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사람은

날짜: 
2012/08/06
설교: 

행22:2-11 하나님의 사람은

바울 이야기를 드리려고 합니다. 바울의 예수님을 믿기 전에 이름은 사울이었습니다. 사울의 뜻은 <가장 큰 자>입니다. 바울의 뜻은 <가장 작은 자>입니다. 예수님을 영접하고 가장 큰 자가 가장 작은 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사울이 스스로 가장 큰 자라고 여길 때에 사람들은 그에게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가장 작은 자라고 고백할 때 그를 가장 큰 자로 여겨주었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에게 열심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과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이단인 줄 알았습니다. 율법으로 구원받는다는 진리가 머리에 박혀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는 이들은 모세 율법으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구원받는다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주장하는 스데반을 돌로 쳐 죽이는데 동참하였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잡아 죽이고 핍박하였습니다.
신앙을 지키고 싶은 사람들이 이 곳 저 곳으로 도망갔습니다. 가장 도망을 많이 간 곳이 소아시아였습니다. 그 중에서도 다메섹이었습니다. 바울은 그 곳까지 따라가서 핍박하려고 다메섹으로 가던 중이었습니다. 강력한 빛이 하늘에서 쏟아져 내렸습니다. 얼마나 강력한 빛이었는지 그만 그 빛에 눈이 멀었습니다. 그리고 땅에 엎드려졌습니다. 하늘에서 예수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려 나를 핍박하느냐?” “주여! 뉘시니이까?” “나는 네가 핍박하는 나사렛 예수라.”
그리고 다음 말씀이 의미심장합니다. “나와 함께 있는 사람들이 빛은 보면서도 나더러 말하시는 이의 소리는 듣지 못하더라.” 바울이 다시 물었습니다. “주여. 무엇을 하리이까?” “일어나 다메섹으로 들어가라. 정한바 너의 모든 행할 것을 거기서 누가 이르리라.” 바울은 함께 있는 사람들의 손에 끌려 다메섹에 들어갔습니다. 오늘 본문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이상한 것을 몇 가지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특별하게 관심을 가지는 사람의 특징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1. 하나님의 사람은 귀가 다릅니다.
바울이 다메섹으로 갈 때 혼자 간 것이 아니었습니다. 몇 명인지는 모르지만 동행인이 있었습니다. 하늘의 음성이 있었습니다. 바울은 하늘의 주님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같이 가는 동행인들은 그 음성을 듣지 못 하였습니다. 성경은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나와 함께 있는 사람들이 빛은 보면서도 나더러 말하시는 이의 소리는 듣지 못하더라.”
같은 자리에 있다고 다 같은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바울과 동행하던 사람들은 다른 소리는 다 들어도 하늘의 소리만은 못 들었습니다. 그러나 바울만은 하늘의 소리를 듣고 생생하게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귀가 다릅니다. 다른 사람이 듣지 못하는 소리를 듣습니다. 영의 소리입니다. 느낌이 다릅니다. 동물들은 사람들이 듣지 못하는 소리를 듣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보통 사람들이 듣지 못하는 영의 소리를 듣습니다.
2. 하나님의 사람은 눈이 다릅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나와 함께 있는 사람들이 빛은 보면서도 나더러 말하시는 이의 소리는 듣지 못하더라.” 바울과 동행하는 사람들은 모두 빛을 보았습니다. 유대인들은 특별한 빛이 있으면 특별한 일이 있을 징조라고 여겼습니다. 하나님은 빛이라고 여겼습니다. 천사들도 빛의 천사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오늘의 빛은 태양빛이 가장 강한 정오에 나타났습니다. 그 강한 빛을 보고 바울은 엎드려졌습니다. 그러나 원어를 보면 그냥 엎드려진 것이 아니라 꺼꾸러졌습니다. 쓰러진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만 눈이 멀었습니다. 동행인들은 일반 빛을 보는 정도에 그쳤습니다. 같이 빛을 보았지만 바울에게만 신비의 빛이 비추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는 그냥 평범한 빛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같은 빛을 통하여서도 하나님의 택한 사람에게만 강력한 체험을 주셨습니다. 바울은 고백합니다. “나는 그 빛의 광채를 인하여 볼 수 없게 되었으므로 나와 함께 있는 사람들의 손에 끌려 다메섹에 들어갔노라.“
바울은 그 빛을 보고 육신의 눈이 멀었었는데 그 후에 영의 눈이 열렸습니다. 같이 동행하던 사람들은 육의 눈이 멀지 않았는데, 반면 영의 눈은 멀었습니다. 저와 여러분들도 다른 사람이 들을 수 없는 하나님의 영의 음성을 듣고, 다른 사람이 볼 수 없는 하나님의 영의 신비를 볼 수 있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사울이 바울된 것은 한 마디로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바울은 단 한 번도 선교사가 되게 하여 달라고 기도한 적이 없었습니다. 꿈에도 예수님을 믿고 싶다고 생각하여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 바울이 예수님을 위한 사도가 된 것은 100%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얼마나 강력한 신비로 붙들었든지 상상을 초월하는 방법이었습니다.
숭의감리교회 이호문 목사님이 자신이 목사가 된 간증입니다. 그의 아버지는 이성해 목사님이셨습니다. 이북에서 피란 나와서 평생을 혼자 사신 분이십니다. 이호문 목사님이 어렸을 때 충격을 받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그 사건이 그를 꼼짝 못하게 하였습니다. 아버지 책상위에서 아버지 돈을 훔쳐서 맛있는 것을 사먹었습니다. 아버지가 불러 놓고 말했습니다. “마태복음 5장 29절부터 30절까지를 찾아 읽어라.”
아들 이호문이 성경을 찾아서 읽었습니다. “만일 네 오른 눈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지우지 않는 것이 유익하며 또한 만일 네 오른손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몸이 지옥에 던지우지 않는 것이 유익하니라”
아버지가 물었습니다. “너 어느 손으로 돈을 훔쳤니?” 그는 오른 손을 내밀며 말했습니다. “이 손입니다.” 아버지는 왼 손에 칼을 들려주시면서 말했습니다. “네 오른 손을 잘라라.” 호문이는 깜짝 놀랐습니다. 칼을 내려놓고 빌면서 말했습니다. “아버지! 다시는 안 그럴 터이니 한번만 용서하여 주세요.”
아버지가 성경을 달라고 하시더니 읽으셨습니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엡2:8-9)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행4:12)
이 말씀을 읽으시고 말했습니다. “호문아! 예수님이 우리 죄를 짊어 죽으셨으니 십자가로 말미암아 값없이 죄사함을 받았다. 하나님의 은혜로 너는 팔을 안 잘라도 된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은 행위로 된 것이 아니요,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은혜라는 것은 공짜로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것입니다.
바울이 하나님의 사람이 된 것도 하나님의 강력한 은혜였습니다. 그런 은혜가 오늘 저와 여러분에게도 임하기를 축원합니다. 조금 더 본문을 상세히 보려고 합니다. 6절에서 당시 상황을 이렇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다메섹에 가까이 갔을 때에, 오정쯤 되어, 홀연히 하늘로부터, 큰 빛이 나를 둘러 비치매, 내가 땅에 엎드려져 들으니" 한 마디 한 마디가 중요한 암시입니다.
이 사건은 다메섹에 가까이 갔을 때 일어났습니다. 만일 다메섹에 가까이 가지 않고, 다메섹과 멀리 떨어져 있을 때 사건이 일어났다면, 바울은 먼 거리를 눈이 먼 채 걸어야 했습니다. 이것도 바울을 향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은 공간과 시간을 계산하시면서 기적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이 사건이 일어난 시간이 오정 쯤 되었습니다. 12시경입니다. 하루 해 중에 가장 빛이 날 때입니다. 그 빛보다 더 큰 빛이 임했습니다. 하나님의 빛이 얼마나 강한지 체험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홀연히 빛이 임하였습니다. 즉 갑자기 빛이 쏟아졌습니다. 순식간에 된 사건입니다. 그리고 그 빛은 하늘로부터 내려왔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빛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것은 ‘큰 빛이 나를 둘러 비치매’라는 말입니다. 눈이 멀 정도의 빛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빛은 오직 바울에게만 둘러 비쳤습니다. 바울만 눈이 멀었습니다. 다른 사람은 아무렇지도 않았습니다. 바울만 쓰러졌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빛은 보았는데 눈이 멀쩡하였고 다른 사람들은 쓰러지지 않았습니다.
성경을 보면 여러 사람들이 있지만 유독 하나님께 택함을 받고 은혜를 받는 사람이 있습니다. 구약 성경에 보면 이스라엘 땅이 기근과 가뭄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그 중에 힘없는 과부들과 그의 자녀들이 가장 먼저 죽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엘리야 선지자를 이방인인 시돈 땅의 한 과부에게 가도록 하셨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머물면서 그 과부의 집에 먹을 양식을 기적으로 채워주셨습니다. 이스라엘의 다른 과부들도 많은데 오직 이 과부만이 택함을 받고 은혜를 입었습니다. 이렇게 특별하게 은혜를 받는 사람이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 하나님의 사람은 넘어진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바울은 엎드러진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람의 특징입니다. 오뚝이는 넘어뜨리면 넘어진 자리에서 계속 다시 일어납니다. 성경은 말씀하기를 의인은 7번 넘어져도 8번 일어난다고 했습니다. 잠언 24:16 말씀입니다. "대저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나려니와 악인은 재앙으로 인하여 엎드러지느니라."
지금으로부터 약 100년 전 미국 사람인 스탠리 스타인(Stanry Stein, 1899-1967) 이야기입니다. 몸이 이상합니다. 진단해보니 문둥병에 걸렸습니다. 머리가 빠지고 눈썹이 빠졌습니다. 손이 문드러졌습니다. 코도 없어졌습니다. 급기야 눈이 멀었습니다. 자살하려고 하였습니다. 쓰러진 자리에서 기도하였습니다. 그러나 다시 한 번 굳세게 마음먹고 살아 보기로 작정했습니다.
그는 작가가 되기로 결심하고 책방으로 달려갔습니다. <작가가 되는 법>이라는 책을 샀습니다. 자기가 읽을 수 없으니까 읽어 달라고 하였습니다. 손가락이 없어서 글을 쓸 수가 없었습니다. 녹음기에 녹음으로 책을 썼습니다. 그가 쓴 유명한 책이 있습니다. "이제는 외롭지 않다."라는 책입니다. 그는 이 책에서 말합니다. “나는 잃어버린 것을 보고 슬퍼하지 않고 남아있는 것을 가지고 힘차게 살아간다.” 그는 문둥병으로 한때 넘어졌지만, 그 넘어진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여러분! 평범한 사람들은 넘어진 자리에서 주저앉아 낙심하고 원망불평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은 도리어 넘어진 자리가 일어나는 자리입니다. 용수철처럼 튀어 일어나는 기회가 됩니다. 미국의 제16대 대통령 링컨(Abraham Lincoln ; 1809-1865)이 젊었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변호사 시절 주의회 의원에 출마하였습니다. 그러나 낙방하였습니다. 다시 하원의원에 출마하였습니다. 그러나 역시 낙방하였습니다.
이렇게 몇 번 낙방을 거듭하였습니다. 링컨은 철저하게 좌절과 절망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주변 친구들은 링컨을 보면서 염려하고 있었습니다. “저러다 링컨이 자살하는 건 아니냐?” 링컨 친구들은 링컨에게 비상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낙선하던 날 링컨은 머리를 말끔히 깎았습니다. 목욕도 하였습니다. 고급 음식점에 들어가서 맛있는 음식도 먹었습니다. 그리고 길을 걸으며 자기가 자기에게 외쳤습니다. “오늘 떨어졌어도 내일 다시 할 수 있다, 부활의 주님이 도우실 것이다.”
그때 링컨은 자기 상황을 이렇게 기록하여 놓았습니다. “나는 지금 이 세상에서 가장 비참한 인생을 살고 있다. 나는 재기할 수 없을 것만 같은 심정이다. 나는 인생의 막다른 골목에 있다.” 그러나 넘어진 자리에서 그 날 다시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열심히 정치하였습니다. 공화당에서 대통령 후보 지명을 받아 대통령에 당선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남과 다른 눈으로, 남과 다른 귀를 가지고, 넘어진 자리에서 일어나는 사람이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아무쪼록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외국 땅에서도 보통 사람과 다른 눈으로 볼 것을 보고, 남이 보지 못할 것은 듣고, 그 자리에서 일어나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