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부르신다.

날짜: 
2011/11/14
설교: 

룻2:3-4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부르신다.
며칠 전 키지지(Kijiji)라는 인터넷 온라인 매매소에다 물건 하나를 팔려고 올렸습니다. 'Treadmill'이라는 물건입니다. 한국 사람들이 쓰는 영어로는 '러닝머신'입니다. 저도 약 7년 전에 중고품을 150불에 주고 샀습니다. 제가 다시 팔면서 100불에 내놓으려고 하다가 조금 비싼가 싶어서 다시 지우고 50불에 올렸습니다.
그런데 올린지 8분 만에 '따르릉!' 전화가 왔습니다. 깜짝 놀랐습니다. 제가 전화를 받았습니다. "Hello! 여보세요." 그쪽에서 제가 영어와 한국어를 동시에 쓰니까 'Hello! 한국 분이세요?' 하고 묻습니다. "아- 예, 그런데요. 어쩐 일이세요?" "예- 혹시 Treadmill 팔지 않습니까?" "아니, 금방 올렸는데 벌써 전화가 왔네요. 오셔서 한번 보세요." "예- 집이 가까우니 금방 가겠습니다."
그리고 한 10분 후에 30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젊은 부부가 물건을 실을 수 있는 트럭을 몰고 왔습니다. 제가 반갑게 인사했습니다. "어서 오세요. 그런데 처음 뵙는 것 보니 여기 오신지 얼마 안되신 모양이네요?" "아- 예, 저희들 여기 온지 8년이나 됐습니다. 그런데 교회를 잘 안나가서 사람들을 잘 모릅니다."
"아- 그래요? 교회를 왜 안다니십니까?" "몇 년 전에 한 6개월 정도 다니다가 그만두었어요." "아- 그래요. 제가 여기 순복음 중앙교회 목산데 한번 우리 교회 좀 나와 보시지요." 그 분들이 대답이 엉거주춤합니다. 제가 물건을 설명하면서 인심 좀 썼습니다. "한국분이니까 그냥 공짜로 가지고 가세요." 그리고 말 한마디 덧붙였습니다. "교회 한 번 오시구요. 주일날 11시 예배에 오셔서 예배 한 번 드리시고, 꼭 밥 먹고 가세요. Okay?"
그 분들 오늘 교회에 나오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러한 일은 어찌 보면 일상생활에서 일어나는 아주 평범한 일중에 하나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섭리에서 보면 이 일은 하나님이 자기의 택한 백성을 부르시기 위해 아주 철저하게 계획된 일입니다. 하필이면 그날 밤 갑자기 제가 러닝머신을 팔려고 마음이 들었습니다. 저는 마음이 오면 당장 실천하는 사람입니다. 좋게 말하면 하나님의 부르심에 신속히 순종하는 편이고, 나쁘게 말하면 성격이 급한 편입니다. 그렇게 성격이 급해서 좋을 때도 있고 나쁠 때도 있습니다.
하여간 매운 고추를 또 다시 매운 고추장에 찍어 먹는 한국 사람들의 성격은 대부분이 급합니다. 어디를 가든지 '빨리빨리!'라는 말을 잘합니다. 오래 전에 이스라엘에 단체로 성지 순례를 갔다가 식당에 들어가는데 그곳 식당 종업원들이 우리를 보더니 한국말로 말합니다. "빨리빨리 ! 빨리빨리!"
그런데 저의 경우에는 보통의 한국 사람들보다도 성격이 더욱 급합니다. 그러니 상당히 급한 편이지요. 특히 순복음 교회 사람들은 기도나 찬송을 해도 얼마나 빨리 하는지 모릅니다. 장로교회에서는 찬송을 부를 때 "불 길 같 은 성 신 여..." 하고 좀 느리게 부릅니다. 그러나 순복음 교회에서는 "불길같은 성신여..." 하고 부릅니다. 점잖은 장로 교인들이 보면 "참 경박하게도 찬송을 부른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요즘은 장로교회가 속도가 좀 빨라지고 있고, 순복음교회는 오히려 좀 느려지고 있습니다. 이것도 평준화되는 추세입니다. 하여간 제가 순복음에서 꽤 오래 몸담고 있습니다. 그러니 저도 기도와 찬송을 빨리하는 편입니다. 물론 요즘은 나이가 먹으니까 숨도 차서 찬송과 기도와 설교 속도도 점차 느려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급한 성격은 잘 고쳐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하여간 그렇게 급하게 인터넷에 물건을 올렸고, 상대방도 키지지(Kijiji)라는 사이트를 때마침 보고 있었고, 가격도 손님을 끌만한 가격으로 다운을 시켰고, 그래서 신속히 그분들이 우리 집에 와서 물건을 공짜로 가지고 갔습니다. 그리고 일생일대의 가장 중요한 복음을 들었습니다. "예배드리고 밥 먹고 가세요."
어찌 보면 일상생활 속에서 일어나는 우연입니다. 그러나 그 우연이 우리들에게는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구약 성경에 보면 룻이라는 모압 여인이 나옵니다. 이스라엘 사람인 남편이 모압으로 이민을 왔다가 모압 여인인 룻이라는 여인과 국제결혼을 했습니다. 그런데 남편이 얼마 있다가 병으로 죽었습니다. 자녀도 없습니다. 그러자 룻은 시어머니인 나오미를 따라서 이스라엘 베들레헴으로 이사했습니다. 당장 시어머니와 함께 먹을 것이 필요했습니다.
그런데 그때가 마침 추수 때였습니다. 그 추수 때가 인간적으로는 그저 사계절 중의 하나요, 우연인 것 같았는데 실제는 우연이 아니었고 하나님의 섭리였습니다. 룻은 남의 밭에서 추수하다가 떨어트린 이삭들을 주우러 갔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니 '우연히 엘리멜렉의 친족 보아스에게 속한 밭에 이르렀더라.'는 말이 나옵니다.
여기서 '우연히'라는 말은 원문에 보면 '아주 희한하게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라는 의미가 담긴 말입니다. 그러니까 사람 보기에는 그것이 우연이지만 하나님의 섭리였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부르시기 위해서 잘 계산하고 계획하신 시나리오였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정확히 부르십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그 하나님의 부르심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여 그 부르심의 기회를 놓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에 대하여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제 너희가 그 모든 일을 행하였으며 내가 너희에게 말하되 새벽부터 부지런히 말하여도 듣지 아니하였고 너희를 불러도 대답지 아니하였느니라.(렘7:13)
오늘 본문에 보면 '마침 보아스가 밭에 이르렀다.'는 말이 나옵니다. 이것도 우연인 것 같았는데 이 역시 하나님의 섭리였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이 룻과 보아스라는 미래의 재혼 상대자를 만나게 하려고 둘의 발걸음을 그 시간에 맞게 움직이도록 섭리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중에 둘은 데이트를 하고, 결혼을 하고, 자녀를 낳았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낳은 자녀가 바로 다윗왕의 할아버지인 '오벳'입니다. 그리고 아시다시피 오벳은 예수님의 육신의 조상입니다.
우리 교회에는 청춘남녀들이 많습니다. 요즘 나이가 드신 청년분들 중에 눈이 상당히 빛나는 분들이 있습니다. 짝을 찾으려고 하는 필사적이 노력이 엿보입니다. 어쩌면 그것은 남녀간에 생기는 우연인 것 같은데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로 이어지고 아름다운 결실을 맺기를 기원해봅니다. 그래서 짝을 찾아 결혼도 하고, 아들 딸 낳고, 엄마 아빠가 되어서 행복한 가정을 꾸미시기를 축원합니다.
신약성경 누가복음 15장에 보면 돌아온 탕자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탕자가 아버지를 떠나 외국 땅에서 허랑방탕하게 지냈습니다. 그 많던 재물을 다 날렸습니다. 하필 그 땅에 극심한 기근이 왔습니다. 유대인들이 가장 혐오하는 돼지 치는 일을 하면서도 먹을 것이 없었습니다. 외국 땅에서 하루하루 사는 것이 고통이었습니다. 그대로 굶주려 죽을 처지가 되었습니다.
그러자 아들은 아버지 생각을 합니다. 평상시에는 아버지 생각을 조금도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거지가 되니까 이제 아버지 생각이 납니다. 그리고 자존심 버리고 아버지 집으로 돌아갑니다. " 나 주를 멀리 떠났다 이제 옵니다. 나 죄의 길에 시달려 주여 옵니다. 나 이제 왔으니 내 집을 찾아, 주여 나를 받으사 맞아 주소서."(찬송가 331장)
이 아들에게 있어서 재물이 순식간에 달아난 것은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그가 사는 지역에 기근이 온 것도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하필 돼지 치는 일을 하는 것도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그 아들을 부르기 위한 섭리였습니다. 그렇게 고생을 하지 않으면 그 아들은 아버지를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거지가 되지 않으면 그 아들은 아버지 집에 절대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환경을 통하여 그 아들을 부른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마19:24) 즉 부자는 자기 재물을 의지하고, 자기 재물을 쓰기 위해서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을 제대로 찾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려고 하지 않습니다. 여기가 천국인데 뭐하려고 천국에 들어갑니까?
그러니 그런 사람을 부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자기가 의지하던 재물을 없애버리는 겁니다. 때로는 심한 고난과 문제를 일으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부르는 섭리입니다. 그냥 좋은 말할 때에 오면 좋은데 꼭 한 대 맞아야 정신 차리고 오잖아요. 그게 인간이고 그게 동물이잖아요.
그러나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부르시는 섭리를 보는 눈과 깨닫는 마음이 있으면 그 사람은 그리 고생을 오래도록 하지 않습니다. 눈치가 빠른 사람은 매를 피해갑니다. 그러나 미련한 사람은 매를 자초합니다. 아무쪼록 하나님이 나를 부르시는 섭리를 신속히 깨달으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은 자기의 백성을 부르시고 좋은 것을 주시기 원합니다. 그 좋은 것이 무엇인지 빨리 알아차리시고, 주님의 뜻을 좇아가야 합니다.
저희 집에 와서 러닝머신을 공짜로 얻은 것으로 만족한 사람은 보통 사람입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사람, 진짜 복을 받을 사람은 "아하, 하나님이 이 일로 나를 부르시는구나! 하필이면 그 밤중에 목사님 집에 가게 해서 '예배 나오고 밥 먹으라.'는 말을 듣게 하실까? 이는 필시 나를 부르시는 하나님의 계획이구나!" 이렇게 생각해야 진짜 복 있는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여러 가지 모습으로 우리를 부르십니다. 어떤 때는 직접 혹은 천사를 통해 '아브라함아! 모세야! 사무엘아!' 하고 부르기도 합니다. 어떤 때는 꿈과 환상과 예언으로 부르기도 합니다. 오늘 본문의 경우는 하나님이 모든 것을 알맞게 계획하시고 섭리하시므로 부르십니다. 그러한 하나님의 부르심, calling을 그저 우연으로 돌리지 마시고, 그 부르심에 응답하시기를 축원합니다.
가끔 이렇게 질문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저 같이 못된 사람도 부르실까요?" 물론입니다. 나 같은 죄인도 불렀으니 너 같은 죄인도 부르시는 것이 조금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눅5:32)
하나님의 부르심에 혹은 이렇게도 반문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 오늘은 제가 바빠서 안됩니다. 하던 일 좀 정리하고 와서 따를게요." 그러나 명심하십시오. 이 세상에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하나님의 일입니다. 하나님이 지금 부르실 때에는 지금이 가장 적기이기에 부르시는 것입니다. 고로 지금 응답해야 합니다. 나중에 응답하기에는 하나님의 부르심이 너무나 귀합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를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고후6:2)
생각해보세요. 엄마가 맛있는 음식이 있어서 아들을 불렀습니다. "아들아! 아들아! 와서 이것 좀 먹어라." 아들은 놀기에 바쁩니다. 엄마가 자기를 부르는 소리가 귀찮기만 합니다. 대꾸도 하지 않습니다. 실컷 놀았습니다. 배가 고픕니다. 집에 가서 말합니다. "엄마! 먹을 것 좀 주세요." 엄마가 대답합니다. "아까 너를 계속 불렀는데 네가 대답하지 않아서 우리가 다 먹었다."
물론 하나님은 계속 기회를 주시고 계속 좋은 것을 주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오래 참으시고 인내심이 많으십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의 선하심과 부르심을 계속 무시하다가 그 후에 하나님이 안부르면 어떻게 합니까? 주일을 아무렇지 않게 빠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다가 하나님이 주일에 아주 안부르시고, 인생 중에 아주 안부르시면 어떻게 합니까? 생각만 해도 끔찍합니다.
혹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아니, 하나님! 왜 자꾸 부르십니까? 나- 하나님 필요 없어요. 나 혼자 잘 살 수 있어요. 제발 그냥 놔두세요. 제가 교회 오고 싶으면 그때 올께요." 그러나 이렇게 말을 하시는 분은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내 아버지께서 오게 하여 주지 아니하시면 누구든지 내게 올 수 없다."(요6:65)
결론입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부르십니다. 그 때가 가장 좋은 때이기 때문입니다. 아무쪼록 그 부르심에 응답하시므로 더욱 좋은 인생, 행복한 인생을 사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