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쉽게 갑시다.

날짜: 
2021/06/06
말씀: 
눅7:2-10
말씀구절: 

2 어떤 백부장의 사랑하는 종이 병들어 죽게 되었더니

3 예수의 소문을 듣고 유대인의 장로 몇 사람을 예수께 보내어 오셔서 그 종을 구해 주시기를 청한지라

4 이에 그들이 예수께 나아와 간절히 구하여 이르되 이 일을 하시는 것이 이 사람에게는 합당하니이다

5 그가 우리 민족을 사랑하고 또한 우리를 위하여 회당을 지었나이다 하니

6 예수께서 함께 가실새 이에 그 집이 멀지 아니하여 백부장이 벗들을 보내어 이르되 주여 수고하시지 마옵소서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7 그러므로 내가 주께 나아가기도 감당하지 못할 줄을 알았나이다 말씀만 하사 내 하인을 낫게 하소서

8 나도 남의 수하에 든 사람이요 내 아래에도 병사가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

9 예수께서 들으시고 그를 놀랍게 여겨 돌이키사 따르는 무리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에서도 이만한 믿음은 만나보지 못하였노라 하시더라

10 보내었던 사람들이 집으로 돌아가 보매 종이 이미 나아 있었더라

설교: 

고수와 하수의 차이가 있습니다. 고수는 아주 어려운 것도 쉽게 쉽게 합니다. 반면 하수는 쉬운 것도 스스로 어렵게 합니다. 스포츠 운동에서도 보면 고수는 어려운 플레이도 쉽게 합니다. 노하우가 몸에 배여 있기 때문입니다. 반면 하수는 쉬운 플레이도 어렵게 합니다. 그래서 보는 사람의 마음을 불안하게 합니다.

야구의 경우를 보면 상대방이 어려운 타구를 외야 깊숙이 날렸습니다. 이때 수비수가 고수면 타구의 낙하지점을 미리 예측하여 그곳에 미리 가 있습니다. 그리고 쉽게 볼을 잡아서 아웃시킵니다. 반면 하수는 볼이 자기 쪽으로 날아올 때 낙하지점을 파악하지 못해 스타트가 늦게 됩니다. 결국 허둥지둥 안절부절 하다가 실수를 합니다.

예술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피아노를 비롯해 악기를 연주할 때 고수는 어려운 곡도 쉽게 연주합니다. 듣는 사람, 보는 사람, 청중들이 편안함을 느낍니다. 반면 하수는 같은 곡이라도 어려워합니다. 그것을 보고 듣는 청중들도 어렵습니다. 때로는 청중으로서 당황스럽고 미안한 마음이 들기까지 합니다.

제가 오늘의 설교를 준비하면서 인터넷을 통해 좀 찾아보았습니다. 이런 글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어렵게 해드려 죄송합니다. 이제 쉽게 갑시다.” “어려울 때는 짐 좀 덜고 쉽게 갑시다.” “어렵지만 쉽게 갑시다.” “거 좀 쉽게 갑시다.” ‘전세집 쉽게 구하기’ ‘공부 쉽게 하기’ ‘시험 준비 쉽게 하기’ ‘시어머니 쉽게 하기’ ‘며느리 쉽게 하기’ ‘상사 쉽게 하기’ ‘살림 쉽게 하기’

특히 저의 눈에 확 들어오는 것이 있습니다. 다름 아닌 ‘요리 쉽게 하기’입니다. 요즘 COVID-19으로 인해 식당에 갈 수가 없습니다. 그런지 꽤 오래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집에서 늘 똑같은 음식을 먹기가 지긋지긋합니다. 저의 경우 집 사람도 BC Surrey에 있다 보니 음식해줄 사람이 없습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요리하는 법을 인터넷을 통해 슬슬 배웠습니다. 이제는 저의 유트브 동영상 저장란에 보면 수백 가지의 요리가 저장되어 있습니다. 그대로 따라 하기만 하면 모든 요리가 가능합니다. 먹고 싶은 것은 다 만들어 먹을 수 있습니다. 다만 귀찮아서 안 할 뿐입니다.

그래서 같은 요리라도 쉽게 하는 요리사의 동영상을 선호합니다. 일단 동영상 길이가 길거나 어렵게 설명하는 것은 거절합니다. 그렇게 어렵게 설명하면 요리고 뭐고 일단 피곤해집니다. “그냥 안 먹고 말지!”라는 생각이 듭니다. 여러분, 각 사람마다 자기가 잘하는 분야가 있습니다. 그것을 반복해서 하다 보면 노하우가 생기고 고수가 될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 한 청년이 회사에 입사하기 위해 면접을 봤습니다. 면접관이 묻습니다. “누구를 가장 존경하시나요?” 이때 많은 분들이 부모님을 존경한다. 이순신 장군을 존경한다. 세종대왕을 존경한다고 말을 합니다. 그런데 이 청년은 이렇게 당당하게 말했습니다. “이소령을 존경합니다.” 그러자 면접관들이 당황하고 어이가 없어서 웃었습니다. 한 면접관이 물었습니다. “그 이유가 뭐지요?”

그 청년이 대답합니다. “그가 무술인이기 이전에 그의 철학을 존경합니다. 그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나는 천 가지 발차기를 한 사람은 무섭지 않지만 한 가지 발차기를 천 번한 사람이 무섭다.‘ 즉 아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것을 자기 것으로 적용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 인내와 노력이 필요하다. 저는 그의 이런 철학이 좋습니다. 그래서 그를 존경합니다.”

뭐- 이렇게 대답을 하니까 순간 면접관들에게 정적이 흐르고 최종합격했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청년 여러분, 혹시 여러분도 한국에서 면접을 볼 때 이것을 써먹지는 마십시오. 이 일화는 요즘 온라인상에 급속히 퍼져서 웬만한 면접관들도 이제는 이 일화를 다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천지만물을 창조하실 때 보면 그 많은 것들을 너무도 쉽게 만드셨습니다. “빛이 있으라. 뭐가 있으라. 뭐가 있으라.” 그렇게 말씀만 하셨는데 그대로 되었습니다. 아- 참, 천지창조 너무나 쉽습니다. 만드신 것을 보니까 보시기에도 참 좋았습니다. 아주 잘 만드셨습니다. 할렐루야!

만약 우리 인간이 하나님이 만드신 것을 만들려면 얼마나 시간이 걸릴까요? 하나님은 6일 만에 그 모든 것을 만드셨는데 인간은 아무리 오랜 시간을 써도 그 무엇도 만들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무에서 유를 만드셨지만 인간은 무에서 유를 만들 수 없기 때문입니다.

혹 어떤 분은 이렇게 반박합니다. “에이, 인간도 하나님처럼 만들 수 있어요. 인간도 남녀가 결합하여 자녀를 만들잖아요? 그리고 반도체도 만들고, TV도 만들도, 별별 희한한 발명품들을 만들었잖아요?” 아- 이런 분은 좀 더 곰곰이 생각해 보십시오. 남녀가 결합하여 자녀를 만들 때 그 조그만 정자와 난자가 합해져서 아기가 되는 유전 법칙과 모든 세밀한 과정을 누가 설계하고 누가 실행시키는 겁니까?

인간이 아니라, 부모가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이 이미 마련해놓은 법칙대로 되는 겁니다. 그리고 반도체를 만드는 재료는 어디서 나는 겁니까? 하나님이 재료들을 이미 이 땅에 만들어놓았기 때문에 인간은 그것을 사용해서 만드는 겁니다. 재료가 없었다면 인간은 반도체를 만들 수 없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희한한 발명품을 만들 수 있는 지혜와 지식은 누가 준 겁니까? 하나님이 인간에게 그런 지혜와 지식을 주셨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겸손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늘 감사해야 합니다. 성경에 보면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또 두렵건대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내 능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재물을 얻었다 할까 하노라.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을 주셨음이라.”(신8:17-18) 즉 돈 버는 재주도 하나님이 주셨으니 부자들은 자기가 잘나고 유능하다고 스스로 자랑하거나 교만하지 말고 하나님을 인정하며 하나님의 뜻대로 돈을 사용해야 합니다.

여러분, 전능하신 하나님은 우리가 할 수 없는 것을 하실 수 있습니다. 그것도 아주 쉽게 하십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로마의 백부장이 나옵니다. 그가 유대인 장로 몇을 예수님께 보내어 부탁합니다. “내 하인이 중풍병으로 괴로워합니다. 좀 고쳐주십시오.”

당시 예수님이 계신 곳과 백부장의 집이 그리 멀지 않아서 예수님이 그리로 가는데 백부장이 다시 친구들을 보내어 말합니다. “주여, 제 집에 오시느라 수고하지 마십시오. 그저 말씀만 한 마디 하십시오.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나이다.”

예수님이 이러한 백부장의 믿음을 기이히 여기시고 말씀합니다. “내가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도 이만한 믿음을 만나보지 못하였노라.” 그리고 한 마디 말씀합니다.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그러자 그 시로 그 하인의 병이 나아서 보내었던 친구들이 백부장 집으로 가보니 이미 그 하인이 강건해졌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흔히 하는 말 중에 “말은 쉽지만(Easy to say)"라는 말이 있습니다. 즉 말은 쉽지만 그것이 성취가 되는 것은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말로는 거의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말이 성취되지 못하면 우리는 그런 말을 가리켜 ‘헛소리’ 또는 ‘개소리’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말만 하는 사람을 가리켜 ‘허풍쟁이’라고 하기도 하고 “에이, 그런 말은 나도 할 수 있어.”라고 하면서 상대방을 무시하고 신뢰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런 표현도 있습니다. “말은 쉽지. 코드를 보여줘 봐-리누스 토발드(Talk is cheap. Show me the code.-Linus Torvalds) 이 말은 컴퓨터 프로그래머들이 사용하는 표현입니다. ”아이디어 내는 것은 쉽다. 실행이 어려운 것이다.“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만약 어떤 의사가 말로 모든 질병을 고칠 수 있다면 그는 세상에서 가장 유능한 명의입니다. 누가 COVID-19에 걸렸습니다. 증상이 심하여 거의 죽게 되었습니다. 이때 한 의사가 나타나 “네 병에서 놓여나 건강할지어다.”고 한 마디 했는데 그 병이 감쪽같이 사라졌습니다. 다 나았습니다. 할렐루야!

물론 이런 일을 인간이 못합니다.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습니다. 고로 우리는 사람이 못 고치는 병이 들었을 때 하나님을 찾습니다. 큰 문제로 인해 깊은 절망에 빠졌을 때에도 하나님을 찾습니다. 성경에 보면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 나아왔습니다. 여러 가지 난치병이 들었습니다. 고치기가 힘듭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모두 고쳐주셨습니다. 그것도 아주 쉽게 고치셨습니다. 인간이, 의사가 보기에는 그것은 도저히 고치기가 어려운 병입니다. 현대 의학으로도 고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에게는, 하나님에게는 그리 어려운 병이 아닙니다. 말씀 한 마디 하시면 그 병이 떠나가고 쉽게 고침을 받아 금세 건강해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그러한 능력은 오늘날도 여전합니다. 그 분의 능력이 줄어들지 않았습니다. 우리를 향한 그 분의 사랑이 식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백부장의 믿음을 가지고 예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고백해야 합니다. “주여, 저에게도 말씀만 하십시오. 그러면 제 병이 낫겠나이다.”

여러분,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오신 구원자입니다. 인생은 누구나 힘듭니다. 복잡합니다. 그래서 구원자가 필요합니다. 어렵게, 복잡하게, 까다롭게, 가까스로, 간신히 구원해주시는 분이 아니라 쉽고, 간단히, 완벽히 구원해주실 수 있는 분이 필요합니다. 성경은 그 쉬운 구원의 방법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합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행2:21)

그런데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의 이름을 계속 죽어라고 불렀는데 왜 치료가 일어나지 않습니까? 왜 문제가 해결이 되지 않습니까? 얼마나 더 예수님의 이름을 더 죽어라고, 목이 쉬도록 불러야 합니까? “아-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이때 우리가 하나님께 할 수 있는 믿음의 고백입니다. “주여, 쉽게 갑시다. 하나님은 까다로운 분이 아니시잖아요. 우리에게 어린아이처럼 단순하고 순수하라고 하신 분이 그렇게 복잡하고 까다롭게 구시면 인격이 모순되잖아요. 그리고 여전히 우리를 사랑하시고, 여전히 능력이 있으시잖아요. 그러니 그냥 쉽게 고쳐주세요. 고치시는데 여러 가지 조건을 매달고, 돈을 요구하시는 분이 아니시잖아요. 그리고 나의 사정과 형편을 다 아시고 있잖아요. 하나님이 구원해주시지 않으면 우리는 살 수가 없습니다. 주여 고쳐주세요. 주여 이루어주세요. 주여 쉽게 해주세요.“

여러분, 나이가 먹으면 단순한 것을 선호하게 됩니다. 복잡한 것이 싫어집니다. 생각과 행동의 에너지가 딸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누가 스마트폰을 공짜로 줘도 싫습니다. 그것에 새로 뭐 깔고, 뭐 찾고... 귀찮아집니다. 만약 예수님 믿는 것이 수학 방정식 푸는 것처럼 복잡하면 누가 예수님을 믿겠습니까? 구원 받는 것도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믿으면 구원을 얻습니다.

다른 조건은 없습니다. 치료도 사실 간단합니다. 예수님이 “믿음대로 될지어다.” 한 마디 하시면 되는 겁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그 한 마디 하시도록 우리가 예수님께 믿음을 가지고 나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도 고백해야 합니다. “주여, 저도 백부장 같이 주님이 한 마디 하시면 치료가 되고, 성취가 되는 것을 믿습니다. 그러니 한 마디 말씀해주십시오.”

결론입니다. 여러 가지 질병과 어려운 문제로 인해 어려운 인생, 힘든 인생, 고달픈 인생을 사시는 여러분들이여-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해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인생사는 것이 무척 힘듭니다. 무거운 짐을 덜어주세요. 구원해 주세요. 너무 복잡하면 못 따라 갑니다. 그러니 쉽게 해주세요. 하나님은 고수시잖아요. 하나님은 다 아시잖아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마11:28-30)

여러분, 주님과 더불어 인생을 살면 인생사는 것이 그리 무겁지 않습니다. 그리 복잡하거나 고달프지도 않습니다. 왜냐하면 주님께 나의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다 맡기고 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내 힘으로 살면 인생은 여전히 힘들고 괴롭습니다. 아무쪼록 우리의 힘든 인생을 구원하러 오신 예수님과 더불어 보다 쉽고 가볍고 행복하게 인생을 사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