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 다윗이 사울에게 말하되 주의 종이 아버지의 양을 지킬 때에 사자나 곰이 와서 양 떼에서 새끼를 물어가면
35 내가 따라가서 그것을 치고 그 입에서 새끼를 건져내었고 그것이 일어나 나를 해하고자 하면 내가 그 수염을 잡고 그것을 쳐죽였나이다
36 주의 종이 사자와 곰도 쳤은즉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한 이 할례 받지 않은 블레셋 사람이리이까 그가 그 짐승의 하나와 같이 되리이다
37 또 다윗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나를 사자의 발톱과 곰의 발톱에서 건져내셨은즉 나를 이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사울이 다윗에게 이르되 가라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기를 원하노라
얼마 전 한국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아파트 위아래에서 사는 이웃끼리 층간 소음으로 인해 싸움이 크게 일어났습니다. 결과적으로 윗집 거주자가 칼을 휘둘러서 아랫집에 사는 한 가정의 남편은 인대가 절단이 되고, 그 아내는 목 주변에 찔려 의식불명 중태에 빠지고, 딸은 얼굴과 손에 심각한 자상을 입었습니다.
이때 신고를 받고 2명의 경찰이 출동했습니다. 한 분은 남성 경찰이고, 또 한 분은 여성경찰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긴박한 상황 중에 출동한 남성 경찰은 범인 제압에 머무적거리고, 여성 경찰은 그 현장을 이탈하고 말았습니다. 이로 인해 한국 사회가 시끄러웠습니다. “아니, 그런 위급한 상황에서 경찰이 무서워서 도망을 가면 어떡하나? 그런 경찰은 파면해야 한다.”
결국 이 일은 청와대 게시판 청원까지 올라오고 급기야 해당 경찰서장이 그 자리를 물러나고, 출동한 두 경찰에 대해서는 징계절차에 들어갔습니다. 여러분! 위험에 처한 국민들을 지켜야 되는 경찰이 왜 이런 긴박한 범죄 현장을 무서워서 도망가야 했을까요? 이와 관련된 기사를 좀 더 찾아보니 다름 아닌 경찰관의 준비부족과 훈련부족이었습니다.
특히 여경의 경우 COVID-19으로 인해 현장 대응 훈련 실습을 한 번도 받지 못했습니다. 단지 그런 훈련을 온라인으로만 이수했습니다. 경찰이 되어서도 테이저 건을 한 번도 쏴 본 적이 없었습니다. 즉 평시에 준비가 안 되고 훈련이 안된 사람은 결국 자기의 사명을 제대로 감당할 수 없다는 뼈저린 교훈입니다.
성경에 보면 다윗이란 인물이 나옵니다. 시골의 평범한 양치기 목동에 불과한 그가 사람들에게 알려진 드라마틱한 계기가 있습니다. 다름 아닌 전쟁에서 거인 골리앗을 쓰러트린 기적의 사건입니다. 우리가 알기에는 “아니, 전쟁에 대한 전문 지식도 하나도 없고, 군사훈련도 제대로 받아보지 못한 다윗이 어떻게 적장 골리앗과 1:1 싸움을 할 생각을 했느냐? 그거 미친 거 아니냐?”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오늘의 성경을 자세히 살펴보면 오히려 다윗은 이런 싸움에 잘 준비되고 훈련된 사람이었습니다. 본문말씀입니다. “다윗이 사울에게 고하되 주의 종이 아비의 양을 지킬 때에 사자나 곰이 와서 양떼에서 새끼를 움키면 내가 따라가서 그것을 치고 그 입에서 새끼를 건져내었고 그것이 일어나 나를 해하고자 하면 내가 그 수염을 잡고 그것을 쳐 죽였었나이다.
주의 종이 사자와 곰도 쳤은즉 사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한 이 할례 없는 블레셋 사람이리이까? 그가 그 짐승의 하나와 같이 되리이다. 또 가로되 여호와께서 나를 사자의 발톱과 곰의 발톱에서 건져내셨은즉 나를 이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도 건져 내시리이다.”(삼상17:34-37)
보십시오. 다윗은 이미 사자와 곰과 싸워서도 이긴 실전 경험이 있는 사람입니다. 더욱이 다윗은 이런 싸움에서 승리케 하신 비결은 하나님이 자기와 함께 하셨기 때문이라고 확실히 간증하고 있을 정도로 믿음으로 잘 준비된 사람이었습니다. 키가 3미터나 되는 거인 골리앗 앞에서 다른 이스라엘 병사들은 벌벌 떨고 있었지만 이미 곰과 사자와 싸워서 이긴 실전경험이 풍부한 다윗은 골리앗이 겁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이 골리앗을 쓰러트리기 전에 이미 다윗을 들판에서 곰과 사자를 상대로 스파링을 시키므로 철저한 준비를 시키셨습니다. 그렇게 잘 준비된 다윗이었기에 그는 거인 골리앗을 봐도 전혀 무서워하지 않았고, 담대히 나아가 골리앗을 쓰러트릴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 우리 믿는 사람들이 잘못 생각하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어떤 사람을 크게 사용하실 때 어느 날 갑자기 그가 하나님의 능력을 받아서 기적적으로 사용하신다는 것만을 생각합니다. 그러나 자세히 관찰해보면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사용하실 때에 그 사람을 오래 전부터 철저히 준비시키시고 사용하시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준비가 99%이고 나타남의 기적이 1%라는 겁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기도 1%의 기적의 사람이 되기를 원하면서 99%의 준비는 소홀히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요리하는 분들은 잘 알겁니다. 맛있는 음식을 만들기 위해선 준비가 99%입니다. 일단 기초 양념을 비롯해 요리에 필요한 재료가 잘 준비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요리하는 분이 그 동안 쌓여진 노하우입니다. 요리하는 중에 겪은 크고 작은 실패를 경험하면서 세밀한 노하우를 터득하면 거기서 임기응변도 가능하고, 자기만의 음식도 새롭게 만들 수 있습니다. 즉 보이는 재료 준비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요리지식을 갖추어야합니다.
당연히 시간이 필요하고 정성과 열정이 필요합니다. 어느 날 갑자기 맛있는 요리가 뚝딱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요즘은 인스턴트 음식이 참 맛있게 잘 나옵니다. 그러나 그런 입맛에 맞는 인스턴트 음식은 누가 만듭니까? 초일류 요리사가 수많은 시도를 해서 만들어내는 겁니다. 즉 보기에는 뚝딱이지만 그 뒤에 숨겨진 과정과 준비가 엄청난 결과물입니다.
목사님의 경우 설교를 준비하는 것을 종종 음식 만들기에 비교합니다. 각 목사님들마다 때를 따라서 성도님들에게 줄 영의 양식을 준비합니다. 물론 그 재료와 기초는 성경입니다. 그런데 각 교단마다 혹은 각 목사님마다 자기가 터득한 노하우 즉 성경해석에 있어서 각각 다른 요리 즉 다른 설교가 나옵니다.
제가 자주 꾸는 꿈이 있습니다. 다름 아닌 설교가 미리 준비가 안 되어서 난감해 하는 꿈입니다. 며칠 전에도 제가 이런 꿈을 꾸었습니다. 우리 교회 새로 많은 사람들이 몰려와서 예배당이 가득 찼습니다. 그런데 예배시간이 이미 되었는데 앞에서 준비 찬송하는 분이 없습니다.
제가 어떤 집사님에게 “아- 빨리 찬송이라도 좀 하세요.”라고 말을 했는데 그 분이 쭈뼛쭈뼛하고 못하는 겁니다. “아- 저 분이 왜 저러지?” 하고 생각해 보니까 찬송을 인도할 준비가 하나도 안 된 겁니다. 그러니 난감해하고 힘들어 할 수밖에 없잖아요. 그런데 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단위에서 당장 설교를 해야 하는데 설교 준비가 안 되어서 이전에 했던 설교를 뒤적뒤적 하고 있는 겁니다.
아- 참 난감합니다. 미리 설교를 준비해놔야 되지 않습니까? 여러분! 제가 이 꿈을 꾸고 나서 깨어보니 새벽 2시입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부랴부랴 설교준비를 했습니다. 그 제목이 바로 오늘의 설교입니다. “하나님은 준비된 자를 사용하신다.” 물론 이 설교는 두 주 전에 미리 준비한 겁니다.
저의 경우는 한 주나 두 주 전에 설교가 미리 준비되지 않으면 마음이 안 좋습니다. 하루 종일, 일주일 내내 신경이 쓰입니다. 자나 깨나 “아- 설교 준비해야 되는데...”라는 부담감이 있습니다. 그러다가 하나님의 계시가 오고 영감이 와서 설교 한 편을 준비하면 마음이 날아갈 것 같습니다.
아- 그때부터 기분이 좋아지고 행복해집니다. 그리고 주일날 설교를 마치면 또 다시 그 다음 주 설교를 준비합니다. 주부들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한 끼 해먹으면 “그 다음엔 또 뭘 준비해야 되나?” 하고 늘 생각하듯이 목사님들을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준비를 위해서 또 준비를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준비할 염려가 없어지는 시기를 가리켜 우리는 ‘은퇴’라고 합니다. 즉 도저히 준비할 정신적, 육체적, 영적 에너지가 딸리면 그때는 할 수 없이 은퇴를 해야만 합니다. 다시 말해 인생은 준비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동안까지 사는 것이고, 계속 준비하다가 인생이 끝나는 겁니다.
하나님은 자기 자신을 가리켜 ‘여호와 이레(준비하시는 하나님)’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미리미리 준비하시는 분이십니다. 그것도 완벽하게 준비하십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이 하나님이신 겁니다. 만약 하나님이 준비가 덜되어 쩔쩔매고 당황하는 하나님이라면 그 분이 어찌 우리에게 평안을 주고 안식을 주는 하나님이시겠습니까? 즉 준비되지 않은 하나님은 도저히 상상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들도 준비를 철저히 해야 합니다. 특히 이 땅에서 짧은 인생을 살면서 그 후의 영원한 인생을 준비해야 합니다. 죽은 후에 자신이 저지른 죄에 대한 심판이 반드시 있으므로 그 죄를 용서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행한 대로 갚아주시겠다고 하셨으니 선한 행실로 하나님 앞에 서야만 합니다.
그리고 말세에는 슬기로운 다섯 처녀처럼 성령의 기름을 준비해야 하고, 하늘나라 어린 양의 혼인잔치에 참여할 예복도 준비해야 합니다. 그리고 언제라도 주님이 오시는 날, 이 땅을 떠날 준비 즉 들림 받아 올라갈 준비를 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사랑하라고 하셨으니 사랑하고 살아야 하고, 용서하라고 하셨으니 용서하면서 살아야 하고, 감사하라고 하셨으니 감사하고 살아야 하고, 기도하라고 하셨으니 기도하고 살아야 하고, 준비하라고 하셨으니 철저히 준비하고 살아야 합니다.
그 날에 제대로 준비가 안 되서 쩔쩔매고 당황해하면 안되겠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하나님, 저를 철저히 준비시켜 주십시오.” 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준비가 안 된 것을 모르고, 그래서 자기가 쓰임 받지 못한다는 것을 모르고, 남 탓을 하고, 하나님 탓을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아닙니다. 자기가 쓰임 받지 못하는 것은 그 만큼 준비가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잊지 마십시오. 아무리 준비가 잘 되었다고 해도, 그래서 전문적인 지식과 실력을 갖추었다고 해도 일단 교만하면 하나님은 그 사람을 쓰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은 젖혀놓습니다. 도리어 그런 사람은 버림을 당하고 맙니다.
즉 하나님께 계속 쓰임 받기 위해서 우리가 늘 준비해야 할 것은 겸손입니다. ‘약방의 감초’라는 말이 있듯이 겸손이 빠지면 인생은 그렇게 행복하게 꾸려지지 않습니다. 오늘도 우리는 겸손을 준비해야 합니다. 내일도 우리는 겸손을 준비해야 합니다. 아무쪼록 우리들의 준비함과 하나님의 준비하심 속에서 그 분의 영광이 나타나고, 우리 모두의 행복이 영원토록 이루어지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