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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슈아리 칼럼
` 고향의 봄 `
앞마당의 살구꽃, 앵두꽃, 복사꽃, 명자꽃이 모두 피어
등을 달아놓은 듯 환합니다.
담장넘어 아무도 살지 않는 집 정원에도
꽃들이 한꺼번에 까르르 웃어제끼는 바람에
목련도 화들짝 놀라 온 등을 다 켜들고
며칠째 우리집을 비춰줍니다.
모두가 잠든 봄밤에 수다가 한창입니다.
살구나무는 하이얀 팝콘처럼
다닥 다닥 달라붙어 제각기 뽀얗다 뽀얗다 재잘댑니다.
아, 이렇게 아름다운 봄 밤에
누군가의 가슴 속에 살아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일이야말로 얼마나 황홀한 일인지요
지난 가을 단풍나무 몇 그루를 모아 심어 놓고
아가의 웃음처럼 곱다 곱다 하다간
낙엽이 져선 기억조차 없었던
그 단풍나무 눈에도 꽃눈이 왕왕 터져 나왔습니다.
겨울 세찬바람 속에서 희망을 잃지 않고
나와준 고 꽃눈이 대견스러워
자꾸만 자꾸만 두 눈이 붉어지지만 부끄럽지 않아요
봄밤에 저만 앞마당에 있거든요.
살구가 재잘대고, 앵두가 재재거리고,
바둑이가 무어라 무어라 대꾸하고....
복사꽃 자꾸만 내 눈길을 잡는데
그 아름다움 속에 당신이 자꾸만 자라갑니다.
내 가슴 가득가득이 말이에요.
당신 언제 올거에요 ?
곧 오실거죠, 그렇죠...?
앞마당의 살구꽃, 앵두꽃, 복사꽃, 명자꽃이 모두 피어
등을 달아놓은 듯 환합니다.
담장넘어 아무도 살지 않는 집 정원에도
꽃들이 한꺼번에 까르르 웃어제끼는 바람에
목련도 화들짝 놀라 온 등을 다 켜들고
며칠째 우리집을 비춰줍니다.
모두가 잠든 봄밤에 수다가 한창입니다.
살구나무는 하이얀 팝콘처럼
다닥 다닥 달라붙어 제각기 뽀얗다 뽀얗다 재잘댑니다.
아, 이렇게 아름다운 봄 밤에
누군가의 가슴 속에 살아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일이야말로 얼마나 황홀한 일인지요
지난 가을 단풍나무 몇 그루를 모아 심어 놓고
아가의 웃음처럼 곱다 곱다 하다간
낙엽이 져선 기억조차 없었던
그 단풍나무 눈에도 꽃눈이 왕왕 터져 나왔습니다.
겨울 세찬바람 속에서 희망을 잃지 않고
나와준 고 꽃눈이 대견스러워
자꾸만 자꾸만 두 눈이 붉어지지만 부끄럽지 않아요
봄밤에 저만 앞마당에 있거든요.
살구가 재잘대고, 앵두가 재재거리고,
바둑이가 무어라 무어라 대꾸하고....
복사꽃 자꾸만 내 눈길을 잡는데
그 아름다움 속에 당신이 자꾸만 자라갑니다.
내 가슴 가득가득이 말이에요.
당신 언제 올거에요 ?
곧 오실거죠, 그렇죠...?
21 years 9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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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저는 북한 함경북도 청진에서 태어나 근 50년을 북한에서 살았습니
다.
그러다가 주님의 은총으로 96년 아들을 데리고 남한으로 올 수 있었습
니다.
저는 북한에서 태어나 북한에서 성장했기 때문에 하느님을 모르고 살
았습니다.
제가 영문도 모른 채 지하 감옥에서 모진 고문과 사형선고까지 받고
사형집행날
극적으로 사형을 취소한다는 통지와 함께 정치범 수용소로 보내 졌을
때
수용소 안에서 겪은 북한 신자들의 모습입니다.
저는 김일성 대학 경제학부를 졸업했기 때문에 정치범 수용소에서 죄
수의 신분으로 유일하게
6,000 여명이 수용된 그 곳의 모든 사람들에게 일을 시킬 수 있는
생산지휘와 모든 재정업무를 맡아서 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문에 저는 많은 사람들이 일하는 작업장들을 이곳저곳 마음대로
갈수있었습니다.
어느 날 저를 담당하고 있던 재정부장 교도관이 저를 불러놓고는 단단
히 교육을 시켰습니다.
“너는 오늘부터 매일 어떤 공장으로 나가야 하는데
그 공장에는 미친 정신병자 놈들만 모여 있다.
그 미친 정신병자 놈들은 당과 수령님을 믿지 않고 하늘을 믿는 미친
자들이니
너는 정신을 바짝 차리고 그 곳에 가야 된다.
그리고 그 미친 자들하고는 절대 눈 길 한 번 마주치지 말아라.
그렇지 않고 네가 그자들이 믿는 하늘을 믿게 되면 네 목숨은 여기서
끝나게 될 것이다.”
그런데 거기 가서 그 사람들을 보는 순간 나는 너무 놀랐습니다.
그들은 사람의 무리 같지 않았습니다.
1,500도 이상 시뻘겋게 타오르는 용광로의 고열 노동 작업장이었는데
그 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움직이는 걸 보았을 때,
무슨 짐승의 무리 같기도 하고 외계인 같기도 하고
도무지 사람의 모습을 찾아볼래야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머리에 머리카락이 붙어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고,
얼굴은 해골 같고 이빨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키기 다 줄어들어서 120센티 30센티 요렇게 땅에 딱 붙은 난쟁이들만
움직였습니다.
나는 가까이 가서 그들을 보았습니다.
전 너무나 놀랐습니다.
잡혀 올 때는 정상인들이 잡혀 왔는데 거기 와서 하루 열 여섯 시간,
열 여덟 시간씩 먹지도 못하고 그 고열 노동 속에서 일을 하다 보니
그 사람들은 척추가 녹아 내려서 뒷잔등에 혹이 되어 있었고 몸이 다
휘어져서
앞가슴하고 배가 마주 붙어 있었습니다.
그 사람들은 한결같이 모두 그렇게 육체가 망가져 기형이 되어 있었습
니다.
아마 프레스로 찍어도 한 판에 그렇게 똑 같은 모습으로 찍기는 힘들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 사람들이 일하는 작업장에는 교도관들이 수시로 드나들었는데 교도
관들은
말로 일을 시키지 않았습니다.
소가죽 채찍을 윙윙 휘두르고 다니면서 묵묵히 일하는 사람들을 사정
없이 내리쳤습니다.
예수를 믿는 그 사람들의 몸에는 옷이 입혀져 있지 않습니다.
저는 처음에 멀리서 그 사람들을 보았을 때 모두 다 꺼먼 옷을 입고
있는가 했습니다.
그런데 가까이 다가가서 찬찬히 보니
그 사람들은 맨 살가죽에다 앞에 시커먼 고무 앞치마 하나만 걸치고
있었습니다.
용광로의 뜨거운 불꽃이 앙상하게 말라붙은 살가죽에 튀고 또 튀어 딱
지가 앉고
그 자리에 쇳물이 또 떨어지고, 타버리고 해서
그 사람들의 피부는 한 곳도 성한 곳이 없었고 마치 짐승의 가죽과 같
았습니다.
어느 날 저는 그 곳에서 정말 말로 전하기 힘든 너무나 끔찍하고 참혹
한 광경을 목격하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오후, 제가 공장문을 열고 들어섰는데, 공장안이 쥐 죽은 듯
고요했습니다.
작업장 한 가운데 수 백 명의 그 죄수 아닌 죄수를 모아놓고 담당 교
도관 두 명이
눈에 핏발을 세우고 미친 듯이 고함을 치며 날 뛰고 있었습니다.
저는 너무나 무서워서 문 옆 한쪽에 비켜 서 있었습니다.
교도관들은 수령님을 믿지 않고 하늘을 믿는 미친 정신병자 놈들이라
고,
소리 소리지르며 그 사람들을 차고, 때리고 하면서 인간이하의 취급
을 하고 있었
습니다.
교도관들은
“너희들 가운데서 단 한 사람이라도 좋으니 대열 앞에 나서라.
하늘을 믿지 않고 수령님을 믿겠다고 하면 자유세상으로 내보내서 잘
살 수
있게 만들어 주겠다.”하면서 그 사람들을 윽박지르며 하늘을 거부하
라고
그렇게 채찍으로 때리고 발로 차고 했습니다.
그런데도 너무나도 이상했습니다.수 백 명의 그 사람들은 왜 그런지
아무
대답도 없이 그렇게 매를 맞으면서도 침묵으로 맞섰습니다.
저는 너무나 무서워서 빨리 한 사람이라도 나서야 되는데 그래야 오
늘 누가
맞아죽지 않을 텐데 왜 계속 저렇게 입을 다물고 있나. 저러고 있으
면 또
누구를 끌어내다가 밟아 죽일지 모르는데 빨리 한 사람이라도 나서야
되지
않겠는가 그렇게 마음속으로 다급하게 생각하며 문 옆에 서서 무서움
과
공포 속에서 떨고 있는데
예수를 믿는 그 사람들은 계속 침묵으로 대응했습니다.
그 때 독이 오른 교도관이 그 사람들에게 달려가서 닥치는 대로
아무나 여덟 명을 끌어 내다가 땅바닥에 엎어놓았습니다.
그리고는 구둣발로 내리밟고 짓이겼습니다.
순식간에 피투성이가 되고 허리며 팔 다리뼈가 부러졌습니다.
그 사람들은 고통 중에서도 몸을 뒤틀면서, 짓밟힐 때마다 신음소리
를 냈는데
그 신음소리가 너무나도 이상하게 들렸습니다.
저는 그때, 주님이 누군지,하느님이 누군지도 전혀 몰랐습니다.
뒤에 알고 보니 그 사람들이 구둣발로 짓밟혀 뼈가 부러지고 머리통
이
부서져 나가면서 신음소리처럼 애타게 불렀던 것은 바로 주님의
이름이었던 것입니다.
저는 그 사람들이 당했던 고통의 천만 분의 일도 제대로 여러분에게
전해
줄 수가 없습니다.
미쳐 날 뛰던 교도관 두 명은 “수령님과 당을 믿는 우리가 사는가 아
니면
하느님을 믿는 너희가 사는가 보자” 면서 달려 가더니 용광로의 펄
펄 끓는
쇳물통을 끌어왔습니다.
그리고는 그 쇳물을 피투성이가 된 그 신자들 위에 부었습니다.
그 사람들은 순식간에 살이 녹고 뼈가 타면서 숯덩이가 되어 버렸습니
다.
저는 난생 처음으로 내 눈앞에서 사람이 숯덩이로 변해가는 것을 보았
습니다.
얼마나 그 충격이 컸던지, 그 곳을 어떻게 튀어나왔는지 기억에도 없
습니다.
그리고 얼마동안 도무지 눈을 감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 정신적 충격으로 눈만 감으면 눈앞에 숯덩이가 된 사람이 어른거려
서
도무지 눈을 감을 수 없고, 잠도 제대로 잘 수가 없었고, 일도 제대
로 할
수가 없었으며 큰 소리로 비명을 지르고 정신이 들어갔다 나갔다 했습
니다.
저는 그 일을 목격하기 전까지는 그래도 마음 한 구석에 실오라기만큼
이라도
수령님과 당에 대해서 믿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때 깨달았습니다. 무엇을 믿어야 하는가를 말입니다.
인간은 주님을 꽉 잡아야 된다는 것을 저는 그때 뼈저리게 깨달았습니
다.
저는 그때부터 다시, 우리 어머니가 평생을 하늘에 기도했다는 그 하
늘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너무나도 간절하게 하늘을 찾았습니다.
“저 사람들이 저렇게 불에 타 죽으면서까지도 저렇게 거부하지 않
고, 저렇게
믿는 하늘이, 진짜로 그 하늘이 어디에 계시다면 나를 좀 살려달라
고...
그리고 저렇게 무서운 짓을 하는 저 자들에게 하늘에서 정말 벌을 내
려줘야
되지 않겠느냐”고 그렇게 마음속으로 부르짖으며 자나깨나 꿈속에서
도
하늘을 찾고 또 찾고 기원했습니다.
그런데 진짜로 주님께서 그 간절한 저의 기도를 들어 주셨습니다.
한 달이 멀다 하고 공개처형이 있었는데 어느 날 누구를 또 공개처형
시키려
는지 6천명이나 되는 수용소 사람들을 한 자리에 다 모이게 했습니
다.
공개처형 때는 언제나 하늘을 믿는 사람들을 맨 앞 줄에 앉힙니다.
그런데 하늘을 믿는 자들은 살아서나 죽어서나 하늘을 xx 못하게 하라
는
김일성의 특별지시와 규정이 있어서 하늘을 믿는 그 사람들을 앉힐 때
에는
무릎사이에 목을 끼우고 땅에 얼굴을 대고 엎드리게 했습니다.
심지어 죽어서도 하늘을 xx 못하게 해야 한다면서 죽은 시체도 목을
꺾어
거적에 말아서 어두컴컴한 산골짜기 나무 밑에 파묻게 규정이 그렇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 날도 신자들은 하늘을 조금도 못 보도록 목을 무릎사이에 끼우고
맨
앞줄에 앉아 있었고, 그 뒤쪽으로 다른 사람들이 줄지어 앉아 있었습
니다.
누구를 또 공개처형하려는가? 생각하고 있는데 갑자기 큰 소리로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저는 너무 놀라 쇠몽둥이로 머리를 한 대 맞은 것처럼 정신이 아찔하
여
대답도 할 수가 없었고 일어 설 수도 없었습니다.
그러자 간수들이 나를 끌어내다 앞에 세웠습니다.
내가 군중들 앞에 섰을 때, 수용소 소장이 나에게
“고마운 수령님과
당의 은덕으로 너는 이 시각에 석방이다”라고 통보를 했습니다.
바로 그 순간, 목을 무릎에다 끼우고 맨 앞줄에 엎드려 있던 신자들
이 내가
석방된다는 소리에 약속이나 한 듯이 동시에 고개를 번쩍들었습니다.
그 때 저는 그분들의 눈빛을 보았습니다.
그 분들은 눈빛으로 간절히 말했습니다.
‘밖에 나가거든 자기들의 실상을 세상에 알려 달라’고.. 지금도
제 가슴에는 그분들의 그 간절한 눈빛이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어머니가 평생을 빌고 또 빌은 그 하늘이, 한 번 들어가
면 살아
나올 수 없는 그 악명높은 정치범 수용소에서 저를 살려 주었다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저희 모자를 살려 주셨기 때문입니다.
저는 북한의 수용소에 갇혀있는 그 신자들의 눈빛을 절대로 잊을 수
가
없습니다.
저는 그분들이 이 시대의 순교자라고 봅니다.
저의 증언으로 인해 북한 신자들의 인권문제가 150 여개 나라에 나갔
고
세계가 떠들었습니다.
유럽의 지식인 100 여명이 프랑스에 모여 북한 신자들의 인권을 위한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여러분 자유롭게 신앙생활 할 수 있는 것에 감사하십시오.
그리고 북한을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탈북자 이순옥씨의 증언 중 일부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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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강제수용소에서 7년 간 고초를 겪은 뒤 탈북한
이순옥 (52)씨가 29일 오전 11시 파리의 메종 드 라디오 프랑스에서
북한 인권 실태에
대해 증언했다.
인권단체 프랑스 리베르테 초청으로 파리에 온 이씨는 이날 라디오
프랑스 엥테르의 공개 방송에 출연,
“여자로서 차마 견디기 힘든 고문을 겪었고,
영하 35도 이하 겨울에 발가벗긴 채 추위에 떠는
「동태 고문」 으로 동상에 걸려
열개의 발톱이 다 빠졌다”고 폭로했다.
이씨는 “사형장으로 끌려가던 한 여성이 집에 두고
온 아이들 이름을 부르면서 죽지 않으려고 몸부림치던 모습이
지금도 지워지지 않는다”고
북한수용소의 참상을 전했다.
함경북도에서 당간부 전용 물자 공급소장을 지낸
이씨는
지난 85년 경찰간부의 뇌물 요구를 거절한 뒤 정치범으로 몰려
인민 재판에서 13년형을
선고받고 평남 개천 교화소에서 92년까지 강제 노동에 시달렸다가
94년 아들과 함께
중국을 거쳐 탈북에 성공했다.
프랑스 엥테르는 북한 인권 운동을 펼치고 있는
피에르 리굴로 사회사평론 편집장을 비롯해 앙리 플라뇰(프랑스 민주
연합)의원,
「국경없는 의사회」 수석연구원 프랑스와 장, 필립 골립 파리 8대학
교수 등도 출연자로 초청,
북한 인권 문제를 본격적으로 제기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 펌글 ***
다.
그러다가 주님의 은총으로 96년 아들을 데리고 남한으로 올 수 있었습
니다.
저는 북한에서 태어나 북한에서 성장했기 때문에 하느님을 모르고 살
았습니다.
제가 영문도 모른 채 지하 감옥에서 모진 고문과 사형선고까지 받고
사형집행날
극적으로 사형을 취소한다는 통지와 함께 정치범 수용소로 보내 졌을
때
수용소 안에서 겪은 북한 신자들의 모습입니다.
저는 김일성 대학 경제학부를 졸업했기 때문에 정치범 수용소에서 죄
수의 신분으로 유일하게
6,000 여명이 수용된 그 곳의 모든 사람들에게 일을 시킬 수 있는
생산지휘와 모든 재정업무를 맡아서 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문에 저는 많은 사람들이 일하는 작업장들을 이곳저곳 마음대로
갈수있었습니다.
어느 날 저를 담당하고 있던 재정부장 교도관이 저를 불러놓고는 단단
히 교육을 시켰습니다.
“너는 오늘부터 매일 어떤 공장으로 나가야 하는데
그 공장에는 미친 정신병자 놈들만 모여 있다.
그 미친 정신병자 놈들은 당과 수령님을 믿지 않고 하늘을 믿는 미친
자들이니
너는 정신을 바짝 차리고 그 곳에 가야 된다.
그리고 그 미친 자들하고는 절대 눈 길 한 번 마주치지 말아라.
그렇지 않고 네가 그자들이 믿는 하늘을 믿게 되면 네 목숨은 여기서
끝나게 될 것이다.”
그런데 거기 가서 그 사람들을 보는 순간 나는 너무 놀랐습니다.
그들은 사람의 무리 같지 않았습니다.
1,500도 이상 시뻘겋게 타오르는 용광로의 고열 노동 작업장이었는데
그 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움직이는 걸 보았을 때,
무슨 짐승의 무리 같기도 하고 외계인 같기도 하고
도무지 사람의 모습을 찾아볼래야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머리에 머리카락이 붙어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고,
얼굴은 해골 같고 이빨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키기 다 줄어들어서 120센티 30센티 요렇게 땅에 딱 붙은 난쟁이들만
움직였습니다.
나는 가까이 가서 그들을 보았습니다.
전 너무나 놀랐습니다.
잡혀 올 때는 정상인들이 잡혀 왔는데 거기 와서 하루 열 여섯 시간,
열 여덟 시간씩 먹지도 못하고 그 고열 노동 속에서 일을 하다 보니
그 사람들은 척추가 녹아 내려서 뒷잔등에 혹이 되어 있었고 몸이 다
휘어져서
앞가슴하고 배가 마주 붙어 있었습니다.
그 사람들은 한결같이 모두 그렇게 육체가 망가져 기형이 되어 있었습
니다.
아마 프레스로 찍어도 한 판에 그렇게 똑 같은 모습으로 찍기는 힘들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 사람들이 일하는 작업장에는 교도관들이 수시로 드나들었는데 교도
관들은
말로 일을 시키지 않았습니다.
소가죽 채찍을 윙윙 휘두르고 다니면서 묵묵히 일하는 사람들을 사정
없이 내리쳤습니다.
예수를 믿는 그 사람들의 몸에는 옷이 입혀져 있지 않습니다.
저는 처음에 멀리서 그 사람들을 보았을 때 모두 다 꺼먼 옷을 입고
있는가 했습니다.
그런데 가까이 다가가서 찬찬히 보니
그 사람들은 맨 살가죽에다 앞에 시커먼 고무 앞치마 하나만 걸치고
있었습니다.
용광로의 뜨거운 불꽃이 앙상하게 말라붙은 살가죽에 튀고 또 튀어 딱
지가 앉고
그 자리에 쇳물이 또 떨어지고, 타버리고 해서
그 사람들의 피부는 한 곳도 성한 곳이 없었고 마치 짐승의 가죽과 같
았습니다.
어느 날 저는 그 곳에서 정말 말로 전하기 힘든 너무나 끔찍하고 참혹
한 광경을 목격하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오후, 제가 공장문을 열고 들어섰는데, 공장안이 쥐 죽은 듯
고요했습니다.
작업장 한 가운데 수 백 명의 그 죄수 아닌 죄수를 모아놓고 담당 교
도관 두 명이
눈에 핏발을 세우고 미친 듯이 고함을 치며 날 뛰고 있었습니다.
저는 너무나 무서워서 문 옆 한쪽에 비켜 서 있었습니다.
교도관들은 수령님을 믿지 않고 하늘을 믿는 미친 정신병자 놈들이라
고,
소리 소리지르며 그 사람들을 차고, 때리고 하면서 인간이하의 취급
을 하고 있었
습니다.
교도관들은
“너희들 가운데서 단 한 사람이라도 좋으니 대열 앞에 나서라.
하늘을 믿지 않고 수령님을 믿겠다고 하면 자유세상으로 내보내서 잘
살 수
있게 만들어 주겠다.”하면서 그 사람들을 윽박지르며 하늘을 거부하
라고
그렇게 채찍으로 때리고 발로 차고 했습니다.
그런데도 너무나도 이상했습니다.수 백 명의 그 사람들은 왜 그런지
아무
대답도 없이 그렇게 매를 맞으면서도 침묵으로 맞섰습니다.
저는 너무나 무서워서 빨리 한 사람이라도 나서야 되는데 그래야 오
늘 누가
맞아죽지 않을 텐데 왜 계속 저렇게 입을 다물고 있나. 저러고 있으
면 또
누구를 끌어내다가 밟아 죽일지 모르는데 빨리 한 사람이라도 나서야
되지
않겠는가 그렇게 마음속으로 다급하게 생각하며 문 옆에 서서 무서움
과
공포 속에서 떨고 있는데
예수를 믿는 그 사람들은 계속 침묵으로 대응했습니다.
그 때 독이 오른 교도관이 그 사람들에게 달려가서 닥치는 대로
아무나 여덟 명을 끌어 내다가 땅바닥에 엎어놓았습니다.
그리고는 구둣발로 내리밟고 짓이겼습니다.
순식간에 피투성이가 되고 허리며 팔 다리뼈가 부러졌습니다.
그 사람들은 고통 중에서도 몸을 뒤틀면서, 짓밟힐 때마다 신음소리
를 냈는데
그 신음소리가 너무나도 이상하게 들렸습니다.
저는 그때, 주님이 누군지,하느님이 누군지도 전혀 몰랐습니다.
뒤에 알고 보니 그 사람들이 구둣발로 짓밟혀 뼈가 부러지고 머리통
이
부서져 나가면서 신음소리처럼 애타게 불렀던 것은 바로 주님의
이름이었던 것입니다.
저는 그 사람들이 당했던 고통의 천만 분의 일도 제대로 여러분에게
전해
줄 수가 없습니다.
미쳐 날 뛰던 교도관 두 명은 “수령님과 당을 믿는 우리가 사는가 아
니면
하느님을 믿는 너희가 사는가 보자” 면서 달려 가더니 용광로의 펄
펄 끓는
쇳물통을 끌어왔습니다.
그리고는 그 쇳물을 피투성이가 된 그 신자들 위에 부었습니다.
그 사람들은 순식간에 살이 녹고 뼈가 타면서 숯덩이가 되어 버렸습니
다.
저는 난생 처음으로 내 눈앞에서 사람이 숯덩이로 변해가는 것을 보았
습니다.
얼마나 그 충격이 컸던지, 그 곳을 어떻게 튀어나왔는지 기억에도 없
습니다.
그리고 얼마동안 도무지 눈을 감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 정신적 충격으로 눈만 감으면 눈앞에 숯덩이가 된 사람이 어른거려
서
도무지 눈을 감을 수 없고, 잠도 제대로 잘 수가 없었고, 일도 제대
로 할
수가 없었으며 큰 소리로 비명을 지르고 정신이 들어갔다 나갔다 했습
니다.
저는 그 일을 목격하기 전까지는 그래도 마음 한 구석에 실오라기만큼
이라도
수령님과 당에 대해서 믿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때 깨달았습니다. 무엇을 믿어야 하는가를 말입니다.
인간은 주님을 꽉 잡아야 된다는 것을 저는 그때 뼈저리게 깨달았습니
다.
저는 그때부터 다시, 우리 어머니가 평생을 하늘에 기도했다는 그 하
늘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너무나도 간절하게 하늘을 찾았습니다.
“저 사람들이 저렇게 불에 타 죽으면서까지도 저렇게 거부하지 않
고, 저렇게
믿는 하늘이, 진짜로 그 하늘이 어디에 계시다면 나를 좀 살려달라
고...
그리고 저렇게 무서운 짓을 하는 저 자들에게 하늘에서 정말 벌을 내
려줘야
되지 않겠느냐”고 그렇게 마음속으로 부르짖으며 자나깨나 꿈속에서
도
하늘을 찾고 또 찾고 기원했습니다.
그런데 진짜로 주님께서 그 간절한 저의 기도를 들어 주셨습니다.
한 달이 멀다 하고 공개처형이 있었는데 어느 날 누구를 또 공개처형
시키려
는지 6천명이나 되는 수용소 사람들을 한 자리에 다 모이게 했습니
다.
공개처형 때는 언제나 하늘을 믿는 사람들을 맨 앞 줄에 앉힙니다.
그런데 하늘을 믿는 자들은 살아서나 죽어서나 하늘을 xx 못하게 하라
는
김일성의 특별지시와 규정이 있어서 하늘을 믿는 그 사람들을 앉힐 때
에는
무릎사이에 목을 끼우고 땅에 얼굴을 대고 엎드리게 했습니다.
심지어 죽어서도 하늘을 xx 못하게 해야 한다면서 죽은 시체도 목을
꺾어
거적에 말아서 어두컴컴한 산골짜기 나무 밑에 파묻게 규정이 그렇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 날도 신자들은 하늘을 조금도 못 보도록 목을 무릎사이에 끼우고
맨
앞줄에 앉아 있었고, 그 뒤쪽으로 다른 사람들이 줄지어 앉아 있었습
니다.
누구를 또 공개처형하려는가? 생각하고 있는데 갑자기 큰 소리로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저는 너무 놀라 쇠몽둥이로 머리를 한 대 맞은 것처럼 정신이 아찔하
여
대답도 할 수가 없었고 일어 설 수도 없었습니다.
그러자 간수들이 나를 끌어내다 앞에 세웠습니다.
내가 군중들 앞에 섰을 때, 수용소 소장이 나에게
“고마운 수령님과
당의 은덕으로 너는 이 시각에 석방이다”라고 통보를 했습니다.
바로 그 순간, 목을 무릎에다 끼우고 맨 앞줄에 엎드려 있던 신자들
이 내가
석방된다는 소리에 약속이나 한 듯이 동시에 고개를 번쩍들었습니다.
그 때 저는 그분들의 눈빛을 보았습니다.
그 분들은 눈빛으로 간절히 말했습니다.
‘밖에 나가거든 자기들의 실상을 세상에 알려 달라’고.. 지금도
제 가슴에는 그분들의 그 간절한 눈빛이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어머니가 평생을 빌고 또 빌은 그 하늘이, 한 번 들어가
면 살아
나올 수 없는 그 악명높은 정치범 수용소에서 저를 살려 주었다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저희 모자를 살려 주셨기 때문입니다.
저는 북한의 수용소에 갇혀있는 그 신자들의 눈빛을 절대로 잊을 수
가
없습니다.
저는 그분들이 이 시대의 순교자라고 봅니다.
저의 증언으로 인해 북한 신자들의 인권문제가 150 여개 나라에 나갔
고
세계가 떠들었습니다.
유럽의 지식인 100 여명이 프랑스에 모여 북한 신자들의 인권을 위한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여러분 자유롭게 신앙생활 할 수 있는 것에 감사하십시오.
그리고 북한을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탈북자 이순옥씨의 증언 중 일부 발췌
-----------------------------------------------------------------
---------------
북한 강제수용소에서 7년 간 고초를 겪은 뒤 탈북한
이순옥 (52)씨가 29일 오전 11시 파리의 메종 드 라디오 프랑스에서
북한 인권 실태에
대해 증언했다.
인권단체 프랑스 리베르테 초청으로 파리에 온 이씨는 이날 라디오
프랑스 엥테르의 공개 방송에 출연,
“여자로서 차마 견디기 힘든 고문을 겪었고,
영하 35도 이하 겨울에 발가벗긴 채 추위에 떠는
「동태 고문」 으로 동상에 걸려
열개의 발톱이 다 빠졌다”고 폭로했다.
이씨는 “사형장으로 끌려가던 한 여성이 집에 두고
온 아이들 이름을 부르면서 죽지 않으려고 몸부림치던 모습이
지금도 지워지지 않는다”고
북한수용소의 참상을 전했다.
함경북도에서 당간부 전용 물자 공급소장을 지낸
이씨는
지난 85년 경찰간부의 뇌물 요구를 거절한 뒤 정치범으로 몰려
인민 재판에서 13년형을
선고받고 평남 개천 교화소에서 92년까지 강제 노동에 시달렸다가
94년 아들과 함께
중국을 거쳐 탈북에 성공했다.
프랑스 엥테르는 북한 인권 운동을 펼치고 있는
피에르 리굴로 사회사평론 편집장을 비롯해 앙리 플라뇰(프랑스 민주
연합)의원,
「국경없는 의사회」 수석연구원 프랑스와 장, 필립 골립 파리 8대학
교수 등도 출연자로 초청,
북한 인권 문제를 본격적으로 제기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 펌글 ***
21 years 9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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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은혜가 늘 함께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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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years 9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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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슈아리 칼럼
이렇게 하자
내게 오면 내 것이게 하는 자신감을 갖자
주어진 사람을 그냥 좋아하자
깊게 따지거나 가늠하지 말자
좋으면 좋은대로 그만이자 하자
내가 누구여야 하는가를 신경쓰지 말자
인사를 정답게 하는 사람이 되자
친구가 참으로 많은 사람을 좋아하자
그가 누구를 더 좋아하는가는 신경쓰지 말자
사람을 많이 아는 사람을 좋아하자
하루에도 수십통의 편지를 쓸 수 있는 사람이 되자
남을 더욱 소중히 여기고 사랑 할 줄 아는 사람이 되자
누군가로 인해서도 나를 아파하는 사람이 되자
그냥 사람에게 감동하는 사람이 되자
상대의 사연에 가슴 아파하는 사람이 되자
정말 너그러운 사람이 되자
나누는 사람이 되고 주는 기쁨을 아는 사람이 되자
있는대로 충분하다고 여유를 부리는 사람이 되자
이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자신하며 살자
아무렴 어떤가! 큰소리치며 자존심으로 살자
용기있고 자신있고 자긍심있는 사람이 되자
너그럽고 여유있는 사람으로 살자
내 것 아닌 것이 없다고 느긋하게 여기자
너무 많은 것을 바라는 마음을 버리자
더 많은 것이 내게 없음을 다행으로 여기자
쓸데없는 욕심이 다가올때 얼른 마음을 다잡는 사람이 되자
허욕이 생길때 그것은 참다운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아는 사람이 되자
불평불만하지 말자
너무 욕심부리지 말자
짜증나는 일이 있어도 좋은 방향으로 이해하자
행복은 내가 만들어간다는 사실을 믿자
왜 그래야 하는가를 굳이 마음쓰지 말자
내 마음을 내가 스스로 아프게 하지 말자
도움이 되고 힘이 되는 사람이 되자
그 사람의 입장이 되어보는 훈련을 하자
바라기보다 내가 그런 사람이 되도록 하자
그냥 여유롭게 웃어 넘기는 사람이 되자
하나를 더 주지 못해 안타까워하는 사람이 되자
어떤 사람이 주위에 있는가는 고민하지 말자
남을 탓하기보다 우선 나를 먼저 탓하는 사람이 되자
내 현실의 아쉬움을 나에게서부터 먼저 찾아내자
현실의 부족함은 나로부터 해결해나가야 된다고 생각하자
내가 서있는 자리가 어딘가를 아는 사람이 되자.
내가 바로 이런 사람이 되자!
내게 오면 내 것이게 하는 자신감을 갖자
주어진 사람을 그냥 좋아하자
깊게 따지거나 가늠하지 말자
좋으면 좋은대로 그만이자 하자
내가 누구여야 하는가를 신경쓰지 말자
인사를 정답게 하는 사람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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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너그러운 사람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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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대로 충분하다고 여유를 부리는 사람이 되자
이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자신하며 살자
아무렴 어떤가! 큰소리치며 자존심으로 살자
용기있고 자신있고 자긍심있는 사람이 되자
너그럽고 여유있는 사람으로 살자
내 것 아닌 것이 없다고 느긋하게 여기자
너무 많은 것을 바라는 마음을 버리자
더 많은 것이 내게 없음을 다행으로 여기자
쓸데없는 욕심이 다가올때 얼른 마음을 다잡는 사람이 되자
허욕이 생길때 그것은 참다운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아는 사람이 되자
불평불만하지 말자
너무 욕심부리지 말자
짜증나는 일이 있어도 좋은 방향으로 이해하자
행복은 내가 만들어간다는 사실을 믿자
왜 그래야 하는가를 굳이 마음쓰지 말자
내 마음을 내가 스스로 아프게 하지 말자
도움이 되고 힘이 되는 사람이 되자
그 사람의 입장이 되어보는 훈련을 하자
바라기보다 내가 그런 사람이 되도록 하자
그냥 여유롭게 웃어 넘기는 사람이 되자
하나를 더 주지 못해 안타까워하는 사람이 되자
어떤 사람이 주위에 있는가는 고민하지 말자
남을 탓하기보다 우선 나를 먼저 탓하는 사람이 되자
내 현실의 아쉬움을 나에게서부터 먼저 찾아내자
현실의 부족함은 나로부터 해결해나가야 된다고 생각하자
내가 서있는 자리가 어딘가를 아는 사람이 되자.
내가 바로 이런 사람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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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병은 이민가야 낫는다고 하죠?
제가 몇년전부터 아버지를 설득해서
반쯤 승락을 얻었는데
가서 막상 무얼해서 먹고 살지 가름이 안가네요.
그래서 일단 제가 올해 7-10월까지 한인사회에서
정보도 구하고 사람들도 만나보고 해서
식구들에게 보고를 할려합니다.
문제는 방을 얻는 것인데 아무리 험해도 괜찮습니다.
여러명 같이 써도 상관없고요. 한국사람을 많이
만날수 있는 곳이면 좋겠습니다.
가는건 정확히 6월 20일에서 7월 10일사이입니다.
부탁드려요. 그리고 우리집이 대구에서 여관하는데
대구와서 호텔가지말고 우리집에 오시면 방 거져 내드릴테니
연락주세요.
제가 몇년전부터 아버지를 설득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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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서 막상 무얼해서 먹고 살지 가름이 안가네요.
그래서 일단 제가 올해 7-10월까지 한인사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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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years 9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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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롬! 운영자 입니다.
이민 준비 하시면서 캘거리로 답사를 원한다는 말씀이죠? 단기간 머무신다면 저는 한국인 홈스테이를 권해 드립니다. 물론 4개월 정도면 그리 짧은 기간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렌트를 얻어 자취하신다면 숙식을 직접 해결해야 하고 여러 가지 갖춰야 할 것들이 많으므로 홈스테이가 가장 적당하다고 봅니다. 한국인 홈스테이 비용은 보통 월 $800 - $900 정도입니다.
말씀하신대로 홈쉐어(여러명이 렌트를 얻어 숙식을 함께 해결)하는 방법도 가능합니다만 일단 초기에는 한국인 홈스테이에 머무시면서 맘에 맞는 분을 찾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오늘도 건강하세요.
God bless you.
이정환 wrote:
> 이민병은 이민가야 낫는다고 하죠?
>
> 제가 몇년전부터 아버지를 설득해서
>
> 반쯤 승락을 얻었는데
>
> 가서 막상 무얼해서 먹고 살지 가름이 안가네요.
>
> 그래서 일단 제가 올해 7-10월까지 한인사회에서
>
> 정보도 구하고 사람들도 만나보고 해서
>
> 식구들에게 보고를 할려합니다.
>
> 문제는 방을 얻는 것인데 아무리 험해도 괜찮습니다.
>
> 여러명 같이 써도 상관없고요. 한국사람을 많이
>
> 만날수 있는 곳이면 좋겠습니다.
>
> 가는건 정확히 6월 20일에서 7월 10일사이입니다.
>
> 부탁드려요. 그리고 우리집이 대구에서 여관하는데
>
> 대구와서 호텔가지말고 우리집에 오시면 방 거져 내드릴테니
>
> 연락주세요.
이민 준비 하시면서 캘거리로 답사를 원한다는 말씀이죠? 단기간 머무신다면 저는 한국인 홈스테이를 권해 드립니다. 물론 4개월 정도면 그리 짧은 기간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렌트를 얻어 자취하신다면 숙식을 직접 해결해야 하고 여러 가지 갖춰야 할 것들이 많으므로 홈스테이가 가장 적당하다고 봅니다. 한국인 홈스테이 비용은 보통 월 $800 - $900 정도입니다.
말씀하신대로 홈쉐어(여러명이 렌트를 얻어 숙식을 함께 해결)하는 방법도 가능합니다만 일단 초기에는 한국인 홈스테이에 머무시면서 맘에 맞는 분을 찾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오늘도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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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환 wrote:
> 이민병은 이민가야 낫는다고 하죠?
>
> 제가 몇년전부터 아버지를 설득해서
>
> 반쯤 승락을 얻었는데
>
> 가서 막상 무얼해서 먹고 살지 가름이 안가네요.
>
> 그래서 일단 제가 올해 7-10월까지 한인사회에서
>
> 정보도 구하고 사람들도 만나보고 해서
>
> 식구들에게 보고를 할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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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제는 방을 얻는 것인데 아무리 험해도 괜찮습니다.
>
> 여러명 같이 써도 상관없고요. 한국사람을 많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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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는건 정확히 6월 20일에서 7월 10일사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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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탁드려요. 그리고 우리집이 대구에서 여관하는데
>
> 대구와서 호텔가지말고 우리집에 오시면 방 거져 내드릴테니
>
> 연락주세요.
21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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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2003년5월 정착 예정인 기업이민에정자 입니다.신앙인은 아니지만 귀 사이트
에서 좋은 정보를 많이 얻고갑니다.앞으로 캘거리 생활에 큰도움이될것입니다.
캘거리 순복음 교회의 발전을 기원 합니다.
에서 좋은 정보를 많이 얻고갑니다.앞으로 캘거리 생활에 큰도움이될것입니다.
캘거리 순복음 교회의 발전을 기원 합니다.
21 years 10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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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유학생회
유학생 형제 자매님들 안뇽~
지난 주일엔 마니들 교회에 안나왔기에 좀 섭섭했답니다
아마도 감기에 마니 걸렸는가 봐요
장년부에도 감기 때문에 주일 예배에 빠진 식구가 좀 있었거든요
우리 청년유학생들 힘내세요, 화이팅~
내힘 만으로 어려운 영어공부, 힘드는 유학생활 하려 하지 말고 주님께 도움을 요청하자구요
도움을 구하는 자에게는 반드시 주님께서 도와 주신답니다
유학생활의 성공의 열쇠는 반드시 주님께 있답니다
주님께 구하여 지혜와 총명을 그리고 넘치는 건강의 축복을 받아야 겠어요
다음 주일엔 모두 꼭 나오세요
특히 부부 유학생분들 꼭 나오세요
교회 올때까진 공부도 열심히!!!
안녕~~~
지난 주일엔 마니들 교회에 안나왔기에 좀 섭섭했답니다
아마도 감기에 마니 걸렸는가 봐요
장년부에도 감기 때문에 주일 예배에 빠진 식구가 좀 있었거든요
우리 청년유학생들 힘내세요, 화이팅~
내힘 만으로 어려운 영어공부, 힘드는 유학생활 하려 하지 말고 주님께 도움을 요청하자구요
도움을 구하는 자에게는 반드시 주님께서 도와 주신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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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주일엔 모두 꼭 나오세요
특히 부부 유학생분들 꼭 나오세요
교회 올때까진 공부도 열심히!!!
안녕~~~
21 years 10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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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국제NGO 굿네이버스(Good Neighbors ) 입니다.
아래 그림을 Click하시면 우리아동의 권리가 신장됩니다.
우리아동의 권리를 지켜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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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years 10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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