식하면 우리는 인생 전체를 감사함으로 보낼 수 있을 것입니다. 어찌 보면 잠이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같이 보입니다. 그래서 잠을 자고 나면 괜히 세월을 낭비하지나 않았나 하는 죄책감도 들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전혀 주무시지 않는 하나님이 왜 우리 피조물들에게 잠을 고안해 내셨을까 하는 의문을 가지게 됩니다.
시편 121편 4절을 보면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자는 졸지도 아니하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나 피조물들은 모두 자야합니다. 어찌 보면 잠을 자면서 우리는 스스로 깨닫게 됩니다. “아하, 이렇게 잠을 자는 것을 보니 나는 하나님이 아니구나!” 여러분, 아무리 호랑이 같은 권세자도 하던 일을 멈추고 어린아이처럼 잠을 자야합니다. 잠을 자는 것을 통하여 우리는 내가 미약한 인간임을 깨닫고 겸손해질 수가 있습니다.
돈키호테를 쓴 세르반테스는 잠에 대해 다음과 같이 시를 읊었습니다. “잠을 주시는 분은 위대하시다. 잠은 마치 외투와 같아서 생각과 근심과 모든 것을 다 덮어 주는 구나. 잠은 굶주린 자에게는 음식이요, 목마른 자에게는 마실 물이며, 추운 자에게는 열기이며, 더운 자에게는 시원함이로다. 잠든 목동과 왕을 같게 만들었고 바보와 현명한 자를 같게 만드는구나. 그러나 잠은 두렵다. 마치 죽음과 흡사하구나.”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에게 잠을 자게도 하시고 잠을 깨게도 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우리는 잠을 자며 잠을 깨는 일상적인 일들을 통하여 피조물들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느끼게 됩니다. 고로 우리는 잠을 잘 때 감사하고, 잠을 깰 때에도 감사합니다. 여러분, 앞으로 우리는 얼마나 더 잠을 자야 할까요? 그리고 얼마나 더 그 잠에서 깨어 일어나야 할까요? 그러나 잊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잠을 자고 잠을 깨는 것을 통하여 영광을 받기를 원하시며, 잠을 자고 잠을 깨는 순간에도 이 외국 땅에서도 우리를 축복하기 위해 부지런히 뛰시는 분이십니다. 이런 은혜가 자고 깨는 중에 충만히 임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