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여,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

날짜: 
2001/10/31
설교: 

눅5:1-11 주여,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어부인 베드로가 밤이 맞도록 고기를 잡으려고 수고를 했지만 한 마리의 고기도 잡지 못하고 기진맥진하고 있을 때 예수님이 그에게 찾아와 말씀하셨음.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눅5:4)
예수님의 이 말씀에 순종하여 베드로가 깊은 데로 나아가서 그물을 내리니 그는 어부 생활에 있어서 가장 많은 고기를 잡는 축복을 받았음.
그리고 보통 큰 축복을 받거나 높은 지위에 오르면 자기가 잘난 줄 알고 목을 꼿꼿이 세우며 "에헴, 나는 의인이로소이다. 에헴, 나는 잘난 사람이로소이다." 라고 말을 하지만 오늘 본문에 보니 베드로는 두 배가 잠기게 되도록 많은 고기를 잡는 놀라운 축복을 받았음에도 "에헴, 나는 의인이로소이다. 에헴, 나는 잘난 사람이로소이다." 라고 말하지 않았음.
오늘 본문을 자세히 보니 그는 이렇게 말했음. "주여,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그리고 이렇게 자신이 죄인임을 깨달은 베드로에게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음.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마4:19)
여러분, 누가 예수님의 제자가 됩니까 ? 돈 있는 사람, 잘 생긴 사람, 많이 배운 사람, 빽 있는 사람이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면 베드로는 분명히 예수님의 제자가 되지 못했을 것임.
예수님은 베드로가 잘났기 때문에, 돈이 많이 있기 때문에, 많이 배웠기 때문에 제자로 부른 것이 아님. 단지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고 "주여,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라고 고백을 했기에 제자로 삼으신 것임.
여러분, 누가 하늘 나라의 거룩한 성도가 되며, 누가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될 수 있습니까 ? 분명히 아십시오. 말 잘하는 변호사가 아니라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고 "주여,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라고 고백하는 사람만이 거룩한 성도가 되며, 하늘 나라를 바르게 세우는 일꾼이 될 수 있음.
우리가 하나님과 관계를 맺기 위한 가장 첫 번째 조건은 다름 아닌 "주여,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라고 자신의 죄를 하나님께 고백하는 것임.
하나님은 죄인을 위해서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셨지, 의인을 위해서 이 땅에 보내신 것이 아님. 또한 예수님도 분명히 이렇게 말씀하셨음.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 (눅5:32)
예수님은 자신을 가리켜 '나는 의인의 친구' '잘 난 사람의 친구'라고 결코 말하지 않으셨음. 오히려 예수님은 '죄인의 친구' (눅7:34) 라고 불리기를 좋아했음.
예수님은 나는 의인이라고 폼재던 저 바리새인들과는 같이 있기도 싫어했음. 그러나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고백하는 죄인들에게는 가까이 나아가시고, 그들을 위로해 주시고, 그들에게 천국을 허락해 주셨음.
만약 저와 여러분이 아직도 내가 의인이라고, 아직도 내가 잘났다고 계속 고집한다면 예수님은 우리와 관계가 없어지고 맘. 예수님은 너무나도 우리와 멀어지고 맘. 그리고 예수님이 우리와 멀어진다면 우리는 참 평안과 안식, 참 기쁨과 행복을 잃어버리고 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의 기쁨과 행복이 도대체 어디에 있습니까 ? 돈이 많이 있든 지 없든지 간에 예수님이 함께 있어야 참 기쁨과 행복이 있지 않겠습니까 ?
이 이민 생활, 외국 땅에서 예수님이 함께 하시지 않으면 여기는 쓸쓸한 광야요, 시베리아 벌판이요, 여기가 바로 지옥이 아니겠습니까 ? 그러나 예수님이 함께 계신다면 캘거리가 아무리 추워도 여기는 따뜻한 온돌방이요, 여기가 바로 천국이 아니겠습니까 ?
여러분, 묻고 싶음. 예수님은 지금 당신과 함께 하시고 있습니까 ? 당신이 스스로 죄인임을 깊이 깨닫고 "주여,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라고 고백한다면 예수님은 당신이 아무리 큰 죄인이라 할지라도 당신과 함께 하심.
그러나 당신이 헌금 좀 많이 한다고, 교회에 조금 더 먼저 나왔다고 "에헴, 나는 의인이로소이다." 라고 거만한 태도를 취한다면 당신은 예수님이 가까이 하기에는 너무나 먼 당신이 되고 맘.
예수님이 이 세상에서 가까이 하기 가장 싫어하는 사람이 누구일까요 ? 창녀일까요 ? 강도일까요 ? 사기꾼일까요 ? 조폭(조직폭력)일까요 ?
아닙니다. 예수님이 가장 가까이 하기 싫어하는 사람은 바로 "에헴, 나는 의인이로소이다." 에헴, 나는 잘난 사람이로소이다." 하고 자신의 의로움을 내세우는 교만한 사람임.
여러분, 과연 우리가 과연 잘난 사람일까요 ? 과연 우리가 깨끗한 사람일까요 ? 과연 우리가 의인일까요 ? 하나님이 우리를 불러 주실 때 우리가 의인이기 때문에, 잘났기 때문에, 배웠기 때문에 불러주셨을까요 ?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음. 하나님이 나를 불러주신 것은 내가 못난 사람이요, 죄인이요, 남들보다 형편없이 악한 사람이기 때문에 부른 것이 아닙니까 ?
여러분, 우리가 찬송가 405장을 부를 때에 뭐라고 찬송합니까 ?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랍다"고 찬송하지, "나 같은 의인 살리신 주 은혜 놀랍다" 라고 찬양하지는 않지 않습니까 ?
그런데 왜 지금은 "나 같은 의인 살리신, 나 같은 잘 생긴 사람 살리신, 나 같은 똑똑한 사람 살리신 주 은혜 놀랍다"고 찬양이 바뀌었습니까 ? 언제부터 당신의 찬양이 그렇게 변질되었습니까 ? 언제부터 당신의 신앙이 그렇게 변질되었습니까 ?
"주여,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라는 신앙이 "주여, 나는 의인이로소이다. 주여, 나는 잘난 사람이로소이다. 주여 나는 똑똑한 사람이로소이다" 라고 변질되었다면 당신은 지금 예수님과 멀어지고 있는 것임에 틀림없음.
그러나 오늘도 "주여,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라는 신앙의 고백이 있다면 예수님은 지금 이 시간에 당신과 함께 하심. 예수님은 지금 당신의 친구가 되어 당신의 곁에 계심.
오늘의 당신의 기도가 "주여,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라고 출발한다면 예수님은 당신을 기뻐하시고 당신을 제자로 삼으심. 그러나 교회에 들어와서도 "주여, 나는 의인이로소이다. 주여, 나는 깨끗한 사람이로소이다" 라고 고집한다면 예수님은 당신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음.
예수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찾아오셔서 마음의 문을 두드리고 있음. 이 때 "주여,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라고 말하며 마음의 문을 활짝 열면 예수님은 우리에게 들어와 우리와 더불어 먹고 우리와 더불어 마심.
그러나 예수님이 우리에게 찾아와 문을 두드리는 데에도 "우리 집에 왜 왔니 ? 왜 왔니 ? 나는 의인인데, 나는 부잔데, 나는 부족한 것이 없는데 무엇 하려고 우리 집에 왔니 ?" 라고 말을 한다면 주님은 수치와 모욕을 받으시고 우리 집을 떠나고 맘.
교회는 의인이 오는 장소가 아니라 각종 죄인이 와서 "주여,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라고 고백하며 하나님을 만나는 곳임. 하나님은 죄를 고백하는 사람을 만나주시고, 죄를 통회하는 사람을 불쌍히 여기시고, 죄를 미워하는 사람을 기뻐하시고, 자신의 죄를 인정하는 사람을 크게 들어 사용하심.
바울을 보십시오. 그는 한 때 마음이 강퍅하여 자신이 교회에 많은 해를 끼치면서도, 스데반 집사를 돌로 쳐죽이는데 가담하면서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음.
왜 그랬을까요 ? 자신의 죄를 깨닫지 못했기 때문임. 자신이 지금 의로운 행동을 하고 있다고 굳게 믿었기 때문임. 그의 마음 속에는 "에헴, 나는 누구보다 의인이네 !" 하는 엉뚱한 신앙의 아집이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임. 그리고 그는 이렇게 의로운 행동을 하는 자신을 하나님이 너무나도 사랑하고 있다고 생각했음.
그러나 예수님은 바울에게 찾아와 이렇게 물었음.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 (행9:4)
아니 이게 왠 날벼락입니까 ? 바울은 자신이 의롭다고 생각했는데, 자기가 하나님을 가장 위하여 왔다고 자부심을 가졌었는데 주님께로부터 들려온 말씀은 그것이 아니었음. "네가 왜 나를 핍박하느냐 ? 네가 왜 죄를 짓고 있느냐 ? 네가 왜 나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있느냐 ? 너는 지금 죄인이지 않느냐 ?" 하는 책망의 음성이 들려왔음.
이 음성을 듣고 바울은 땅에 엎드러졌음. 그리고 그는 깨달았음. "아하, 내가 죄인이로구나 ! 아하, 내가 잘못했구나 ! 주여, 나의 죄를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주여,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라고 고백한 바울을 예수님은 자신의 제자로 삼으시고 그에게 크신 은혜를 베풀어 주셨음. 고로 바울은 이렇게 고백함.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딤전 1:15)
여러분, 묻고 싶음. 당신의 외침은 지금 무엇입니까 ? 사도 바울과 같이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라고 외치고 있습니까 ? 아니면 의인 중에 내가 최고 의인이다. 잘난 사람 중에 내가 최고 잘난 사람이다." 라고 외치고 있습니까 ?
누가복음 18장에 보면 이런 장면이 나옴.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갔음. 한 사람은 바리새인이요, 또 한 사람은 세리였음. 바리새인이 먼저 이렇게 기도함.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처럼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눅18:11-12)
그러나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렇게 기도함.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옵소서 !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 (눅18:13)
여러분, 예수님은 이 두 사람의 기도 중 누구의 기도가 옳다고 말씀하셨습니까 ? 누가 더 의로운 사람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 "주여, 나는 의인이요, 나는 잘난 사람입니다" 라고 말하는 사람입니까 ? 아니면 "주여,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라고 말하는 사람입니까 ?
예수님이 세리와 창녀, 죄인들을 사랑하시고 심지어 강도까지도 받아들인 것은 그들에게는 "주여,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라는 솔직한 고백이 있었기 때문임. 예수님이 바울을 크게 사용한 이유도 그에게는 "주여, 내가 죄인 중에 괴수입니다" 라는 고백이 있었기 때문임.
우리가 이전에 아무리 많은 죄를 지었어도 오늘 우리가 "주여,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라고 고백하면 예수님은 우리의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어 놓음. 예수님은 우리의 슬픔을 기쁨으로, 우리의 원망을 감사로, 우리의 불행을 행복으로 바꾸어 놓음.
저와 여러분의 절망과 희망, 슬픔과 기쁨, 실패와 성공, 행복과 불행은 바로 우리의 고백에 달려있음. 오늘 우리가 베드로처럼, 바울처럼, 세리처럼 "주여,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라고 고백을 한다면 우리에게는 희망이 있음. 우리의 앞에는 기쁨과 행복이 놓여져 있음.
그러나 아직도 "주여, 나는 의인이로소이다" 라고 고집한다면 우리의 앞길을 예수님이 책임을 지시지 않음. 왜냐하면 예수님은 "주여,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라고 고백하는 사람, 즉 죄인만을 위해서 이 땅에 오셨기 때문임.
만약 우리가 바울처럼 우리의 죄를 깊이 깨닫고 "주여, 내가 죄인 중에 괴수로소이다" 라고 고백한다면 우리에게는 분명히 하나님의 큰 은혜가 준비되어 있음. 하나님은 이러한 우리를 크게 사용하심.
이사야 6장에 보면 이사야의 환상이 나옴. 이사야가 본즉 하나님이 높이 들린 보좌에 않으셨는데 천사들이 하나님을 찬양함. "거룩 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사6:3)
그러자 이사야가 이렇게 말을 함.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사람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사6:5)
이사야는 하나님을 보면서 자신은 부정한 사람이요, 죄인이라고 고백했음. 그리고 그는 자신의 죄 때문에 자신이 망할 줄 알았음. 그러나 하나님은 이사야가 죄를 많이 지었다고, 입술로 많은 범죄를 저질렀다고 책망하지 않으셨음.
오히려 자신의 죄인된 모습을 바로 깨닫고 "주여,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입니다." 라고 고백한 이사야의 입술에서 악을 제하시고 죄를 사하여 주셨음.
그리고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음.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 (사6:8) 즉 하나님은 자신의 죄를 깨닫고 그 죄를 용서받은 사람을 오늘도 부르시기를 원한다는 것임.
"주여,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라고 고백한 베드로를 예수님이 부르신 것처럼, "주여, 나는 죄인 중에 괴수로소이다" 라고 고백한 바울을 예수님이 사용하신 것처럼, "주여,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로소이다" 라고 고백한 이사야를 사용하신 것처럼 오늘 우리의 고백이 저 세리와 같이 "주여,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라고 고백한다면 예수님은 정녕 저와 여러분을 기뻐하시고 기뻐하심.
그리고 사랑하시고 사랑하심. 그리고 사랑하는 자에게 오늘도 주님은 이렇게 말씀함.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요삼1:2)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