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사람의 혈관을 길이로 말하면 어느 정도 될까요? 놀라지 마십시오. 자그마치 120,000km가 됩니다. 지구 둘레가 40,008km이니까 혈관의 길이는 지구를 세 바퀴 돌 수 있는 길이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모세혈관이 그렇게 길고도 많습니다. 그런데 이런 120,000km나 되는 긴 혈관을 따라 피가 한번 도는데 걸리는 시간은 고작 46초면 됩니다.
그리고 한 쪽 모세혈관이 막히면 몸 안에서 또 다른 모세혈관을 만들어 내서 피가 돌도록 유도합니다. 마치 사고로 인해 교통체증이 일어나면 즉시 경찰이 출동하여 우회 길을 내므로 교통체증을 완화시키는 것과 같습니다. 즉 우리 몸에는 사고가 났을 시, 혹은 비상시를 대비한 시스템이 갖춰져 있다는 것입니다.
비단 몸의 기능뿐만 아니라 우리들의 인생 전체가 하나님에 의해서 그렇게 설계되고 움직이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말씀이 바로 오늘의 본문입니다.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전10:13)
그리고 이와 같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 사실이라고 확인하는 구체적인 이야기가 성경에는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성경의 이야기들을 듣고 보면서 우리들은 마음에 안심과 평안을 얻고, 용기와 희망을 얻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옛날 믿음의 사람들의 이야기가 바로 저와 여러분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구약성경에 보면 야곱이란 사람이 있습니다. 쌍둥이로 태어났는데 간발의 차이로 동생으로 태어났습니다. 형 에서와는 이란성 쌍둥이인데 사이가 좋지 못했습니다. 일반적으로 나이가 적게 차이가 날 때 형제들의 사이가 그다지 좋지 못한 것을 봅니다. 특히 동생이 형한테 자꾸 덤비는 경향이 있습니다.
얼마 전 한국 뉴스에 저의 시선을 끄는 기사가 실렸습니다. 한 집안에 사는 두 형제가 있었는데 동생이 형을 칼로 7번이나 찔렀습니다. 왜 그런가 보니까 강아지 때문이었습니다. 그 집에 강아지 한 마리를 키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강아지가 집안에서 똥을 쌌습니다. 냄새가 심하게 납니다.
저의 집안도 강아지를 키우고 있기에 강아지가 똥과 오줌을 싸면 패드 값도 나가고 또 집안에 냄새가 나기에 이를 방지하기 위해 강아지가 먹으면 바로 산책을 나갑니다. 밖에서 똥과 오줌을 싸라는 것입니다. 강아지도 이를 알고 되도록 집안에서 똥과 오줌을 싸는 것을 참다가 밖에 나가면 해결을 합니다. 참 영리합니다.
그런데 그 집에는 강아지가 밖에서 똥과 오줌을 싸라고 평상시에 문을 살짝 열어두고 지내는데 형이 모르고 문을 닫았습니다. 그래서 강아지가 참다가 할 수 없어서 집안에다가 똥과 오줌을 쌌습니다. 냄새가 심하게 나자 동생이 형을 질타했습니다. “아- 왜 문을 닫아나서 강아지 똥냄새가 집안에 진동하게 해?”
형이 동생의 그런 싸가지 없는 질타에 화가 났습니다. 그래서 동생과 티격태격하면서 동생의 비위를 건드리게 되고, 그러자 동생은 부엌에서 칼을 들고 와서 형을 7번이나 찔렀습니다. 이로 인해 동생은 형사재판을 받게 되고 형이 동생의 처벌을 원치 않는다고 하므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으로 간신히 풀려났습니다.
이들도 보니까 형과 동생의 나이가 한 살 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자꾸 동생이 형한테 덤빕니다. 야곱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살 차이도 아니고 쌍둥이다 보니까 형이 형 같지 않습니다. 그런데 당시 이스라엘 문화는 장남인 형에게 집안의 모든 권한과 재산권이 넘어가게 되어 있었습니다.
야곱은 동생이기 때문에, 그것도 간발의 차이로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특히 아버지가 갑부이다 보니까 많은 재산이 있었습니다. 차라리 아버지가 재산이 없으면 형제들 사이가 좋을 텐데... 이런 경우에는 돈 많은 것이 도리어 형제들의 우애를 갈라놓고 말았습니다. 때로는 좋다고 생각하는 것이 나쁜 것이 될 수 있고, 나쁘다고 생각하는 것이 좋은 경우가 될 수 있습니다.
야곱은 틈만 나면 형의 장자권을 뺏으려고 했습니다. 그러다가 형 에서가 사냥을 갔다 돌아오게 되고 배가 굉장히 고픈 틈을 타서 야곱은 팥죽 한 그릇으로 형의 장자권을 넘겨받습니다. 이로 인해 사건이 아주 묘하게 흘러갔습니다. 아버지 이삭이 죽을 때가 가까이 오자 장자인 에서에게 복을 빌어 장자가 받을 모든 축복을 주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야곱이 형의 복장을 입고 변장을 하여 아버지 방에 들어가서 아버지가 주는 장자의 축복을 다 가로채고 말았습니다. 이로 인하여 형 에서는 동생에게 큰 원한을 품게 되고 “조금 있으면 아버지 장례를 치를 텐데.. 그 후에 동생을 죽이리라.”고 굳게 마음을 먹고 있었습니다.
이를 미리 알아챈 어머니 리브가가 야곱에게 말합니다. “애야, 니 형이 너를 죽이려고 한다. 그러니 너는 외삼촌 집으로 급히 피신해라.” 그리하여 야곱은 외삼촌이 사는 밧단 아람에서 양치기를 하며 20년의 세월을 보냅니다. 그 동안 하나님이 그에게 4명의 아내와 11명의 아들을 주었습니다.(나중에 12번째 아들 벤냐민도 낳고 총 12명의 아들이 되지요.)
그리고 야곱에게 많은 재산을 주어서 갑부가 되어 다시 고향으로 돌아옵니다. 이때 형 에서가 20년이 지난 세월에도 원한을 풀지 않고 400명의 군사를 이끌고 야곱을 죽이려고 달려옵니다. 아- 큰일 났습니다. 일생일대의 위기가 닥쳤습니다. 이제 내일 아침이면 자기는 형에게 죽을 목숨입니다. 아내들도, 자녀들도, 그 동안 모았던 재산도 모두 다 잃고 마는 겁니다.
그렇게 다급해지자 야곱은 하나님께 황급히 기도하게 됩니다. 그 동안 평안할 때는 하나님을 잊고 살다가 다급하니까 하나님께 매달리는 겁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그렇게 다급하게 기도하자 천사가 나타났습니다. 나타난 천사와 야곱은 밤새도록 씨름을 합니다.
여기서 씨름이란 한국의 천하장사 만만세 강호동 이만기 씨름 대회를 하는 것이 아니라 밀고 당기는 인격의 만남, 대화, 영적 딜이 있었다는 겁니다. 야곱은 천사에게 나를 축복하라고 말합니다. 축복하지 않으면 너를 안 보내겠다고 물고 늘어집니다. 천사는 “야- 너 같은 사기꾼을 누가 축복 하냐?” 하고 좀처럼 축복을 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좀 이상한 것이 있습니다. 이제까지 하나님은 야곱에게 복을 크게 주어서 야곱은 갑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복을 또 달라니요? 즉 형이 자신을 죽이려고 하는데 일단 죽게 되면 받았던 그 큰 복이 아무 소용도 없게 되니까 이 뜻은 받은 복을 지키고 누릴 수 있도록 자기의 생명을 지켜달라는 뜻입니다.
야곱이 자꾸 떼를 쓰니까 천사는 야곱의 환도뼈(엉덩이 뼈)를 탁- 쳤습니다. 그러자 야곱은 절름발이가 됩니다. 그리고 아침이 밝았습니다. 형이 400명의 군사들을 이끌고 야곱에게 장군처럼 당당하게 나타났습니다. 그에 비해 야곱은 절름발이가 되어서 밤새 도망도 못가고 쩔뚝쩔뚝하고 처량한 모습으로 형에게 나아갑니다. 마치 고양이 앞에 물에 빠진 생쥐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절름발이가 된 동생이 나아오는 것을 보고 형 에서의 마음에 불쌍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 저것 살려고 20년 전에 고향을 떠났던 놈이 절름발이 병신이 돼서 돌아왔네! 아이고- 불쌍해라.” 동생의 그런 비참한 모습을 보고 형 에서는 원한이 풀어졌습니다. 더 이상 동생을 죽일 마음이 없어졌습니다. 그리고 둘은 목을 껴안고 울면서 형제와 가족의 정을 나누게 됩니다.
야곱의 인생을 보면서 우리는 나의 인생을 돌아보게 됩니다. 우리들도 야곱처럼 많은 죽을 고비, 위험하고 어려운 고비가 있었고, 절체절명의 시기도 있었습니다. 그때에는 그것으로 끝장이 나는 줄 알았습니다. 도저히 살 길이 없다고 생각하고 희망이 없어보였습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그 위기, 그 위험도 다- 지나갔습니다.
그 당시에 나는 너무도 무능력하여 별로 한 것이 없었는데, 사람들도 그때 나를 제대로 도와주지 못했었는데, 그리고 하나님도 직접적으로 나타나서 나를 도와주시지 않았던 것 같았었는데, 지나고 보니 어려운 시기는 모두 추억이 되었고, 이런 믿음의 고백을 하게 됩니다. “아하- 그때 하나님이 뒤에서 다 일하셨군요.”
물론 이렇게 깨닫고 고백을 하는 것은 그가 믿음의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의 인생을 손바닥 보시듯이 다 아시고 있습니다. 우리의 한계도 아시고 있고, 우리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도 다 아시고 있습니다. 그래서 전지전능하신 그 분이 우리에게 말씀하는 겁니다.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전10:13)
여러분, 한 사람의 일생동안 다가오고 겪는 그 고난과 시험과 역경의 수와 질과 양이 어느 정도일까요? 물론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성경은 우리 인생들의 고난의 수와 양과 질에 대하여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인생은 고난을 위하여 났나니 불티가 위로 날음 같으니라.”(욥5:7)
우리가 마당에서 장작불을 피우면 나무가 타면서 계속해서 불티가 솟아오릅니다. 그 불티의 숫자는 세기도 힘들 정도로 많은 불티가 생깁니다. 즉 인생은 시작과 동시에 장작불이 타면서 내뿜는 불티처럼 많은 고난이 계속해서 생긴다는 것입니다. 고로 고난이 많다고 좌절을 하고, 고난이 많다고 포기를 하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다 희망을 잃고 좌절하고 절망하는 사람들뿐일 겁니다.
그러나 세상에는 그 많고 힘든 고난 가운데도 희망을 잃지 않고 잘 버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물론 어떤 사람은 강한 의지력로 혹은 정신력으로 버티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은 긍정적인 마인드로 인내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으로, 그리고 그 분의 말씀으로 버티고 인내합니다.
때로는 그 큰 고난 앞에서 우리의 의지력이 무너질 때도 있습니다. 때로는 우리의 육체와 정신력 도저히 감당하기 힘들 때도 있습니다. 때로는 나의 믿음도 아주 약해질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끝까지 버팁니다. 그리고 끝까지 인내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본문은 말씀합니다.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전10:13)
여러분, 이 말씀을 굳게 붙잡으십시오. 하나님은 죽지 않았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약속은 여전히 진실합니다. 하나님은 피할 길을 내신다고 했습니다.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은 주시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능히 감당할 수 있게 하신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미리부터 못한다고 말하거나 포기하지 마십시오.
믿음의 사람들의 고백은 이렇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요새시요. 나의 하나님은 내가 피할 반석이시라.”(시94:22) “그가 너를 여섯 가지 환난에서 구원하시고, 일곱 가지 환난이라도 그 재앙이 네게 미치지 않게 하시며, 기근 때에 죽음에서, 전쟁 때에 칼의 권세에서 너를 구원하실 터인즉... 멸망이 올 때에도 두려워하지 아니할 것이라.”(욥5:19-21)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아니할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시23:4) “여호와의 사자가 주를 경외하는 자를 둘러 진치고 저희를 건지시는도다.”(시34:7) “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내시고 또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시리니 그에게 영광이 세세 무궁토록 있을지어다.” 아무쪼록 인생의 많은 환난 가운데에서도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으로 굳건히 서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딤후4: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