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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의 말씀은 위대한 사도 바울이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장면입니다. 바울은 당시 문명의 발상지요,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아시아에 복음을 전하기를 원하였습니다. 그러나 성령님이 아시아에서 복음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고, 당시에 미개 민족이라고 할 수 있는 유럽으로 가도록 인도하셨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자기 동족인 유대인을 사랑하여 유대인에게 복음을 전하기를 힘썼지만 하나님은 그를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도록 인도하셨습니다. 여러분, 사람들은 누구나 최고, 최상의 것을 얻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이리저리 재어보고, 들어보고, 생각하고, 알아보고, 현지답사하기를 원합니다.
이민이나 유학을 올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크리스천들은 하나님의 인도를 받으려고 기도하고, 혹은 예언자를 만나려고 하고, 꿈과 환상과 계시나 말씀을 얻으려고 합니다. 하나님을 잘 믿는 크리스천이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인도를 잘 받는 크리스천이 되어야 함이 마땅합니다. 로마서 8:14에는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했습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은 분명히 우리를 인도하시는 분이십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너희의 구속자시요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이신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는 네게 유익하도록 가르치고 너를 마땅히 행할 길로 인도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라”(시48:1) “이 하나님은 영영히 우리 하나님이시니 우리를 죽을 때까지 인도하시리로다.”(시48:14) “나는 너를 애급 땅에서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 하나님 여호와로라.”(신5:6)
하나님은 애급을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셨습니다. 물론 지중해를 통하여 가나안 땅으로 가는 길이 지름길입니다. 그러나 그곳으로 통하여 가려면 블레셋과 전쟁을 해야만 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노예생활을 오래하다 보니 전쟁을 무서워하는 줄 아시고 그들을 일단 광야로 인도하셨습니다.
이를 통해 보면 하나님은 꼭 빠른 길로만 인도 하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물론 ‘빨리빨리’를 좋아하는 한국인들의 속성상 그런 느린 길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종종 이해가 안 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앞을 내다보시는 분이십니다. 고로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내 스스로 결정을 내리고 나아가는 것보다 훨씬 좋습니다.
제가 얼마 전에 이런 꿈을 꾸었습니다. 차를 몰고 저의 가족들이 어디 먼 지역을 여행 중에 있었습니다. 그곳으로 가는 길이 두 개가 있는데 저는 제 나름대로 경치도 좋은 지름길을 택하여 갔습니다. 그런데 가다 보니 시냇가가 나오는데 그만 비가 많이 와서 물이 많이 불어났습니다. 그곳을 차로 빠져나오느라고 식구들 모두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도착지에 가지도 못하는 꿈이었습니다.
그리고 깨달았습니다. “아- 빠른 길이 꼭 좋은 길이 아니구나! 주여- 빠르지 않아도 좋사오니 주님이 원하시는 길로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여러분, 하나님은 출애급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거친 광야로 인도하셨습니다. 물론 고생은 됩니다. 당장 먹을 양식도 문제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하늘에서 만나를 내려 40년간 양식이 부족하지 않도록 하셨습니다.
또한 그들이 광야에서 어디로 갈지 모르고 방황할까봐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그들의 가는 길을 인도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들 중에 한 사람도 길을 잃어버리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많은 문제가 생겨도 모세를 통하여 여러 가지 문제를 하나하나 해결해나가도록 하셨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을 향하여 다윗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시23:1-2) 여러분, 목자가 자기의 양떼를 인도하듯이 하나님은 자기 백성인 우리들을 인도합니다.
오늘날 여러분 각자 하나님께 무엇을 인도받기 원합니까?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인도가 필요한 아주 중요한 것들이 있습니다. 내가 이곳 캐나다 어느 주, 어느 도시로 갈까요? 토론토로 갈까요? 밴쿠버로 갈까요? 캘거리로 왔어요. 그리고 여기에 와서 어느 교회로 갈까요? 집은 어디에다 잡아야 할까요? 사업과 직장은 무엇으로 할까요? 결혼 배우자는 누구로 할까요? 공부는 무엇을 할까요?
이러한 중요한 것들을 “주여- 내 뜻대로 마옵시고 주님의 뜻대로 인도받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하고 있는 줄 압니다. 그리고 그렇게 기도를 했으면 하나님의 그 인도함에 순종하겠다는 바른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어떤 젊은 청년 한 사람이 버스에 탔습니다. 버스가 심하게 흔들려서 할머니가 자기에게 부딪히니까 이렇게 말합니다. “주여, 시험에 들게 마옵소서!”
그런데 조금 있다가 한 예쁜 아가씨가 자기에게 부딪히니까 이렇게 말합니다. “주여, 뜻대로 하옵소서!” 즉 자기가 원하는 방향, 자기가 좋아하는 것,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을 미리 정해 놓고 하나님이 자기에게 따라와 주기를 원하는 마음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인도를 제대로 받지 못합니다.
예레미야 2:17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를 길로 인도할 때에 네가 나를 떠남으로 이를 자취함이 아니냐?“ 즉 하나님은 유다 백성들을 생명의 길로 인도하려고 하는데 유다 백성들은 자꾸 애급과 앗수르를 의지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바벨론에 의해 결국 멸망을 당하고 맙니다. 즉 자기 생각에 사로잡히고, 자기고집을 부리고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것을 거부하면 재미없습니다.
여기서 재미없다고 하는 뜻은 단지 육체적, 정신적으로 또는 환경적으로 고생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때로는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길은 고생이 되기도 합니다. 내 뜻에 맞지 않고 불행하게 보일 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수치를 맛보아야 되고, 자존심이 상할 때도 있습니다. 자기의 만족을 채우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경우를 보십시오. 주님은 기도합니다.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이루어지기를 원하나이다.” 즉 예수님에게 하나님의 인도는 고생길이었고 십자가의 길이었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보니 그 길이 생명의 길이었고, 구원을 완성시키는 하나님의 계획이었습니다.
종교 개혁을 한 마르틴루터를 보십시오. 그는 가난한 광부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어려서부터 부자 동네 골목에서 노래를 부르며 그 번 돈으로 공부를 했습니다. 그는 자라서 대법률가가 되려고 법대에 갔습니다. 그러나 그 길도 나중에는 막혔습니다. 그리고 수도원에 갔으나 수도사의 길도 막혔습니다. 그러나 결국 그는 종교 개혁가의 길을 가도록 하나님의 인도를 받았습니다. 비록 그 길이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심히 고달픈 길이지만 하나님은 그 길로 그를 인도하셨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손에 인도받는 자는 세상적으로는 실패할 수 있습니다. 세상 명예와 성공과 부귀와 안락한 생활을 얻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에 인도받아 가면 결국 하나님으로부터 얻는 좋은 것이 있습니다. 우리 크리스천들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그것을 바라보고 하나님께 인도받기를 원하지, 세상 것을 먼저 얻으려고 하나님의 인도를 구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단지 세상 것은 하나님의 뜻을 좇아 갈 때 하나님이 주시면 받는 것이요, 안주시면 안 받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인도를 받을 때 철저히 하나님의 영광을 좇아간다는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많은 크리스천들이 하나님이 고생길로 인도하면 “주여, 그것은 틀렸습니다. 예수의 피!” 하며 다시 기도합니다. 그때 마귀가 세상의 그럴듯한 길로 인도하면 “주여, 옳습니다. 어찌 그리 용하십니까? 과연 과연!” 하고 감탄하며 그 길로 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나중에 보면 꽝(Nothing)입니다.
현대인들은 고난(고생)을 두려워합니다. 하나님이 자기를 조금 고생 시키는 길로 인도하면 순종하지 않고 불평하고 원망합니다. 더구나 하나님의 인도함을 받았으면서 조금만 고난이 다가오면 “그때 그것이 마귀 역사였나!” 하고 의심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고생이냐 아니냐로 판단하는 자세는 참 크리스천의 길로 가는 것을 방해합니다. 이런 자세로는 신앙이 자라지 못합니다.
특히 한국 사람들은(크리스천들) 명예와 부귀를 너무나 추구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일을 할 때에도 반드시 큰일을 하고 명예를 얻어야만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하고, 작은 일에 보람을 느끼고 고생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생각하고, 나아가 미련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분들은 하나님이 그런 작은 일, 혹은 고생길로 인도하면 가차 없이 하나님을 거역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인도의 줄을 단호히 끊어버립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인도를 바르게 받기 위해서는 현재의 고난까지 받아들여야 합니다. 내 감정과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이 다를 수 있다는 것도 받아들여야 합니다. 때로는 내 욕심과 자존심도 버려야 합니다. 때로는 죽음까지도 받아들여야 합니다. 당장 현재(현실)만 보지 말고 미래와 영원한 세계를 보아야 합니다. 내 생각이 아닌 하나님의 평가와 하나님의 판단을 살펴야 합니다.
그리고 현재에 죽도록 충성하면 다음의 길은 하나님이 자연스럽게 때를 따라 인도하십니다. 아직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가 아닌데 대학을 빨리 지금 당장 인도해 달라고 하나님께 조르면 하나님이 어떻게 인도하겠습니까? 그리고 하나님이 아무런 인도도 하지 않았는데 자기 스스로 “믿습니다!” 하고 나아가면 나중에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때에는 영적으로 길을 잃고 방황하는 사람이 되고 맙니다. 그리고 후딱 10년 20년이 지나가고 맙니다.
여러분, 억지로 하나님의 인도를 구하려고 신령한 척 하지 말고, 고생이 되더라도 현재에 보람을 누리며 충성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렇게 작은 일에 충성하다 보면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때가 되면 자연스럽게 인도하십니다. 그런데 충성은 안하고, 고생은 안하고, 괜히 좋은 것만 얻으려고 하는 보따리 신자, 얄팍한 신자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의 인도를 가장 잘 받는 사람이 누구일까요? 죽도록 충성하는 사람입니다. 오늘 하나님께 죽도록 헌신하면 때를 따라 하나님이 그 다음, 또 그 다음의 좋은 길을 인도합니다. 아무쪼록 짧은 인생길을 가는 데에 있어서 주님이 인도하시는 그 길을 주님과 동행하며 행복하게 가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