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여야 할 일을 한 것 뿐이라

날짜: 
2016/02/28
말씀: 
눅17:7-10
말씀구절: 

...

설교: 

어느 마을 에 한 종이 있었습니다. 이 종은 해가 뜨기 전 이른 아침부터 일어나 밭에 나가 열심히 일을 하고, 점심때에는 양무리를 끌고 나가 풀을 먹이고, 저녁 늦게 어둑어둑해질 때에야 집에 돌아오면 또다시 주인의 식탁을 예비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주인이 식사하는 동안에도 쉬지 못하고, 그 옆에서 수종을 들고 봉사하는 일을 했습니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평생을 주인을 위해서 이렇게 열심히 일하면 주인이 "너 수고했다. 여기 보너스를 줄 테니 어디 가서 푹 쉬고 놀다 오너라." 했으면 좋겠는데 주인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보너스는커녕 돈 한 푼 주지도 않고, 거기다가 자기를 알아주고 칭찬을 해주긴 커녕 거들떠보지도 않았습니다. 이런 경우를 당할 때 오늘날의 보통 사람 같으면 "흥, 너 혼자 잘 먹고 잘 살아라." 하고 마음속으로 주인에 대한 원망과 함께 뒤돌아서면 주인에 대해 불평을 늘어놓는 것이 상례입니다.
그러나 이 종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주인에게 아무런 불평도 하지 않고 "어떻게 하면 까다로운 주인의 마음을 잘 맞추고, 주인을 더욱 기쁘시게 해드릴까?" 하고 생각하는 종이었습니다. 게다가 평생에 주인을 위해서 그렇게 충실하게 일을 하고서도 “주여, 이 무익한 종이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하고 혹 주인이 자기를 알아주고, 자기를 높여주고, 자기를 칭찬할까봐 일부러 그러한 칭찬과 존귀의 자리를 피하려고 하는 겸손한 종이었습니다.
보통사람 같으면 내가 주인을 위해 그 만큼 열심히 일을 했으니 주인이 반드시 나를 알아줘야 하고, 나를 모든 사람 앞에서 칭찬해주고, 나를 높여줘야 한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이 종은 오히려 그 반대로 생각했습니다. “나 같은 부족한 종을 이제까지 사용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앞으로 최선을 다해 더욱 열심히 일하겠습니다.” 그리고 또다시 이른 새벽부터 일어나 묵묵히 주인을 위해 밭으로 일하러 나가는 종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비유를 말씀하시면서 우리 성도들이 주인 되시는 하나님을 위해 봉사할 때 바로 이러한 자세를 가져야 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제가 신학교를 졸업한 후 여의도 순복음 교회 전도사로 채용되어 기도원에서 사역을 하고 있었을 때였습니다. 같이 기도원에 있었던 몇몇의 전도사님들이 이런 애기를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뭐야, 이거! 우리를 종일 기도원에 가둬 놓고? 거기다가 월급이 이거 너무 적잖아.“
물론 한 가정의 엄마 아빠로서 가족과 떨어져 일주일에 하루만 집에 갈 수 있다 보니 어려움도 많았고, 교구 성도님들이 주는 교통비도 받지 못하다 보니 월급만 가지고 생활하기에는 모자랐을 것입니다. 더구나 기도원 음식도 교구 성도님들이 대접하는 음식에 비해서 좋지 않았고, 기도원의 다른 여러 시설도 자기 집보다는 불편한 것이 많았습니다.
거기다가 기도원에서 고생하는 것을 누가 알아주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기도원에서 봉사하면서 이렇게 불평하는 것이 당연했을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러한 태도가 봉사자의 올바른 태도는 결코 아닐 것입니다. 그런데 그 당시 저와 같이 기도원에서 봉사하는 전도사님 가운데 연세가 60세 정도 되신 여전도사님이 있었습니다.
이 전도사님은 기도원에서 남들보다 오랫동안 사역을 하면서 늘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나 같이 부족한 사람을 사용해 주시니 하나님께 감사하고, 조용기 목사님에게 감사합니다.” 그리고 이 여전도사님은 젊은 여전도사님들 보다 더 열심히 봉사하려고 항상 애를 쓰는 분이었습니다. 나이가 드셔서 체력이 달리면 하나님 앞에 엎드려 울면서 “하나님, 저에게 힘을 주세요.” 하고 기도하는 분이셨습니다.
어쩌다가 기도원 주임 목사님이 다른 여전도사님들에게 이 나이 드신 여전도사님을 칭찬하면서 “여러분들도 이 분을 본받으세요.” 라고 말하면 부끄러워 어쩔 줄을 몰라 하며 "아닙니다. 목사님, 제가 할 일을 한 것뿐입니다." 하고 말씀하는 겸손한 분이셨습니다. 제가 기도원에서 이 전도사님의 봉사하는 모습을 보면서 저도 이 여전도사님처럼 바르게 봉사하는 자세를 가져야 되겠다고 다짐을 했습니다.
세상 직업에 비해 비록 월급이 적어도 "하나님, 평신도들은 월급을 받지도 않고 열심히 봉사하는데, 내가 뭐가 잘났기에 월급을 주십니까? 거기다가 천사도 부러워하는 귀한 직분을 주셔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셨습니까? 하나님, 너무나 감사해서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앞으로도 저를 사용해 주시면 힘껏 충성하겠습니다." 그리고 목사로서 이런 자세를 잃지 않고 봉사하려고 오늘도 애를 쓰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가정이나, 직장이나, 군대에서나, 교회에서나, 그리고 어디에서나 일을 하면서 바른 자세를 갖게 되면 그로 인해 자신도 행복해지고, 남도 행복해지며, 하나님도 기쁘시게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일을 하면서 바른 자세를 갖지 못하면 자신도 불행해지고, 남도 불행해지며, 하나님의 마음도 상하게 할 때도 있습니다.
부부가 가정에서 서로 봉사를 하면서도 "하나님, 저에게 건강을 주시고, 남편(아내)을 주시고, 자녀를 주셔서, 가족들을 위해 일할 수 있는 특권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라고 말을 한다면 자신도 행복해지고, 가족도 행복해지고, 하나님께도 영광이 됩니다. 그러나 남편이 밖에서 일을 마치고 돌아와서 화를 내거나, 아내가 가정에서 일을 하면서 신경질을 부리면 자신도 불행해지고, 가족도 불행해지며, 하나님의 마음도 좋지 않게 됩니다.
물론 부부가 가정을 위해 일을 하면서 서로를 알아주고 고마워하면 좋지만, 때로는 그렇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때에도 나쁜 마음먹지 않고 묵묵히 참고 봉사를 한다면 이런 남편(아내)은 아내(남편)의 보배요, 그리고 가정의 행복이요, 하나님께도 보배로운 성도입니다. 직장에서 봉사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월급이 적다고 늘 불평을 하면서 일을 하고, 혹 조금 열심히 일하면 자기가 사장을 위해서 크게 선심을 쓰고 희생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사장이 조금 귀찮은 일을 시키면 금방 얼굴에 짜증이 나타납니다. 이런 사원은 자신도 불행해지고, 사장도 불행하게 만들고, 하나님께도 영광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월급이 적어도 자신에게 일을 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신 하나님과 사장에게 늘 감사한다면 이러한 사원은 자신의 행복은 물론이요, 사장의 행복이요,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그리고 교회에서 봉사를 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 중심적이지 않고 자기가 중심이 되어 내가 하나님을 위해 희생하고 헌신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그것은 잘못된 자세입니다. 이런 분들은 하나님이 자신에게 봉사한 만큼의 보답이나 축복을 해주지 않으면 하나님께 따지고 덤비는 사람입니다. “하나님, 이전에 내가 하나님을 위해 그렇게 희생했는데 그 보답이 고작 이것뿐입니까? 나 시험 들어 교회 안 나갑니다. 그리고 앞으로 하나님의 일도 안 할 것입니다.”
여러분, 교회에서 봉사하는 것도 좋지만 바른 자세를 갖지 않고 봉사한다면 나중에 꼭 뒤탈이 생깁니다. 그러므로 교회에서 봉사할 때도 바른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 저를 불쌍히 여기셔서 저를 택해주시고, 부족한 저를 사용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저 같이 미련한 사람을 사용하시려니 하나님의 마음이 얼마나 답답하시겠습니까? 하나님, 죄송합니다.”
이렇게 바른 자세를 가지고 교회 일을 한다면 누가 칭찬을 안 해줘도, 누가 자기를 높여주지 않아도, 누가 자기를 알아주지 않아도 시험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오히려 봉사를 많이 하면 할수록 기회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고, 봉사를 하면 할수록 더욱 겸손해질 수가 있습니다.
마태복음 20장에 보면 포도원 품꾼의 비유가 나옵니다. 주인이 이른 아침에 장터로 나가 하루 한 데나리온의 품삯을 주기로 하고 몇 명의 일군들을 자신의 포도원에 고용했습니다. 그리고 그 주인은 오후 5시에도 나가 장터에서 할 일 없이 빈둥거리고 있는 사람들도 품꾼으로 고용했습니다. 날이 저물어 주인이 품꾼들에게 품삯을 주는데 수고도 별로 하지 않은 나중에 온 자들이 한 데나리온을 받은지라, 먼저 온 자들이 자신들은 더 많은 품삯을 받을 줄 알았는데 자신들 역시 한 데나리온을 받자 주인을 원망하며 말합니다.
“아니, 주인이여, 나중에 온 이 사람들은 한 시간만 일하였거늘 종일 수고와 더위를 견딘 우리와 똑같이 삯을 주다니요, 이거 불공평하지 않습니까?”(마20:12) 그러자 주인이 대답합니다. “친구여,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나중 온 사람들에게 선을 베풀었는데 자네들이 왜 그리 시기를 하는가? 자네들하고는 하루 한 데나리온의 약속한 품삯을 주었으니 내가 잘못한 것이 없지 않느냐? 자네들은 자네들 것이나 가지고 가게.”(마20:13-15)
그러자 먼저 온 종들이 시험이 들어 주인을 원망하며 떠났다는 것입니다. 생각해보십시오. 나중에 고용된 품꾼들은 먼저 고용된 품꾼들보다 아무래도 신체 조건이 떨어지거나 힘을 제대로 쓰지 못하는 사람들이었을 것입니다. 즉 노동력이란 측면을 볼 때 먼저 고용된 품꾼에 비해 뒤떨어지는 사람들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이 그들을 쓰지도 않았고, 그들은 하루를 공치게 될 입장이었습니다.
그런데 한 자비로운 주인이 나타나 늦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고용해 주었습니다. 그러자 그들의 마음은 부족한 자신들을 고용해 준 주인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생겼을 것이고, 부족한 자신들을 써준 주인에게 비록 한 시간을 일해도 보수를 뛰어 넘은 충성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먼저 고용된 일군들은 자신들이 종일 수고와 더위를 견뎠다는 자신들의 공로를 내세웠습니다. 그러니 그 만큼 더 보수를 달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만한 보수가 주어지지 않으니 주인을 원망하고 떠났다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봉사를 하다 보면 시험에 드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습니다. 자신이 남들 보다 먼저 들어와서 더 열심히 수고를 했는데, 자신을 알아주지도 않고, 나중에 온 사람들과 똑같이 대하든지, 자신이 박대를 당했다고 생각하면 그만 시험에 드는 경우입니다. 즉 자기가 수고를 했기에 자기가 대접을 받아야 된다는 생각을 하면 그것은 반드시 시험에 드는 잘못된 봉사의 자세입니다.
그러나 “나같이 부족한 사람을 남들 보다 먼저 교회의 일군으로 불러주셔서 남들 보다 더 열심히 수고를 하도록 기회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라고 말을 하고, 열심히 봉사한 후에도 남들이 칭찬을 할 것 같으면 ”뭘요, 단지 성도로서 할 일을 했을 뿐인데요.“라고 겸손해 진다면 이 사람은 진짜 보배와 같은 성도입니다.
그리고 이런 자세를 가지고 봉사하는 성도들이 많으면 그 교회는 반드시 분위기가 좋아지고 부흥됩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만일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벧전4:11)
즉 봉사를 해도 내가 내 힘으로, 내 돈으로 했다고 하지 말고, 하나님이 힘을 주셔서, 하나님이 돈을 주셔서 한 것이지 내가 한 것이 결코 아니다라는 것입니다. 생각해보십시오. 내가 내 힘으로 내 돈으로 봉사를 했다면 그에 대한 보수와 보답이 당연히 따라야 된다는 것입니다. 만약 그에 대한 보답이 주어지지 않는다면 봉사를 그치든지 시험에 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봉사한 것이 아니라 주님이 봉사를 할 수 있도록 허락하셔서 내가 봉사하는 기쁨을 얻을 수 있었다고 말을 한다면, 봉사를 하고 난 후에 남이 알아주지 않고, 봉사에 대한 보답이 없어도 시험에 들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한 봉사는 내가 내 것 가지고 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을 보십시오. 그는 자기 자신을 가리켜 ‘만삭되지 못한 자’(고전15:8), ‘사도라 칭함을 받기에조차 부끄러운 지극히 작은 자 (고전15:9)라고 고백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부족한 자기를 불러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 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다.”(고전15:10)
즉 자기가 아무리 죽을 고생을 하면서 하나님의 일을 했다고 하더라도, 그 봉사의 힘은 하나님께서 났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봉사는 자기가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했다는 것입니다. 고로 사람들이 자기를 알아주지 않고, 높여주지 않아도 시험될 것이 없다는 뜻이요, 오히려 자기가 칭찬과 영광을 받으면 그것은 합당치 않은 것이요, 도리어 하나님이 영광을 받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우리가 목사로서, 혹은 성도로서 교회에서 봉사를 하지만, 실지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각자 믿음의 선물을 주시고, 목사로서 혹은 성도로서 불러주셨기에 봉사를 하는 것이지, 결코 내 힘으로, 내가 잘나서 봉사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리고 교회에서 봉사하는 일은 하나님이 나를 부려먹고 나를 이용하려는 나쁜 의도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는 기쁨을 주시기 위함이요, 그리고 그 일을 기쁨으로 하는 중에 더욱 큰 축복을 주시기 위함이 아닙니까?
그러므로 하나님께 일찍 부름을 받아 더 많이 봉사하는 것은 하나님께 더욱 감사할 일이요, 그 봉사 자체가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과 축복과 행복인 것입니다. 창세기 29장에 보면 야곱이 외삼촌 라반의 딸 라헬이 곱고 아리따우므로 그녀를 연애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녀를 신부로 맞아들이기 위해 칠 년 동안 외삼촌의 집에서 봉사를 했습니다.
그런데 성경에 보니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야곱이 라헬을 위하여 칠 년 동안 라반을 봉사하였으나 그녀를 연애하는 까닭에 칠 년을 수일 같이 여겼더라.”(창29:20) 즉 사랑으로 하는 봉사는 고생이 아니요, 즐거움이라는 것입니다. 그 봉사 자체가 특권이요, 행복이라는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세우신 교회를 사랑하고, 예수님을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교회에서 봉사하는 것은 아무리 어려워도, 그에 대한 보수가 없다 할지라도, 그 봉사의 기회 자체가 여러분들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요, 행복일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부족하거나,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이 부족하다면 봉사를 하면서도 기쁨을 얻지 못하고, 그에 대한 보수나 칭찬이 없으면 불평이 나오게 됩니다. 그러므로 교회에서나, 가정에서나, 기타 어디서든지 봉사를 하려면 무엇보다도 먼저 그러한 봉사의 기회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봉사해야 합니다.
그래야 봉사하는 즐거움과 행복도 얻을 수 있고, 그 날 사람이 아닌 하나님께 축복과 칭찬과 상금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때 우리는 이렇게 고백해야 됩니다. “주여, 이 무익한 종을 사용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우리의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입니다.” 아멘!
기도 : 하나님 아버지, 저희들 같이 무익한 사람들을 아버지 집에서 예배드릴 수 있고, 봉사할 수 있도록 특권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평생토록 하나님을 사랑하며 겸손히 하나님께 봉사할 수 있도록 바른 봉사의 자세를 갖게 하여 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