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과 함께

날짜: 
2021/12/31
말씀: 
마28:20
말씀구절: 

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설교: 

혹시 라면 좋아하시는 분 있습니까? 라면 종류가 하도 다양해서 어떤 라면을 좋아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저의 경우 오래 전부터 육개장 사발면을 냄비에 끓여서 먹고 있습니다. 나이가 좀 들다보니 소화를 위해서 면발이 굵은 보통라면보다 사발면이 면발이 좀 얇기 때문입니다. 물론 요리시간도 보통 라면보다 짧아서 좋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라면을 좋아합니까? 제가 아재 개그 한번 해볼까요? 세계에서 가장 맛있는 라면은 무엇입니까? 정답은 ‘주님과 함께 라면’입니다. 연세가 드신 분은 좀 웃으실 것이고, 젊은 분들은 “엥- 그게 뭐가 개그야? 하나도 안 웃기네.” 하고 피식- 대실 것입니다. 그러니까 ‘아재 개그’입니다.

오늘의 설교 주제어는 ‘함께, 같이, 동행’입니다. 요즘 세계적으로 유행하는 단어가 있습니다. 바로 ‘위드 코로나(with Corona)'입니다. 아니, ’코로나 바이러스와 함께’라니요? 뭐 이런 괴상한 단어가 있습니까? 이 단어를 보면 인간의 나약함과 무능함이 느껴집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를 퇴치할 능력이 없으니까 할 수 없이 공생하며 살자는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그런데 저만 그렇게 느끼는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느낍니다. 그래서 한국 정부는 ‘위드 코로나’라는 단어를 쓰지 말고 ‘단계적 일상 회복’이란 단어를 사용할 것을 적극 권면하고 있습니다.

‘함께 산다’는 것을 가리켜 생물학적 관점에서 ‘공생’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공생에도 네 종류가 있습니다. 1. 상리 공생 : 쌍방의 생물이 같이 이익을 얻으며 사는 경우입니다. 2. 편리 공생 : 한쪽 생물만 이익을 얻는 경우입니다. 3. 편해 공생 : 한쪽 생물만이 피해를 입는 경우입니다. 4. 기생 : 한쪽에만 이익이 되고, 상대방은 피해를 입는 경우입니다.

몇 년 전 한국 영화중에 아카데미 작품상을 비롯해 여러 개의 상을 수상한 ‘기생충’이란 영화가 그렇습니다. 여러 사람이 같이 공생하며 살기는 사는데, 한쪽은 일방적으로 피해를 입고, 다른 한쪽은 일방적으로 이익을 얻는 기생의 관계입니다. 그래서 그런 사람을 ‘기생충’이라고 표현합니다.

성경에 보면 ‘가라지의 비유’가 나옵니다. 알곡이 심겨진 밭에 가라지가 함께 공생하면서 밭의 영양분을 모두 흡수합니다. 그래서 옆에 있는 알곡이 제대로 자라지 못합니다. 즉 교회에서도 가라지와 같은 사람이 생겨서 성도들이 알곡 신자가 되지 못하도록 나쁜 영향력을 끼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런 가라지와 같은 사람들을 당장 뽑으려고 하지 말고 추수 때까지 자라도록 내버려두라고 말씀합니다. 그 이유는 가라지를 뽑다가 옆에 있는 알곡까지 뽑힐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말세의 목회를 하는 목사님들이 아주 뼈저리게 체험하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암(cancer)의 경우도 이런 식으로 대처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암을 잘못 건드렸다간 도리어 더 큰 위험과 희생이 따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암과 공생하며 같이 사는 겁니다. 그러다가 그 암이 너무 피해를 입혀서 도저히 안 되겠다 싶으면 그때 가서 제거 수술을 하는 겁니다.

반면 타락한 천사인 귀신의 경우는 대처방법이 다릅니다. 귀신은 기생충과 같이 일방적으로 우리를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고 합니다. 그래서 귀신이 들어오면 이를 즉시 쫓아내지 않으면 내가 더욱 힘들어지고 괴로워집니다. 그래서 성경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예수님의 피로, 귀신들을 반드시, 즉시 쫓아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반면 예수님은 우리 안에 들어와 함께 살면서 유익을 끼쳐주십니다. 고로 귀신은 물리쳐야하고, 예수님은 “어서 오십시오. 적극 환영합니다.” 하고 반갑게 맞이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말씀합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계3:20)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 인간과 함께 살기를 원하십니다. 고로 하나님은 예수님을 육신의 모양을 입혀서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리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마1:23)

2000년 전에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좇아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우리 인간들과 함께 사셨습니다. 그들과 같이 먹고 마시며, 같이 지내셨습니다. 그들을 가르치시고, 치료하시고, 천국 복음을 전해주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 죄를 모두 지시고, 고난과 죽음을 당하시어 구원을 완성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완성된 구원을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성취시키기 위하여 다시 성령님으로 우리 안에 들어오시고 있습니다. 즉 육신의 예수님은 부활 승천하여 하늘나라로 가셨지만, 예수님의 영이신 성령님이 대신하여 우리 안에 들어오셔서 우리와 함께 살기를 원하시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말씀합니다.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 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28:20) 성경이 말하듯이 말세의 시대는 환난의 시대입니다. 우리가 몇 년 째 겪고 있는 코로나 바이러스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새해에도, 날이 갈수록, 해가 거듭될수록 살기가 뻑뻑해지고 어려워지는 시대가 다가옵니다.

세계 곳곳 여기저기서 힘들어 못살겠다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말세가 될수록 인간성의 타락도 더욱 심해져 같이 상리 공생하며 살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합니다. 서로 해를 입히고, 상대방을 쓰러트리고 내가 올라서려고 합니다. 타락한 인간들에게는 같이 산다는 것이 참 힘든 세상입니다.

그래서 사람들 중에는 그 인간과 같이 사는 것이 너무 힘들어서 혼자 살려는 사람이 제법 많아졌습니다. 그러나 혼자 사는 것도 쉽지만은 않습니다. 그래서 생각합니다. 내 마음을 잘 이해해주고, 나를 행복하게해 줄 사람이 없는가? 그런 사람이 있으면 같이 살고 싶다. 그런 사람과 결혼하고 싶다.

그래서 나름대로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해 그 남자를, 그 여자를 택해서 결혼을 하고 같이 살아봅니다. 서로를 유익하게 하고 행복하게 하는 공생의 관계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서로를 위해서 한 결혼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갈등이 생기고, “아- 이것은 내가 처음에 원하고 바랐던 것이 아니다.” 하고 깨닫게 됩니다.

사마리아 수가성의 우물가의 여인이 그랬습니다. 남편을 5명이나 갈아보고 6번째 남자와 살아보고 있지만 여전히 목마릅니다. 인생사는 것이 자꾸 지쳐만 갑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나자 이 여인의 삶이 즉시 변했습니다. 인생사는 힘이 생겼습니다. 사람들을 피해 다녔던 여인이 사람들 앞에 떳떳이 다가가 “보라. 내가 메시아를 만났다.” 하고 전도하는 여인으로 변했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만나면, 예수님과 함께 살면 인생이 변합니다. 불행했던 사람이 행복한 사람으로 변하고, 우울했던 사람이 기쁨의 사람으로 변하고, 절망적인 사람이 희망의 사람으로 변합니다. 고로 희망찬 새해, 행복한 새해를 맞이하고 싶으면 예수님과 함께 살아야 합니다.

반면 계속해서 절망의 사람, 불행한 사람으로 남고 싶다면 예수님을 멀리하고 살면 됩니다. 부모가 자기 자녀들이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듯이 하나님은 자신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자신의 자녀들이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인간은 스스로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능력을 모두 상실했습니다.

누군가가 가까이서 도와주어야 합니다. 누군가가 순간마다 위로해줘야 하고, 그 영혼을 소생시켜줘야 합니다. 그러나 믿었던 남편이, 아내가, 친구가, 그 사람이 도리어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을 수차례 겪었습니다. 결국 나를 진정으로 도와주고, 나를 행복하게 할 사람은 타락한 인간이 아니라 신적 존재라는 것을 깨닫고 그 신을 찾게 됩니다.

그러나 늘 나와 함께 하며 나를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 신이 도대체 어디에 있습니까? 각 나라마다 사람들이 돌과 나무와 쇠 덩어리로 우상을 만들어서 자기 곁에 두고 “신아, 신아, 너는 나에게 복을 주고,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다오.” 하고 정성을 들이고 사정해보지만 여전히 돌은 돌이고, 나무는 나무고, 쇠 덩어리는 쇠 덩어리고, 우상은 우상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하늘의 신적 존재인 천사들도 1/3이 타락해서 땅으로 쫓겨나와 나를 괴롭히는 귀신들이 되었습니다. 이제 인간은 누구와 함께 해야 행복해질 수 있을까요? 이때 우리는 잃어버렸던 창조주 하나님, 나의 아버지를 찾아야 합니다. 우리를 구원할 예수님을 믿고, 그 분의 영이신 성령님을 모셔 들여야 합니다.

그 분은 영원토록 나와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 분은 나에게 먹을 것을 주셨고, 입을 것을 주셨고, 거할 장막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나와 함께 식탁에 앉아 먹고 마셨습니다. 또한 같이 찬양하며, 같이 하나님의 일을 했습니다. 내가 힘들고 어려울 때에도 나와 동행하며, 나를 도와주셨고, 나에게 힘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이제까지 왔고, 지금까지 지내온 것은 모두 다 주님의 은혜입니다. 지난해에도 주님의 은혜로 살았고, 새해에도 주님의 은혜로 살기를 원합니다. 예수님도 약속하셨습니다.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 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28:20) 아무쪼록 새해에도 주님과 함께 살면서, 주님이 주신 행복 속에서 맡겨준 사명을 잘 감당하시며 전진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