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24:36-46 환난을 피하고 살아남기 위해서...
예수님 당시 예루살렘에 세워진 성전은 헤롯 성전입니다. 이 성전은 당시 유대의 분봉왕이었던 헤롯 대왕이 유대인의 환심을 사기 위해 대리석으로 세운 매우 아름답고 웅장한 성전입니다. 이 성전을 보고 예수님의 제자들이 말합니다. "주님, 저 성전 좀 보세요. 참 아름답지요?"
주님은 이러한 제자들의 말에 "그래, 참 아름답다. 아니, 별로다."라고 대답하지 않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성전이 완전히 무너져서 돌 위에 돌 하나도 남지 않고 다 무너지리라." 예수님의 이 말씀을 듣고 제자들이 깜짝 놀랐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의 수도는 예루살렘이요, 그 곳의 가장 중심은 성전입니다. 고로 성전이 완전히 무너진다는 것은 이스라엘 나라가 망한다는 뜻이요, 유대인들도 죽거나, 포로로 끌려가거나, 끝장이 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놀라서 주님께 물었습니다. "주님, 언제 그런 일이 일어나겠습니까? 그리고 주님이 임하시는 세상 끝날에는 무슨 징조가 있겠습니까?" 그러자 예수님이 예루살렘의 멸망과 말세에 일어날 징조들을 예언해주셨습니다. 이를 가리켜 '이중 계시'라고 합니다. 예언은 하나지만 두 경우에 적용되고 해당되는 계시라는 뜻입니다.
그 내용을 보면 이렇습니다. 거짓 그리스도, 거짓 선지자의 유혹, 난리와 난리 소문, 기근과 전쟁, 처처에 지진, 불법이 성행하고 사랑이 식어짐, 배신행위... 이런 것들은 예루살렘 멸망과 말세의 종말에 똑같이 일어나는 현상들입니다. 그러고 나서 예수님은 예루살렘의 멸망 때 그 재앙을 피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는가를 가르쳐 주었습니다.
예루살렘이 군대에 의해 에워싸이는 것을 보거든 무조건 예루살렘을 떠나 산으로 급히 도망가라는 것입니다. 얼마나 급히 도망가야 되는지 지붕 위에 있는 사람은 집안의 물건 하나를 더 챙기려고 내려가지도 말고 신속이 산으로 도망가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밭에서 일하는 자는 겉옷을 가지러 뒤로 돌이키지 말고 즉각 그 자리에서 산으로 도망가라는 것입니다.
젖먹이는 어린 아이나 임신한 여성들은 어떻게 됩니까? 어떤 분은 생각하기를 "하나님은 자비로우시니까 이들은 어찌하든지 살려주시겠지요. 안 그런가요?"라고 물으신다면 주님은 무어라고 대답하십니까? 이렇게 대답합니다. "그날에는 아이 밴 자들과 젖먹이는 여인에게 화가 있으리라." 무슨 뜻입니까? 환난의 시기가 다가오면 하나님이 가르쳐준 방법을 쓰지 않고는 그 누구도 환난을 피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예루살렘 멸망 시에 살아남는 사람은 일단 잘 달려야 합니다. 두 발이 튼튼해야 합니다. 36계 전술에 매우 능해야 합니다. 임신한 분들은 안타깝지만 몸이 무거워 36계 전술을 제대로 쓸 수가 없습니다. 젖먹이는 아이를 둔 여인도 아이 때문에 잘 달릴 수가 없습니다. 고로 그들은 신속히 산으로 피신을 못합니다. 고로 그들은 안타깝지만 예루살렘 멸망이 올 때에 고스란히 앉아서 재앙을 당하게 된다는 겁니다.
아닌 게 아니라 예수님의 이러한 예언은 그대로 성취되었습니다. 주후 70년 로마의 디도대장이 큰 군대를 거느리고 예루살렘을 포위했습니다. 이때 예수님의 예언을 알고 신속이 산으로 도망간 사람들은 모두 살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이러한 예언을 모르거나 무시한 사람들은 도리어 견고한 예루살렘 성 안이 피신처인 줄 알고 예루살렘으로 모여들었습니다.
그 결과가 어떻게 되었나요? 로마 군인들이 유대인 100만 명 이상을 죽였습니다. 아이 밴 여인들의 배를 가르고, 애들도 엄마도 다 죽였습니다. 당시의 역사가는 이 당시에 일어난 끔찍한 상황이 역사상 가장 잔혹한 살육이었다고 기술하고 있습니다. 그 후 살아남은 유대인들은 포로와 노예로 끌려가고, 온 세상에 흩어져 1948년 나라를 다시 세우기까지 거의 2000년간을 온 세계 사람들의 조롱과 멸시를 받고 유리방황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예루살렘 멸망 시 환난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 산으로 신속히 도망가는 것뿐이었습니다. 이것이 당시의 환난을 피할 수 있는 예수님이 제시한 방법이었습니다. 그러면 말세지말, 즉 하나님이 불로 이 세상을 심판할 때에 그 환난을 피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하여 예수님이 말씀한 것은 무엇입니까?
산으로 피신하는 겁니까? 동굴로 피신하는 겁니까? 아니면 견고한 대피소를 만들어 그곳으로 피신하는 겁니까? 아닙니다. 말세의 환난 때에는 이 땅에는 피신처가 없습니다. 고로 주님은 말세 환난 때의 피신 장소를 우리들에게 특별히 가르쳐 주시지 않았습니다. 혹 어떤 신학자들은 우리 믿는 사람들도 말세의 7년 환난을 당한다고 합니다. 혹은 7년 환난 중에서 전 3년 반의 환난을 이 땅에서 당한다고 합니다.
이 말은 맞는 말이기도 하고 틀린 말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7년 환난 전에 휴거가 안 된 사람들은 이 땅에 남아서 고스란히 7년 환난을 당해야 하기에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7년 환난 전에 휴거가 된 사람들은 7년 환난을 겪지 않고 하늘나라로 가기에 틀린 말입니다. 만약 우리가 7년 환난 전에 휴거가 되지 않고 7년 환난을 이 땅에서 겪게 된다면 우리의 기도는 달라집니다.
어떻게 달라질까요? 이렇게 됩니다. "주님, 7년 환난 때에는 어느 곳이 안전한 땅입니까? 대한민국 땅입니까? 아니면 캐나다 땅입니까? 혹은 어느 섬입니까? 계시해 주세요." 그리고 7년 환난 때는 성경에 예언된 것과 같이 극심한 식량난이 생기고 전쟁이 일어난다기에 우리의 환난 대처방안도 비상식량을 준비해야 하고, 대피소를 튼튼히 지어야 하고, 현찰과 함께 금도 준비해야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들에게 말세에 다가올 환난을 피하기 위해 어느 산이나, 어느 나라나, 어느 섬으로 피신하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식료품을 모아두거나, 금을 비축해 두라고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때의 환난은 인간적인 수단과 방법으로 피할 수 없는 환난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이기 때문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핵폭탄이 폭죽처럼 터지는데 어디로 피신합니까? 온통 방사능 오염이 되어 마땅히 피신할 곳이 없습니다. 핵폭탄이 터지면 지하 대피소는 안전하지 않을까 생각하는 분이 있다면 역시 착각입니다. 그때에는 역사상 전무후무한 지진이 일어납니다. 그 지진이 어찌나 심한지 산이 옮겨지고 섬이 옮겨집니다. 도시가 통째로 사라집니다. 지하 대피소에 있다간 입구가 막히고 무너져 그곳이 자기 무덤이 되고 맙니다.
더구나 현대 의학으로 도저히 고치지 못하는 병이 생겨서 수없이 죽고 맙니다. 병원도 무너지고 없습니다. 그럼 우리는 어떡해야 합니까? 어떤 방법을 써야 살 수 있습니까? 예수님이 제시한 살 수 있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오직 휴거가 되어 하늘나라로 피신하는 것 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제시한 유일한 피신 방법입니다.
하나님은 노아 시대 때, 홍수로 세상을 심판하시기 전에 그 환난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을 알려주셨습니다. 누구에게요? 노아에게 입니다. 그 피신 방법이 무엇입니까? 방주입니다. 방주 외에는 대홍수로부터 구원받을 다른 장소가 없습니다. 다른 방법도 없습니다. 오직 살 수 있는 방법은 방주를 완벽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만약 부실공사를 하여 방주에 물이 새거나, 배가 파도에 의해 깨지거나 터지면 그들의 생명은 끝장이 나고 맙니다. 그 안에 탄 동물들도 다 죽고 맙니다.
그런데 당시 노아의 기술력으로는 대홍수를 버텨낼 방주를 완벽하게 짓지 못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방주를 직접 설계하시고, 방주의 모든 공사지시를 직접 하신 것입니다. 만약 노아가 하나님이 지시한대로 방주를 짓지 않고 땅굴을 파고 거기 숨었으면 살았을까요? 죽었을까요? 상식입니다. 물은 낮은 곳부터 임하니까 가장 먼저 죽었을 것입니다.
그러면 높은 빌딩과 탑을 세우고 거기에 거하면 어땠을까요? 여러분, 당시의 홍수는 그냥 큰 강이 범람하는 수준이 아닙니다. 이 세상의 모든 높은 산이 다 잠기는 그런 홍수입니다. 이름하여 노아의 대홍수입니다. 아무리 높은 빌딩을 짓고 탑을 세웠어도 다 물에 잠겨서 죽고 맙니다. 노아의 식구들이 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무식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120년 간 방주를 짓는 것입니다.
물론 사람들의 조롱이 따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심판의 음성을 확실히 들은 노아는 누가 뭐래도 방주를 지었습니다. 방주를 짓는데 자기의 모든 시간을 다 투자했습니다. 자기의 재산, 자기의 노력을 다 투자했습니다. 왜 그럽니까? 방주는 나와 내 가족의 생명줄이기 때문입니다. 방주가 없으면 나와 내 가족은 죽는 겁니다. 끝장나는 거예요.
예루살렘의 멸망 때에는 피신처가 산이고, 노아시대 때에는 피신처가 방주였습니다. 그러면 말세지말 7년 대환난 때에는 피난처가 어디입니까? 바로 하늘나라입니다. 어떻게 하늘나라로 피신하느냐고요? 노아가 방주를 만들듯이 우리도 우주선을 만들어 달나라로 피신하면 될까요? 아니면 은하철도 999를 타고 안드로메다 성좌로 잠시 피신하면 어떨까요?
오늘 본문 42절에 예수님은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마태복음 25장에 보면 예수님은 열 처녀의 비유를 통해 성령의 기름을 준비한 슬기로운 다섯 처녀는 하늘나라로 데리고 가셨고, 성령의 기름을 준비하지 못한 미련한 다섯 처녀는 이 땅에 남겨졌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결론으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런즉 깨어 있으라."(마25:13)
즉 말세의 환난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깨어 있어 하늘나라로 휴거되는 것만이 유일한 방법입니다. 여기서 깨어 있다는 것은 육적으로 잠자지 말라는 뜻이 아닙니다. 영적인 의미입니다. 마치 보초병이 적의 공격이나 침투에 대비해 만반의 경계 자세를 갖추고 있듯이 휴거를 위해 준비하라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예수님은 도적의 비유를 들었습니다. 도적이 오기는 확실히 오는데, 즉 예수님이 오시고, 그 후에 무시무시한 환난이 확실히 오는데, 그것이 언제 올지 모르니 깨어있으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도적처럼 언제 오실지 모르는 예수님을 맞이하여 휴거할 준비를 하라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깨어있어 준비된 자는 휴거가 되어 환난을 피하는 것이고, 영적으로 졸거나 준비가 안 된 자는 환난을 당한다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휴거되지 않고 7년 환난을 당한다면 예수님은 우리들에게 이렇게 예언하셨을 것입니다. "애들아, 미안하다. 말세의 7년 환난은 도저히 아무도 피할 수가 없단다. 그러니 너희는 핵폭탄이 터져서 너의 자녀들이 다 타죽어도 나를 원망하지 마라." 물론 우리는 죽어도 예수님을 원망하지 않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죽으면 천국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한 가지 너무나도 중요한 피신 방법을 우리들에게 알려주셨습니다. 뭡니까? 산으로 피신하는 겁니까? 아니면 노아보다 더 훌륭한 배나 잠수함을 만들어서 거기다가 7년 동안 먹을 수 있는 양식을 저장하는 겁니까? 아닙니다. 주님이 가르쳐준 피신 방법은 깨어 있으라는 겁니다.
여러분! 아시다시피 저는 요즘 주님의 재림에 대한 설교를 참 많이 하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이런 말하면 좀 죄송합니다. 가장 먼저 내 자신이 살기 위해서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휴거의 날에 목사가 휴거되지 못하고 이 땅에 남는다면 내 신세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7년 환난은 둘째 치고 애들 말로 쪽팔려서 어떻게 교회에 설교하러 나옵니까? 그런 수치를 당하느니 차라리 미리 죽는 것이 더 나을 것입니다.
여러분! 큰 지진이 일어나기 전 동물들이 먼저 그 징조를 알고 느낍니다. 그리고 자기와 가족들이 살기 위해서 정든 곳을 단호히 버리고 신속히 피신처를 찾아갑니다. 하나님이 주신 본능입니다. 그 피신 시간이 배가 고파서 저녁밥을 먹을 시간이라도 단호히 밥 먹는 것을 포기합니다. 몇 끼를 굶을지라도 일단 살아야 합니다. 생명이 우선입니다. 피신이 우선입니다.
만약 7년 환난이 아주 가까이 왔고, 휴거의 순간이 매우 가까이 왔다면 우리 교회에서 누가 가장 먼저 느끼겠습니까? 여러분의 입에서 "목사님이겠지요!"라는 말이 나오기를 기대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저에게 28년 전에 성령을 부어주셨습니다. 그 후 저는 늘 하루 몇 시간 씩 기도하고 삽니다. 늘 성경을 연구합니다. 성령의 감동을 받는 사람입니다. 때때로 하나님의 강권적인 힘을 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어떤 면에서는 덜렁대는 기질이 있지만 매우 꼼꼼하고 완벽함을 추구하는 성격입니다. 혈액형도 꼼꼼함을 추구하는 A형입니다. 군대에서의 주특기도 바늘을 가지고 지도의 1mm를 계산하는 포병의 관측장교였습니다. 영적으로도 저는 꼼꼼함과 완벽함을 좋아합니다. 더욱이 다가올 무시무시한 환난 앞에서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인데 대충 어설프게 넘어가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고로 요즘 저는 긴장하고 있습니다. 언제 주님이 다시 오실는지 알 수는 없지만, 성경이 예언한 징조가 확실하므로 휴거할 만반의 준비를 갖추려고 합니다. 백 분의 일, 천분의 일, 만분의 일의 확률이라도 뚫고 휴거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성경에서 주님이 말씀하시는 휴거의 조건이 무엇인지 세밀하게 연구하고 그에 따르기를 원합니다.
물론 우리는 휴거가 되기 전에 이 땅에서 먹고 살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직장도 다녀야 하고, 학교도 다녀야 하고, 비즈니스도 해야 합니다. 돈도 벌어야 합니다. 집안일도 참 많습니다. 여러분! 오해하지 마십시오. 일상생활을 하십시오. 오늘의 본문에도 두 사람이 밭에서 일을 하다가 한 사람은 휴거되고, 한 사람은 휴거되지 못했습니다. 두 여인이 맷돌을 돌리며 집안일을 하다가 한 여인은 휴거되고, 한 여인은 휴거되지 못했습니다.
즉 일상 일을 하지 않고 산속에 처박혀 기도만 하는 사람은 휴거되고, 돈 벌기 위해 직장에 다니는 사람은 휴거되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도 그렇게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이 말씀하시는 휴거의 조건은 이겁니다.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즉 영적으로 깨어 있는 자는 휴거 되고, 영적으로 잠자는 자는 휴거되지 못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마26:41) 성경은 영적으로 깨어 있는 상태를 표현할 때 기도하는 것과 거의 동일시하고 있습니다. 베드로 사도도 하나님의 삼판에 대하여 이야기하면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벧전4:7)
만약 기도하는 것이 영적으로 깨어있는 것이라면, 그리고 그렇게 기도해야 휴거가 된다면 저는 일상생활 중 가장 먼저 기도부터 하겠습니다. 새벽 기도회도, 금요 기도회도 나와서 열심히 기도하겠습니다. 그래서 휴거가 되겠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신부가 흰 옷을 입어야 한다면, 즉 예수님을 믿고 옳은 행실을 할 때 휴거가 된다면 저는 옳은 행실을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래서 천분의 일, 만분의 일의 확률도 뚫고 휴거의 주인공이 되어 하늘나라의 잔치에 참여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 땅에서 주님의 일을 열심히 할 때 주님이 저를 휴거시키시고, 하늘나라 혼인잔치에서 저를 가장 귀엽게 보아주신다면 저는 주님의 일에 아주 열심을 내겠습니다. 목사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결론을 말씀드리기를 원합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신다는 재림 신앙은 우리들의 엉클어지고 나태한 신앙을 바르게 잡아주는 매우 좋은 약이 될 수 있습니다. 더욱이 휴거의 순간이 가까이 다가오고, 이를 준비하는 우리들에게는 신앙이 더욱 순수해지고 믿음의 도약을 할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 아무쪼록 다시 오실 예수님을 학수고대하며 영적으로 깨어있고, 주님의 일에 더욱 성실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리고 부탁합니다. 그날 천분의 일, 만분의 일의 확률도 뚫고 휴거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