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 속에서 감사

날짜: 
2005/10/09
설교: 

시50:23 평범 속에서 감사
추수감사절의 유래는 1603년 영국의 제임스 1세가 영국 왕위에 오르자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서 영국 국교회를 모든 청교도 교인들에게 강요하는 사건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청교도들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자 제임스 1세는 청교도 신자들을 극렬하게 핍박을 했습니다. 그러자 영국의 청교도들은 이 극심한 탄압을 견디지 못해 신앙의 자유를 찾아서 신대륙을 향해 1620년 9월, 102명이 작은 범선인 메이플라워를 타고 영국 플리머스 항을 떠났었습니다.
그들은 두 달이 넘는 힘든 항해 끝에 구사일생으로 11월에 북미의 동부 연안에 도착했고 12월에는 메사추세스 주의 한 곳을 플리머스라고 이름을 붙여서 어렵게 정착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해 겨울 혹심한 추위와 식량부족과 풍토병으로 그들의 대표자인 존 카버 지사를 위시해서 절반의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그 남은 사람들은 윌리암 브레드포드를 새 지도자로 선출하여 서로 격려하며 나무를 베어내고 먼저 교회당을 짓고 집을 지었습니다.
그리고 필사적인 개척정신으로 농토를 개간하고 하나님의 도움을 구했습니다. 그리고 이 다음 봄 그들은 자신들을 도와주려는 인디언들로부터 그 지역 품종의 옥수수 경작법을 배워서 열심히 농사한 결과에 가을에 풍성히 거두게 되었습니다. 청교도들은 추수를 끝내고 친절하게 대해준 추장과 인디언들을 초청하여 곡식과 과일과 야생칠면조와 사슴을 잡아 3일간 추수감사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미국의 선조인 청교도들이 지킨 추수감사절의 기원입니다.
그리고 한국뿐 아니라 세계 여러 나라의 교회에서도 이를 계기로 추수감사절을 지키고 있습니다. 성경에는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노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구원으로 보이리라”(시50:23)고 했는데 청교도들이 이렇게 감사를 드린 것을 하나님이 크게 기뻐하셔서 이 날을 세계 여러 나라의 감사의 날로 기념하게 하셨습니다. 이 감사의 날을 통하여 오늘 우리도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기 원합니다. 특히 우리의 생활주변에서 가장 평범한 것을 통해서 감사의 제목을 찾기를 원합니다.
미국의 농아였던 헬렌 켈러는 태어나서 열병을 앓다가 장님이 되고, 귀머거리가 되고, 벙어리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위대한 작가도 되고, 자선가도 되고, 훌륭한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헬렌 켈러가 쓴 ‘3일 동안만 볼 수 있다면’이라는 책에 보면 우리가 매일 삶 속에서 감사해야 될 것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헬렌 켈러는 “나에게 3일만 볼 수 있게 해주시면 감사하고 감사하고 감사하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습니까? 혹시 이곳에 장님이 있습니까? 장님이 아닌 저와 여러분들은 한 평생을 보고 있습니다. 저는 47년을 보고 있는데요. 그래도 저는 볼 수 있다는 것에 특별히 감사를 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헬렌 켈러는 3일만 볼 수 있게 해준다면 하나님께 감사하고 또 감사하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삼일 간 보게 되면 첫째 날에는 나를 가르쳐주신 설리번 선생님을 찾아가 그분의 얼굴을 바라보겠다고 했으며, 둘째 날에는 새벽에 일찍 일어나 먼동 터오는 모습을 보고 저녁에는 별들을 보겠다고 했으며, 셋째 날에는 아침 일찍 큰 길로 나가 부지런히 출근하는 사람들의 활기찬 표정을 보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사흘간 눈을 뜨게 해주신 하나님께 깊은 감사의 기도를 드리겠다고 말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때때로 없어봐야 감사한 것을 알 수 있을 때가 많이 있습니다. 건강도 한번 잃어보면 건강에 대하여 깊이 감사하게 되고, 물질도 한번 없어져 보면 물질에 대한 축복에 대해 감사하게 되고, 화목과 사랑과 평안도 한번 잃어보면 화목과 사랑과 평안에 대해 감사하게 됩니다. 헬렌 켈러도 시력이 없어지자 보는 것에 대하여 그렇게 감사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혹시 오늘 두 눈을 가지고 볼 수 있습니까? 그렇다면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들을 수 있는 귀가 있습니까? 그렇다면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아직도 맛을 볼 수 있는 혀가 있고, 말할 수 있는 입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아내가 있고, 사랑하는 남편이 있고, 사랑하는 자녀가 있습니까? 그렇다면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우리 주위에는 종종 가족 식구들에 대하여 감사를 잃어버리고 사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몇 년 전 미국 캘리포니아 주에 사는 한 주부가 남편을 팔겠다는 이색 광고를 내서 화제가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주말이 되면 남편은 집에 있는 것보다 사냥이나 골프를 즐기려고 외출을 하기 때문에 불만이 점점 쌓여서 하루는 그 부인이 결정을 했습니다. 팔아 버려야 되겠다. 그래서 신문에 광고를 냈습니다. “남편을 판다. 그리고 남편을 사가는 사람에게는 사냥총하고 골프채하고 사냥개도 보태어서 주겠다.”
그런데 이 광고를 보고 흥미를 가진 여성들로부터 60여 통의 전화가 오고 편지가 왔습니다. 그중에 남편을 구입하겠다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럼 어떤 편지고 어떤 전화냐? 그 내용은 이렇습니다. “당신, 남편이 살아 있는 것을 다행으로 여기라. 당신 남편 죽고 난 다음 얼마나 외로운지 아느냐? 사냥이나 하고 골프를 치고 다니는 남편이라도 있는 것을 감사하라. 나는 우리 남편이 죽었는데 남편 없이 살아보니 너무나 외롭다.”
그리고 이런 내용도 있었습니다. “골프치고 사냥하는 것은 약과다. 바람 안 피우는 것 고맙게 여겨라. 바람피우면 더 골치 아프다.” 또 다른 주부는 이렇게도 말을 했습니다. “내가 남편과 헤어진 뒤에 혼자서 애들을 키우려니 얼마나 힘든지 모른다. 남편이 집에 있지 않더라도 남편 이름이 있고 그림자라도 있으면 애들을 키우기가 좋은데 집에 남자가 없으니까 애들이 말을 안 들어주고 키우기가 너무나 힘드니 남편이란 이름만 걸치고 있는 것만 해도 감사해라”
여러분, 많은 사람들이 현재의 생활 속에서 불평하고 원망할 조건을 찾지만 우리가 감사한 마음으로 바라보면 감사할 일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남편 팔겠다고 광고내지 마십시오. 나쁜 남편도 효성스러운 자녀보다 낫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리고 악한 처도 자식보다는 낫다는 말도 있습니다. 즉 아무리 남편과 아내가 나빠도 그 나쁜 것을 바라보고 불평만 하지 말고 좋은 것을 헤아려 감사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자녀는 부모에 대하여 감사하고, 부모는 자녀에 대하여 감사하고, 남편은 아내에 대하여 감사하고, 아내는 남편에 대하여 감사하고, 목사님은 성도님에 대하여 감사하고, 성도님은 목사님에 대하여 감사하고, 성도님들끼리도 서로서로 감사하고, 우리 모두가 하나님께 감사하면 우리는 최고로 행복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감사로 충만하면 하나님은 무한한 영광을 받습니다. 오늘의 본문도 말씀합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노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구원으로 보이리라”(시50:23)
영국의 유명한 부흥사였던 목사였던 스펄전 목사님은 감사에 대한 설교를 하면서 “우리가 촛불을 보고 감사하면 하나님은 전등불을 주시고, 전등불을 보고 감사하면 달빛을 주시고, 달빛을 보고 감사하면 햇빛을 주시고, 햇빛을 보고 감사하면 영원한 천당을 주신다.”고 말씀했습니다. 즉 감사를 통하여 하나님의 더 큰 축복을 누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감사해야 할 때에 감사하지 못하고 불평하면 있는 것도 빼앗길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불평을 조심해야합니다. 불평은 저주의 지름길이요, 마귀를 불러들이는 초청장입니다.
여러분, 불평을 하기 위해서는 특별한 노력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자연 그대로 내버려 두면 인간은 혼자서도 혹은 두세 사람이 모여도 쉽게 입이 침이 마르도록 불평을 하고 비난을 합니다. 그러나 감사나 찬양의 말을 하기 위해서는 결심을 하고 마음에 노력을 해야 됩니다. 우리는 추수 감사절을 맞이하여 마음에 결단이 필요합니다. 노력이 필요합니다. “나는 감사의 말을 해야 하겠다.”
여러분, 불평에는 부정적인 마음과 불신과 절망이 따라옵니다. 결국 불평하면 자신이 불행해지고 그런 불평의 마음과 불평의 말과
불평의 표정과 불평의 행동을 보는 사람도 같이 불행해집니다. 그러나 감사하는 마음에는 긍정적인 삶과 믿음과 꿈과 희망이 생겨납니다. 결국 감사하게 되면 먼저 자신이 행복해지고 그런 감사의 마음과 감사의 말과 감사의 표정과 감사의 행동을 취하는 것을 보는 사람들도 같이 행복해지게 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감사를 하겠다는 결단과 시도와 노력을 잘 하지 않습니다.
미국의 미시간 호수에 배 한 척이 침몰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때노스웨스트 대학의 한 학생이 호수로 뛰어 들어가 23명의 생명을 구원했습니다. 그리고 수십 년 후에 유명한 토레이 목사님이 한 교회에서 설교하면서 이 실화를 들어 그 청년의 용기를 칭찬하자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손을 들었습니다. 그 노인은 “내가 바로 그 청년입니다.”라고 말을 했습니다. 토레이 목사님은 너무 감격해서 이 노인을 올라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토레이 목사님이 그 노인에게 물었었습니다. “그 사건을 통해 가장 인상에 남는 것이 무엇입니까? 당신 혼자서 구사일생으로 23명의 생명을 헤엄쳐서 건졌는데 어떤 감격이 있습니까?” 그러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23명중 단 한사람도 고맙단 말을 한 일이 없다는 것이 나에게 깊은 인상입니다.” 여러분, 23명을 살려 주었는데 한 사람도 그때나 그 이후로 감사하다는 말을 안했다는 것입니다. 즉 원한은 돌에 새기고 은혜는 물에 새긴다고 사람들은 너무나 은혜 받은 것을 쉽게 잊어버립니다.
얼마 전 한국의 지하철에서 어떤 사람이 지하철 노선에 떨어진 어린아이를 목숨을 무릅쓰고 구해줬는데 그 아이의 부모는 아이를 데리고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감사하다는 것이 부담이 되어서 그런 것입니다. 목숨을 바쳐 애를 구원해 주었는데 얼마나 엎드려 고맙다고 감사해야 할 일입니까? 그런데 애를 데리고 줄행랑을 쳐버렸습니다. 물론 이 보다 더 심한 경우도 있습니다. “물에 빠진 사람 건져 주었더니 보따리 내놓으라고 한다.”라는 속담입니다. 즉 감사는커녕 도리어 해를 주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예수님의 구원의 은혜에 감사하지 않는다면 이들과 다를 바 없는 사람들이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영영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몸을 찢고 피를 흘리고 우리를 값없이 구원해 주었는데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그 사람들과 다를 게 무엇입니까? 우리는 주야로 예수 그리스도 은혜에 대해서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건져 내사 우리를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으로 만들어 주신 것을 우리는 쉬지 않고 감사해야 될 것입니다.
누가복음 17장에 보면 열 명의 문둥병자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들은 모두가 소리를 높여 예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긍휼히 여기소서.” 그들은 참으로 열심히 간구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열 명의 문둥병자를 모두 고쳐 주자 오직 한 사람만이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감사를 표시했습니다.
여러분, 오늘날 많은 성도님들이 열 명의 문둥병자처럼 하나님께 이것을 해달라고 저것을 해달라고 열심히 기도를 합니다. 목청을 높여 소리 지르며 부르짖습니다. 때로는 금식기도도 합니다. 그러나 과연 감사는 그렇게 소리 높여 열심히 하는지 생각 좀 해봐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혹시 감사가 부족했다면, 혹시 불평이 나도 모르게 내 입에서 튀어나왔다면 “아이고, 이거 내가 신앙생활 잘못하고 있구나!” 하고 스스로 반성해보아야 되지 않겠습니까?
여러분, 믿음과 감사는 정비례합니다. 믿음만큼 감사하게 되고, 감사하는 만큼 믿음의 사람이 됩니다. 그 사람의 믿음이 얼마나 좋은지 안 좋은지 하는 평가는 그 사람이 평소에 얼마나 감사하고 사는지 아닌지, 감사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가장 위대한 믿음은 범사에 감사하는 믿음입니다. 기쁜 일이 있든지 슬픈 일이 있든지, 일이 잘 풀리든지 안 풀리든지, 범사에 감사하는 것은 최고의 미덕이요 최고의 믿음입니다. 범사에 감사할 때 축복이 있고 기적이 일어납니다.
또한 감사하는 영혼은 아름다운 영혼입니다. 감사하는 사람은 향기로운 사람입니다. 꽃보다 아름답고 향기로운 것이 바로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상품에 질이 있는 것처럼 영혼에도 질이 있는데 그 영혼의 질 가운데 가장 탁월한 영혼은 감사하는 영혼입니다. 그리고 감사하는 질 좋은 영혼을 만나면 우리의 영혼의 질도 같이 좋아집니다.
여러분, 가정의 질을 높이기 원합니까? 감사로 시작하고 감사로 끝을 내십시오. 남선교회, 여선교회, 청년유학생회, 모든 기관의 질을 높이기 원합니까? 감사로 충만하십시오. 감사는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하고, 감사는 우리로 행복하게 합니다. 감사는 자신을 믿음의 길로 인도하고, 감사하는 성도님들이 많아지면 하늘나라는 굳게 세워집니다.
이 외국 땅에서 우리는 불평할 것들을 찾아도 얼마든지 찾을 수 있고, 감사할 것을 찾아도 얼마든지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감사하며 살기로 결단한 사람들입니다. 감사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입니다. 감사하려고 투쟁까지 하는 사람들입니다. 왜냐하면 감사가 곧 너와 나의 축복이요 행복이요 사랑이요 영광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감사는 하나님께 무한한 영광이 됩니다. 오늘의 말씀을 다시 한번 묵상하기 원합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노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구원으로 보이리라”(시50:23)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