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인가? 가해자인가?

날짜: 
2020/12/19
말씀: 
행9:13-16
말씀구절: 

13 아나니아가 대답하되 주여 이 사람에 대하여 내가 여러 사람에게 듣사온즉 그가 예루살렘에서 주의 성도에게 적지 않은 해를 끼쳤다 하더니

14 여기서도 주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사람을 결박할 권한을 대제사장들에게서 받았나이다 하거늘

15 주께서 이르시되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16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얼마나 고난을 받아야 할 것을 내가 그에게 보이리라 하시니

설교: 

한국의 재벌 기업인 한화의 이야기입니다. 13년 전 2007년에 일어난 사건입니다. 한화의 회장인 김승연 씨의 둘째 아들 김동원 씨가 가라오케에서 술을 먹고 놀다가 그만 일련의 사람들에게 심하게 얻어터지고 집안에 들어왔습니다. 이 모습을 본 아버지 김승연 씨가 화가 많이 났습니다.

뭐- 아버지로서 자녀가 심하게 얻어터져서 왔으니 화가 많이 나는 것은 어쩔 수 없을 겁니다. 그런데 그 후 사건이 심히 좋지 않게 진행이 되었습니다. 그 모습을 본 김승연 회장이 자신의 경호원과 용역업체 직원들을 데리고 사건 현장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리고 자기 아들을 때린 술집의 종업원 4명을 밤중에 청계산으로 끌고 갔습니다.

그리고 김승연 회장이 아들을 때린 사람에게 말합니다. “내 아들이 눈을 맞았으니 너도 눈을 맞아봐라.” 퍽퍽퍽! 진짜 옛날 바벨론의 함무라비 법전과 구약 성경에 나오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법 조항을 회장님이 몸소 실천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누가 너의 오른 뺨을 때리면 왼 뺨도 돌려대라. 누가 너의 속옷을 달라하면 겉옷까지 주어라.”고 하셨습니다.

즉 타인에게 해를 당해도 너는 해를 입히지 말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묻고 싶습니다. 이제까지 살면서 남을 때려본 경험이 있지는 않습니까? 혹은 이제까지 살면서 남에게 맞아본 경험은 있지는 않습니까? 아마 인생 살면서 한 번도 맞지 않고, 한 번도 때린 경험이 없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겁니다.

혹시 “아- 저는 한 번도 남을 때리거나 남에게 맞아본 경험이 없는데요.”라고 말하는 분이 있다면 다시 한 번 깊이 생각을 해보십시오. 어머니 뱃속에 태아로 있을 때 어머니 배를 발로 찼잖아요? 그래서 당시 어머니가 “아이고, 배야! 이 녀석이 발로 차네.” 하며 고통을 느끼게 했잖아요?

뭐- 전혀 기억이 나지 않을 겁니다. 저도 기억이 전혀 안 납니다. 여러분, 그런데 기억이 안 나면 그 죄가 모두 용서받는 겁니까? 남을 실컷 때리고 피해를 입힌 후 “내가 당시에 술을 먹어서 전혀 기억이 안 납니다.” 그러면 다 죄가 용서받는 겁니까? 만약 그렇다면 이 세상에는 죄인이 한 사람도 생기지 않고, 그에 따른 죄인을 벌주는 기관인 법원, 경찰, 감옥도 필요가 없을 겁니다.

그리고 지옥도 심판도 필요 없게 되고, 예수님도 죄인을 위해서 괜히 고난을 당하시고 죽으실 필요도 없었을 겁니다. 다시 말해 우리는 모두 죄인이요 가해자입니다. 그리고 그 죄를 이길 수 있는 능력이 없어서 죄를 저지르는 것이요, 그로 인해 벌을 받고 저주와 심판을 당하니 큰 피해자이기도 합니다.

여러분, 이 세상이 살기 좋은 낙원이 되지 못하는 이유는 서로가 피해를 주고, 피해를 받기 때문입니다. 동물의 왕국을 보십시오. 서로가 잡아먹습니다. 어떤 때는 강한 동물이 약한 동물을 잡아먹을 때 산 채로 하나하나 뜯어 먹습니다. 더 신선하게 고기를 먹으려는 의도입니다.

이때 잡아먹히는 짐승은 비명을 지르고 계속 꿈틀대고 고통스러워합니다. 더구나 어미가 보는 앞에서 새끼가 그런 식으로 잡아먹히기도 합니다. 그런 장면을 보면 “어우, 저 나쁜 새끼!” 하고 욕이 나옵니다. 그런데 사람은 어떨까요? 동물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 않습니다. 동물은 자기가 살려고 다른 동물을 잡아먹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자기가 살려는 목적이 아닌 단지 상대방에게 큰 고통을 주려는 목적으로 해를 입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니까 가장 잔인한 동물은 인간입니다. 역사를 통해서도 알 수 있습니다. 옛날 중세시대 때 사람을 고문하는 방법이나 그 기구들을 보면 정말 끔찍합니다. “어찌 인간으로서 저럴 수가 있나? 저 새끼들은 사람이 아니고 악마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짓고 낙원을 잃어버린 결과가 이런 끔찍한 세상을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피조물들이 탄식하며 예수님이 다시 나타나기를 학수고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여 이 땅에 오시면 다시 낙원이 회복됩니다. 그때는 서로 잡아먹는 일이 없어집니다.

이에 대해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이리와 어린 양이 함께 먹을 것이며, 사자가 소처럼 짚을 먹을 것이며, 뱀은 흙으로 식물을 삼을 것이니 나의 성산에는 해함도 없겠고 상함도 없으리라.”(사65:25)

또한 그때가 되면 사람의 체질도 회복이 됩니다. 파괴된 좋은 유전자가 회복됩니다. 그래서 인간의 수명도 천 년도 살 수 있게 됩니다. 물론 부활의 몸을 입은 사람은 영원히 죽음을 당하지 않습니다. 고로 크리스천은 지금의 이 세상을 바라보고 사는 사람이 아니라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 펼쳐지는 그 나라를 바라보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할렐루야!

그러나 지금의 현실, 지금의 세상은 누구나 힘이 듭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고 타락했을 때 하나님이 아담에게 묻습니다. “네가 그랬느냐?” 아담이 대답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저 여자가 먹으라고 해서 내가 먹었나이다.” 하나님이 하와에게 묻습니다. “네가 어찌 이렇게 했느냐?”

하와도 대답합니다. “뱀이 나를 꾀므로 그랬나이다.” 즉 “나는 피해자일 뿐입니다. 나는 죄가 없어요. 가해자는 저 여자고, 가해자는 저 나쁜 새끼 뱀입니다.”라는 뜻입니다. 여러분에게 묻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피해자입니까 가해자입니까? 남편에게 묻고 싶습니다. “당신은 피해자입니까? 가해자입니까?” 아내에게 묻고 싶습니다. “당신은 피해자입니까? 가해자입니까?”

이혼을 하시는 분들을 보면 “저 인간 때문에 내가 고통을 많이 당했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가망이 없다. 그러니 이제 더 이상 피해를 입지 말고 헤어지자.”고 합니다. 현재 싱글맘으로 살아가고 있는 배우 박현정 집사님의 간증입니다. 그녀가 ‘새롭게 하소서’에 나와서 간증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녀는 남편과 살 동안 자기는 피해자요, 남편은 가해자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깨닫고 보니 자기도 가해자였다는 것입니다. 자기도 알게 모르게 남편을 많이 힘들게 했다는 겁니다. 이 진실을 미리 깨달았다면 아마 이들 부부는 이혼을 하지 않고 좀더 인내하며 살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사실 부부관계는 제 삼자가 모르는 것이 많습니다. 누가 가해자이고 누가 피해자인지 섣부른 판단은 금물입니다. 그리고 이 세상도 보면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나중에 보면 끔찍한 가해자인 경우가 있고, 가해자로 누명을 쓴 사람이 나중에 큰 고통을 당한 피해자로 드러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부모와 자녀 둘 중에 보통 누가 피해자입니까? 자녀들 중에 보면 어릴 적에 부모에게 상처를 많이 당했다고 하는 것을 봅니다. 뭐-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런데 부모의 경우 자기가 자녀에게 상처를 많이 당했다고 말하는 부모는 거의 없습니다. 그렇다면 부모는 자녀에게 전혀 상처를 당하지 않고, 자녀만 일방적으로 부모에게 피해를 입는 그런 관계입니까?

이거 잘 모르는 자녀들은 자기가 결혼해서 애 낳고 키워보면 압니다. 부모가 자녀를 키울 때 냄새나는 똥 기저귀를 얼마나 많이 갈아줬습니까? 아마 타인이 내 집에 와서 매일 똥을 싸고 가고, 그 똥을 내가 일 년간 치운다면 어떨까요? 그 똥을 일 년간 남의 집에 싸고 간 사람은 큰 피해를 입힌 사람이고, 그 똥을 일 년간 치운 사람은 크게 고통을 당한 피해자일 것입니다.

그런데 부모는 수년간 자녀의 똥을 치우면서 내가 그 똥 때문에 자녀에게 크게 피해를 입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아마 그런 말을 하는 부모가 있다면 그는 진짜 부모가 아닐 겁니다. 즉 부모는 자녀에게 피해를 입어도 그것을 피해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만약 자녀가 큰 병이 들어서 병원비가 많이 나갔다고 생각해보십시오.

이때 부모는 그 돈이 아깝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재산상의 큰 피해를 입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 돈을 주지 못한 가난한 부모의 입장으로 자녀에게 미안할 뿐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부모가 늙어서 병이 들었습니다. 그 결과 자녀가 벌은 돈이 부모의 병원비로 많이 나갔습니다. 더욱이 부모를 수발하다 보니 자기의 삶이 많이 무너졌습니다.

이때 자녀의 생각은 어떨까요? 아마 부모의 마음 같지는 않을 겁니다. 더욱이 며느리의 입장에서 그 부모가 시부모라면 그 마음은 좀더 다를 겁니다. 다시 말해 자녀는 자신이 피해자라고 생각하지만 실지는 자신이 영원한 가해자일 수 있습니다. 반대로 부모는 자녀에게 큰 피해를 입었지만 도리어 자녀에게 가해자로 몰리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특히 아버지의 경우 밖에서 돈을 벌기 위해 갖은 수고와 모욕을 참고 견디면서 월급을 집에 가지고 옵니다. 그런데 자녀의 입장에서는 그런 아버지는 잘 모릅니다. 자기가 돈을 벌어보지 않았으니까요. 단지 자기 배가 고플 때 언제나 음식을 맛있게 해 준 어머니가 고맙습니다. 그래서 어머니의 은혜는 참 고마운데 아버지의 은혜는 별로입니다.

뭐- 그렇다고 아버지의 은혜가 어머니의 은혜보다 크다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아버지도 조금은 자녀에게 은혜를 끼친 분이고 적어도 일방적인 가해자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자녀 여러분, 아버지를 미워하지 마십시오. 아버지를 없어졌으면 좋겠다는 깡패로는 생각하지 마십시오.

여러분, 운전을 하다 보면 본의 아니게 사고가 납니다. 나의 과실로 상대방이 피해를 입을 수도 있고, 반대로 상대방의 과실로 내가 피해를 당할 수도 있습니다. 저도 몇 년 전에 교통사고가 났습니다. 상대방이 내 차선으로 끼어들어 오다가 접촉사고가 난 것입니다. 이로 인해 제 차의 옆쪽과 상대방 차의 앞쪽이 데미지를 입었습니다.

저의 생각에는 나는 피해자이고 상대방이 가해자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경찰이신 함철호 집사님이 이런 경우는 보통 쌍방 과실로 보험회사들이 합의를 한다고 합니다. 나중에 보니 진짜 그렇게 되었습니다. 아- 나는 좀 억울합니다. “나는 피해자인데 왜 이게 쌍방 과실이야?”

세상 살다 보면 이런 경우가 많습니다. 자기는 피해자 같고, 상대방이 가해자 같은데 쌍방 과실인 경우가 있고, 반대로 나는 피해자이고 상대방이 가해자라고 생각했는데 거꾸로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너도 나도 인간은 불완전하기에 죄를 짓고 남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존재에 대하여 의심을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있다면 왜 세상이 이렇게 되냐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누가 억울하게 사고를 당하여 큰 고통 가운데 죽었습니다. “아니,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면 그 사람을 왜 이렇게 내버려 두었느냐?”는 겁니다.

이런 이야기를 듣다 보면 하나님이 나쁜 하나님이고, 계속 인간에게 피해를 끼치는 가해자 같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믿기가 싫습니다. 그러나 실지는 하나님이 피해자이고 인간과 마귀가 가해자입니다. 우리들 때문에 하나님이 많은 상처와 피해를 입었습니다. 그런데 인간들은 하나님이 가해자라고 합니다.

아니, 하나님이 독생자까지 우리를 위해 내어주셨는데 어찌하여 그 분이 가해자입니까?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셨는데 어찌하여 그 분이 인간에게 무시를 당하고 욕을 얻어먹어야 합니까? 오늘 본문에 보면 바울이라는 사람이 나옵니다. 그는 한때 예수님을 욕하고 예수님 믿는 사람들에게 피해를 많이 끼쳤습니다. 스데반 집사도 죽이고 많은 성도님들을 옥에 가두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하나님께 피해를 입히면서도 자신이 하나님을 위해 좋은 일을 한다고 착각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가해자 바울을 불러서 쓰셨습니다. 그리고 그가 앞으로 복음을 위해, 주님을 위해 해를 많이 당할 것이라고 예언하셨습니다. 이 예언대로 바울은 주님을 위해 고생과 해를 많이 당했습니다. 마지막에는 목이 잘려서 순교로 인생을 마감했습니다.

저와 우리 크리스천들도 주님을 위해 해를 당하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주님을 믿고 자기의 유익한 것만 찾는데... 믿음의 위인들은 도리어 주님을 위해 상처와 고통과 해를 많이 당하신 분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주님을 위해 해를 당할 때 나중에 다 갚아주시는 분이십니다.

주님은 말씀합니다.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마5:11-12)

결론입니다. 피해를 당할 때 너무 슬퍼하지 마십시오. 분노하지 마십시오. 복수한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억울한 피해는 반드시 하나님이 나중에 보상해줍니다. 더욱이 주님을 위해 해를 당했다면 그것은 크게 기뻐할 일입니다. 그리고 내가 남에게 피해를 입힌 것이 깨달아지거든 하나님께 회개하십시오. 더 나아가 주님을 위해, 그 분의 몸인 교회를 위해 언제든지 내가 피해를 감당해야 한다는 귀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십시오. 그것이 바른 크리스천의 삶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