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친근히 하라

날짜: 
2006/08/27
설교: 

수23:6-9 하나님을 친근히 하라
모세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된 여호수아가 세상을 떠난 것은 110세였습니다.(수24:29). 그는 나이 많아 세상을 떠나기 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유언을 남겼는데 그 내용이 여호수아 23-24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특히 본문에서 그가 강조하는 것은 “하나님과 친하라”는 것입니다.
8절을 보면 “오직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친근히 하기를 오늘날까지 행한 것 같이 하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면 하나님을 가까이하면 복을 받았고 나라가 태평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멀리하면 저주를 받았고 나라가 외적의 침략을 받아 흔들리거나 망했습니다. 이 교훈은 오늘 우리에게도 주시는 교훈입니다.
1. 하나님을 멀리하면 어떻게 됩니까?
13절을 보면 “그들이 너희에게 올무가 되며 덫이 되며 너희 옆구리에 채찍이 되며 너희 눈에 가시가 되어서 너희가 필경은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신 이 아름다운 땅에서 멸절하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16절을 보면 “진노가 너희에게 미치리니 너희에게 주신 아름다운 땅에서 너희가 속히 망하리라”고 했습니다. 한마디로 하나님을 멀리하면 되는 일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결말은 멸망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멀리한다는 것은 무엇을 뜻합니까? 다름 아닌 하나님이 명하신 말씀을 과소평가하고 소홀히 취급하거나 멀리하는 것입니다. 12-13절을 보면 “너희가 만일 퇴보하여 너희 중에 빠져 남아있는 이 민족들을 친근히 하여 더불어 혼인하며 피차 왕래하면 그들이 곧 올무가 되고, 덫이 되고, 채찍이 되고 가시가 되리라”고 했습니다.
즉 우리가 어느 쪽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생사와 흥망과 성패가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중요성을 깨닫게 된 여호수아는 24:14에서 “너희 열조가 강 저편과 애급에서 섬기던 신들을 제하여 버리고 여호와만 섬기라”고 했고, 15절에서는 “너희 섬길 자를 오늘날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고 했습니다.
제 아무리 아름다운 물고기라도 물을 떠나면 말라 죽습니다. 세계 최대의 항공모함도 바다를 떠나면 쇳덩어리에 불과합니다. 하나님의 피조물인 인간은 하나님을 멀리하거나 떠나면 존재의 의미도 가치도 없어지고 맙니다. 고로 예수님은 우리에게 너무도 당연한 진리를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15:5)
어떤 분들은 이곳 캐나다 땅에 와서 하나님을 더욱 가까이 하는 복된 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이곳 캐나다에 와서 하나님을 멀리하는 안타까운 분들이 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하나님을 멀리하는 이유는 세상의 쾌락이 좋아서, 혹은 세상에서 바쁘게 사느라고 하나님을 멀리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진정 행복이 아니라 불행이라고 성경은 분명히 거듭거듭 예언하고 있는 데도 계속 하나님을 멀리하고 지내는 것은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팔자인가?’ 할 정도로 참으로 신기하기까지 합니다. 그러면 반대로
2. 하나님을 친근히 하면 어떻게 됩니까?
9절을 보면 “오늘날까지 너희를 당한 자가 하나도 없느니라.”고 했고, 10절을 보면 “너희 중 한사람이 천명을 좇으리니”라고 했고, “여호와가 너희를 위하여 싸우심이라”고 했습니다. 창세기 14장을 보면 아브라함이 318인을 거느리고 네 나라 연합군을 격파한 기사가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군인도 아니고 지휘관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연합군을 물리치고 사로잡힌 조카 롯과 가족을 구출하고 빼앗긴 재산을 도로 찾았습니다.
창세기 14:20을 보면 그 당시 제사장이었던 멜기세덱이 전쟁을 이기고 돌아오는 아브라함을 축복한 사건이 기록되어있는데 “너희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라고 했습니다. 즉 이 말씀은 아브라함이 전쟁에서 이긴 것은 전략 때문도 아니고, 용기 때문도 아니고, 잘 훈련된 특공대 때문도 아니라 하나님이 이기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14:27을 보면 “여호와께서 애급 사람들을 바다 가운데 엎으셨다”고 했습니다. 이스라엘백성이 모세의 인도를 따라 애급 탈출 작전을 성공한 이유를 설명한 말씀입니다. 모세 역시 군인도 아니고 도하작전 전문가도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초강대국인 애급 군인들을 물리친 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이 애급사람들을 바다 가운데 엎으셨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출애굽기 15장에서 모세는 이렇게 노래합니다. “내가 여호와를 찬송하리니 그는 높고 영화로우심이요 말과 그 탄자를 바다에 던지셨도다.(1절) 여호와여 주의 오른손이 원수를 부수나이다.(6절) 주께서 오른 손을 드신즉 땅이 그들을 삼켰나이다.(12절)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요, 나의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시로다. 그는 나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높이리로다.(2절)”
출애굽기 17장에도 보면 을 보면 이스라엘이 아말렉이란 나라와 싸운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군대를 이끌고 아말렉과 전투를 벌이고 있는 동안 모세는 산꼭대기로 올라갔습니다. 거기서 모세가 손을 들고 하나님께 기도하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기도의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기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졌습니다. 당시 모세와 함께 산에 올라갔던 아론과 훌이 이것을 보고 돌을 가져다가 모세를 앉게 하고 양쪽에서 모세의 피곤한 손을 계속 붙들어 올렸습니다. 해질 때까지, 여호수아가 전쟁을 끝낼 때까지 기도하는 모세의 손을 끝까지 들어 주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아말과의 전쟁에서 이기게 하셨습니다.
여러분, 인생도, 운동경기도, 사업하는 것도 때때로 전쟁으로 비유됩니다. 그래서 전략이 필요하고 작전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누가 전략을 짜느냐에 따라 승패가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경우를 보면 육군사관학교도 없고, 훈련소도 없고, 군대 조직도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싸우면 이겼습니다. 블레셋을 이겼고, 미디안을 이겼고, 애급도 이겼고, 가나안도 이겼습니다.
그 비결은 다름 아닌 하나님과 친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전략을 따르고 그 전략대로 움직였기 때문입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위하여 싸워주셨기 때문입니다. 시편 24:8을 보면 “영광의 왕이 뉘시뇨 강하고 능한 여호와시오 전쟁에 능한 여호와시로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우리 하나님은 전쟁뿐만 아니라 모든 것에 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생각하기에 불가능한 일들을 가능케 하며, 안되는 일들을 되게 만들며, 힘든 일들을 쉽게 처리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3. 하나님과 친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1)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아야 합니다.
6절을 보면 “너희는 크게 힘써 모세의 율법 책에 기록된 것을 다 지켜 행하라. 그것을 떠나 좌나 우로 치우치지 말라”고 했습니다. 이 뜻은 차지도 않고 뜨겁지도 않은 미지근한 신앙이 되라는 뜻이 아닙니다. 중용을 지킨다고 하면서 양 다리 걸치는 회색분자가 되라는 뜻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깨닫고 바르게 실천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믿다가 잘못된 옆길로 새지 말라는 것입니다. 일편단심 꾸준하고 성실하게 하나님을 섬기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다가 가끔 좌로나 우리나 옆길로 새는 사람들을 종종 봅니다. 특히 청소년들의 경우 아직 신앙의 뿌리가 확실히 내리지 못하므로 환경이나 감정에 따라서 흔들거리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이런 신앙을 가리켜 ‘냄비신앙’이라고 합니다. 냄비는 조금만 열을 받으면 금방 물이 끓습니다. 뚜껑이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며 푹푹- 쉭쉭- 요란한 소리를 냅니다. 그러나 열을 빼면 금방 식어지고 차가와지고 맙니다.
제가 여의도 순복음 교회 청년선교회에 있으면서 이런 경우를 많이 봅니다. 지난주에는 철야예배에 나와서 땅을 치고 통곡을 하며 회개합니다. 그러다 다음 주에는 나이트클럽에서 술을 퍼마시며 미치도록 춤을 춥니다. 어제는 천국에 갔다가 오늘은 지옥에 갑니다. 어제는 천사가 되었다가 오늘은 금방 마귀가 됩니다. 이런 냄비 신앙이 되지 말고 뚝배기 신앙이 되어야 합니다. 뚝배기는 한번 열을 받으면 계속하여 열을 보존합니다. 그곳에다 찌개를 끓이면 밥을 다 먹기까지 찌개가 따뜻해집니다.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서 꾸준하고 성실한 신앙생활을 하면 하나님과 친해집니다.
2)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11절을 보면 “그러므로 스스로 조심하며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요한일서 2:15에 보면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한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세상의 자랑을 사랑할 것인지, 하나님을 사랑할 것인지 분명한 결단을 내리고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는다고 하여 세상도 사랑하고 하나님도 사랑하는 이중생활은 있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집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길 것임이니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눅16:13) 여호수아 24:15에서 여호수아는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고 했습니다. 하나님만을 섬기고 사랑하는 길을 택하겠다는 것입니다. 열왕기상 18:21을 보면 엘리야 선지자가 이렇게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권면합니다.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두 사이에서 머뭇머뭇하겠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하나님을 좇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을지니라.”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기적을 자기들의 눈으로 보았으면서도 하나님을 좇겠다고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믿다가 다가오는 핍박이나 불편함을 염려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만을 사랑하겠다는 분명한 결단을 하지 못한 그들은 결국 그 당시의 대세인 바알숭배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오늘날에도 우리가 하나님만을 사랑하겠다는 결단이 없으면 우리는 세상에 빠지고, 세상에 종노릇 하게 됩니다. 고로 우리는 아침에 일어나서 외쳐야 합니다. “나는 하나님만을 사랑하겠다.” 그리고 잠자리에 들기 전에도 외쳐야 합니다. “나는 하나님만을 사랑하겠다.” 그리고 순간순간 외쳐야 됩니다. “주여 당신을 사랑합니다.”
결론을 맺습니다. 하나님과 친하고 하나님을 사랑했을 때 이스라엘 왕조는 빛났고 번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멀리하고 하나님을 섬기지 않을 때에는 왕조도 망했고, 백성들도 고통을 당하고 망하고 말았습니다. 고로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주께서 택하시고 가까이 오게 하사 주의 뜰에 거하게 하신 사람은 복이 있나이다.“(시65:4)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시73:28) 아무쪼록 이 외국 땅에서도 하나님을 가까이 하고 하나님과 친근히 하여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축복과 행복에 참여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