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멍에 나쁜 멍에

날짜: 
2023/02/25
말씀: 
마11:29-30
말씀구절: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30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설교: 

성경에 보면 ‘멍에’라는 단어가 제법 많이 나옵니다. 제가 찾아보니 대략 50번 정도가 나옵니다. 젊은 사람들은 ‘멍에’라는 말을 잘 모를 겁니다. 그리고 나이가 제법 있으신 분들도 시골에서 농사를 해보지 않은 분들은 ‘멍에’라는 말을 모르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저 역시 서울에서 태어나고 서울에서 자랐기 때문에 ‘멍에’라는 말을 잘 몰랐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보니 예수님도 ‘멍에’라는 단어를 사용하시고, 멍에에 대한 하나님의 예언이나 교훈이 참 많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멍에에 대하여 알아봄으로 같이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먼저 멍에의 뜻을 살펴봅시다. 멍에란 소나 나귀의 목에 얹어 수레나 쟁기를 끌게 하는 둥그렇게 생긴 막대입니다.

이 멍에는 나쁜 의미도 있고 좋은 의미도 있습니다. 나쁜 의미의 멍에란 쉽게 벗어날 수 없는 구속이나 억압을 비유하여 일컫는 말입니다. 예를 들면 죄의 멍에, 가난의 멍에, 질병의 멍에, 사탄의 멍에, 무거운 세금의 멍에, 강제 노동의 멍에, 술의 멍에, 마약의 멍에, 도박의 멍에... 등등입니다.

반면 좋은 의미의 멍에도 있습니다. 좋은 의미의 멍에란 하나님의 뜻이나 선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 지는 십자가나, 고난, 희생, 헌신, 노력, 책임감, 사명... 등을 뜻합니다. 예를 들면 믿는 자의 멍에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자는 안 믿는 불신자보다 많은 제약을 받습니다. 도덕적으로나 윤리적으로 불신자보다 바르게 살아야 하는 부담감이 늘 있습니다.

어찌 보면 개인적인 자유가 속박당하는 겁니다. 술을 취하도록 마시고 싶어도 성경이 가로막습니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엡5:18) 그리고 주일 날 예배 안 드리고 놀러가고 싶은데 마음이 영- 찝찝합니다. 크리스천으로서의 멍에가 씌워졌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믿는 자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멍에는 있습니다. 요즘은 사람들이 결혼을 늦게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평균수명이 길어지다 보니 여성의 경우 늦게 결혼을 해도 아기를 낳고 가정을 꾸리는데 별 어려움이 없기 때문입니다. 남성의 경우는 결혼 전에 뭔가를 이루기 위해 결혼을 늦추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러잖아요? 아무 것도 갖춰지지 않았는데 무턱대고 결혼을 하면 그건 너무 무책임하잖아요. 그리고 그런 총각한테 처녀들이 시집을 오려고 하지도 않잖아요. 그러나 어떤 분들은 일찍 결혼을 하면 처녀로서 혹은 총각으로서의 자유가 속박되기 때문에 결혼을 늦게 하는 경향도 있습니다. 혹 어떤 분은 그런 이유로 인해 아예 결혼을 안 하겠다는 비혼주의자들도 있습니다.

뭐- 아주 틀린 말은 아닙니다. 제가 결혼을 해보니까 남편으로서 혹은 부모로서 분명히 멍에가 있습니다. 즉 제약이 있습니다. 혼자 살 때는 방청소를 깨끗이 안 해도 뭐- 나름대로 괜찮습니다.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도 괜찮습니다. 그저 내가 편한 대로 하면 됩니다. 음식을 먹을 때도 내가 먹고 싶으면 먹고, 먹고 싶지 않으면 안 먹으면 됩니다. 어디를 가는 것도 얽매이지 않고 참 자유롭습니다.

그러나 부모가 되고, 아내나 남편이 되면 멍에가 씌워집니다. 가족들과 먹고 살기 위해서 힘들어도 일을 나가야 합니다. 때로는 직장에서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 있어도 참고 견뎌야합니다. 여성의 경우 매일 식탁을 차립니다. 청소나 빨래 등 여러 가지 집안 살림을 합니다. 어린 자녀가 있으면 그 자녀 돌보느라고 자기를 가꿀 틈도 없습니다. 역시 아내라는 멍에가 씌워졌기 때문입니다.

제가 젊었을 때 성경에서 이런 구절을 보고 깊이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예레미야애가 3:27-28 말씀입니다. “사람이 젊었을 때에 멍에를 메는 것이 좋으니 혼자 앉아서 잠잠할 것은 주께서 그것을 메우셨음이라.” 한국 속담에도 이런 비슷한 말이 있습니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

제가 이 말씀대로 청년 시절에 하나님이 저에게 멍에를 씌워주셨습니다. 청년회 전도부장, 전도실장, 구역장, 조장, 그리고 교회학교 중등부 교사의 멍에가 있었습니다. 그때부터 저의 자유가 속박 당했습니다. 옛날 같으면 주일날 예배를 안 드리거나 혹은 일찍 예배를 드리고 친구들을 만나고 좀 세상적으로 지냈었는데, 이제는 이런 직분을 맡다보니 주일에 어디를 갈 수가 없습니다. 아침부터 밤중 늦게까지 교회에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젊었을 때에 멍에를 메는 것이 좋다.”고 합니다. 전도를 하다 보면 어떤 분은 자기는 나중에 죽을 때가 되서 예수님을 믿겠다고 합니다. 왜요? 아- 왜긴요. 일찍부터 하나님 믿으면 믿는 자의 멍에가 씌워져서 마음대로 놀지도 못하고 불편하다는 겁니다.

그런데 저는 고등학교 때에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뭐 그때는 날라리 신자였으니까, 믿어도 내 맘대로 믿은 겁니다. 교회 가고 싶으면 가고, 말고 싶으면 말고, 세상 친구들과 어울려 적당히 술도 마셨습니다. 가끔 친구들이 조롱적으로 말합니다. “야 원효야! 너 교회 다닌다면서 술 마시냐?” “아- 이 자식이 또 왜 그래? 술맛 떨어지게.”

근데 25살에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내 안에 계신 성령님이 즉시 술과 담배를 끊게 했습니다. 그리고 수요예배, 금요예배, 구역예배 등 교회의 모든 예배에 참석하다 보니 세상 친구들 만날 시간이 없어졌습니다. 술 마실 자리도 없어지고, 술친구들도 자연히 떨어졌습니다. 그런데 대신 주님이 주신 멍에가 생겼습니다. 교회의 일꾼으로서 맡겨주신 그 일을 해야 합니다.

특히 여의도 순복음 교회 청년회에서 전도실장과 조장을 맡으면서 청년들을 돌보느라고 애를 썼습니다. 늘 그들과 함께 지냈고, 그들을 돌보며, 그들을 위해 돈을 쓰고, 그들을 위해 모든 수고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그렇게 청년 때부터 열심히 주님의 일을 하고 나서 전도사가 되어 성인 교구를 맡았습니다. 처음 맡은 교구가 도봉구 미아리와 삼양동입니다.

그곳 교구 식구들이 웃으면서 저에게 이런 말을 합니다. “전도사님, 여기는 동네가 좀 센 동네에요. 목회하시기 좀 어려우실 거예요. 호호호 깔깔깔“ 그 말을 듣고 속으로 제가 좀 긴장했습니다. 그런데 한 일 년 정도 지나다 보니까 세상에 목회하기가 이건 너무 쉬운 겁니다.

왜 그런가 보니 이미 젊었을 때에 청년회 조장과 전도실장이라는 멍에를 메고 믿음이 거의 없는 청년들을 돌보는 일을 4년 정도 했기에, 이미 믿음이 있고 모든 것이 갖춰진 성인들을 상대로 목회하는 것이 너무 쉬웠습니다. 뭐- 쉬울 정도가 아니라 참 즐거웠습니다. 물론 부흥도 제법 됐습니다.

보세요. 젊었을 때에 미리 훈련을 받아두면 나이가 먹어서 그런 일들을 어렵지 않게 할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에게 좋은 멍에를 일찍부터 씌워주시기를 원합니다. 다름 아닌 하나님의 일을 하라는 멍에입니다. 이때 사람마다 결단을 내려야합니다.

하나님이 저를 처음 주의 종으로 부를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저도 결단을 내려야합니다. 주의 종으로 나갈까, 세상으로 나가서 돈을 벌까? 그때 저의 결단은 이겁니다. “내가 세상으로 나가서 돈을 벌며, 세상 사람들과 술도 마시고, 또 적당히 죄를 짓고 사는 것보다 목회자가 되어 하나님의 일을 전적으로 하는 것이 더 낫겠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좀 근심과 두려움이 생깁니다. “아- 나는 지금까지 세상적으로 노느라고 찬송도 잘 하지 못하고, 성경도 잘 모르고, 교회 생활도 어떻게 하는지 잘 모르는데... 과연 내가 잘 할 수 있을까?” 아닌 게 아니라 제가 영산신학대학원 입학시험을 치는데 음악 테스트가 있었습니다.

그 테스트를 하시는 분이 조용기 목사님 아내였던 김성혜 사모님이셨습니다. 그 분은 이대 피아노과를 나오신 분입니다. 그 분이 피아노 앞에서 저에게 피아노를 한번 쳐보라고 합니다. “오- 마이 갓!” 아니- 내가 피아노를 쳐봤어야지요? 한 번도 쳐보지 않는 피아노를 어떻게 칩니까? 그러자 김성혜 사모님이 좀 근심스런 표정을 지으셨습니다.

그렇게 음악 테스트를 마치고 나오는데 제 속으로 이런 탄식이 나왔습니다. “아이고, 떨어졌구나!” 그런데 나중에 최종 면접이 있었는데 면접관 교수님이 제게 이런 말씀을 합니다. “아- 영어 점수가 상당히 잘 나오셨군요.” 아- 그건 당연하잖아요. 제가 그래도 영문과 출신이고, 얼마 전 까지만 해도 군대에서도 번역장교와 통역장교도 했잖아요.

그래서 결국 입학시험에 어떻게 되었나요? 예- 떨어졌습니다. 아니 왜요? 면접관이 말씀합니다. “아직까지 만 27세가 안되셨는데 여기 신학원 자격 조건은 만 27세부터입니다. 그러니 내년에 다시 오시지요?” 그래서 결국 일 년을 재수해서 그 다음 해에 우수한 성적으로 입학을 했습니다.

암튼 주의 종이 되다 보니까 이런 저런 멍에가 있습니다. 그렇게 주님의 멍에를 메고 목회한지 올해 38년째 되어가고 있습니다. 지난날을 뒤돌아보면 저는 그래도 내가 세상 멍에를 메지 않고 주님의 멍에를 메는 것이 참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조금도 후회하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에 예수님도 말씀합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의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마11:29-30) 즉 예수님 믿고 하나님의 일을 하며 사는 것이 예수님 믿지 않고 세상적으로 사는 것보다 인생이 좋다는 것입니다. 아멘입니까?

사도 바울도 이런 말씀을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갈5:1)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두움이 어찌 사귀겠느냐?”(고후6:14)

농부가 밭이나 논을 갈기 위해 소에게 멍에를 메울 때 종종 두 마리를 엮어서 같이 멍에를 메울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한 마리가 혼자 멍에를 메고 일하는 것보다 몇 배의 힘을 쓸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소와 소가 아닌 소와 나귀를 묶어서 멍에를 메우면 소와 나귀가 힘과 성격이 서로 다르기에 도리어 힘이 들 수가 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불신자와 믿는 자가 같이 엮여서 일을 하다 보면 서로가 힘들 수 있습니다. 결혼 배우자를 정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불신자와 믿는 자가 결혼을 하다 보면 결국 신앙적인 면에서 의견 충돌이 생길 수가 있습니다. 자칫 믿는 자가 믿음을 포기하고 세상적으로 빠질 수 있습니다. 고로 이런 면에서는 성경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제가 여러분들을 생각할 때 참 기특한 것이 있습니다. 저는 음악을 잘 못합니다. 어떤 때는 간단한 찬송가 한 곡을 배우는데도 백 번을 불러도 안 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아- 참! 힘듭니다. 제게는 아주 큰 멍에입니다. 그런데 성가대와 찬양팀 여러분들은 매주 새로운 곡을 부릅니다.

아- 이건 도대체 뭡니까? 더구나 성가대 지휘자님은 이 일을 거의 20년 이상을 하시고 있는데 이거는 뭡니까? 힘이 들지 않습니까? 이것도 멍에라면 멍에겠지요. 그런데 어때요? 주님이 주신 멍에니까 쉽습니까? 도리어 기쁩니까? 암튼 멍에라는 것은 속박을 당하는 겁니다. 그러나 세상적으로 속박을 당하는 것보다 사랑하는 주님의 멍에를 메고 속박을 당하는 것이 훨씬 낫지 않겠습니까?

주님은 이렇게 주님의 멍에를 메는 자에게 마음의 쉼과 안식을 주신다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아가 사단의 무거운 멍에, 죄의 무거운 멍에, 저주의 나쁜 멍에를 벗겨주신다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예레미야 28:4 말씀입니다. “내가 바벨론 왕의 멍에를 꺾을 것임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내가 애급의 멍에를 꺾으리라.”(겔30:18)

“내가 앗수르 사람을 나의 땅에서 파하며 나의 산에서 발아래 밟으리니 그 때에 그의 멍에가 이스라엘에게서 떠나고 그의 짐이 그들의 어깨에서 벗어질 것이라.”(사14:25) 그렇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무거운 멍에를 벗겨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새로운 가벼운 주님의 멍에를 씌워주시는 분이십니다.

고로 우리는 각자 선택해야 합니다. 주님의 가벼운 멍에를 지고 살면서 천국에 갈래? 아니면 주님을 떠나서 사단의 무거운 멍에를 지고 살다가 지옥에 끌려갈래? 여러분, 오늘 우리는 둘 중 하나를 선택하고 결단해야 합니다. 그런데 아직도 나는 무슨 멍에가 더 쉽고 가벼운 멍엔지 잘 감이 오지 않는 분이 있습니까?

혹시 “목사님, 인생을 좀 더 살면서 나중에 결정하면 안 될까요?” 하고 말하는 분이 있지는 않습니까? 뭐- 그래도 괜찮습니다. 그러나 잊지 마십시오. 젊었을 때에 주님의 멍에를 메는 것이 좋습니다. 주님의 멍에를 팽개치고 사단의 멍에를 지고 살다가 어느덧 뒤돌아보면 그만 인생이 허무하게 많이 지나간 것을 느끼며 뼈저리게 후회하게 됩니다.

그때 울면서 이런 찬송을 부를지도 모릅니다. “고통의 멍에 벗으려고 예수께로 나옵니다.”(새찬송가 272장) “천부여 의지 없어서 손들고 옵니다.”(새찬송가 280장) 다행히 저와 여러분들은 오늘도 주님께 나와서 주님의 멍에를 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고로 우리들의 인생은 쉽고 가볍습니다. 주님이 그때마다 안식과 쉼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할 것이 있습니다. 신명기 28:47-48 말씀입니다. “네가 모든 것이 풍족하여도 기쁨과 즐거운 마음으로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지 아니함을 인하여 네가 주리고 목마르고 헐벗고 모든 것이 핍절한 중에서 여호와께서 보내사 너를 치게 하실 대적을 섬기게 될 것이니 그가 철 멍에를 네 목에 메워서 필경 너를 멸할 것이라.”

보십시오. 하나님을 믿어서 복 받고 배부르고 등 따뜻할 때에 그만 신앙이 식어지고, 하나님을 믿어도 마지못해서 믿고,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믿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주신 축복이 사라지고 다시 저주가 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방인에게 침략을 당하고 그들이 너에게 무거운 철 멍에, 노예의 멍에를 씌운다는 것입니다.

고로 우리들의 평생 숙제가 있습니다. 죽을 때까지 주님의 멍에를 즐겁게 지고 가는 겁니다. 끝까지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결론입니다. 사단의 나쁜 멍에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단호히 벗겨내십시오. 그리고 예수님이 주시는 좋은 멍에, 쉽고 가벼운 멍에를 메고 기쁘고 즐겁게 주님을 따라가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