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왜 별들을 만드셨나?

날짜: 
2023/08/12
말씀: 
창1:14-19
말씀구절: 

14 하나님이 이르시되 하늘의 궁창에 광명체들이 있어 낮과 밤을 나뉘게 하고 그것들로 징조와 계절과 날과 해를 이루게 하라

15 또 광명체들이 하늘의 궁창에 있어 땅을 비추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16 하나님이 두 큰 광명체를 만드사 큰 광명체로 낮을 주관하게 하시고 작은 광명체로 밤을 주관하게 하시며 또 별들을 만드시고

17 하나님이 그것들을 하늘의 궁창에 두어 땅을 비추게 하시며

18 낮과 밤을 주관하게 하시고 빛과 어둠을 나뉘게 하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19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넷째 날이니라

설교: 

얼마 전 제가 밤중에 혼자 동네를 산책하면서 기도하다가 문득 하늘을 보았습니다. 별들이 보였습니다. 한국에서는 공기가 좋지 않아 잘 보이지 않는 별들이 여기 캐나다에서는 꽤 잘 보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님은 왜 별들을 만드셨지? 해를 만드신 이유는 확실히 알겠는데, 그리고 달을 만드신 이유도 대충 알겠는데, 그 수많은 별들을 왜 만드셨을까?”

오늘은 이에 대해 같이 성경을 살펴보면서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오늘의 본문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하늘의 궁창에 광명이 있어 주야를 나뉘게 하라. 또 그 광명으로 하여 징조와 사시와 일자와 연한이 이루라. 또 그 광명이 하늘의 궁창에 있어 땅에 비취라.”(창1:14-15)

이를 요약하면 하나님은 하늘의 해와 달과 별들을 통하여 첫째 주야(밤과 낮)로 나뉘게 하시며, 둘째 징조와 사시(봄, 여름, 가을, 겨울)와 일자와 연한을 이루게 하시며, 셋째 땅에 비추게 하기 위함이라는 겁니다. 이를 좀 더 설명하면 이렇습니다. 큰 광명(태양)으로 낮을 주관하게 하시고, 작은 광명(달)으로 밤을 주관하게 하시고, 별들로 땅을 비추게 하신다는 겁니다.(창1:15-16)

먼저 큰 광명인 해 즉 태양을 만드신 목적은 여러분들도 잘 아시다시피 태양이 없으면 지구의 생명체가 존재하지 못합니다. 태양이 지구에 비추므로 저와 여러분을 포함한 모든 인간들과 동물들과 식물들이 살 수 있습니다. 만약 태양이 지구와 너무 가까이 있으면 우리는 그 태양열에 타죽고 맙니다. 반면 태양이 지구와 너무 멀면 우리 모두는 얼어 죽고 맙니다. 즉 태양은 지구와 가장 이상적인 거리에 있습니다.

그리고 지구가 태양을 중심으로 돌므로 즉 공전을 하므로 사계절인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만들어집니다. 이렇게 지구가 태양을 한 번 돌면 그것을 1년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지구의 공전 속도는 초속 29.8km입니다. 시속으로는 107,534km입니다. 또한 지구는 스스로 자전을 합니다. 이렇게 지구가 한 번 자전하는 것을 하루 즉 24시간이라고 합니다.

지구의 자전 속도는 초속 465m이고, 시속으로는 평균 1667km입니다. 그러니까 공전 속도가 자전 속도보다 64배가량 빠릅니다. 즉 지구라는 비행물체는 80억 명이라는 승객을 태우고 초속 29.8km로 날아가면서 초속 465m, 시속 1667km로 회전하는 비행선입니다. 온라인상에 보면 지구가 태양계의 여러 별들과 함께 태양을 중심으로 공전하며 자전하면서 돌아가는 입체 동영상이 있습니다.

그 동영상을 보니까 너무나 신기해서 와- 하는 감탄이 저절로 나옵니다. 여러분, 태양계를 비롯해 별들의 움직임은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평면상의 그런 단순한 회전 운동이 아닙니다. 너무나도 빠른 속도로 서로 맞물려서 정해진 우주 공간을 이미 만들어진 각자의 트랙을 돌듯이 입체적으로 정확히 돌아갑니다. 조금의 오차도 없습니다. 그런데 그걸 보면서 “아- 이건 우연히 된 것이다.“라고 말하면 그 사람은 정신병자 수준일 겁니다.

그런데 지구가 그렇게 빨리 공전하고 자전을 하는데도 저와 여러분은 그 안에서 아무런 어지러움도 느끼지 못하고 편안히 생활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정해주신 관성의 법칙이 작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지구가 그렇게 빨리 도는데도 우리들의 귀에 소음이 전혀 들리지 않습니다. 인간의 귀가 들을 수 있는 주파수가 20Hz-1600Hz 정해져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지구 주위를 도는 달의 목적도 있습니다. 만약 달이 없다면 달이 지구를 당기는 힘도 사라집니다. 그렇게 되면 지구의 자전 속도가 24시간이 아니라 11시간 정도로 빨라지게 됩니다. 그러면 이로 인해 엄청난 태풍이 불고 홍수가 발생합니다. 그리고 달의 끌어당기는 힘으로 인해 지구에서는 밀물과 썰물 현상이 일어납니다.

만약 달이 없어서 밀물과 썰물 현상이 일어나지 않으면 당연히 생태계가 파괴됩니다. 특히 바다가 썩은 바다가 될 것입니다. 또한 지구를 도는 달을 살펴보면 행성들이 부딪혀서 그로 인해 많이 얻어터진 움푹 팬 흔적들이 있습니다. 즉 달은 행성들로부터 지구를 방어하는 방패 역할도 해줍니다.

그리고 본문 14절에 보면 그 광명으로 말미암아 징조가 이루게 하신다고 했는데 이건 무슨 뜻일까요? 일단 간단한 것을 살펴보면 해-달-지구가 정확히 일직선으로 서게 되면 ‘일식’이라는 현상(징조)이 일어납니다. 반면 그 순서를 바꾸어 해-지구-달의 순서로 일직선상에 서게 되면 ‘월식’현상이란 징조가 일어납니다.

또한 성경에 보면 구세주 예수님이 탄생하실 때 빛난 별이 나타난다는 구약의 예언이 있습니다.(민24:17) 그 예언대로 복음서에 보면 동방박사들(오늘날의 천문학자들)이 그때에 나타난 별을 보고 구세주 예수님의 탄생을 알아차렸습니다. 그리고 그 별의 인도를 따라 베들레헴에 와서 예수님께 경배를 했습니다.

즉 그때 나타난 별이 예수님의 탄생을 알리는 징조였습니다. 오늘날에는 컴퓨터에 의한 계산법으로 별들의 이동 경로를 추적하며 그 별이 실제 역사적으로 나타난 별인 것을 과학적으로 증명하고 있습니다. 여기 캘거리에 자주 오신 ‘창조과학회’에 김명현 박사님도 그에 대해 말씀하고 있고, 이에 대한 그 분의 동영상도 온라인에 있습니다.

즉 하나님은 해와 달과 별들을 통하여 우리들에게 시대의 징조를 알려주시고 있습니다. 특히 말세에는 해가 어두워지기도 하고, 또한 해가 뜨거워져서 큰 피해를 입게 되고, 달도 핏빛으로 변하게 되고, 별들도 무화과나무 과실이 떨어지듯이 우수수 떨어지게 된다고 예언하고 있습니다.

요즘은 과학이 발달이 되어 우주를 보다 세밀히, 그리고 멀리 관찰할 수 있습니다. 현재의 과학으로 관측 가능한 우주의 크기는 대략 950억 광년이라고 합니다. 1광년이란 빛이 1년간 쉬지 않고 달려가는 거리입니다. km로 계산하면 빛은 1년간 약 10조 km를 달려갑니다.

10조 km가 도대체 얼마나 먼 거리인지 우리에게 와 닫지 못하니까 이를 초단위로 계산하면 빛은 1초에 지구를 일곱 바퀴 반을 돕니다. 약 30만 km입니다. 이는 지구가 태양을 공전하는 속도의 약 만 배정도 빠른 속도입니다. 그 빛이 950광년도 아니고 950에 0이 8개가 더 붙는 950억 광년을 쉬지 않고 달려가야 우주의 끝이 보인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러한 사실도 현재의 과학으로 관측이 가능한 범위 안에서 말한 것이지 과학이 관찰하지 못하는 거리까지 계산하면 우주의 크기는 인간의 입장에서 보면 endless 즉 끝이 없다고 말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니 그러한 우주를 만드신 하나님은 얼마나 광대할까요?

이에 대해 성경은 말씀합니다. “여호와는 광대하시니 크게 찬양할 것이라. 그의 광대하심을 측량치 못하리로다.”(시145:3) 그리고 그런 광대한 우주 속에 별들의 숫자가 얼마나 될까요? 최근 호주 국립대학의 천문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우주에 있는 별들의 총수는 7곱하기 10의 22승개라고 발표했습니다.

이 숫자는 지구의 모든 해변과 모든 사막에 있는 모래 알갱이 수보다 10배나 많다는 겁니다. 그것도 현재의 망원경으로 볼 수 있는 범위 내의 숫자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망원경으로 관찰하지 못하는 별의 숫자는 무한대라고 봐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왜 이렇게 많은 별들을 만드셨을까요? 모든 것에 완전하시고 세밀하신 하나님이 그 많은 별들을 만드신 목적이 있지 않겠습니까?

성경에 나타난 그 분의 목적은 이겁니다. 첫째, 하나님의 존재를 깨달으라는 겁니다. 우리는 그런 수많은 별들이 생겨나고, 또한 그 별들이 정확한 거리를 맞춰가며 질서 있게 입체적으로 운행되는 것을 보고 우연히 그렇게 되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즉 수많은 별들과 그 운행함을 보면서 우리는 그 별들을 만드신 창조주 하나님의 존재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둘째, 우리는 그 수많은 별들을 보면서 하나님의 광대하심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나도 마음을 넓혀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이렇게 권면합니다. “고린도인들이여, 너희를 향하여 우리의 입이 열리고 우리의 마음이 넓었으니 너희가 우리 안에서 좁아진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 심정에서 좁아진 것이니라. 내가 자녀에게 말하듯 하노니 보답하는 양으로 너희도 마음을 넓히라.”(고후6:11-13)

사랑하는 캘거리 순복음 중앙 교회 성도 여러분, 때로는 그 넓은 하늘을, 우주를, 별들을 바라보면서 마음을 넓히십시오. 아내도 마음을 넓히시고, 남편도 마음을 넓히시고, 너도 나도 마음을 넓혀야 화평도 이루고 사랑도 이룰 수 있습니다. 더구나 주님이 우리들에게 부탁하신 원수사랑은 좁은 마음으로는 도저히 할 수가 없습니다. 마음이 좁으면 나와 만나는 사람도 괴롭게 하고, 결국 나의 인생도 괴로워지고 맙니다. 같이 따라 해봅시다. “좀 더 마음을 넓히자.”

셋째, 하나님이 그렇게 많은 별들을 만드신 이유는 우리들에게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을 의지하라는 겁니다. 하나님에게 있어서 그 분의 자녀들인 우리들은 저 우주의 수많은 별들보다 더 귀한 존재입니다. 그들 별들은 언젠가 소멸되기도 하지만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영적 존재인 저와 여러분들은 결코 소멸되지 않습니다. 부활하여 하나님과 같이 영원히 존재합니다.

성경에 보면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마6:30)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오늘 있다가 내일 없어지는 들풀도 입히시는 분이십니다. 공중의 새도 돌봐주시고 기르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하늘의 별들도 정확히 운행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물며 나와 너를 그토록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주시기까지 하셨는데 하나님이 우리를 돌봐주시지 않겠습니까? 고로 별들을 바라보며 하나님을 믿고 안심하십시오. 불안해하거나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실수하지 않고 돌봐주실 것입니다.

넷째, 수많은 별들을 바라보며 하나님을 찬양하라는 겁니다. 음악프로그램에 보면 ‘별이 빛나는 밤에’라는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약자로 ‘별밤’이라고 합니다. 1969년부터 지금까지 54년째 방송중인 MBC FM 음악 전문 라디오 프로그램입니다. 제가 청년의 시절 때에도 많은 청년들이 밤에 별을 바라보며 자기가 좋아하는 음악 곡을 여러 사연과 함께 신청하며 노래를 불렀습니다.

여러분, 밤하늘에 별들을 바라보면 갑자기 시인이 되고 싶어지고 노래를 하고 싶어집니다. 이때 무슨 노래를 할까요? 윤항기 씨의 ‘별이 빛나는 밤에‘라는 노래를 불러야 할까요? 아- 그렇습니다. 별이 빛나는 밤에 하나님께 찬양을 부르면 어떻겠습니까?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 내 마음 속에 그리워 볼 때, 하늘의 별, 울려 퍼지는 뇌성, 주심의 권능 우주에 찼네.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내 영혼이 찬양하네.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내 영혼이 찬양하네..."

하나님은 말씀합니다.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해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함이니라.”(사43:21) “주의 만드신 주의 하늘과 주의 베풀어 두신 달과 별들을 내가 보오니...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주의 영광을 하늘 위에 두셨나이다.”(시8:3,1) “나를 지으신 하나님이 밤중에 나로 노래하게 하시느니라.”(욥35:10)

결론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 너무나도 아름답게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나 마귀가 인간을 꾀어서 그 아름다운 세상을 파괴시켰고 계속 파괴시키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늘을 바라보면 여전히 해와 달과 수많은 별들이 하나님의 눈길이 되어서 저와 여러분들을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고로 이 캐나다 땅에서 종종 하늘을 바라보십시오. 맑은 공기 속에 빛나는 별들을 바라보십시오. 그리고 그 수많은 별들을 만드시고 운행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십시오. 그리고 다시 오시겠다고 약속하신 예수님도 바라보십시오. 그리고 나의 인생이 끝나는 날 저 하늘의 별처럼 영원토록 빛나는 나의 모습도 생각하며 계속 희망과 행복 속에 사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