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그것들도 주관하신다

날짜: 
2012/08/12
설교: 

마6:25-33 하나님은 그것들도 주관하신다.
목자의 마음은 항상 자신이 돌보는 양들에게 있습니다. 목사라는 직책도 성도님들을 양처럼 돌보는 목자의 사역을 하는 겁니다. 제가 목사로서 제법 오랫동안 목회를 하면서 그 마음은 항상 성도님들에게 있습니다. 목자가 자신의 양들이 몇 마리인지를 항상 숫자파악을 하면서 세는 것처럼, 저도 성도님들의 인원수를 항상 파악하고 세고 있습니다.
캘거리의 어떤 목사님이 저의 교회 주보를 보면서 거기에 나오는 예배 출석 인원을 보고 질문합니다. "목사님! 이 숫자를 어떻게 다 압니까? 대충 적어 놓은 것입니까?" 제가 대답했습니다. "성도님들은 항상 내 손바닥에 있는 것처럼 제가 세밀하게 파악하고 세고 있습니다. 고로 주일 예배 출석인원도 제가 항상 세는 방식으로 세면 금방 그 숫자가 나옵니다. 그리고 누가 빠졌는지 다 압니다. 혹 예배에 빠졌는데 그 이유를 잘 모를 때에는 담당 부서장님이나 가까이 지내는 분들에게 물어보면 보면 금방 답이 나옵니다."
그런데 여러분! 목자가 돌보는 많은 양들 중에서 가장 신경이 많이 쓰이는 양이 누굴까요? 잃어버린 양이나, 아픈 양이나, 모습이 안 좋은 양에게 더 마음이 가고 신경을 쏟게 됩니다. 저도 목회를 하면서 신앙생활을 제대로 못하는 분들을 보면 늘 신경이 쓰이고 마음이 안타깝습니다. 그리고 제 스스로 질문을 합니다. "왜 그들은 믿음이 자라지 않는가? 왜 그들은 하나님을 열심히 믿지 못하는가? 왜 그들은 예배를 빠지고, 왜 그들은 기도를 하지 않는가? 왜 그들은 십일조를 못하는가? 왜 그들은 그렇게 행동을 하는가?"
오늘은 이에 대한 답변을 하면서 같이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즉 믿음이 없는 사람은 믿음이 자라고, 하나님을 열심히 믿지 못하는 사람은 열심도 생기고, 더 좋은 모습으로 변화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먼저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왜 믿습니까? 그리고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은 왜 믿지 않는 겁니까? 이유는 간단합니다. 예수님을 나의 구세주로 믿는 사람은 그런 믿음이 생겨서 믿는 것이고, 믿지 않는 사람은 그런 믿음이 생기지 않아서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나이가 아무리 많아도 이런 믿음 생기지 못하면 하나님을 믿지 못합니다. 그리고 아무리 학식이 많아도 믿음이 생기지 않으면 역시 하나님을 제대로 믿을 수 없습니다. 또한 아무리 인격도 좋아도 믿음이 없으면 교회에 나오기를 꺼려합니다. 그러나 나이가 아무리 적어도, 배운 것이 없어도, 인격이 부족해도 믿음이 생기면 하나님을 자신의 아버지로 확실히 믿습니다. 예수님을 자신의 구세주로 영접합니다.
믿음이 자라면 예배도 더욱 열심히 나오게 되고, 기도도 스스로 하게 되고, 전도도 하며, 십일조도 하지 말래도 하게 됩니다. 고로 믿음을 성경에서는 '금 같은 믿음' 혹은 '금보다 귀한 믿음'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아무리 금이 많아도, 아무리 돈이 많아도 믿음이 없으면 예수님을 믿을 수 없고, 따라서 구원을 받지 못합니다. 그러니 믿음은 금보다도 은보다도 귀합니다. 요즘 말로 하면 믿음은 다이아몬드보다 귀합니다.
그런데 그러한 귀한 믿음을 우리는 어디에서 얻을 수 있습니까? 성경은 그 귀한 믿음의 출처를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에베소서 2:8-9의 말씀입니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즉 믿음의 출처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이 어떤 사람은 예수님을 믿을 수 있게끔 믿음을 주셨고, 어떤 사람은 믿음을 주시지 못하여 믿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고로 정확히 말해서 이런 표현을 쓰는 것은 성경적으로 맞지 않습니다. "나는 하나님을 스스로 믿었다. 나는 내가 알아서 예수님을 믿고 교회에 나왔다." 물론 누가 여러분에게 개인적으로 전도하지 않았지만 알아서 스스로 교회에 나오고 하나님을 믿은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따지고 들어가면 그렇게 스스로 교회에 나와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도 역시 하나님이 믿음을 주셨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그리고 누가 개인적으로 전도하지 않았어도, 그 사람 역시 전도라고 하는 매체가 작용했기 때문입니다. 즉 사람을 통하여 전도를 받지 않았어도, 예수님이라는 이름을 들었기에 믿었고, 그 예수님을 누군가가 전해주었기 때문에 믿은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성경은 말합니다.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롬10:14) 즉 하나님은 우리들이 예수님을 믿을 수 있도록 전하는 자들을 세우셨고, 그 영향력을 받아 우리들은 믿음을 하나님께로부터 선물로 받아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으면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이에 대하여 성경은 말합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1:12) 즉 예수님을 믿으면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가 됩니다. 그리고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나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하나님의 예비한 모든 것을 누릴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집니다.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닐 때에는 하나님께 무엇을 달라고 하면 어딘가 모르게 좀 쑥스럽습니다. 좀 미안합니다. 죄송스럽습니다.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하나님께 무엇을 달라고 할 때 전혀 쑥스럽지 않습니다. 기도하면서 달라는 것이 자연스럽게 나옵니다. 생각해보세요. 나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길가는 아저씨에게 "아저씨 나 돈 100달라만 주세요?"라고 말해보십시오. 지나가는 아저씨가 "애가 미쳤나? 너 나 언제 봤니?" 하고 이상하게 쳐다 볼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자신도 지나가는 사람에게 돈을 달라고 하지 않습니다. 또한 아무리 친한 친구라고 해도 돈을 꾸어달라고는 해도 그냥 돈을 달라고 하지는 못합니다. 이모나 삼촌에게도 돈을 달라고 못합니다. 돈을 달라고 하는 경우는 오직 자녀가 엄마나 아빠에게 할 수 있는 말입니다. 제가 이전에 예수님을 믿었어도 이러한 사실, 즉 예수님을 믿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을 제대로 깨닫지 못했을 때는 하나님께 뭔가 달라고 하면 스스로 어색해지고, 왠지 기복신앙 같아서 그런 기도가 잘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아시지요. 기도할 때에 우리들은 대개 이것저것을 이루어 달라고 하는 것이 주된 내용입니다. 주님이 가르쳐준 기도인 주기도문의 경우도 보세요.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고, 나라에 임하옵시고,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즉 주님의 기도나 우리의 기도나 거의 모두가 요청의 내용입니다.
만약 그런 요청의 기도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이상하게 느껴지면 우리는 기도생활을 제대로 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기도를 오래 할 수 있는 것은, 그리고 기도할 때에 믿음으로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은 나의 아버지시요, 나는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가 된 것을 확실히 깨닫기에 그런 기도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하나님은 나의 기도를 듣고 그 기도를 이루시는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예수님은 말씀합니다.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요16;23-24)
예수님을 믿어서 사랑하는 하나님의 자녀가 된 여러분들이여, 하나님께 구하십시오. 이곳 캐나다 땅에서 좋은 직장을 구하십시오. 가정에 문제가 생겼습니까?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십시오. 비자 문제가 시급합니까? 하나님께 구하십시오. 건강의 문제가 생겼습니까? 사람과의 문제가 생겼습니까? 돈이 떨어졌습니까? 기도하십시오. 제가 이렇게 기도하라고 하면 혹 이렇게 묻는 분이 있을 것입니다. "아니, 목사님! 기도하면 됩니까? 하나님은 그런 요청도 들어주십니까?"
여러분! 입장을 바꾸어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의 사랑하는 자녀가 이것저것을 아뢸 때에, 그리고 그 요청이 매우 좋은 것인데 왜 부모가 거절하겠습니까? 이에 대하여 성경은 말씀합니다.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면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면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마7:7-11)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실 귀가 있습니다. 우리의 사정을 살피실 눈이 있습니다. 우리의 기도를 이루어주실 능력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구하는 것, 그 이상으로 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말씀합니다. "은도 내 것이요, 금도 내 것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학2:8)
하나님은 공중의 새도 기르십시다. 들의 백합화도 자라나게 하십니다.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들어갈 들풀도 하나님이 살피시고 있습니다. 더욱이 하나님이 자기 자녀를 왜 돌보시지 않겠습니까? 고로 걱정을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을 믿으십시오. 믿음으로 하나님께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은 그 일도 주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 사람도 주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고 있습니다. 인생의 행복과 불행, 축복과 저주가 하나님의 주관아래 있습니다.
고로 행복해지기를 원하시는 여러분들이여, 사람에게 행복을 달라고 빌지 말고 하나님께 행복을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물질이 필요하신 여러분들이여, 물질도 하나님께 달라고 하십시오. 건강이 절실하신 분들이여, 건강도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입니다. 내가 못하는 것을 하실 수 있습니다. 고로 우리는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하나님께 매달립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저 해와 달과 별들만 세밀하게 주관하고 계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들의 인생을 세밀하게 주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 태어난 것도 하나님의 주관 하에 된 것이요, 우리들이 이곳 캐나다 땅에 온 것도 하나님의 주관 하에 왔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들을 이 땅에 보내신 것은 우리들을 외국 땅에서 고생시키고, 골탕 먹이려고 보낸 것이 아니라, 우리들의 행복을 위하여, 장래의 소망을 위하여 이 땅에 보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나의 생사화복을 주관하고 계시고 있다면 하나님을 멀리하는 것보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시편 기자 아삽은 말씀합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시73:28) 잊지 마십시오. 하나님보다 나를 더 사랑해 줄 사람은 이 세상에는 한 사람도 없습니다. 부모님들에게는 섭섭할지 몰라도 하나님은 내 부모님보다 나를 더욱 사랑합니다. 이에 대하여 시편 기자 다윗은 말씀합니다. "내 부모는 나를 버렸으나 여호와는 나를 영접하시리이다."(시27:10)
여러분! 하나님은 독생자를 주실 정도로 우리들을 너무도 사랑합니다. 독생자를 주시기까지 한 그 하나님이 우리에게 무엇을 주시지 않겠습니까? 오늘 본문은 하나님이 그 모든 것을 주시는 방법을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너무도 유명한 말씀입니다. 마태복음 6:33의 말씀입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한 마디로 하나님의 일을 먼저 하면 각종 좋은 것을 더하여 준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보통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어도 하나님의 일을 나중에 하려고 합니다. 나의 일이 우선이고, 나의 일이 모두 끝난 다음에 하나님의 일을 하려고 합니다. 나의 일이 바쁘면 하나님의 일은 계속 미루어집니다. 요즘은 너무도 바쁜 세상이다 보니까, 더구나 외국 땅에서의 삶은 이것저것 할 일이 많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일은 우선이 아니고 나중이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먼저 하나님의 일을 하면 모든 것을 더하여 준다고 했습니다. 고로 이 외국 땅에서 너와 내가 좀더 풍성하고 행복하게 위해서는 하나님의 일을 나중이 아니라 먼저 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 외국 땅에서 아무리 바빠도 예배를 먼저 드리십시오. 기도를 먼저 하십시오. 봉사를 기쁘게 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은 약속대로 모든 좋은 것을 더하여 줍니다.
결론입니다.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의 행복과 불행, 축복과 저주를 주관하시고 있습니다. 우리를 이곳 캐나다 캘거리까지 불러주신 하나님은 예수님을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된 저와 여러분들이 이 모든 좋은 것을 받고 누리기를 원하시고 있습니다. 아무쪼록 이 외국 땅에서도 하나님의 일을 가장 먼저 하므로 하나님의 예비된 좋은 것을 더욱 많이 누리시고 행복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