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료받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다

날짜: 
2007/02/11
설교: 

출15:26 치료받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다
여러분, 병고침을 받는 것이 과연 하나님의 뜻일까요? 예수님 당시에 보면 이와 동일한 질문을 한 병자가 있었습니다. 마태복음 8장 1절로 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산에서 내려오시는데 허다한 무리가 예수님을 좇았습니다. 그런데 한 문둥병 환자가 갑자기 나타났습니다. 여러분, 당시 유대인들 사회는 문둥병자는 성한 사람들 곁에 나타나서는 안됩니다. 만약 성한 사람이 곁에 오면 문둥병자는 수건으로 얼굴을 가리고 큰 소리로 이렇게 외쳐야 됩니다. “나는 부정하다. 부정하다. 부정하다.”
만약 문둥병자가 이렇게 행동하지 않으면 그는 전염병을 옮기는 사람으로 돌로 맞아 죽습니다. 그런데 이 문둥병 환자는 죽음을 각오하고 예수님과 많은 군중들 앞에 뛰어 나왔습니다. 그리고 주님 앞에 엎드려서 말했습니다. “주여, 원하시면 나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여러분, 이 문둥병 환자는 주님께서 능히 문둥병을 고치는 권세가 있는 줄은 알았습니다만 문둥병이 낫는 것이 주님의 뜻인지 아닌지를 잘 몰랐습니다.
그러나 이 말을 들은 예수님께서는 문둥병자에게 안수하시며 분명하게 자신의 뜻을 밝히셨습니다.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그러자 문둥병이 떠나고 그는 즉시로 깨끗함을 얻었습니다. 여러분, 이를 통해서 볼 수 있는 것은 병고침을 받는 것은 우리 주님의 분명한 뜻이라는 것입니다. 고로 나와 내 가족이 병들었을 때에는 치료받는 것이 주님의 뜻인 것을 분명하게 믿으며 담대히 주님 앞에 나아와 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1. 하나님은 치료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들이 430년간 종살이 했던 애급에서 나올 때에 인구가 대충 삼백만 명가량이었는데, 이 삼백만 명의 인구 중에 환자가 얼마나 있었다고 생각합니까? 쉽게 예를 들면 캘거리의 인구가 약 백만 명인데 종합병원에 입원하고 있는 환자만 계산해도 상당한 숫자가 될 것입니다. 물론 지금 캘거리는 의사를 비롯해 전문 의료인들의 숫자가 모자라고 병실이 모자라 많은 환자가 치료받으려고 병원에 가도 기다리다가 지쳐서 그냥 돌아오는 경우가 상당히 많이 있습니다.
아무튼 백만 명 중에 적게 잡아 천명의 환자가 있다고 할 때, 삼백만 명의 인구 중에는 약 삼천 명의 사람들은 환자라고 보아야 하지 않습니까? 물론 요즘같이 의학이 발달해도 삼백만 명 중에 적어도 2-3만 명은 환자인데 상식적으로 보면 그 당시에는 더욱 많은 환자가 있었을 것입니다. 만약 이렇게 환자가 있다고 생각할 때 그들을 운반하기 위하여 수많은 들것과 수레가 필요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환자들을 이끌고 광야를 통과하기에는 상당한 어려움이 있었을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내 가족 중에 거동이 불편한 중환자가 있는데 어찌 그 환자와 함께 거친 광야로 여행하겠습니까? 즉 이스라엘 모든 백성들이 애급을 탈출하여 광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환자에 대한 대책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거짓말 같지만 삼백만 명의 이스라엘 사람들 중에 환자가 단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성경 시편 105편 37절에 보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들을 인도하여 은금을 가지고 나오게 하시니 그 지파 중에 약한 자가 하나도 없었도다.”
이 사실에 비추어 볼 때 우리는 하나님이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의 건강을 완벽하게 돌보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하여 오늘의 본문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가라사대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청종하고 나의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급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의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니라"(출15:26)
‘치료하는 여호와’를 히브리 원어에 보면 ‘여호와 라파’라고 합니다. ‘라파’라는 뜻은 ‘의사’라는 의미입니다. 즉 우리 하나님은 우리의 병을 고치는 의사가 되신다고 스스로를 계시하여 주셨습니다. 여러분, 성경은 자주자주 우리 하나님 아버지가 의사인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말씀을 보면 이렇습니다. “너의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라 그리하면 여호와가 너희의 양식과 물에 복을 내리고 너희 중에 병을 제하리니”(출23:25) "저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시103:3) “이에 저희가 그 근심 중에서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 고통에서 구원하시되 저가 그 말씀을 보내어 저희를 고치사 위경에서 건지시는도다."(시107:19-29) "여호와께서 쇠약한 병상에서 저를 붙드시고 저의 병중 그 자리를 다 고쳐 펴시나이다."(시41:3)
2. 치료는 예수님의 복음과 분리할 수 없는 부분이다.
예수님의 세 가지 중요한 사역은 복음을 전파하시고(preaching), 말씀을 가르치시고(teaching), 병자들을 치료하시는(healing) 일이었습니다. 그중에 예수님은 치료하시는 일에 상당히 많은 시간을 보내셨습니다. 이 세상의 그 어떤 의사도 예수님만큼 환자를 치료하신 분은 없습니다. 누가복음 5장 15절에 보면 “허다한 무리가 말씀도 듣고 자기 병도 나음을 얻고자 하여 모여 오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믿는 예수님은 우리의 영혼만 구원하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의 생활도 구원하시어 가난을 철폐하고 부요를 주시는 분이시며, 또한 우리의 질병을 고치시므로 우리의 육체도 구원하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을 통하여 우리의 질병이 고침 받는 것은 이미 오래 전에 예언된 것입니다. 지금으로부터 600년 전에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예언했습니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사53:4-5)
예수님은 자신만 병자들을 고치는 것이 아니라 열 두 제자들에게도, 칠십 인의 제자들에게도 병든 자를 고치는 사역을 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리고 마가복음 16장 17절에는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 자들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받는 것도 믿습니다. 우리는 병을 치료하고, 병에서 고침 받는 것이 하나님 아버지와 구세주 예수님의 뜻인 것을 분명히 믿습니다.
3. 치료받기 위하여 우리가 해야 할 일
마태복음 9장 1절로 8절에 보면 예수께서 가버나움에 오시니 사람들이 너무 많이 모여서 입추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한 중풍병자가 들것에 들려왔는데 사람이 너무 많은지라 도저히 예수님이 계신 곳에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천장을 뜯고서 밧줄로 중풍병자를 달아서 예수님 앞에 내려놓았습니다. 물론 그곳에 모인 사람들이 그와 같은 무식한 행동에 비난을 하고 야단법석을 했겠지요.
그런데 예수님은 그 사람들의 믿음을 보시고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소자야, 안심하라 내 죄사함을 받았느니라.” 그러자 그 가운데는 있었던 율법주의자인 바리새인들과 신앙심이 별로 없는 사두개인들이 예수님을 비난했습니다. “저가 감히 뉘기에 사람이 남의 죄를 사하겠느냐?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죄를 사할 분이 없는데 참람하도다.”
그때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네 죄사함을 받았다는 말과 네 침상을 들고 집으로 돌아가라는 것 중에 어느 것이 쉽겠느냐? 그러나 인자가 이 세상에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것을 알게 하노라. 네 침상을 걸머지고 집으로 돌아가라” 그러자 중풍병에서 고침 받아 즉시 침상을 걸머지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즉 이 사람이 병든 것은 죄 때문에 되었는데 예수님이 죄를 용서하시자 치료함이 임한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날 우리도 예수님께 나와서 치료함을 받으려고 할때는 진실하게 죄를 회개해야 됩니다. 야고보서 5장 14-16절에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저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위하여 기도할지니라.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저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얻으리라 이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하며 병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
또한 우리가 치료함을 받기 위해서는 단호한 믿음을 가지고 기도해야 됩니다. 나아도 좋고 안 나아도 좋다는 그런 심정을 가지고 기도하지 말고 배수진을 치고 뒤로 물러가지 않고 기도해야 합니다. 이성적으로 보면 2000년 전에 이스라엘 땅에서 죽으신 예수님을 믿고 기도할 때 병고침을 받는다는 것은 이해가 잘 안됩니다. 그러기에 성경은 이성의 기도를 하지 말고 믿음의 기도를 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믿음을 가지고 나오는 자들의 병을 고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도다. 네 믿음이 크도다.”
여러분, 주님께 치료를 구한 다음에는 그 믿음이 흔들리지 마십시오. 눈에는 아무증거 안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어도, 그리고 이성적으로 믿을 수 없어도 말씀에 따라 계속 끝까지 믿으십시오. 믿음이란 마음에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기왕이면 치료함을 믿고, 주님께 치료함을 받고, 주님께 그 믿음에 칭찬을 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또한 우리는 치료의 기도를 하고 난 다음에는 입술의 고백을 해야 됩니다. 성경은 우리가 말로써 묶임을 받고, 말로써 사로잡힘을 받는다고 했습니다. 로마서 4장 17절에 보면 아브라함이 믿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부르시는 이시니라"고 했습니다. 즉 아직 없는데, 아직 나타나지 않았지만 있는 것처럼 입술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믿음의 역사가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하루는 수로보니게 여인이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그의 딸이 귀신들려 너무나 고생하기에 예수님에게 고쳐달라고 애원을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에게 던지지 않는다.” 모욕을 주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로보니게 여인은 뒤로 물러서지 않고 예수님에게 입술로 고백했습니다. “개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진 부스러기를 먹지 않습니까? 주여, 이 개 같은 여인에게 부스러기라도 주십시오.”
그러자 주님이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여인아, 네 믿음이 크도다. 네가 이 말을 하였으므로 네 딸에게서 귀신이 나갔도다.” 즉 말을 했기 때문에 딸의 병이 고침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옛말에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는 말이 있는데 말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우리가 아무리 믿었다고 하나 입술로 부인해 버리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믿음이 다 무효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믿음을 입술로 단호하게 고백해야 합니다. 당장은 눈앞에 병이 보이지만, 병으로 인하여 몸이 아프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병아, 너는 허상이다. 나는 이미 예수님이 채찍에 맞음으로 나음을 입었다. 병아, 내 몸에서 완전히 떠나가라.” 하고 입술로 계속 외쳐야 됩니다. 그럴 때 병은 “졌다! 나는 떠난다!” 하고 일곱 길로 도망가고 우리는 병에서 놓여나 건강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올해에도 우리는 이 외국 땅에서 건강해야 합니다. 우리는 병에 걸려 이 외국 땅 캘거리의 병원에서 온종일 줄을 서서 기다리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하여 병과 싸우십시오. 당장 병이 있어도 병에게 굴복하지 말고 병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물리치십시오. 병고침을 받는 것은 분명히 하나님의 뜻입니다. 예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계속해서 병든 자를 치료하고 있습니다. 아무쪼록 우리 모두에게 건강의 축복이 임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