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를 위하여 !

날짜: 
2002/01/28
설교: 

롬12:17-21 평화를 위하여
9월 11일 미국에서 테러가 일어나 수많은 사람이 죽고, 이에 보복하기 위해 미국이 전쟁을 선포한 후에 신앙계에 이런 우화의 글이 실렸음.
『굶주린 하이에나가 사자가 자는 틈을 타서 사자새끼 한 마리를 잡아먹어 버렸다. 순식간에 달아나 버린 하이에나를 보면서 잠에서 깬 사자는 울부짖었다. 포효하는 사자의 울음소리는 초원의 모든 동물들로 하여금 공포에 떨게 만들었다.
사자는 초원에 있는 모든 하이에나들을 전멸시키려고 마음을 먹고 초원의 모든 동물들을 불러모았다. 그리고 하이에나들을 전멸시키는데 모든 동물들이 협조해 줄 것을 요청했다. 초식동물, 육식동물 할 것 없이 모든 동물들이 하이에나가 저지른 일에 대해 분노를 금치 못했다.
왜냐하면 사자가 그런 일을 당했다면 누구라도 그런 일을 당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모든 동물들은 앞으로의 일을 더욱 걱정했다. 사자와 하이에나의 전쟁 때문에 초원의 평화가 깨트려지는 것을 염려하는 것이다.
하지만 아무도 분노한 사자의 심기를 건드릴 수 없었다. 그래서 모든 동물들은 사자의 편을 들기로 했다. 평소에 사자와 별로 사이가 좋지 않던 육식동물들도 입을 다물고 있었다.
그때 나이 많은 코끼리가 사자를 찾아갔다. 그리고 하이에나가 저지른 일에 대해 마땅히 응징을 해야 하겠지만 폭력은 또 다른 폭력을 불러올 뿐이며 초원에 평화를 건설하는 방법은 폭력이 아니라 폭력의 유혹을 피하는 것이라고 신중히 조언했다.
그러자 사자는 코끼리에게 화를 내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비폭력은 초식동물이나 할 일이다. 이런 일을 당하고도 가만히 있으라고 하는 것은 굴욕을 삼키라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나는 더 이상 사자가 아니다. 그리고 초원의 왕도 아니다."
코끼리는 다시 사자에게 말했다. "진정한 용기는 힘을 휘두르는 것이 아니고 힘을 절제할 줄 아는 것입니다. 그러면 초원의 동물들은 왕을 더욱 존경하고 더욱 두려워 할 것입니다."
사자는 코끼리의 말을 받아들였다. 그래서 자칫 치미는 분노 때문에 분별력을 잃을 뻔 했지만 가까스로 마음의 평정을 찾고 공정성을 갖고 일을 처리할 수 있었다.
사자의 공격성에 놀라 달아났던 하이에나는 사자의 태도가 변하자 한편으로 당황하면서 한편으로는 사자를 비웃었다. 그리고 사자는 용맹스런 동물이 아니고 비굴하고 겁이 많은 동물이라고 소문을 냈다. 그리고 자기는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큰소리쳤다.
그러자 나이 많은 코끼리가 이번에는 하이에나를 찾아갔다. 그리고 큰 발로 하이에나를 밟고 이렇게 말했다. "잘 들어 두어라. 진정한 용기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남의 생명을 존중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초원에는 다시 평화가 찾아왔다. 평화는 분노와 폭력의 유혹으로부터 자기를 지키는 자들의 진정한 용기에 의해서 지켜진다.』
여러분, 마귀가 아닌 이상 저와 여러분을 비롯해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한결같이 평화를 원함. 그러나 이 세상에는 정녕 평화가 이루어지지 않고 도리어 싸움과 전쟁이 끊어지지 않슴.
왜 그럴까요 ? 그것은 평화를 이루는 방법이 하나님의 방법과 틀리기 때문임. 많은 사람들이 "내일의 평화를 위해 오늘 나는 전쟁을 한다."고 말을 함.
그러나 이러한 사람들에게는 내일의 평화는 결코 오지 않슴. 그러나 "내일의 평화를 위해 오늘 내가 참고, 오늘 내가 희생한다." 고 말하면 당신에게는 오늘의 평화도, 그리고 내일의 평화도 보장됨.
오늘날의 현실을 보십시오. 가정에, 사회에, 국가에, 세계에 평화가 이루어지지 않고 싸움이 나는 것은 그들이 평화를 미워해서가 아님. 오히려 모든 사람들이 평화를 사랑하고, 평화를 추구하고, 평화를 외침.
이 세상의 수많은 종교가를 비롯해 정치가, 도덕가, 학자, 예술가, 군인, 심지어 깡패가지도 평화가 좋다고 말을 함.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땅에 평화가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평화를 추구하는 그들의 방법이 틀렸기 때문임.
특히 유대 민족과 아랍 민족은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고도 처절한 싸움을 오늘날까지 계속하고 있음. 두 종족은 비록 배다른 자녀이지만 그 옛적 아브라함의 한 자손에 뿌리를 두고 있는 형제지간임. 그런데 왜 그토록 싸우는 것일까요 ?
그리고 역사적으로 우리 인간이 가장 잔인한 전쟁을 치를 때에는 어김없이 그것은 종교전쟁이었음.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11세기 말부터 수백년간에 걸쳐 유럽과 중동의 광범위한 지역에서 엄청난 규모의 피바람을 불러 일으킨 십자군 전쟁임.
그들 양쪽 모두는 평화를 외치고, 그 누구보다도 평화를 사랑했음. 그러나 평화를 추구하는 방법이 희생과 양보, 인내와 용서보다는 투쟁을 택했기 때문에, 그리고 그렇게 하는 것이 진정으로 용기있는 신앙이라고 착각을 했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평화가 주어지지 않았슴.
여러분, 명심하십시오. 평화를 위해 오늘 내가 싸움을 택한다면 그것은 또다른 피비린내 나는 역사를 되풀이하는 것임. 그리고 평화는 결코 이루어지지 않슴. 그러나 평화를 위해 오늘 내가 희생을 하고, 오늘 내가 참는다면 평화는 이루어 짐.
그리고 더 나아가 내 자신의 뜻보다 오히려 다른 사람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소망하며, 내가 남들보다 더 많이 갖기를 바라지 않고 항상 더 적게 갖는 것을 택하고, 내가 먼저 낮은 자가 되도록 노력을 하고, 내 신앙, 내 인격, 내 종교, 내 생각만 옳다고 고집하지 말고 이웃의 생각, 이웃의 신앙, 이웃의 종교까지도 포용하는 자세를 가진다면 평화는 이루어 짐. 그리고 그 평화는 결국 우리 모두의 것이 됨.
이에 대해 성경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함.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또 너를 송사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또 누구든지 억지로 오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리를 동행하고,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 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라." (마5:38-45)
초대교회 일곱 집사 중에 스데반 집사님이 있었음. 이 집사님이 은혜가 충만하여 복음을 전파하다가 그만 같은 유대인의 핍박을 받아 돌에 맞아 죽게 되었음.
그때 스데반 집사님이 뭐라고 말을 했습니까 ? "주여, 이 원수를 갚아주시옵소서 !" 라고 말하지 않았음. 오히려 무릎을 꿇고 가로되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 (행7:60) 라고 말을 했다고 성경은 기록함.
그리고 이때 스데반 집사님을 죽이는데 가담하고, 교회에 많은 해를 끼치고, 성도들을 심히 핍박했더 사울이라는 청년이 있었는데 그가 변하여 하나님의 위대한 종으로 갑자기 변하게 되었음.
왜 그랬을까요 ? 사울을 비롯해 자신을 돌로치는 사람들을 위해드려진 스데반 집사님의 기도를 하나님이 들으셨기 때문에 하나님 이 그를 변화시키지 않았겠습니까 ?
만약 스데반 집사님이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 라는 평화의 기도를 하지 않고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사 저들이 망하게 해주세요 !" 라는 보복의 기도를 했다면 스데반 집사님은 위대한 순교자가 아니라 속좁은 집사님이 되고 말았을 것임.
물론 평화를 위한 기도가 쉽지 않을 때가 있음. 특히 자신이나 자신의 가족들이 직접 큰 해를 당하게 될 때에는 평화의 기도가 쉽지 않슴.
그러나 성경은 말씀함.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이는 복을 유업으로 받게 하려 하심이라." (벧전3:9)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을 좇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히12:14)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하라." (롬12:18) "하나님은 오직 화평의 하나님이시니라." (고전 14:33)
즉 우리가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은 이유는 원수를 갚으려는 것이 아니라 원수를 사랑하고 핍박자를 위해 평화의 기도를 해주라고 부르심을 받았다는 것임. 그리고 우리가 이렇게 화평을 좇을 때 비로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고 하나님께 복을 받는다는 것임.
고로 성경은 이렇게 말씀함. "화평케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마5:9) "화평을 논하는 자에게는 희락이 있느니라." (잠12:20) "화평한 자의 결국은 평안이로다." (시37:37)
여러분, 당신이 정녕 하나님의 자녀입니까 ? 그렇다면 화평을 좇으십시오. 그리고 평화의 왕이신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실 때 그 분께 '잘했다' 고 칭찬을 받으십시오. 그리고 그 분과 더불어 영원토록 평화를 누리십시오. 하나님은 평화를 사랑하는 자에게 평화의 나라를 허락해 주심.
우리가 언어와 문화, 사고 방식이 틀린 이곳 외국에서 생활하다 보면 자칫 평화의 마음보다 투쟁의 마음이 앞서기 쉽슴. 그러나 우리는 평화의 자녀로서 끝까지 평화를 좇아가십시다. 그리고 그 날 평화의 나라를 상속받아 영원토록 주님과 함께 평화의 노래를 부르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