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2 그러므로 땅이 변하든지 산이 흔들려 바다 가운데에 빠지든지
3 바닷물이 솟아나고 뛰놀든지 그것이 넘침으로 산이 흔들릴지라도 우리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로다 (셀라)
혹시 요즘 잠이 잘 안 오시는 분이 있습니까? 일단 잠을 잘 자야만 충분한 휴식과 안식을 취하고, 에너지를 보충해서 그 다음 날 활동을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잠을 못자거나 잠을 설치면 계속 몸과 마음이 피곤해집니다. 그래서 성경에는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시127:2)라는 말씀도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교회에 와서 목사님 설교만 시작하면 스르르 자동으로 눈을 감고 주무시는 분이 있습니다. 할렐루야! 하나님이 많이 사랑하십니다. 제 설교가 그렇게 강력한 수면 효과가 있어서 불면증에 시달리는 분이 설교를 자장가로 삼아서 평안히 잠을 잘 수가 있다면 그것도 큰 은혜요 감사할 일입니다.
여러분들 중에 아마 잠을 잘 못자서 수면제를 복용해 보신 분들도 있을 겁니다. 그리고 잠을 잘 자기 위해서 수면을 유도하는 음악을 듣는 분도 있을 겁니다. 그런데 수면 음악 중에 보면 큰 빗소리나 천둥 번개 소리도 있습니다. 여러분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그런 큰 빗소리나 천둥 번개 소리를 들으면 잠이 잘 옵니까? 도리어 잠이 깨지는 않습니까?
온라인에 보면 이런 수면 음악 사이트가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조회 수도 굉장히 많습니다.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그런 큰 빗소리나 천둥 번개 소리를 듣고 잠을 잘 자는 경우는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까요? 한국의 ‘소리공학 연구소’ 소장님이신 배명진 교수님이 그 원리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빗소리는 백색 소음의 일종입니다. 이 백색 소음은 뇌파를 자극해 잠이 잘 오도록 유도합니다. 그러나 사람에 따라 소리에 대한 뇌파 반응이 다르기 때문에 어떤 사람에게는 이 소리가 거슬리는 소리로 들리기도 합니다.”
저의 경우 얼마 전 수면 테스트를 해보았습니다. 제가 기관지 천식이 있어서 건조한 겨울철이 되면 잠을 자다가 숨이 막혀서 자주 깨곤 합니다. 수면 테스트 결과 아닌 게 아니라 수면 무호흡 증상이 심했습니다. 다행히 요즘은 가습기를 하나 구입해서 맥시멈으로 틀고 자니까 중간에 숨이 막혀 깨는 것이 없어졌습니다.
그리고 다행인 것은 제가 귀가 잘 안 들려서 가습기가 돌아가는 모터소리 때문에 잠이 방해되지는 않습니다. 이때는 청력이 약해서 귀가 안 들리는 것이 도리어 은혜입니다. 혹 어떤 분은 큰 빗소리나 천둥 번개 소리가 나면 무섭고 불안해서 가슴이 콩닥콩닥 뛰는 분도 있습니다.
특히 여성분의 경우 이때 “엄마야! 아빠야!” 하고 놀라면서 부리나케 안식처나 피난처를 찾으려는 분도 있습니다. 몇 년 전 저와 저의 집사람이 ‘보우니스 파크’를 산책하다가 갑자기 큰 소낙비를 만났습니다. “아- 어떡하지?” 다행히 가까운 곳에 shelter(피난처)가 있었습니다. 그곳에 피신해서 비가 떨어지는 것을 바라보면서 말했습니다. “아- 여기 마침 shelter(피난처)가 있어서 참 다행이다.”
오늘의 본문은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오,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그러므로 땅이 변하든지, 산이 흔들려 바다 가운데 빠지든지, 바닷물이 흉용하고 뛰놀든지, 그것이 넘침으로 산이 요동할지라도 우리는 두려워 아니하리로다.”(시46:1-3)
여러분, 인생은 고난과 환난의 연속입니다. 하나의 환난이 지나가면 또 다른 환난이 다가오고, 좀 안전하고 평안하다 싶으면 또 다른 환난이 다가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런 여러 가지 예기치 못한 환난에 대처하기 위해 나름대로 미리 준비를 합니다. 그러나 사람이 아무리 준비를 철저히 해도 인간이 감당치 못하는 환난이 있습니다.
이때 잊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우리가 그 환난에서 피할 안전한 피난처가 되십니다. 캐나다에 살면서 “아- 여기가 캐나다구나!”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온 세계 여러 곳에서 전쟁과 박해가 일어나면 사람들이 그곳을 벗어나 또 다른 안식처를 찾으려는 난민들이 발생합니다.
이때 캐나다가 난민들을 잘 받아줍니다. 난민들에게는 이곳 캐나다가 가장 좋은 피난처 나라 중의 하나입니다. 이곳 캐나다에 이민을 오시는 한국 분들 역시 난민은 아니지만 한국에서 어려운 상황에 처하여 캐나다를 피난처로 삼아 오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특히 요즘은 중국발 미세먼지가 너무 심하여 “아- 여기서는 못살겠다!” 하고 피난오시는 분이 있습니다.
혹 어떤 분은 “한국에서는 비교의식이 너무 심하여 스트레스를 받고 기분이 나빠서 못살겠다. 캐나다로 피난가자.” 해서 오시는 분도 있습니다. 혹 어떤 학생은 한국의 치열한 입시경쟁에 스트레스를 받아서 “에이, 캐나다로 피신가자.” 하고 피신 유학을 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혹 어떤 분은 자녀가 장애인이기 때문에 “장애인을 돌봐주는 제도가 잘 갖춰진 캐나다로 피신가자.” 하고 오시는 분도 있습니다. 그리고 캐나다 도시 중에서도 밴쿠버나 토론토 같은 대도시보다 여기 캘거리를 더 선호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캘거리가 밴쿠버나 토론토보다 더 안전하다는 겁니다.
제가 몇 년 전 차로 캘거리-밴쿠버 왕복 여행 중에 밴쿠버에서 4시간 정도 떨어진 산속의 조그만 시골 마을의 한 모텔에 묵은 적이 있습니다. 그때 그 모텔 주인 분이 저에게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나는 BC 밴쿠버 주변에서 살다가 최근에 여기로 이사 왔는데, 그 이유는 여기가 더 안전하다. 밴쿠버는 지진도 나고, 쓰나미가 올 확률도 높다. 그리고 지대가 낮아서 홍수가 나면 그 일대가 잠길 위험이 있다. 특히 ‘아보츠포트’ 지역이 위험하다.”
아- 아닌 게 아니라 얼마 전 BC 지역에 수백 년 만에 있을 큰 홍수가 나서 막대한 피해를 입었습니다. 아보츠포트 지역이 물에 잠겼습니다. 그런 거 보면 캘거리가 밴쿠버나 토론토에 비해 도시 사이즈는 작아서 좀 따분한 면은 있지만 보다 안전한 것 같습니다. 뭐- 이런 식으로 우리가 캘거리에 살면서 스스로 위로를 받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어디에 살든지 중요한 것은 피난처가 되시는 하나님이 있어야 평안하고 안전하다는 겁니다. 본문 7절과 11절에도 말씀합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니 야곱의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
여러분, 야곱은 형 에서가 자기를 죽이려고 하자 황급히 피신을 가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광야에서 돌베개를 하고 처량하게 잠을 자다가 꿈속에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하나님이 야곱에게 나타나 약속합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하리라.”(창28:15)
그러자 야곱이 하나님께 서원합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사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양식과 옷을 주사 나로 평안히 아비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하나님이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창28:20-22)
여러분, 야곱은 잔꾀가 많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 잔꾀로 인해 도리어 자신을 환난에 몰아넣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하나님은 야곱의 피난처가 되사 약속대로 야곱을 지켜주셨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객지 생활을 무사히 마치고 마침내 큰 거부가 되어서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성경은 이러한 야곱의 하나님이 곧 우리의 하나님이시라고 말씀합니다. 즉 하나님은 오늘날 우리들에게도 피난처가 되신다는 것입니다. 야곱의 자손인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급에서 430년간 살 때에도 하나님은 그들의 피난처가 되셨습니다. 그리고 출애급하여 광야에서 40년간 지낼 때에도 하나님은 그들의 피난처가 되셨습니다.
그리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도 하나님은 그들의 피난처가 되셨습니다. 특히 하나님은 요단강 동편에 세 곳과 서편에 세 곳, 총 여석 곳을 따로 지정하여 ‘도피성‘을 마련하셨습니다. 이는 실수로 인해 살인한 자가 보복하려는 자를 피하여 살 수 있도록 마련한 피난처 제도입니다. 즉 하나님은 죽을 처지에 놓인 사람을 살 수 있도록 만들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인생을 살다 보면 이런 저런 일로 인해 죽을 처지에 놓이거나, 죽고 싶은 마음이 들 때가 있습니다. 이때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그런 사람들을 위해 피난처를 마련하시고, 또한 스스로 피난처가 되시는 분이십니다. 고로 어렵고 힘든 환난에 처했을 때 주저하지 마시고 도피성이요, 피난처인 하나님께 신속히 달려가야 합니다. 예수님께 피해야만 합니다.
예수님은 말씀합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11:28)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4:6-7)
오늘의 찬송은 말씀합니다. “피난처 있으니 환난을 당한 자 이리 오라. 땅들이 변하고 물결이 일어나 산위에 넘치되 두렴 없네.”(새찬송가 70장)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는 오늘의 본문인 시편 46편을 읽고 이런 노래를 만들었습니다. “내 주는 강한 성이요. 방패와 병기되시니, 큰 환난에서 우리를 구하여 내시리로다.”(새찬송가 585장)
또한 종교 개혁자 칼빈은 그가 불안하고 두려울 때 오늘의 본문인 시편 46편을 시편 중에서도 가장 먼저 자신의 모국어인 프랑스어로 번역했습니다. 오늘날도 불안하고 두려워하는 분이 있습니까? 시편 46편을 묵상하십시오. 하나님은 여러분의(나의) 피난처가 되십니다. 그 분께 피하면 안전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환난을 만났을 때 항상 도와주시려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품안에서 평안하고 안전하게 거하기를 원하십니다. 고로 결코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불안해하지 마십시오. 근심하지 마십시오. 낙심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 피하면 하나님이 나를 지켜주시고, 내가 못할 일을 대신 해주십니다.
제가 갑자기 새벽 4시에 일어나 이 설교를 준비했습니다. 그 이유는 꿈속에서 제가 본의 아니게 살인을 했습니다. 그래서 도망을 가는데 나를 죽이려는 추격자가 가까이 다가왔습니다. “아- 어떡하지? 나는 이제 어디로 피신하지?” 하다가 잠을 깼습니다. 그리고 제 입에서 깨달음의 고백이 나왔습니다. “피난처인 하나님께로 피신해야지!“
그리고 또 이어서 꿈을 꾸는데 누가 자꾸 나를 업신여기고 무시하는 말을 합니다. 아- 기분이 나쁩니다. 그때 내 입에서 어떤 말이 튀어나왔습니다. 그러자 나를 무시하던 그 사람이 갑자기 태도를 바꾸어 나를 자기와 같은 레벨로 여기고 미안한 표정을 짓습니다. 그러다가 잠이 깼습니다.
그리고 오늘의 설교를 새벽에 준비했습니다. 여러분들도 인생을 살면서 꿈속에서 제가 겪었던 것처럼 힘든 사람들을 만나 인생이 피곤해지고 힘들 때가 있을 겁니다. 혹은 자신의 죄와 허물로 인해 큰 어려움을 겪을 때가 있을 겁니다. 이때 피난처 되시는 하나님께로 피하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이 나를 지키시고 나를 위해 친히 일하시는 것을 잠잠히 바라보십시오.
오늘의 본문인 시편 46:9-10절 말씀입니다. “저가 땅 끝까지 전쟁을 쉬게 하심이여 활을 꺾고 창을 끊으며 수레를 불사르시는도다. 이르시기를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 내가 열방과 세계 중에서 높임을 받으리라 하시도다.”
특히 하나님은 이 외국 땅에서 말세라는 환난의 시기를 사는 저와 여러분들의 피난처가 되십니다. 고로 우리가 이 외국 땅에서 무슨 일을 만나든지 결코 두렵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암탉이 그 새끼들을 날개 아래 모음같이 우리들을 불러 모으시고 지켜주시는 분이십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자라. 여호와께서 네 우편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낮의 해가 너를 상치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 아니하리로다. 여호와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케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시121: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