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심은 항상 예수님입니다.

날짜: 
2013/08/17
말씀: 
요한계시록 3:20-21
말씀구절: 

20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21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설교: 

계3:20-21 중심은 항상 예수님입니다. 인류 역사를 나누어서 표현할 때 BC와 AD의 약자로 씁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BC는 영어로 British Columbia도 되지만 여기서는 Before Christ입니다. 해석하면 '예수님 전'이란 뜻입니다. 그리고 AD는 라틴어로 anno Domini입니다, 해석하면 '주 후'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나 안 믿는 사람이나 BC와 AD를 사용하면서 자신들도 알게 모르게 예수님을 부르고 있고, 주님을 부르고 있습니다. 즉 예수님을 믿는 사람에게나 안 믿는 사람에게나 역사의 중심은 예수님입니다. 그리고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책은 아시다시피 성경입니다. 성경은 이 세상의 다른 어떤 책과 비교할 수 없는 영원한 베스트셀러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크게 구약(옛 약속)과 신약(새 약속)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구약은 예수님이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이 땅에 오실 것을 약속한 것이고, 신약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고 난 후에 약속한 것입니다. 즉 성경의 중심 내용 역시 예수님입니다. 그리고 신약의 약속의 중심은 '다시 오실 예수님'입니다. 장차 예수님이 이 땅에 다시 오시는데, 그때에는 새로운 역사가 펼쳐집니다. 이름하여 '천년왕국'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은 장차 예수님과 함께 천년왕국에서 이 세상을 다스리게 됩니다. 즉 장차 이 땅에 펼쳐질 새로운 역사의 중심 역시 예수님입니다. 또한 예수님은 역사의 중심뿐만 아니라 우리 각자의 삶과 신앙의 중심입니다. 믿으시면 아멘 합시다. 우리가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이요, 예수님은 우리들의 믿음의 주인입니다. 혹시 어떤 사람이 자신은 그리스천이라고 말하면서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까? 제가 청년 시절 한국에 있을 때 어떤 낮선 분에게 전도를 했습니다. "혹시 예수님을 믿습니까?" 그 분이 대답합니다. "저는 천주님은 믿지만 예수님은 믿지 않습니다." 이 말을 듣고 저는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같이 잠시 혼동되었습니다. 그 분은 가톨릭 신자였습니다. 한국어로 하면 천주교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천주교인은 하나님만 믿고 예수님은 안 믿습니까? 천주교인은 마리아만 믿고 예수님은 믿지 않습니까? 물론 그러지는 않을 겁니다. 그런데 이 천주교인 외에 아예 민족 전체가 이런 식으로 하나님만 믿고 예수님을 믿지 않는 민족이 있습니다. 어떤 민족입니까? 이스라엘 민족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참으로 이상하고 신기합니다. 하나님이 보내주실 메시아를 구약시대에 눈이 빠지도록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막상 메시아 예수님이 오시니까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통해서 너희가 구원을 받으라고 했는데, 그들은 예수님을 죽이고 엉뚱한 구원자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바로 적그리스도입니다. 장차 이 땅에는 위대한 정치가가 나타나는데 그는 이스라엘과 7년 평화조약을 맺습니다. 그리고 지금 예루살렘에 있는 이슬람 성전을 부수고 유대인의 성전을 세워주는데 이 정치가가 도와주게 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가 자신들이 그토록 기다렸던 메시아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즉 진짜 구원자 예수님은 저버리고 가짜 구원자를 열렬히 환영하게 될 것을 성경은 예언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을 저버린 이스라엘 민족은 2000년 전에 예루살렘이 로마에게 함락당하여 수많은 사람이 죽고, 나라를 잃고, 온 세계에 흩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참으로 숫한 고생과 핍박을 당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이스라엘 민족은 그들이 영접하는 가짜 구세주인 적그리스도에게 배반을 당하여 무지막지한 핍박을 또 당하게 될 것입니다. 일명 예수님이 예언한 '야곱의 환난'입니다. 이렇게 이스라엘 민족은 예수님을 저버리고 여호와 하나님만 믿습니다. 참으로 요상 야릇한 민족입니다. 이슬람교도 비슷합니다.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 대신 '알라 하나님'을 믿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저 선지자 중의 하나로만 생각합니다. 즉 가장 중심에 두어야 할 예수님을 옆으로 제쳐 버렸습니다. 여러분! 기독교인이 예수님을 삶의 중심에 모시지 않고 예수님을 옆으로 제치는 것은 바른 신앙이 아닙니다. 바른 신앙인이란 어느 순간, 어느 장소에서든지 예수님을 항상 삶의 중심에 두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묻고 싶습니다. 여러분이 이 땅에 이민이나 유학을 왜 왔습니까? 예수님이 가라고 해서 왔습니까? 자신이 원해서 왔습니까? 그리고 혹 이 땅을 떠나게 될 때 예수님이 다시 돌아가라고 해서 돌아갈 겁니까? 아니면 자신이 원해서 돌아갈 겁니까? 그리고 우리 교회(캘거리 순복음 중앙교회)는 왜 왔습니까? 예수님이 가라고 해서 왔습니까? 자신이 원해서 왔습니까? 그리고 이곳 캘거리에 와서 무엇을 할 것입니까? 예수님이 하라고 하는 것을 하겠습니까? 자기가 원하는 것을 하겠습니까? 자- 이 질문에 각자 대답을 해봅시다. 예수님이 이곳 캐나다 캘거리에 가라고 해서 오신 분들은 손을 들어보세요. 우리 교회에 가라고 예수님이 이렇게 저렇게 인도하시고 역사해주셔서 오신 분들은 손을 들어보세요. 이때 손을 안 들면 남들 보기에 신앙이 좀 어린 것 같다고 무시를 당할까봐 그냥 손을 드시는 분이 있을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또 대답해봅시다. 이곳 캘거리에 와서 예수님이 내게 하라고 하는 것을 하고 싶다는 분은 손을 들어보세요.(믿음대로 될지어다.) 그리고 또 한 번 묻습니다. 어제와 오늘 이곳에 오시기 전에 주로 누구를 생각하고 지냈습니까? 그리고 오늘 교회에 와서 누구를 만나기 위해 나왔고, 누구의 음성을 들으러 나왔습니까? 자- 솔직히 대답해보세요. 오늘과 어제 나는 예수님을 주로 생각하고 "어떻게 하면 예수님을 기쁘시게 할꼬?" 하고 기도하며 지냈습니다. 하는 분은 솔직히 손을 들어보세요. 그리고 오늘 교회에 올 때 "예배를 통하여, 봉사를 통하여, 성도 간에 교제를 통하여 예수님을 만나려 하고, 그 분의 음성을 듣고, 그 분과 데이트를 하러 나왔습니다." 하는 분들은 손을 들어보세요. 혹시 이런 분은 안계십니까? "목사님! 죄송하지만 저는 어제도 그제도 예수님 생각은 눈곱만큼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이리저리 바쁘게 지내다가 간신히 오늘 교회에 나왔습니다. 교회 와서도 예수님을 만나고, 그 분의 말씀을 듣는 기대감은 솔직히 말해서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냥 교회에 나왔습니다. 그런데 배가 고프네요. 목사님! 여기 교회는 불고기와 김치도 매주 준다는데..." 여러분! 여기 캐나다에 와서 불고기, 스테이크, 갈비, 못 먹는 분이 있습니까? 아마 거의 대부분 드실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가 김치 주고 밥 주니까 교회 오는 분이 있습니까? 아마 거의 그러지 않을 것입니다. 즉 뭐냐 하면 우리가 교회 와서 밥과 불고기도 먹는 것은 예수님이 "너 주일날은 교회에서 밥을 먹어라."고 하기에 먹는 겁니다. 즉 우리의 먹고 마시는 것의 중심도 역시 예수님입니다. 이런 말씀 기억하시지요.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계3:20) 신자들이 세상에서 살아갈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일터에서 일할 때에도 예수님이 나에게 성실히 일하라고 하시니까 불신자보다 나는 더 성실히 일하는 것이고, 학교에서 공부할 때에도 "너 아이큐가 좀 부족해도 열심히 노력하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시니까 공부에 재주가 없어도 노력을 하는 겁니다. 그리고 미운 사람이 있어도 예수님이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시니까 그렇게 사랑하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하여간 예수님이 내 삶의 중심입니다. 그리고 인생사는 방법도 예수님이 원하시는 방법대로 예수님 중심으로 살려고 노력하는 것이 바른 크리스천입니다. 제가 오늘의 설교를 준비하면서 저는 주님을 바라보고, 주님을 그리면서 준비를 했습니다. 월요일 새벽 5시에 눈이 떠졌습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창문을 통해 하늘을 바라보았습니다. 저 넓고 높은 하늘을 바라보면서 나는 무엇을 생각했을까요? 예수님을 생각했습니다. "주여- 주님은 분명히 다시 오시리라고 약속하셨는데... 주여- 언제나 오시렵니까? 주의 백성들이 늘 주님을 생각하며 살다가 주님을 맞이하게 해주세요." 이렇게 기도하면서 오늘의 설교 말씀을 써내려갔습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믿지만 아직도 예수님을 바라보지 못하고, 세상 염려만 하고, 세상만 바라보고, 세상에 취해서 사는 분들이 있기에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복음 성가가 제 입에서 흘러나왔습니다. 같이 한 번 불러 볼까요. 1. 세상 부귀 안일함과 세상 근심하다가 주님 나를 찾으시면 어떻게 만날까 주님 내게 오시면 나 어찌 대할까 멀리 방황하던 나 불쌍한 이 죄인 이제 주만 생각하며 세상 근심 버리고 두 손 들고 눈물로써 주만 따라 가오리다 2. 세상일에 얽매여서 세상 일만 하다가 주님 나를 부르시면 어떻게 만날까 주님 내게 오시면 나 어찌 대할까 멀리 방황하던 나 불쌍한 이 죄인 이제 주만 생각하며 세상 권세 버리고 오직 주만 바라보며 주만 따라 가오리다{C} 3. 지금까지 내가 한일 주님께서 보시고 훗날에 나를 보고 무어라 하실까 주님 내게 오시면 나 어찌 대할까 멀리 방황하던 나 불쌍한 이 죄인 이제 주만 생각하며 세상 영광 버리고 십자가를 내가 지고 주만 따라 가오리다 십자가를 내가 지고 주만 따라 가오리다 여러분! 오늘의 본문 21절에 이런 예수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여러분! 우리는 장차 심판 당할 죄악된 세상에 빠져 살면 안됩니다. 세상을 이겨야 합니다. 세상을 이기는 이김은 이것이니 곧 예수님을 믿는 믿음입니다. 우리는 세상을 이기는 예수님을 중심에 모시고 예수님과 더불어 세상을 이겨야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잘 이기는 자는 예수님과 더불어 12지파에 앉아서 세상을 심판하고 다스리게 됩니다. 여러분! 이런 표현 아시지요? 앙꼬 없는 찐빵, 김빠진 맥주, 불 꺼진 항구, 고무줄 없는 팬티... 그리고 예수님 없는 신자. 오늘날의 많은 신자들이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예수님이 가져다주는 세상 성공과 세상 출세와 세상 부귀영화는 바라보지만 정작 예수님을 사랑하며 날마다 순간마다 예수님을 바라보지 않습니다. 인간의 말, 사단의 말, 세상의 헛된 말에는 귀가 쏠리는데 정작 예수님의 간절한 음성은 들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분문에 예수님은 말씀합니다.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즉 주님은 말씀합니다. "사랑하는 자여, 이제 나의 음성을 들어라." 여러분! 주님의 음성을 들으십시오. 주님이 지금, 요새 여러분에게 뭐라고 말씀합니까? 혹 이렇게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까? "사랑하는 종아(아들아, 딸아, 내 신부야), 내가 곧 가리라. 내가 속히 가리라." 이런 주님의 음성에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라고 대답하며, 주님 만날 때까지 예수님 중심으로 사는 복되고 행복한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리고 그 행복이 영원토록 이어지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