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치지 말라

날짜: 
2008/04/27
설교: 

사40:27-31 지치지 말라
영어 단어 중에 'burn out'이란 말이 있습니다. 한국말로 번역하면 ‘다 타버리다.’라는 뜻입니다. 즉 에너지가 고갈이 되어서 어떤 힘과 동력도 만들어낼 수 없다는 뜻입니다. 이 말을 종종 인생에 비유하여 표현합니다. “아- 그 사람 이제 burn out 되었어!“ 이게 무슨 뜻입니까? ”그 사람 이제 인생 살기가 매우 힘이 들고 지쳐버렸다.“라는 뜻입니다.
여러분, 때때로 우리는 지칠 수 있습니다. 공부하는 학생이 공부에 지칠 수 있습니다. 사업을 하는 사람도, 직장을 다니는 사람도 그 일에 지칠 수 있습니다. 가정에서 늘 빨래를 하고, 청소를 하며, 음식을 준비하고, 자녀를 돌보는 주부도 지칠 수 있습니다. 또한 목사님들도 목회를 하면서 지칠 수 있습니다. 더구나 꿈과 희망을 갖고 이곳 캐나다 외국 땅에 왔는데 여러 가지 일들이 원하는 모습으로 잘 되지 않을 때에 지칠 수가 있습니다.
특히 외국 땅에서 피곤함이 다가올 때에는 고향 땅에서 겪는 피곤함보다 더욱 강하게 느껴집니다. 그 결과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향수병도 생기게 되고, 무기력과 우울증도 생기게 되며, 어디론가 멀리 떠나버리고 싶다는 생각도 들고, 극한 상황으로 치닫게 되면 자살까지도 생각합니다. 그래서 인생의 마라톤 경주를 하면서 빨리만 달리는 것이 전부가 아니고, 지치지 않고 자기 페이스를 조절하는 것이 더욱 중요합니다.
오늘의 본문 내용입니다. 우리가 읽은 이사야서는 크게 두 부분으로 되어 있습니다. 전반부인 1장부터 39장까지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우상숭배와 범죄로 인하여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서 비참한 생활을 하는 장면입니다. 아시다시피 당시 포로는 인간 이하의 대접을 받습니다. 가장 아픔을 당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절망입니다. 비극입니다. 고통입니다. 그러나 오늘 읽은 40장부터 마지막 장인 66장까지 후반부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은 외국 땅에 포로로 와서 심한 고생을 하고 있습니다. 타향살이의 애환과 슬픔이 있습니다. 때때로 원통함이 있습니다. 그러나 장차 해방이 되어 멋진 삶을 살 수 있다는 희망을 주고 있습니다. 그러니 피곤해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결코 지치지 말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외국 땅에서 지치면 안 됩니다. 태평양 건너 이곳까지 와서 쓰러지면 안됩니다. 왜 지치면 안됩니까? 이유는 분명합니다.
1. 하나님은 영원하신 분이기 때문에 지치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의 본문은 말씀합니다. “야곱아 네가 어찌하여 말하며 이스라엘아 네가 어찌하여 이르기를 내 사정은 여호와께 숨겨졌으며 원통한 것은 내 하나님에게서 수리하심을 받지 못한다 하느냐.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 끝까지 창조하신 자는 피곤치 아니하시며 곤비치 아니하시며”(사40:27-28)
여러분, 우리는 종종 인생을 짧게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조급해지기 쉽습니다. 오늘 당장 좋은 일이 일어나지 않으면 낙심해합니다. 오늘 당장 일이 잘 해결이 되지 않으면 피곤해합니다. 오늘 당장 기대하던 성적표가 나오지 않으면 우울해합니다. 그러나 영원하신 하나님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분은 오늘의 암울한 현실만 바라보고 낙심하고 지치는 분이 아니십니다. 그 분은 내일과 장래를 보시는 영원하신 분이시기에 캄캄한 어둠 속에서도 밝은 희망의 빛이 있습니다.
가끔 영화를 보게 됩니다. 악당이 주인공을 죽이려고 뒤로 다가가서 갑자기 총을 갖다댔습니다. 관중들 모두가 숨을 죽이고 있습니다. 모두가 가슴을 조마조마해 가며 피를 말리는 긴장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태연합니다. 그리고 속으로 외칩니다. “저 주인공 절대 안 죽는다. 저 주인공이 벌써 죽으면 영화가 초반인데... 그럴 수는 없지!”
여러분, 주인공이 영화 초반에 죽는 경우는 절대로 없습니다. 영화를 짧게 보면 여유가 없지만 길게 보면 여유가 있습니다. 지금 당장 나에게 다가오는 문제와 슬픔과 고통만 생각하면 여유를 잃고 지치게 됩니다. 이럴 때에는 눈을 들어 먼 장래를 바라보아야 지치지 않습니다. 영원한 세계를 생각해야 피곤하지 않습니다. 그 영원한 하나님이 나의 미래를 가장 행복하게 결정지었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세 살 난 아들을 데리고 아빠가 동물원 구경을 갔습니다. 사자우리 앞에 가서 섰습니다. 사자가 어린아이 앞으로 다가 오더니 입을 딱 벌리고 으르렁거렸습니다. 아들은 “아빠!”라고 외마디를 비명을 지르며 울어댔습니다. 그러나 아빠는 무서워하거나 울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아들은 다가온 사자만 보지만 아빠는 사자 앞에 놓여있는 두꺼운 쇠창살을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이 바벨론 포로 이스라엘 백성들과 이사야의 대화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 저 바벨론 좀 보세요.”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사야는 외치고 있습니다. “너희들은 바벨론만 보고 있지만 나는 바벨론과 너희 사이에 있는 하나님도 보고 있다. 그 분은 영원하신 분이시다.”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외국 땅에서 문제가 있고 어려움이 있으면 우리는 문제만 보기 쉽습니다. 그래서 무서워하며 낙심해하고 외칩니다. “하나님! 저 골리앗 좀 보세요. 하나님! 저 홍해수 좀 보세요.” 그러나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애들아! 골리앗만 보지 말고, 홍해수만 보지 말고 나를 바라보아라. 나는 영원한 하나님이시 아니시냐?.” 여러분, 우리 하나님은 영원하신 분이십니다. 우리는 그 영원하신 하나님을 바라보기에 지치지 않습니다.
2. 하나님은 창조하시는 분이기 때문에 지치지 말아야 합니다.
때때로 우리는 하나님은 없는 것을 있게 하시고, 안되는 것을 되게 하시며, 막힌 것을 뚫으시면, 불가능을 가능케 하시는 분이신 것을 망각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문제가 다가오면 낙심해하고 힘을 잃고 지치기 쉽습니다. 그러나 오늘의 본문은 말씀합니다. “야곱아 네가 어찌하여 말하며 이스라엘아 네가 어찌하여 이르기를 내 사정은 여호와께 숨겨졌으며 원통한 것은 내 하나님에게서 수리하심을 받지 못한다 하느냐.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 끝까지 창조하신 자는 피곤치 아니하시며 곤비치 아니하시며”(사40:27-28)
여러분, 우리 하나님은 무에서 유를 만드신 창조주이십니다. 그분에게는 불가능이 없습니다. 좀더 어려운 말로 하면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분이십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자기의 하나님을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의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부르시는 이시니라.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 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을 인함이라 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의 죽은 것 같음과 사라의 태의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않고 믿음에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그러므로 이것을 저에게 의로 여기셨느니라.”(롬4:17-22)
여러분, 없으면 있게 하시고, 안되면 되게 하시는 창조주 하나님을 믿으면 우리는 결코 지치지 않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피곤하고 고단한 사람에게 힘과 능력을 주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고로 이 외국 땅에서 힘과 능력이 떨어질 때 창조주 전능한 하나님을 바라보며 새 힘을 충전받기를 축원합니다.
3. 하나님이 지치지 않는 분이시기에 지치지 말아야 합니다.
이사야는 하나님은 지치지 않으시는 분이심을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야곱아 네가 어찌하여 말하며 이스라엘아 네가 어찌하여 이르기를 내 사정은 여호와께 숨겨졌으며 원통한 것은 내 하나님에게서 수리하심을 받지 못한다 하느냐.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 끝까지 창조하신 자는 피곤치 아니하시며 곤비치 아니하시며”(사40:27-28)
여러분, 결코 지치지 않으시는 하나님이 지금 이 시간도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은 우리가 지치지 않도록 지금도 옆에서 우리에게 힘과 능력을 주시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가 만날 지치고 허덕이면서 풀이 죽어 있으면 도대체 하나님의 체면이 어떻게 됩니까? 누가 당신의 풀이 죽어 있는 모습을 보면서 이렇게 말하면 어떡합니까? “야- 너 왜 그렇게 풀이 죽어 있니? 네가 믿는 하나님이 혹시 죽었니?”
여러분, 우리가 죽은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우리는 오늘도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습니다. 결코 지치지 않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이 외국 땅에서도 새 힘을 얻습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을 바라보는 자는 새 힘을 얻게 된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 모습이 마치 독수리가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라고 비유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새들은 날씨가 사나워 폭풍이 몰아치고 폭우가 쏟아질 것 같으면 이리 저리 숨기에 바쁩니다.
그러나 독수리는 오히려 창공을 향하여 날개 치며 올라갑니다. 어떠한 악조건에도 굴하지 않는 참으로 용감한 모습입니다. 그렇게 날개 치며 올라가는 독수리의 모습 속에서 지치거나 피곤함의 모습은 조금도 발견할 수 없습니다.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고 자빠져도 하나님을 앙망하는 우리는 지치지 않습니다. 영원하신 하나님, 창조주 하나님, 지치지 않으시는 하나님으로부터 늘 새 힘을 얻기 때문입니다. 아무쪼록 이 외국 땅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새 힘을 얻고 삶의 현장 속에서 계속 희망이 넘쳐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