탕자 집은 그래도 좋은 집이다.

날짜: 
2009/09/14
설교: 

눅15:11-32 탕자 집은 그래도 좋은 집이다.
어떤 사람이 두 아들을 기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둘째 아들이 아버지에게 자기에게 줄 유산을 미리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둘째 아들은 먼 나라에 가서 그 재산을 허랑방탕하게 다 탕진했습니다. 창기와 같이 지내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돈이 다 떨어졌는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그 나라에 흉년이 들어 인심이 사나워졌습니다. 그는 남의 돼지를 기르면서 돼지죽을 먹으면서 살았습니다. 너무 배가 고파서 사람이 도저히 먹기 힘든 쥐엄열매까지 따먹으면서 살았습니다. 그는 고생 고생하다가 중얼거렸습니다.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고!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결국 탕자는 회개하며 아버지에게로 돌아왔습니다. 아들이 돌아오는 것을 아버지가 먼저 보았습니다. 아버지는 달려가서 아들의 목을 안고 입을 맞추었습니다. 아들은 부끄러워 아버지에게 말합니다.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그러나 아버지는 그 아들에게 제일 좋은 옷을 입혔습니다. 손에 가락지를 끼워 주었습니다. 새신을 신겼습니다.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잡았습니다. 이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아들이라면서 동네 사람들을 데려다 잔치를 하였습니다.
나중에 탕자 형이 밭에서 일하고 돌아와 보니 온통 집안이 잔치 분위기입니다. 알고 보니 동생이 돌아온 것이었습니다. 형은 아버지에게 불평하였습니다. "내가 여러 해 아버지를 섬겨 명을 어김이 없거늘 내게는 염소 새끼라도 주어 나와 내 벗으로 즐기게 하신 일이 없더니 아버지의 살림을 창기와 함께 먹어버린 이 아들이 돌아오매 이를 위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나이다." 그러나 아버지는 형을 설득하였습니다. "얘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되 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았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오늘의 이야기를 보면서 탕자의 가정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하루는 스승과 제자들이 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길가에 개가 죽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제자들은 죽은 개가 썩어가면서 구더기들이 우글거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제자들이 서로 말합니다. "어휴- 너무 더럽다. 저 구더기를 봐라" 그때 스승이 말을 합니다. "얘들아! 너희들은 왜 더러운 구더기만 보느냐? 저 죽은 개 이빨을 보아라. 얼마나 옥과 같이 희니?"
오늘의 본문에 나오는 탕자의 가정도 분명히 여러 가지 문제가 있고 아픔이 있는 가정이었습니다. 그러나 문제와 아픔이 있다고 나쁜 가정은 결코 아닙니다. 통계에 의하면 한국의 90% 가정이 아픔이 있고, 단지 10% 정도의 가정이 별 문제없이 행복을 느끼고 있다는 것입니다. 탕자 가정의 문제와 아픔은 구체적으로 이렇습니다.
1. 어머니가 없었습니다.
막내아들이 집을 나가고, 아들이 하나 밖에 남지 않았고, 나중에 그 막내아들이 돌아와 잔치를 하는데 어머니 이야기가 전혀 없는 것을 보면 어머니는 일찍 세상을 떠난 것 같습니다. 어쩌면 탕자는 어머니가 없어서 더 타락하였을지도 모릅니다. 어머니 즉 아내가 없는 가정은 아픈 가정입니다. 탕자의 가정은 이런 아픔이 있었습니다.
영국에서 최고 유명했던 수상은 역시 처칠입니다. 그가 영국에서 대인기를 얻고 있을 때 한 신문사에서 처칠수상의 유치원 교사부터 대학교 스승에 이르기까지 그를 가르쳤던 선생님들 명단을 뽑았습니다. 그리고 어떤 선생님으로부터 가장 많은 가르침을 받았는지 처칠 수상에게 물어 왔습니다. 처칠은 그때 신문사에 답장을 보냈습니다. "귀사가 조사한 내 스승 명단에 한 명이 빠졌습니다. 나의 어머니입니다. 나는 나의 어머니로부터 가장 많은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여러분, 가정에서 어머니는 참으로 귀합니다. 어머니는 자녀들의 마음의 고향입니다. 누구든지 고향을 잃으면 마음이 허전해지고 공허해집니다. 저도 초등학교 때에 학교 갔다가 집으로 돌아올 때면
누구보다도 어머니를 먼저 찾았습니다. 그런데 어머니가 집에 없으면 괜히 힘이 떨어지고 마음이 울적해졌습니다. 어머니가 집에 있는 것 자체만으로 자녀들에게 큰 위로와 평안이 됩니다. 더구나 훌륭한 어머니는 자녀들의 가장 좋은 스승입니다.
요즘 한국의 지폐를 보면 5만 원짜리 고액권에 신사임당의 초상화가 들어갔습니다. 외국 사람들이 묻습니다. "이 여성분이 누구입니까?" 우리는 오천 원 지폐에 그려져 있는 한 남성을 가리키며 대답합니다. "5만 원짜리 지폐에 새겨진 신사임당은 여기 5천 원짜리 지폐에 새겨진 율곡 이이의 어머니입니다." "아하, 그러면 신사임당이란 여성은 이 율곡 이이를 가르치고 기르신 훌륭한 어머니이신군요." "예- 맞습니다."
그런데 오늘 탕자의 집은 어머니가 없었습니다. 물론 아버지가 아들을 가르치기도 하지만 어머니의 따스함이 함께 배겨난 교육을 아들은 받지 못했습니다. 아마 이 둘째 아들이 탕자가 된 것은 어머니가 없어서 그랬는지 모릅니다. 그러다보니 둘째 아들은 가정을 떠나고 싶었습니다. 어머니와 같은 여성의 따스함이 그리워서 찾은 것이 창기였습니다. 그러나 둘째 아들은 창기에게서 어머니의 따스함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2. 아들들이 갈등이 있었습니다.
이 집안에 아들 둘이 있었는데 형과 아우의 사이가 좋지 못했습니다. 동생이 몇 년 만에 집에 돌아 왔으면 형이 기뻐해야 하는데 오히려 못마땅히 생각했습니다. 형은 아버지가 동생을 위해 살진 송아지를 잡았다고 비난했습니다. 더구나 아버지의 재산을 놓고 형과 아우 간의 보이지 않는 큰 갈등이 있었습니다. 한 가족이 한 지붕에서 같이 살면서 형제끼리 서로 미워하고 싸운다는 것은 역시 큰 아픔입니다. 형이 아우를 사랑하고 이해하며, 아우가 형을 따르고 존경해야 되는데 이 가정은 형과 아우가 사이가 좋지 못해 아우가 형을 떠나고 싶어 했고, 형도 아우가 사라지기를 원했습니다.
3. 탕자가 있는 가정이었습니다.
두 아들 중 한 명이 비뚜로 나갔습니다. 럭비공과 자녀는 어디로 튈지 모른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자녀들이 속 썩이지 않고 잘 자라주는 것만도 큰 효도입니다. 둘째 아들이 아버지에게 말합니다. "아버지여, 재산 중에서 내게 돌아올 분깃을 내게 주소서." 아버지가 아직 죽지도 않았는데 유산을 나누어 달라는 말 한 마디에 두 말 하지 않고 아버지가 나누어 준 것을 보면 둘째 아들은 어쩔 수 없는 못말리고 고집이 센 아들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스라엘의 관습은 재산은 형에게 3분의 2, 동생에게 3분의 1을 주게 되어 있습니다. 아버지가 상당한 부자인데 그 재산을 1/3을 떼어주었습니다. 아마 그 재산을 떼어주지 않으면 살인이라도 일어날 분위기였는지 모릅니다. 이같이 이 가정은 어머니가 없고, 형제간에 갈등이 있고, 탕자의 아픔이 있는 가정이었습니다. 그러나 탕자의 가정은 다음과 같은 면에서 좋은 가정이었습니다.
1. 기다림이 있는 가정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집을 나간 둘째 아들을 기다렸습니다. 아버지는 눈만 뜨면 이제나 저제나 아들이 돌아오는 것을 살피고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결코 아들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포기하지 않는 가정은 좋은 가정입니다. 남편이 잘못 되었어도 포기하지 마십시오. 기다리십시오. 아내가 잘못 되었어도 포기하지 마십시오. 기다리십시오. 안 되는 것이 있어도, 어려운 것이 있어도, 가망성이 없어도, 힘든 것이 있어도 기다리십시오. 기다림이 있는 가정이 좋은 가정입니다.
2. 회복이 있는 가정이었습니다.
탕자의 가정은 일시적으로 잘못된 가정이었으나 종국에는 원위치로 회복이 된 가정이었습니다. 떠나는 아픔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돌아오는 기쁨이 있었던 가정이었습니다. 상처난 아픔만 있는 가정이 아니라 회복되는 잔치가 있었던 가정이었습니다. 시작보다 결론이 중요합니다. 어제보다 내일이 중요합니다. 탕자의 가정은 결국 돌아옴으로 끝났습니다. 회복으로 끝났습니다.
성경에서 가장 아픈 가정이 있다면 호세아 가정일 것입니다. 호세아는 고멜이라는 여자와 결혼하였습니다. 그런데 음란한 여자였습니다. 결혼 생활을 하다가 다른 남자와 나가서 같이 살았습니다. 호세아는 용서하고 다시 데려다가 살았습니다. 그리고 전보다 더 사랑하였습니다. 그러나 또 가출하여 다른 남자와 같이 살았습니다. 그러나 호세아는 이곳 저 곳 다니면서 기어코 아내 고멜을 찾아내어 모든 것을 용서하며 다시 살며 사랑하여주었습니다.
고멜은 죄를 범하였으나 호세아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내를 사랑하였습니다. 고멜은 음란하였으나 호세아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서하였습니다. 고멜은 다른 남자 품으로 수없이 많이 갔었으나 호세아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내를 버리지 않았습니다. 고멜은 돌로 때려죽임을 당할 수밖에 없었으나 호세아는 죄를 감추어주고 끝까지 살려 주었습니다. 나중에 고멜은 참 회개를 하고 아주 좋은 아내로 회복되어 좋은 가정을 이루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가정의 상황이 어떠하든지 결국 회복이 있는 가정이 되면 좋은 가정입니다. 탕자의 집도 처음에는 깨진 집 같았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둘째 아들은 재산을 가지고 가출하고 말았습니다. 집안이 얼마나 허전하였을까요? 그러나 결론은 회복입니다. 결론은 좋은 가정이 되었습니다. 탕자는 집으로 돌아와서 아버지에게 자신을 아들이 아니라 품꾼으로 불러 달라고 하였습니다. 탕자도 이제 더 이상 탕자가 아닙니다. 성숙한 아들이 되어 돌아왔습니다.
3. 순종함이 있는 가정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을 읽고 또 보면 큰 아들이 아버지에게 반항하는 것 같지만 어느 정도까지만 불평불만을 말했지 끝까지 반항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처음에 큰 아들은 탕자 동생을 위하여 그렇게 성대한 잔치를 하는 것을 보고 노하였다고 하였습니다. 먹지도 않고 삐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가 말했습니다. "얘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되 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았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리고 이야기는 여기서 끝납니다.
형이 아버지에게 "그러면 좋아요. 내가 나가겠어요. 저런 놈하고 살 바에야 내가없어지는 것이 좋겠어요."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의 점잖은 충고로 끝났습니다. 처음에는 노함이 있어도 말 한 마디에 풀어질 수 있는 순종의 가정이 탕자의 가정이었습니다.
한 대학에서 특이한 조사를 하였습니다. 감옥에 있는 불량자 9,000명을 조사하였습니다. 왜 그런 범죄를 하게 되었는가를 조사하였습니다. 기후 때문이었다. 친구 때문에 그랬다. 주거 환경 때문이다 등등 많은 대답이 나왔습니다. 그러나 가장 많이 나온 대답이 부모의 교육이 없었다는 것이었습니다. 부모에게 순종하지 않는 아이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부모 말을 듣지 아니하면 타락의 시작입니다.
그러나 탕자의 가정은 아버지에게 순종하는 가정이었습니다. 결론입니다. 탕자의 가정은 세 가지 문제가 있는 가정이었습니다. 어머니가 없는 아픔과, 형제간의 갈등과 탕자의 타락이 있는 가정이었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그의 가정은 기다림이 있고, 회복이 있고 순종함이 있는 좋은 가정으로 바뀌었습니다. 우리 성도님들의 가정이 어떤 어려움과 문제가 있다 하더라도 탕자의 가정처럼 좋은 가정으로 결론이 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