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 이길 수 있다

날짜: 
2006/09/17
설교: 

마26;30-35 죄! 이길 수 있다
하나님이 사람을 이 땅에 만드신 것은 사람을 통하여 영광을 거두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하나님이 제일 싫어하는 죄를 범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 하였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로마 교회를 향하여 이렇게 말했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 하더니”(롬3;23)
그래서 우리는 죄를 범하면 하나님의 창조 목적인 하나님의 영광을 이루지 못하는 것입니다. 고로 우리는 죄를 짓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수시로 죄를 짓습니다. 죄를 안 지으려고 발버둥치지만 좀처럼 죄를 이길 수가 없습니다. 도대체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막는 죄를 이길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요? 오늘 우리는 죄를 이길 수 없는 실패하는 방법과 죄를 이길 수 있는 성공적인 방법에 대하여 알아보기 원합니다. 먼저 죄를 이길 수 없는 실패하는 방법입니다.
1. 결심으로 안됩니다.
죄를 안 지으려고 결심한다고 죄를 이길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어느 분의 고백입니다. “저는 남에게 말하기 부끄러운 반복되는 죄가 있었습니다. 저는 다시는 그 죄를 반복하지 않겠다고 다짐하였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헛것이었습니다. 아무리 결심해도 자꾸만 죄를 반복해서 짓게 되었습니다. 저는 드디어 혈서를 쓰기로 작정하였습니다. 손가락을 입으로 깨물었습니다. 손가락을 잘라서 혈서를 쓰려고 시도하였습니다. 그러나 손가락만 아프지 손가락이 이빨로 잘 잘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다시 한번 힘껏 손가락을 물어뜯었습니다. 그러나 도저히 피까지 나오지는 못하였습니다. 저는 입으로 피를 내는 것을 포기하였습니다. 그리고 면도칼로 손가락 끝을 조금 베어 냈습니다. 드디어 손가락으로부터 피가 흘렀습니다. 저는 다시는 그 죄를 반복하지 않겠다고 결심하고 혈서를 썼습니다. 그리고 책상위에 그것을 붙여 놓았습니다. 그러나 작심삼일이었습니다. 저는 삼일 만에 다시 그 죄를 짓고 말았습니다. 저는 혈서 앞에서 울었습니다. 혈서를 쥐어짜면서 몸부림치면서 울었습니다. 저는 결심으로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여러분, 우리도 이런 경우가 종종 있지 않습니까? 혹시 여러분에게 이런 질문을 하면 어떻게 대답하실까요? “결심으로 죄를 이길 수 있던가요?” 이 물음에 “예, 저는 죄를 이길 수 있습니다.”라고 분명하게 대답할 수 있다면 당신은 정말로 대단한 사람입니다. 아니 어쩌면 사람이 아닐 지도 모릅니다.
오늘의 본문 이야기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밤에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기록된바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의 떼가 흩어지리라. 그러나 내가 살아난 후에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 그때 베드로가 말했습니다. “다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언제든지 버리지 않겠나이다.” 그러나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말씀합니다.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밤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베드로는 다시 결심하며 말했습니다.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여러분, 베드로는 죽을지언정 주를 따르겠다고 결심하였습니다. 참으로 대단한 결심입니다. 그러나 그날 밤 베드로는 세 번씩이나 주님을 모른다고 대답하였습니다. 분명 조금 전까지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고 결심했는데 작심삼일이 아니라 불과 몇 시간 만에 그 결심을 어기고 말았습니다. 여러분, 인간의 결심으로는 죄를 완벽하게 이길 수 없습니다.
2. 인격으로 안됩니다.
여러분, 인격을 잘 수양하면 죄를 이길 수 있을까요? 혹시 ‘지킬 박사와 하이드’라는 이야기를 들어보셨습니까? 어느 마을에 가난한 이들을 무료로 치료하여 주고 동네 사람을 사랑하는 지킬 박사님이라는 분이 있었습니다. 지킬 박사님은 그 동네 모든 사람들이 그를 존경하는 대단한 인격자였습니다. 그런데 그 마을에 밤마다 강도가 나타나서 사람들을 괴롭히는 것이었습니다. 그 강도는 자신을 ‘하이드’라고 이름을 밝히고 동네 사람들 괴롭히는 데 좀처럼 잡히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경찰은 그 하이드라는 강도를 체포하는데 성공하였습니다. 그런데 모두가 깜짝 놀랐습니다. 그 강도가 다름 아닌 바로 ‘지킬 박사’였습니다. 낮에는 인격자요, 밤에는 악마였던 것이었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바로 인간의 두 모습입니다. 사람들은 천사의 모습과 악마의 모습을 같이 가지고 있는 중간자라고 파스칼은 말해주고 있습니다.
3. 도를 닦아도 안됩니다.
여러분, 도를 닦으면 죄를 이길 수 있을까요? 결론은 아무리 도를 많이 닦아도 죄를 이길 수가 없습니다. 몇 년 전에 우리나라에 굉장히 유명한 성철 스님이라는 분이 돌아가셨는데, 불교로 말하면 열반했다고 하는데, 그 분이 살아계실 때에 자신을 찾아온 불자에게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합니다. “니 머하러 왔노? 나보러 왔제? 나 거짓말쨍이다. 나한테 속지 마레이. 나 장바닥에 좌판 패논 야바위꾼이다. 니 나한테 속지 마레이.”
물론 이 말은 그 스님이 다른 사람보다 특별한 거짓말쟁이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아무리 도를 닦아도 인간의 죄의 습성을 이길 수가 없다는 솔직한 심정일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하나님의 종이요 많은 도를 닦았던 사도 바울도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는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 팔렸도다.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은 행하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롬7:14, 19, 24) 이같이 우리는 결심으로도, 인격으로도, 그리고 도를 닦음으로도 죄를 이길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죄를 이길 수 있을까요?
1. 건전한 일에 미치면 됩니다.
여러분, 어두움을 이기는 비결은 어두움을 물러가라고 소리를 지를 필요가 없이 불하나 켜면 자연히 어두움은 물러갑니다. 서쪽으로 안 가는 비결은 동쪽으로 가면 됩니다. 죄를 이기는 비결은 건전한 일에 미치면 자연히 죄를 멀리할 수 있습니다. 바쁜 꿀벌은 슬퍼할 시간이 없습니다. 일에 쫓기는 사람은 죄지을 시간이 없습니다.
에디슨은 인류 역사상 제일 발명을 많이 한 발명의 왕입니다. 그는 평생을 연구실에서 살았습니다. 하루 24시간 중에 18시간을 연구실에서 연구하면서 살았습니다. 한번은 제자들이 물었습니다. “선생님은 언제 취미 생활을 합니까?” 이때 에디슨이 말했습니다. “나는 한번도 일한 적이 없다. 하루 18시간 취미 생활만 하고 있다.” 즉 일하는 것이 그의 취미였습니다. 그는 취미생활 즉 연구에 전념하느라 다른 일을 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건전한 일에 미치면 죄는 자연히 물러가게 됩니다.
하루는 종교개혁자인 마르틴 루터가 아침식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의 의자 옆에 앉아있던 개가 루터가 식사하는 모습을 열심히 올려다보고 있었습니다. 루터의 손이 밥그릇으로 가면 개의 눈도 밥그릇으로 가고, 루터의 손이 입으로 가면 개의 눈도 입으로 갔습니다. 루터가 움직이는 대로 개의 눈이 따라 다녔습니다. 그 모습을 본 루터가 개에게 감동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루터는 개에게 고기 한 점을 던져주었습니다. 개는 정신없이 먹어치우고는 또 눈을 똑바로 뜨고 루터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때 루터는 한 가지를 깨달았습니다. “개가 내 손을 쳐다보는 것처럼 나도 하나님만 바라보았더라면 하나님은 내게 더 크게 감동하셨을 것이다.”
여러분, 우리는 온갖 잡된 것들을 다 버리고 건전한 일,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에 미치면 죄를 멀리 할 수 있습니다. 세상에 태어나서 전도에 미쳐보십시오. 성경 읽기에 미쳐보십시오. 기도에 미쳐보십시오. 주님을 향한 봉사에 미쳐보십시오. 예배에 미쳐보십시오. 이것이 죄를 이기는 비결입니다.
2. 회개하면 됩니다.
여러분, 넘어지고 또 넘어지는 것이 사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또 넘어졌다고, 또 죄를 지었다고 우리를 멀리 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살아가는 동안 계속하여 죄를 지을 것을 잘 아시고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지은 죄를 숨기거나 인정치 아니하면 하나님은 싫어하십니다. 얼마나 싫어하시는지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회개하지 아니하면 그가 그의 칼을 가심이여 그의 활을 이미 당기어 예비하셨도다.“(시7:12)
여러분, 우리가 회개하고 또 회개하면 하나님은 용서하시고 또 용서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면 몇 번 정도 회개할 때까지 용서하여 주실까요? 똑같은 죄로 100번 정도, 아니 200번 정도 회개하여도 하나님은 용서하여 주실까요? 그 해답은 성경에 있습니다. 한번은 베드로가 예수님에게 물었습니다.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마18;21)
그때 예수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일곱 번 뿐 아니라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할지니라.” 일흔 번에 일곱을 곱하면 490이 되는데, 그러면 490번만 용서하라는 뜻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에서 7이란 숫자는 영원한 숫자를 상징합니다. 즉 무한히 용서하라는 말씀입니다. 우리에게 이렇게 무한히 용사하라고 말씀하신 주님이 어찌 우리를 무한히 용서하지 않겠습니까?
여러분, 우리는 이 외국 땅에서도 죄를 짓습니다. 어쩌면 외국이기에 더욱 많은 죄를 지을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죄를 지을 때마다 하나님께 나아와 회개해야만 합니다. 자꾸만 자꾸만 죄를 지어도 죄의 결론은 회개여야 합니다. 그렇게 반복하여 회개하다 보면 반드시 끝장이 있습니다. 죄가 문제가 아니라 회개가 문제입니다. 죄를 지을 때마다 낙심하지 말고 회개하면 결국 죄가 이기지 않고 회개가 이기게 됩니다. 고로 죄를 지어도 회개하며 살다가 천국에 가야합니다.
3. 성령 받으면 됩니다.
죄를 이기는 가장 큰 비결은 역시 성령을 받는 것입니다. 성령은 예수님의 영, 또는 하나님의 영으로 우리 마음속에 들어와서 우리가 이 세상을 거룩하게 살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고로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 제자들에게 “성령을 받으라”(요20:22)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갈5:17)
말세에는 너무나 죄의 세력이 강하게 역사하기에 하나님은 우리 인간의 결심으로, 인격으로, 도를 닦음으로 죄를 이기지 못할 것을 아시고 우리에게 죄를 이길 수 있도록 성령을 부어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죄로 말미암아 다가오는 수치심과 정죄함과 각종 파괴적인 것들로부터 우리를 해방시켜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이에 대하여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롬8:1-2)
결론을 말씀드립니다. 죄는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게 합니다. 죄는 에덴동산까지도 파괴합니다. 나의 성공과 행복을 가로막는 최대의 적은 죄입니다. 고로 우리는 죄를 멀리해야 합니다. 죄를 이겨야 합니다. 아무쪼록 건전한 일과 하나님의 일에 미치므로, 그리고 회개하므로, 또한 성령으로 충만하므로 죄에서 해방되고 죄를 이기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 외국 땅에서도 인간의 본분인 하나님의 영광을 좇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