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좋으신 하나님

날짜: 
2006/11/26
설교: 

마7:11 참 좋으신 하나님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은 항상 꾸짖으시고 심판하시는 두려우신 하나님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그렇다면 하나님을 믿기가 참으로 힘들고, 그런 하나님을 믿는 삶이란 별 기쁨과 행복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생각하는 하나님은 분명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고로 좋으신 하나님을 믿는 우리의 삶은 분명히 활력이 넘치고 기쁨과 행복이 있습니다. 그리고 어떠한 환경에서도 좋으신 하나님을 믿는 우리들은 만사를 긍정적으로 보게 되고 환난과 시련도 극복할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1. 왜 하나님은 좋으신 하나님입니까?
여러분, 우리는 모두 죄로 인하여 형벌을 당하여 지옥에 떨어질 수밖에 없는 처지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우리를 대신하여 죄의 형벌을 당하고 죽게 하셨습니다. 그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는 죄의 저주와 형벌에서 놓여나 자유함을 얻었습니다. 즉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이 좋으신 하나님이 아니라면 어찌 우리를 위하여 자신의 독생자를 내놓아 죄인된 우리를 위하여 죽게 하겠습니까?
모든 크리스천들은 이 은혜만 생각하면 어디서든지 어느 때든지 늘 감사함이 생깁니다. 때때로 마귀는 우리에게 좋으신 하나님에 대한 의심을 가져다줍니다. 그러나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이 좋으신 하나님이 아니라면, 어찌 그 아들을 십자가에 몸 찢고 피 흘리게 하겠습니까? 고로 십자가를 바라보면 하나님에 대한 모든 의심은 눈 녹듯이 녹아지고, 좋으신 하나님인 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를 율법과 의식에서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여러분, 인간이 살아 있을 동안에는 하나님과 인간관계의 법이 있고, 또한 인간과 인간관계의 법이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이러한 법의 거미줄 속에 얽혀서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인간에게는 이 모든 법을 다 지키고 정의롭게 살 힘이 없습니다. 이에 대하여 성경은 이렇게 진실을 말씀합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롬3:23)
여러분, 모든 사람들은 늘 불법의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로 인한 결과는 우리들에게 불안입니다. “이런 죄를 지었으니 이제 나는 하나님께 언젠가 저주를 받을 것이다. 이제 나는 하나님께 형벌을 받고 고통에 빠질 것이다.”라고 불안한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친히 몸을 깨트리시어 우리들에게 미쳐야 할 이러한 율법의 저주를 철폐하셨습니다.
이에 대하여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 하셨으니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니라.”(갈3:13-14)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롬8:1-2)
즉 우리들은 더 이상 율법의 노예가 아닙니다. 이제 우리는 죄로 인하여 불안해 할 필요가 없습니다. 더 이상 죄가 우리를 파멸로 몰고 갈 권세가 없습니다. 우리는 죄를 이겼습니다. 물론 우리가 어쩔 수 없이 계속 죄를 짓지만, 죄의 파괴력이 우리에게 미치지 못하는 것입니다. 오히려 우리에게는 성령의 법이 있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 안에서 축복을 받습니다. 이렇게 불의한 우리를 의롭다 여겨주시고 축복하시는 하나님이 어찌 좋으신 하나님이 아니겠습니까? 고로 좋으신 하나님을 늘 생각하며 담대하고 용기를 가지십시오. 긍정적으로 인생을 바라보고 희망차게 내일에 대한 꿈을 품고 살아가십시오.
2. 하나님은 환난과 고통 중에서도 우리를 돌보아 주시는 좋은 하나님이십니다.
사람들은 “환난과 고통 중에도 하나님은 과연 좋은 하나님이실까?”라고 생각하곤 합니다. 여러분, 환난과 고통은 우리의 잘못으로
다가오기도 하고 마귀의 공격으로도 다가오기도 합니다. 그러나 환난과 고통을 당할 때 우리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도움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환난과 고통 중에 모두 다 나를 버리고 떠나도 주님은 함께 계시기 때문에 좋으신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비록 내가 잘못했고 못된 짓을 해서 환난과 고통에 빠졌으므로 모든 사람이 나를 버린다고 할지라도 내가 회개하고 주님께 나오면 그 환난과 고통의 골짜기 속에 주님은 찾아오셔서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시편 23편 4절에 다윗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찌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여러분, 누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나와 같이 갑니까? 부모, 형제, 처자라도 같이 못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곳에 나와 같이 계셔 주시고,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로 나를 안위해 주시니 주님은 참 좋으신 하나님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요한복음 10장 11-15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삯군은 목자도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이리가 양을 늑탈하고 또 해치느니라 달아나는 것은 저가 삯군인 까닭에 양을 돌아보지 아니함이나 나는 선한 목자라 내가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여러분, 고난당할 때 함께 하는 친구가 진짜 친구인데 우리 주님은 우리가 극심한 고난을 당할 때에 자신의 목숨을 버리더라도 우리를 버리지 아니하고 떠나지 않고 함께 계시니 이 얼마나 좋은 하나님입니까? 그리고 주님은 우리에게 다가오는 고난과 고통까지라도 영광의 기회로 삼아 줍니다. 여러분, 우리가 고난과 고통을 당하는 것이 무익하고 손해가 나는 줄 생각하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고난과 고통의 터널을 통할 때 주님은 그것들을 통하여
우리 옛사람을 다 벗어버리고 새사람이 되게 하고 영광의 옷을 입게 하는 기회로 삼아 주십니다. 고로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겉 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고후4:16-17)
여러분, 환난이 지나가면 잠시 후 영화가 다가옵니다. 그러므로 고난은 그와 동등 혹은 그 이상의 축복을 항상 동반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즉 고난은 영광과 축복을 향한 터널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그 고난의 터널을 지나기도 전에 좌절하고 절망해 버리곤 합니다. 그러나 고난의 터널을 지나면 반드시 축복과 영광의 빛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고로 고난 중에라도 우리는 좋으신 하나님이고 외칠 수 있습니다.
3. 좋으신 하나님을 모시고 어떻게 살아가야 되겠습니까?
여러분, 우리가 좋으신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항상 소망을 버려서는 안됩니다. 소망을 버리면 하나님께서 쓸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소망의 하나님이기 때문에 절망하고 있는 사람하고는 같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이 외국 땅에서도 소망을 가져야 합니다. 로마서 8장 28절에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고 말씀했습니다.
즉 모든 것이 결국 좋게 될 것이라는 소망을 가져야 하나님이 역사를 베풀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광야를 통과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항상 절망적이었습니다. 그들은 고난이 오고 문제가 생기면 늘 절망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렇게 절망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결국 그 절망에 부딪혀 스스로 무덤을 파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좋으신 하나님을 아는 사람은 항상 기도하고 절망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환경이 어려워도 하나님께 기도하고 의지하면 좋으신 하나님이 감당할 능력을 주시고 피할 길을 내신다는 것을 믿습니다.
또한 주님을 좋으신 하나님으로 믿는 사람은 범사에 감사하고
살아야 됩니다. 좋을 때는 물론 감사해야 됩니다. 그리고 무언가 기분이 나쁜 일이 생겨도 시편 50편 23절에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시50:23)라고 말씀한 것처럼 더욱 감사를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감사가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기 때문에 역경을 당할 때에는 더욱 감사하여 하나님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혹 역경을 당할 때 “하나님은 나를 버렸다. 하나님이 어디에 계시냐?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지 아니한다. 하나님은 너무나 야박하다.”고 생각하면 자신에게 도움을 베푸실 좋으신 하나님을 쫓아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여러분, 감사와 찬양은 역경 중에 더욱 많이 해야 됩니다. 특히 역경이 많은 외국 땅에서는 감사와 찬양이 더욱 절실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임하셔서 역경에서 우리를 건져내어 줍니다.
요셉을 보십시오. 요셉은 노예로 인신매매도 당하고 억울한 누명을 뒤집어쓰고 3년간 옥살이도 했지만 결코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불평하거나 탄식하지 않았습니다. 창세기 50장 20절에 요셉이 형들에게 말하기를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라고 고백합니다. 즉 아무리 마귀가 우리를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고 해도 좋으신 하나님은 종국적으로 그것을 선으로 바꾸어 주신다는 고백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좋으신 하나님으로 믿는 사람은 언제나 마음이 긍정적이고 성도들과 늘 힘을 주고받습니다. 그리고 마음에 언제나 소망을 가지고 긍정적으로 바라봅니다. 오늘의 본문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자식이 떡을 달라하면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하면 뱀을 줄자가 있는가? 너희가 악할지라도 자식에게 좋은 것을 줄줄 알거든 하물며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지 않겠느냐?”(마7:11)
여러분, 우리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몸을 찢고 피를 흘리기까지 우리를 사랑해 주신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저와 여러분은 이 좋으신 하나님에게 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이곳 캐나다 땅에서도 하나님은 우리를 1년 365일, 하루 24시간 늘 사랑하고 있습니다. 고로 이 사랑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좋으신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좋으신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