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향한 인간의 끝없는 의심

날짜: 
2006/06/04
설교: 

민11:16-23 하나님을 향한 인간의 끝없는 의심
제가 신학교를 졸업하고 난 후 오산리 기도원에 전도사로 발령받아 있으면서 한국의 유명한 부흥사 목사님들의 설교를 들을 기회가 많이 있었습니다. 그중 어떤 부흥사 목사님의 설교를 들으면서 속으로 좀 웃은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저만 웃은 것이 아니라 옆에 있는 동역자 목사님이나 전도사님들도 그 분의 설교를 들으면서 저와 같이 웃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왜 그렇게 웃었느냐 하면 그 부흥 강사 목사님의 18번이 다름 아닌 ‘믿습니까?’였기 때문입니다.
부흥 강사 목사님들은 대개 ‘믿습니까?’라는 질문을 많이 합니다. 그것도 기도를 많이 하셔서 아주 굵은 목소리나 쉰 목소리로 무게를 딱 잡으면서 ‘믿습니까?’ 그러면 거의 대부분 성도님들이 ‘아멘!’ 하고 대답을 합니다. 만약 부흥 강사님의 ‘믿습니까?’라는 질문에 아멘을 하지 않으면 괜히 나만 믿음이 없는 것 같이 보이고, 나만 손해 보는 것 같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제가 설교를 들으면서 웃었던 이유는 그날의 부흥 강사님은 조금 과장하면 설교하는 것 보다 ‘믿습니까?’라는 질문을 더 많이 하셨습니다.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믿습니까? 믿습니까? 믿습니까? 믿으시면 아멘 합시다. 이 사실을 절대 의심하지 마십시오. 믿습니까? 믿습니까?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으십시오. 믿습니까? 믿습니까? 우리 하나님은 좋으신 하나님입니다. 믿습니까? 믿습니까?” 이러한 설교를 들으면서 어떤 분은 도대체 저 강사님이 ‘믿습니까?’라는 말을 얼마나 많이 하는지 일일이 세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너무나 ‘믿습니까?’라는 말을 많이 하니까 나중에는 고개를 저으면서 세는 것을 포기하고 멍하니 쳐다보고만 있었습니다.
저도 그 설교를 듣고 난 후에 그날 밤에 잠꼬대를 했습니다. 뭐라고 했겠습니까? “믿습니다. 믿습니다. 믿습니다.” 그리고 기도원에서 같이 사역을 하던 목사님들과 전도사님들이 만나면 인사가 ‘믿습니까?’ ‘믿습니다.’ 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인사를 하면서 서로
즐겁게 웃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 부흥 강사님은 습관적으로 ‘믿습니까?’라는 말을 그렇게 많이 하신 것 같은데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햐, 인간이 얼마나 하나님을 믿지 않고 의심을 많이 하면 하나님이 저 목사님의 입술을 통하여 순간마다 ‘믿습니까?’라는 말로 우리의 믿음을 체크하려고 하시느냐?”
여러분, 한번 묻겠습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을 믿습니까?” 물론 이 질문에 여러분들 대부분이 ‘아멘’으로 대답할 것입니다. 우리가 믿는 여호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라도 이 세상에는 어떤 절대적 존재, 즉 신이 있다는 것을 믿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종교는 다르고, 신은 다르더라도 그들이 추구하는 신은 어떤 절대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우리 크리스천들도 사도신경에 이렇게 고백을 합니다.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을 내가 믿사오며...”
여러분, 다시 한번 묻겠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습니까? 그 분이 세상을 창조하신 것을 믿습니까?” 지금 여기 계신 분들은 전능하신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신 것을 분명히 믿고 아멘을 하시지만, 혹 이 자리에 계신 분들 중에는 무의식적으로 군중심리에 의해 아멘을 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 질문에 아멘이 아니라 속으로 노멘이라고 외치는 분이 있을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한 것이 아니라 세상은 우연히 생겨났다고 믿고 있으며, 인간은 원숭이로부터 진화가 되었다고 믿고 있습니다. 즉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존재와 하나님의 실력을 의심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모세가 하나님의 실력을 의심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430년간 애급에서 종살이를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기적으로 애급에서 탈출에 성공하게 됩니다. 그리고 약속의 가나안 땅으로 가기 위해 광야 길을 통과하게 되었습니다. 수백만 명이나 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하여 하나님이 하늘에서 만나를 내려서 먹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아침 점심 저녁 날마다 만나를 먹으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불평이 터져 나왔습니다. “잉잉잉- 만나는 싫어 우리 살람 만나 먹고 정욕 떨어졌어 해-”
어른이 정욕 떨어졌다고 음식 투정을 하니까 아이들도 같이 음식 투정을 합니다. “잉잉잉- 고기 줘! 고기 줘! 고기 줘!” 한 번 불평이 터지니까 그 동안 쌓였던 불평이 계속 터지고 나중에는 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각기 장막에서 불평만 하고 울고 있었습니다. 아니, 하나님이 애급에서 노예 생활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불쌍히 여겨서 그들에게 자유와 해방을 주었으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날마다 넘치도록 감사를 해야 하는데 오히려 불평이 넘쳐나고 말았습니다. 만나를 오래 먹어서 싫증이 났다면 “하나님, 이제는 고기가 먹고 싶어요. 앨버타 비프 좀 먹여 주세요.”라고 부탁하면 될 텐데 무조건 불평만 늘어놓고 있습니다.
그러자 모세가 스트레스를 받아 하나님께 하소연을 합니다.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이렇게 괴롭게 하십니까? 내가 이 백성들을 잉태 했습니까? 낳았습니까? 어찌하여 저들이 나로 향하여 울면서 고기를 먹게 하라고 하십니까?” 그러자 하나님이 이렇게 대답을 하십니다. “모세야, 이제 내가 너희들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할 텐데 하루나 이틀이나 닷새나 열흘만 먹을 것이 아니라 한 달 동안 지긋 지긋하게 먹게 하리라.”
그러자 모세가 대답합니다. “아니 하나님, 지금 나와 함께 하는 백성들이 남자 보행자만 60만 명이요, 여자들과 노약자들을 합하면 수백만 명인데 어떻게 이들을 한 달간 고기를 먹게 하겠습니까? 그들을 위하여 양떼와 소떼를 잡은들 족하오며 바다의 고기를 모은들 족하오리이까?” 이 말을 들은 하나님이 말씀합니다. “모세야, 여호와의 손이 짧아졌느냐? 네가 이제 내 말이 응하는 것을 보리라.”
여러분, 모세는 하나님의 기적을 수없이 체험한 사람입니다. 앞서 애급을 탈출할 때에도 하나님이 열 가지 재앙으로 애급 사람들을 치신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습니다. 그리고 홍해가 갈라지는 것도 보았습니다. 쓴 물이 단물로 바꾸어지는 것도 보았습니다. 구름 기둥과 불기둥이 나타나서 이스라엘을 인도하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어찌 보면 모세는 하나님을 의심할 자격이 없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던 사람이요. 하나님의 ,기적을 수없이 보았던 사람이요, 하나님의 능력의 지팡이를 가진 사람입니다.
그런데 오늘의 본문에 보니 모세는 또 다시 하나님을 의심합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모세의 의심이 이해가 됩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자신의 실력을 보여 주십니다. 갑자기 세찬 바람이 불어옵니다. 그러더니 하늘이 시커매 집니다. 하늘을 쳐다보니 메추라기 떼가 온통 하늘을 뒤 덮었는데 그 메추라기 떼가 마치 소낙비가 내리듯이 우두두둑 땅에 쏟아집니다. 자그마치 사방 32km나 되는 거리에 90cm가 되는 높이로 고기가 덮이게 되었습니다. 32km라면 건물과 주택들이 모두 보이는 캘거리 시 정도가 됩니다. 그 넓은 지역에 90cm 가량의 눈도 아닌 고기가 뒤덮였으니 얼마나 장관이 펼쳐졌습니까?
그러자 백성들이 이틀 동안 잠도 제대로 안자고 메추라기를 모았습니다. 적게 모은 자도 10호멜 정도 모았습니다. 10호멜 정도면 우리 교회 식당에 있는 큰 물통이 18리터니까 약 122통 정도가 됩니다. 그러니까 캘거리 시민이 내년이면 100만 명이 된다고 하는데 그 보다 훨씬 더 많은 백성들이 한달 정도 지긋지긋하게 고기를 먹은 것입니다. 거기다가 소떼와 양떼를 잡으려면 그것을 도살해야 하고 가죽을 벗기는 데에만 굉장한 수고를 해야 하는데 조그만 메추라기다 보니 그런 수고도 할 필요가 없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불평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조차 40년 간 만나를 내려 주셨습니다. 그리고 불평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조차 한 달간 고기를 지긋지긋하게 먹여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 불평하지 않고 감사를 한다면 하나님이 어찌 우리를 평생 먹여 주시지 않겠습니까? 여러분, 성경은 말씀합니다. “너희는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공중의 새도, 들의 백합화도,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들어갈 들풀도 하나님이 돌보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마7:25-30)
여러분, 사람들은 성경의 기적을 믿습니다. 오늘의 본문도 믿습니다. 그러나 성경의 기적이 자신에게도 나타나는 것은 잘 믿지 않습니다. 성경의 기적은 어디까지나 성경의 기적이고, 그것은 옛날에 일어난 사건이고, 지금 자신에게는 그런 기적이 일어나리라고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그것은 의심이 아니라 차라리 불신이요 불신보다 더한 무관심입니다. 하나님이 전능하시다고 고백은 날마다 하지만,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셨다고 믿고는 있지만 그 하나님이 정작 자신에게 나타날 때면 언제나 의심을 합니다.
예수님이 3년간 제자들에게 그렇게 기적을 많이 베푸셨지만 정작 예수님이 부활하셔서 그들 앞에 나타나시니까 그들은 또 다시 예수님을 의심합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안타깝게 말씀합니다. “어찌하여 두려워하며 어찌하여 마음에 의심이 일어나느냐?“(눅24:38) 더구나 도마라는 제자는 자기 손가락을 예수님의 못자국 난 손과 창자국 난 옆구리에 넣어보아야 믿는다고 하자 예수님이 그에게 나타나 말씀하셨습니다. "네 손가락으로 내 손을 만져보아라. 또 네 손을 내 옆구리에 넣어보아라. 그리고 의심을 버리고 믿어라."(공동번역 요20:20)
여러분, 저도 하나님의 기적을 많이 체험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이 정도 신앙생활하면 의심이 없어야 하는데,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되 독생자를 주시기까지 이토록 사랑하셨기에 하나님을 의심할 필요가 전혀 없는데 실제 생활에서는 그렇지가 않습니다. 당장 지갑에 돈이 떨어지고 문제가 닥치면 괜히 근심하게 됩니다. 더구나 외국 땅에서 문제가 터지면 더욱 근심과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잠시 후에는 그 문제가 해결이 되고, 지갑도 하나님이 채워주시는 것을 체험하면서도, 또다시 문제가 생기면 또 다시 의심하고, 또 다시 걱정합니다. 왜 그런지 모르겠어요.
성경에 보면 예수님은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라고 말씀하셨는데, 그리고 야고보서 1장 6-8절에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라고 말씀하셨는데, 그리고 ‘믿습니까?’ 하면 즉시 ‘믿습니다.’라고 대답은 잘 하는데 어디서부터 인지 의심의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릅니다. 그리고 의심이 들어오면 마음이 불안정해집니다. 야고보서 1장 8절을 공동번역으로 보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의심을 품은 사람은 마음이 헷갈려 행동이 불안정합니다.”
여러분, 진짜 그래요. 의심이 들어오면 그 귀한 평안을 잃어버립니다. 그리고 자신이 초라해집니다. 크리스천으로서의 자신감도 없어집니다. 그렇게 되면 믿음의 지도자가 되지도 못합니다. 즉 의심이 자신을 파괴하고 불행으로 몰고 가는 것입니다. 생각해보세요. 어떤 상황이라도 하나님만 믿고 의지하면 하나님의 솜씨가 나타나는데, 의심이 들어오기에 근심과 스트레스가 들어오고, 짜증이 들어오고, 삶이 파괴되는 것입니다. 고로 의심을 물리치십시오. 오늘의 의심도 물리치시고, 내일의 의심도 물리치십시오.
하나님은 오늘도 당신을 완벽하게 돌보시고 있고, 내일도 당신을 완벽하게 돌보실 것이고, 세상 끝날 까지 하나님은 당신을 지켜주실 것입니다. 믿습니까? 믿습니까? 아무리 믿는다고 하지만 상황은 닥쳐보아야 합니다. 그러나 잊지 마십시오. 그때가 되면 또 의심이 생깁니다. 그럴 때 의심이라는 마귀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마시고 성령의 음성을 들으십시오. 사람은 얼마나 하나님을 신뢰하느냐에 따라서 평안과 행복이 결정이 됩니다. 그러나 끊임없이 질기도록 우리의 행복과 평안을 가로막는 녀석이 있습니다. 다름 아닌 의심입니다. 같이 한번 따라합시다. “의심아, 물러가라!”
여러분, 묻고 싶습니다. 어떤 의심이 당신의 신앙과 평안과 삶을 파괴합니까? 그 의심을 오늘 떨쳐 버리십시오.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이신 것을 굳게 믿으십시오. 예수님이 영으로 지금 이 자리에 함께 있다는 것을 확실히 믿으십시오. 그리고 그 분이 세상 끝날 까지 나를 완벽하게 돌보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믿으십시오. 그리고 믿음과 함께 주시는 평안과 용기를 얻으십시오. 힘을 내십시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