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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슈아리 칼럼
이글은 캘거리 한인 실협회보에 게재된 글입니다.
저의 교직생활 중에 있었던 넌픽션 스토리이죠, 6.25를 생각하면서 써보았답니
다. 읽는 이 마다 은혜받으시기 기원합니다. (글쓴이: 조슈아 리)
6 월은 호국보훈의 달, 육니오(6.25)가 있고 이승복 어린이와 공산주의가 생각나는 달이다. 김일성은 죽었지만 아직도 한반도에는 공산주의가 남아있는 채, 천만이산가족의 슬픔도 사라지지 않았다.
해마다 6월이면 생각나는 사람인 정아엄마 이야기를 할까 보다.
그러니까 80 년대 후반 진양군의 한 시골학교(남녀공학고교)에 근무할 때다. 3 월초 가정방문차 오토바이를 타고 우리반 정아네 집에 들렀을 때 처음으로 정아엄마의 삶을 전해 듣게 되었다.
정아엄마는 1943 년 이북 평안도에서 태어났는데 해방이 된 후(1945) 김일성이 북한에 공산정권을 수립하면서(1946) 남한과의 교류를 끊고 38도 선에 철조망을 세울 즘인 1948 년 봄에 부모님의 등에 업혀 비밀리에 월남하여 남한 서울근처에 내려와 살게 되었다.
정아엄마가 6 살때인 이듬해(1949)봄에 정아 할아버지께서 이북 고향에 가서 부모님을 모셔 와야겠다기에 정아 할머니가 지금 이북가면 철조망에 막혀 다시는 못 내려오니 가지 말라고 사정하셨지만 부모님을 이북에 두고 우리끼리 살수야 있나 하시며 마침내 떠나게 되는데 '떠날 때는 말없이'가 아니라 어린 정아엄마의 손을 꼭잡고 뽀뽀하고 사탕주면서 "아빠 곧 돌아올게" 하시더라나.
그때 어린 정아엄마는 엄마가 우니까 뭔가 불안해서 "아빠 가지마!" 하면서 함께 울었다는데. 그것이 아빠와의 마지막 이별이 되었을 줄이야......!
그때 월북한 뒤로 김일성은 38 선 철조망 경비를 대폭 보강하고 월남하는 자들을 무조건 총살토록 하였으며 곧이어 1950 년 6 월 '아아 잊으랴 어찌 우리 그날을...탕! 탕!....'6.25 를 일으켰으니......!
아빠를 그리다 어린 것은 잠이 들고 동지섣달 기나긴 밤 잠못들고 헤매일 때 아빠는 죽었는지 살았는지 소식이 없었죠.
십년이 가고 백년이 가도 맨발로 끌며 절며 살아만 돌아오세요......외쳤건만 그로부터 수십년 정아 할머니는 생과부로 남편을 그리면서 아이들 키우시랴 고생고생하시다가 일찍이 세상을 떠나시고 남한 땅에는 정아엄마와 남동생 하나만이 외롭게 남겨졌으니......
이제 어린 정아엄마의 한평생 소원은 이북가신 아버님 한번 만나 뵈는 것......세월은 살같이 흘러 정아엄마도 결혼하여 이북과는 더욱 거리가 먼 '진주라 천리길' 진주땅 한구석에 소 몰고 논밭 가는 농부의 아내가 되어 1 남 1 녀를 낳게 되는데... 운명의 신은 더욱 가혹하여 정아아빠가 농약에 중독되어 그만 먼저 돌아가시게 되고 정아엄마는 할머니처럼 과부의 삶을 살게 되었다.
참으로 심령이 가난해진 이때에 동네 한 권사님의 전도를 받아 교회에 다니기 시작하셨다나...!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라는 말씀처럼 정아엄마의 마음속엔 천국이 자라기 시작하고, 그때부터 정아엄마는 기도 때마다 잊지 않고 `주님 살아 생전에 이북 가신 아버님 한번 만나게 해주세요...`를 기도하게 되었다.
7~8 년째가 되어서 우연히 동네 면사무소 직원의 노력으로 통일원에 이산가족 생사확인 신청서를 제출했더니 우여곡절끝에 북한당국으로부터 생존확인 통보를 받게 되는데...... 이제부터 정아엄마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새벽제단을 쌓으면서 '아버님 돌아가시기 전에 부디 만나게 해주세요.'라고 기도를 계속하였다.
또다시 몇 해가 흘러 1980 년대 초에 이르러 분단이후 처음으로 정부에서 이산가족 고향방문단을 북한으로 보내기 위해 전국 천만 이산가족 중에서 가리고 또 가려서 50~60 명정도 뽑는데 거기에 뽑히게 되었다나...
역사상 처음으로 통일원 고속버스를 타고 임진각 자유의 다리를 넘어 피양(평양)으로 갔는데 북한당국이 정아엄마의 인생이야기를 이미 전해 듣고 특별 배려를 하여 이산가족 중에서 제 1 착으로 꿈에도 그리고 그리던 아버지를 만나게 해주는데 이때 아버지와 딸이 얼싸안고 대성통곡하던 모습을 남북한 취재기자들이 너도나도 찍어서 남북한 전국 일간지에 톱뉴스로 일제이 보도되고 전세계 주요 언론에도 토픽뉴스로 타전 되었으며 국내외 수백 수천 메스컴에 사진과 함께 인생이야기가 보도되었으니 바야흐로 정아엄마의 남북분단으로 인한 슬픈 인생스토리와 아버지를 안고 통곡하는 모습은 이산가족의 상징이 되고 말았다.
전국 각처로부터 위로의 서신이 전해오고 도지사, 군수, 국회의원등 각종 유명인사들의 방문과 하사금(위로금)이 전해지고....정아엄마의 꼬박 10 년 기도가 불가능에서 가능으로, 꿈에서 현실로 이루어지고 말았으니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는니라'는 말씀처럼,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라는 말씀처럼 말이다.
나중에 진호(정아오빠)는 공부를 착실히 하여 경북사대 역사과에 진학 하였고 그 후 대학원에서 공부하고 있다는 소식까지 들었으며 내가 담임했던 정아는 엄마 혼자 둘을 모두 대학에 보내기가 너무 벅차기에 진학하지 못하고 마산의 한 개인병원에 경리직원으로 일하다가 결혼한다는 청첩장을 보내왓으며, 첫아들 낳고서 몇 달 뒤 전화가 와서 "선생님, 아이 기르기가 쉽지 않네요. 매일 목욕 시켜야 되고...(어쩌구)..."하기에 "그럼, 그러면서 키워준 부모의 은혜를 깨닫게 되지. 신랑말 잘 듣고 자주 고향에 어머님 뵈러 가거라. 갈 때마다 용돈도 꼭꼭 드려야돼!"하는 통화를 끝으로(내가 학교 옮기고 이사 다니는 통에) 소식이 끊어지고 말았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믿는 자의 기도는 반드시 응답하십니다.
당장 응답이 오지 않더라도 믿고 간구하고 기다리면 끝에는 응답이 오게 됩니다.
천사가 하나님께 갔다드릴 기도의 잔이 차야 된답니다.
단, 인간의 정욕과 욕심에 따라 구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실만한 것을 구해야 함을 잊지 마십시오.
Don't forget to remember!!!
휴~ 길기도 하다... 근데 다 읽었다!
정아는 지금 33세쯤 되는 아지매...학생때는 쬐에끔 날씬하고 예쁜편이였답니다.
정아네 후일담이 궁금하신분은 저에게 물어도 모릅니다~!!
이민온지 4년동안 연락을 못했습니다. 재송[sorry!] `끝`
저의 교직생활 중에 있었던 넌픽션 스토리이죠, 6.25를 생각하면서 써보았답니
다. 읽는 이 마다 은혜받으시기 기원합니다. (글쓴이: 조슈아 리)
6 월은 호국보훈의 달, 육니오(6.25)가 있고 이승복 어린이와 공산주의가 생각나는 달이다. 김일성은 죽었지만 아직도 한반도에는 공산주의가 남아있는 채, 천만이산가족의 슬픔도 사라지지 않았다.
해마다 6월이면 생각나는 사람인 정아엄마 이야기를 할까 보다.
그러니까 80 년대 후반 진양군의 한 시골학교(남녀공학고교)에 근무할 때다. 3 월초 가정방문차 오토바이를 타고 우리반 정아네 집에 들렀을 때 처음으로 정아엄마의 삶을 전해 듣게 되었다.
정아엄마는 1943 년 이북 평안도에서 태어났는데 해방이 된 후(1945) 김일성이 북한에 공산정권을 수립하면서(1946) 남한과의 교류를 끊고 38도 선에 철조망을 세울 즘인 1948 년 봄에 부모님의 등에 업혀 비밀리에 월남하여 남한 서울근처에 내려와 살게 되었다.
정아엄마가 6 살때인 이듬해(1949)봄에 정아 할아버지께서 이북 고향에 가서 부모님을 모셔 와야겠다기에 정아 할머니가 지금 이북가면 철조망에 막혀 다시는 못 내려오니 가지 말라고 사정하셨지만 부모님을 이북에 두고 우리끼리 살수야 있나 하시며 마침내 떠나게 되는데 '떠날 때는 말없이'가 아니라 어린 정아엄마의 손을 꼭잡고 뽀뽀하고 사탕주면서 "아빠 곧 돌아올게" 하시더라나.
그때 어린 정아엄마는 엄마가 우니까 뭔가 불안해서 "아빠 가지마!" 하면서 함께 울었다는데. 그것이 아빠와의 마지막 이별이 되었을 줄이야......!
그때 월북한 뒤로 김일성은 38 선 철조망 경비를 대폭 보강하고 월남하는 자들을 무조건 총살토록 하였으며 곧이어 1950 년 6 월 '아아 잊으랴 어찌 우리 그날을...탕! 탕!....'6.25 를 일으켰으니......!
아빠를 그리다 어린 것은 잠이 들고 동지섣달 기나긴 밤 잠못들고 헤매일 때 아빠는 죽었는지 살았는지 소식이 없었죠.
십년이 가고 백년이 가도 맨발로 끌며 절며 살아만 돌아오세요......외쳤건만 그로부터 수십년 정아 할머니는 생과부로 남편을 그리면서 아이들 키우시랴 고생고생하시다가 일찍이 세상을 떠나시고 남한 땅에는 정아엄마와 남동생 하나만이 외롭게 남겨졌으니......
이제 어린 정아엄마의 한평생 소원은 이북가신 아버님 한번 만나 뵈는 것......세월은 살같이 흘러 정아엄마도 결혼하여 이북과는 더욱 거리가 먼 '진주라 천리길' 진주땅 한구석에 소 몰고 논밭 가는 농부의 아내가 되어 1 남 1 녀를 낳게 되는데... 운명의 신은 더욱 가혹하여 정아아빠가 농약에 중독되어 그만 먼저 돌아가시게 되고 정아엄마는 할머니처럼 과부의 삶을 살게 되었다.
참으로 심령이 가난해진 이때에 동네 한 권사님의 전도를 받아 교회에 다니기 시작하셨다나...!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라는 말씀처럼 정아엄마의 마음속엔 천국이 자라기 시작하고, 그때부터 정아엄마는 기도 때마다 잊지 않고 `주님 살아 생전에 이북 가신 아버님 한번 만나게 해주세요...`를 기도하게 되었다.
7~8 년째가 되어서 우연히 동네 면사무소 직원의 노력으로 통일원에 이산가족 생사확인 신청서를 제출했더니 우여곡절끝에 북한당국으로부터 생존확인 통보를 받게 되는데...... 이제부터 정아엄마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새벽제단을 쌓으면서 '아버님 돌아가시기 전에 부디 만나게 해주세요.'라고 기도를 계속하였다.
또다시 몇 해가 흘러 1980 년대 초에 이르러 분단이후 처음으로 정부에서 이산가족 고향방문단을 북한으로 보내기 위해 전국 천만 이산가족 중에서 가리고 또 가려서 50~60 명정도 뽑는데 거기에 뽑히게 되었다나...
역사상 처음으로 통일원 고속버스를 타고 임진각 자유의 다리를 넘어 피양(평양)으로 갔는데 북한당국이 정아엄마의 인생이야기를 이미 전해 듣고 특별 배려를 하여 이산가족 중에서 제 1 착으로 꿈에도 그리고 그리던 아버지를 만나게 해주는데 이때 아버지와 딸이 얼싸안고 대성통곡하던 모습을 남북한 취재기자들이 너도나도 찍어서 남북한 전국 일간지에 톱뉴스로 일제이 보도되고 전세계 주요 언론에도 토픽뉴스로 타전 되었으며 국내외 수백 수천 메스컴에 사진과 함께 인생이야기가 보도되었으니 바야흐로 정아엄마의 남북분단으로 인한 슬픈 인생스토리와 아버지를 안고 통곡하는 모습은 이산가족의 상징이 되고 말았다.
전국 각처로부터 위로의 서신이 전해오고 도지사, 군수, 국회의원등 각종 유명인사들의 방문과 하사금(위로금)이 전해지고....정아엄마의 꼬박 10 년 기도가 불가능에서 가능으로, 꿈에서 현실로 이루어지고 말았으니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는니라'는 말씀처럼,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라는 말씀처럼 말이다.
나중에 진호(정아오빠)는 공부를 착실히 하여 경북사대 역사과에 진학 하였고 그 후 대학원에서 공부하고 있다는 소식까지 들었으며 내가 담임했던 정아는 엄마 혼자 둘을 모두 대학에 보내기가 너무 벅차기에 진학하지 못하고 마산의 한 개인병원에 경리직원으로 일하다가 결혼한다는 청첩장을 보내왓으며, 첫아들 낳고서 몇 달 뒤 전화가 와서 "선생님, 아이 기르기가 쉽지 않네요. 매일 목욕 시켜야 되고...(어쩌구)..."하기에 "그럼, 그러면서 키워준 부모의 은혜를 깨닫게 되지. 신랑말 잘 듣고 자주 고향에 어머님 뵈러 가거라. 갈 때마다 용돈도 꼭꼭 드려야돼!"하는 통화를 끝으로(내가 학교 옮기고 이사 다니는 통에) 소식이 끊어지고 말았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믿는 자의 기도는 반드시 응답하십니다.
당장 응답이 오지 않더라도 믿고 간구하고 기다리면 끝에는 응답이 오게 됩니다.
천사가 하나님께 갔다드릴 기도의 잔이 차야 된답니다.
단, 인간의 정욕과 욕심에 따라 구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실만한 것을 구해야 함을 잊지 마십시오.
Don't forget to remember!!!
휴~ 길기도 하다... 근데 다 읽었다!
정아는 지금 33세쯤 되는 아지매...학생때는 쬐에끔 날씬하고 예쁜편이였답니다.
정아네 후일담이 궁금하신분은 저에게 물어도 모릅니다~!!
이민온지 4년동안 연락을 못했습니다. 재송[sorry!] `끝`
22 years 4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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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슈아리 칼럼
이 글은 캘거리 한인 실협회보 최근호에 게재된 글을 이 사이트에 맞게 약간 수정한 글입니다. 서로 읽고서 은혜받으시길 부탁 드립니다(글쓴이: 조슈아 리).
김영삼 대통령 당시 가정방문의 폐해(?)로 인해 정부 차원에서 교사 가정방문을 여러해 금지해 왔었지만 필자는 이에 신경쓰지 않고 해마다 가정방문으로 새학기를 시작하였다.
학급 50명 가운데 결손가정 학생이 보통 10~20%(5~10명)정도다. 학교에서 일년동안 아이들을 잘 지도해 보려고 애를 쓰고 아무리 상담해 봐도 단 한번의 가정방문보다 못하다. 가정방문을 해보면 학생의 환경이나 성격이나 비행이나 무엇이든 이해하는 마음이 생기고, 이 마음이 결국은 아이를(아이의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바뀌게 된다. 사랑이 없이는 아무리 좋은 미사려구(flowery words and fine phrases)로 아이를 지도해 봤자 소리나는 꽹가리가 될 수 밖에 없다.
학기초 진철이네 집(식당)에 갔을 때다. 아빠는 진철이가 초등 3년때 암으로 돌아가시고 엄마는 아들 하나 딸 하나 데리고 울산 세무서(반구동) 근처에서 식당을 하고 있었다. 엄마는 처녀땐 울산교회(장로교)에 열심히 다녔으나 시집와서는 다니는둥 마는둥 하다가 아빠 돌아가시고는 낙심이 되어 아예 발길을 끊었단다.
내가 식당 뒷방에 들어가자마자 예배 드리자고 해서 먼저 찬송가 484장을 부르니 눈물이 나와서 끝까지 부를 수가 없었다. 진철이 엄마를 교회에 못다니게 하고, 진철이 아빠 먼저 데려가고, 진철이 가게 망하게 까지한 마귀가 너무도 미웠다.
진철이네가 이곳에서 몇해 전 식당을 처음 열었을 땐 세무서 직원이나 손님들이 점심 먹으러 자주 와서 그럭저럭 유지를 하였는데 작년부터 큰 가든식당이 새로 근처에 생기는 바람에 손님이 그쪽으로 다 가고 장사가 안되어서 식당을 닫을 수도 없고...닫으면 밑천이 없어서 다른 장사도 못하고...아이들은 계속 키워야 되고...누구하나 도와줄 사람은 없고...이래저래 깊은 근심에 쌓여 있었다.
내가 사연을 듣고서는 대뜸 "진철이 엄마, 왜 그동안 교회 안 다녔어요? 당장 이번 주부터 가까운 교회 나가시고 첫달부터 있건없건 십일조 바치세요. 십일조 바치면 가게 부도는 절대 안나요. 십일조 바쳐서 하나님이 도우시는지 안도우시는지 한번 테스트 해보세요!" 하고 강압적으로 권유하였다.
한참동안 마치 학생 대하듯 마구 윽박질렀더니 기가 죽어서 "그라지요 뭐...이래도 안되고 저래도 안되는데 선생님 말씀처럼 교회에 한번 나가 보께요." 하기에 내가 "한번이 아니라 무조건 빠지지 말고 나가셔야 되요. 갔다가 안갔다가 하면 하나님도 돕기 곤란하고 마귀들이 방해하여 영영 못가게 되요. 이번 주부터 안가시면 나한테 혼날줄 알아요!" 하고 엄포를 놓았으니...(참 이상한 선생님이였죠!)
주말에 가까운 교회 목사님께 연락하여 진철이 엄마 사정을 설명하고서 심방 한번 부탁하였더니 목사님의 방문을 받고부터는 쪼끔씩 교회에 다니게 되었단다.
월요일마다 진철이에게 "어제 엄마랑 교회 나갔냐?"고 물어서 안갔다고 하면 전화해서 또 꾸짖고 '예수님만 의지해라' '믿고 기도해라' '없어도 헌금 드려라' 고 하길 몇달째...진철이 엄마는 차차 교회와 목사님(성도님)께 정이 붙어 나중에는 주일 안빠진다고 나에게 자랑까지 하게 되었으니....
내가 일러준대로 진철이네 식당은 옆에 삣까뻔쩍한 가든식당이 몇개 더 들어서도 부도나지 않고 버티어 나가면서 진철이 동생까지 고등학교 무사히 진학시켰다는 소식을 듣고 필자는 카나다로 떠나오게 되었다.
진철이네가 지금까지 신앙생활 열심히 하면서 십일조 계속 바치고 있다면 하나님께서 그 가정에 일용할 양식일랑 넉넉히 주셔왔음에 틀림이 없겠다.
이곳 카나다에 와서 몇해 살고 보니 비지니스 세계가 살벌하기는 한국과 마찬가지다(사실 한국에서는 비지니스 전혀 몰랐걸랑요). 보증금 주고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권리금 주고 들어가니까 잘못하면 권리금 날린다.
권리금 날리면 돈 빌릴 가까운 친척이나 친구도 별로 없다.
그야말로 낙동강 오리알이다
낙동강 오리알 안되기 위해서는 죽자사자 십일조 바치는 길 뿐이다.
필자가 비지니스 시작하기 전에는 소득이 없어서 계속 십일조를 못바치고 그냥 일반헌금만 하고 지냈더니 우리 목사님께서 설교시간에 '소득(수입)이 없으면 생활비의 십일조라도 바쳐라'고 하시기에 그 말씀에 은혜 받아서 적으나마 생활비의 십일조를 바치기 시작하였으니.... 이민온지 여러해 지금까지 온가족이 까딱없이 버텨오는 것은 다름아닌 십일조의 위력이다.
우리 청년 유학생들도 십일조를 한번 바쳐 보라!
먼저 바치고 나서, 식비내고 학원비 내고 밴프 가고 워터톤도 가보라!
하나님께서 기묘막측한 방법으로 채워 주시는 역사가 일어나게 된다.
소득이 적거나 없을때 바치지 않으면 소득이 있어도 바칠줄 모르게 된다.
이 말씀에 은혜받아 짧은 인생 살 동안 꾸어줄지언정 꾸러 가지 않는 청년유학생이 캘거리에 차고도 넘치길 소망해본다. `끝`
긴 글이지만 끗까지 일거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 교회 청년 유학생들도 소득이 없따면서 헌금 드리기를 소흘히 하고 대신에 산으로 들로 밴프로 워터톤으로 강으로 바다로[이크, 이곳엔 바다가 없꾸나!] 놀러 다니는데 귀한 물찔[영어로 money!] 모두 소비하면 안되겠습니다.
먼저 하나님께 바치고 , 다음 우리를 위해 써야겠썸니다!!!
김영삼 대통령 당시 가정방문의 폐해(?)로 인해 정부 차원에서 교사 가정방문을 여러해 금지해 왔었지만 필자는 이에 신경쓰지 않고 해마다 가정방문으로 새학기를 시작하였다.
학급 50명 가운데 결손가정 학생이 보통 10~20%(5~10명)정도다. 학교에서 일년동안 아이들을 잘 지도해 보려고 애를 쓰고 아무리 상담해 봐도 단 한번의 가정방문보다 못하다. 가정방문을 해보면 학생의 환경이나 성격이나 비행이나 무엇이든 이해하는 마음이 생기고, 이 마음이 결국은 아이를(아이의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바뀌게 된다. 사랑이 없이는 아무리 좋은 미사려구(flowery words and fine phrases)로 아이를 지도해 봤자 소리나는 꽹가리가 될 수 밖에 없다.
학기초 진철이네 집(식당)에 갔을 때다. 아빠는 진철이가 초등 3년때 암으로 돌아가시고 엄마는 아들 하나 딸 하나 데리고 울산 세무서(반구동) 근처에서 식당을 하고 있었다. 엄마는 처녀땐 울산교회(장로교)에 열심히 다녔으나 시집와서는 다니는둥 마는둥 하다가 아빠 돌아가시고는 낙심이 되어 아예 발길을 끊었단다.
내가 식당 뒷방에 들어가자마자 예배 드리자고 해서 먼저 찬송가 484장을 부르니 눈물이 나와서 끝까지 부를 수가 없었다. 진철이 엄마를 교회에 못다니게 하고, 진철이 아빠 먼저 데려가고, 진철이 가게 망하게 까지한 마귀가 너무도 미웠다.
진철이네가 이곳에서 몇해 전 식당을 처음 열었을 땐 세무서 직원이나 손님들이 점심 먹으러 자주 와서 그럭저럭 유지를 하였는데 작년부터 큰 가든식당이 새로 근처에 생기는 바람에 손님이 그쪽으로 다 가고 장사가 안되어서 식당을 닫을 수도 없고...닫으면 밑천이 없어서 다른 장사도 못하고...아이들은 계속 키워야 되고...누구하나 도와줄 사람은 없고...이래저래 깊은 근심에 쌓여 있었다.
내가 사연을 듣고서는 대뜸 "진철이 엄마, 왜 그동안 교회 안 다녔어요? 당장 이번 주부터 가까운 교회 나가시고 첫달부터 있건없건 십일조 바치세요. 십일조 바치면 가게 부도는 절대 안나요. 십일조 바쳐서 하나님이 도우시는지 안도우시는지 한번 테스트 해보세요!" 하고 강압적으로 권유하였다.
한참동안 마치 학생 대하듯 마구 윽박질렀더니 기가 죽어서 "그라지요 뭐...이래도 안되고 저래도 안되는데 선생님 말씀처럼 교회에 한번 나가 보께요." 하기에 내가 "한번이 아니라 무조건 빠지지 말고 나가셔야 되요. 갔다가 안갔다가 하면 하나님도 돕기 곤란하고 마귀들이 방해하여 영영 못가게 되요. 이번 주부터 안가시면 나한테 혼날줄 알아요!" 하고 엄포를 놓았으니...(참 이상한 선생님이였죠!)
주말에 가까운 교회 목사님께 연락하여 진철이 엄마 사정을 설명하고서 심방 한번 부탁하였더니 목사님의 방문을 받고부터는 쪼끔씩 교회에 다니게 되었단다.
월요일마다 진철이에게 "어제 엄마랑 교회 나갔냐?"고 물어서 안갔다고 하면 전화해서 또 꾸짖고 '예수님만 의지해라' '믿고 기도해라' '없어도 헌금 드려라' 고 하길 몇달째...진철이 엄마는 차차 교회와 목사님(성도님)께 정이 붙어 나중에는 주일 안빠진다고 나에게 자랑까지 하게 되었으니....
내가 일러준대로 진철이네 식당은 옆에 삣까뻔쩍한 가든식당이 몇개 더 들어서도 부도나지 않고 버티어 나가면서 진철이 동생까지 고등학교 무사히 진학시켰다는 소식을 듣고 필자는 카나다로 떠나오게 되었다.
진철이네가 지금까지 신앙생활 열심히 하면서 십일조 계속 바치고 있다면 하나님께서 그 가정에 일용할 양식일랑 넉넉히 주셔왔음에 틀림이 없겠다.
이곳 카나다에 와서 몇해 살고 보니 비지니스 세계가 살벌하기는 한국과 마찬가지다(사실 한국에서는 비지니스 전혀 몰랐걸랑요). 보증금 주고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권리금 주고 들어가니까 잘못하면 권리금 날린다.
권리금 날리면 돈 빌릴 가까운 친척이나 친구도 별로 없다.
그야말로 낙동강 오리알이다
낙동강 오리알 안되기 위해서는 죽자사자 십일조 바치는 길 뿐이다.
필자가 비지니스 시작하기 전에는 소득이 없어서 계속 십일조를 못바치고 그냥 일반헌금만 하고 지냈더니 우리 목사님께서 설교시간에 '소득(수입)이 없으면 생활비의 십일조라도 바쳐라'고 하시기에 그 말씀에 은혜 받아서 적으나마 생활비의 십일조를 바치기 시작하였으니.... 이민온지 여러해 지금까지 온가족이 까딱없이 버텨오는 것은 다름아닌 십일조의 위력이다.
우리 청년 유학생들도 십일조를 한번 바쳐 보라!
먼저 바치고 나서, 식비내고 학원비 내고 밴프 가고 워터톤도 가보라!
하나님께서 기묘막측한 방법으로 채워 주시는 역사가 일어나게 된다.
소득이 적거나 없을때 바치지 않으면 소득이 있어도 바칠줄 모르게 된다.
이 말씀에 은혜받아 짧은 인생 살 동안 꾸어줄지언정 꾸러 가지 않는 청년유학생이 캘거리에 차고도 넘치길 소망해본다. `끝`
긴 글이지만 끗까지 일거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 교회 청년 유학생들도 소득이 없따면서 헌금 드리기를 소흘히 하고 대신에 산으로 들로 밴프로 워터톤으로 강으로 바다로[이크, 이곳엔 바다가 없꾸나!] 놀러 다니는데 귀한 물찔[영어로 money!] 모두 소비하면 안되겠습니다.
먼저 하나님께 바치고 , 다음 우리를 위해 써야겠썸니다!!!
22 years 4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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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슈아리 칼럼
아래의 글은 이곳 교민잡지인 `주간시티`에 게재된 글입니다.
필자의 Freshman 시절 이야기를 재밋게 써봤어요.
읽는 이마다 은혜되시길 기원합니다. [글쓴이; 조슈아리]
오늘은 3월 5일, 한국에서는 일제히 입학식과 함께 새학기가 시작되는 날이다.
몽매(夢寐: sleeping & dreaming)에도 그리던 대학... "이제는 지겨운 공부가 끝났다, 해방이다, 자유다!" 하면서 입학식을 기다렸는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 신입생은 전원 입학식 날부터 정해진 색깔과 모양의 교복을 입고 등교해야 된다나...
당시는 유신(박정희 대통령) 말기라(end) 정부에서 대학생들의 반정부 데모를 막기 위해 입학 초기부터 때려 잡으려고(기를 꺾으려고) 온갖 묘책을 쓰던 중에 있었고 교복 입지 않으면 교수가 출석 인정을 해주지 않도록 되어 있었으며 교수 또한 반드시 강의시간 마다 출석을 부르도록 지시받고 있었기에 우리로선 꼼짝 없는 고등학교 4학년짜리 싸구려 대학생의 신세가 되고 말았다.
또한 교련(군사훈련)이 엄청나게 강화 되어서 주당 4시간씩 논산훈련소 수준에 버금가는 군사훈련을 매주 받았는데 교육시간에 복장이나 태도가 불량하면 교관(대위)이 언제든지 출석을 인정하지 않을 수도 있었고 거기에다 결석 2회(4*2=8시간)만 하면 즉시 입영통지서가 날라 오도록 되어 있기에 언제 군대로 끌려갈지 모르는 평화 속의 긴장이 계속 되었으니....
어떤 정신없는 녀석들은 벤치에 않아 담배 물고 잡담하다가도 교관이 지나가면 벌떡 일어나 ROTC도 아니면서 "충성!"을 연발할 정도니 Campus 분위기가 이거 뭐 김일성 대학쯤 되었다고나 할까....
입학식하고 얼마 지나서 사대(Collage)의 고교 선배들이 신입생환영회를 해주는데 장소는 큼지막한 짜장면집, 짜장면 1그릇으로 저녁을 때우고 2차는 막걸리 일 잔씩 돌리면서 안주는 두루치기(된장 두부찌개?). 술이 조금씩 되어서는 모두들 젓가락 두드리면서 당시 잘나가던 '고래사냥(송창식)'을 목이 터져라 불러댔다.
술마시고 노래하고 춤을 춰봐도
가슴에는 하나가득 슬픔뿐이네에
무엇을 할 것인가 둘러보아도
보이는 건 모두가 돌아앉았네
자아~ 떠나자 동해바아-다로오~
삼등삼등 완행열차 기차를 타고오~오오오~
신화처럼 소리치며 고래 잡으러어~어어어~
(그목소리 가지고 복음성가나 불렀더라면 얼마나 좋았겠나. 이 미련둥이야!)
어느 곳에나 짜장면집 긴 식탁 모서리는 젓가락 자국이 무수히 패여 있었는데 나중에 가라오케(자동 반주기) 나올 줄을 그때는 몰랐었지....
술이 알쏭달쏭 되어서 분위기가 무르익어 가는데 한 시커먼(black) 선배가 일어나서 "자 우리 사대 교가 부르자!"하기에 '대학에도 교가가 있나' 하고 귀를 기울였더니 웬걸 젓가락 소리에 '섬마을 선생님'이 터져 나오고 있으니....
주간시티 독자들을 위해서 잠깐 가사와 해설을 적어볼까나
해당화 피고 지는 섬마을에
(海棠花:sweet brier는 바닷가 양지바른 곳에 잘 자란다고 해요.)
철새 따라 찾아온 총각 선생님
(3월달에 신규 발령 받아왔다나. 그런데 진짜 '총각'인지 어떻게 알지?)
열아홉살 섬색시가 순정을 바쳐
(아따! 스무 살도 안된 계집애가 벌써부터 '끼'가 있기는...
바치긴 무얼 바쳐!)
사랑한 그 이름은 총각 선생님
(뭐 한번 그랬는거 갖고...영 부담스럽네...)
서울엘랑 가지를 마오 가지를 마오
(고마 가지 말고 살림하자는 뜻입니다.)
에라 모르겠다. 내친 김에 2절까지 적어보자.
구름도 쫓겨가는 섬 마을에
(원래 구름은 바다에서 생겨서 육지로 이동합니다-유식하기는 !)
무얼 하러 왔느냐 총각 선생님
(연애하러 왔지 머! 그리고 나 사실은 대학 때 과(科) 후배 계집
애 하고 좀 놀았걸랑...)
그리움이 별처럼 쌓이는 바닷가에
(별빛이 총총한 해변에서 "선상님 싸랑해요!"를 듣는다!)
시름을 달래 보는 총각 선생님
(이거 어떡해야 되나...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서울엘랑 가지를 마소, 가지를 마아아소~~~
이 노래는 당시 가사가 너무 퇴폐적이고 특히 교직(교사)에 대한 천박한 인상을 심어준다 해서 금지곡으로 묶여 있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nevertheless) 사대생들이 먼저 '교가'라고 애창하고 다녔으니 반항심리에서 나온 irony일테다.
이야기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여름방학 때는 전국 대학 1년생들이 모두 일주일간 병영집체훈련을 받게 되었는데 서울에서는 문무대인가 어딘가 하는 곳에 입영한다고 TV에까지 입소식을 중계해주고 요란했었지만 우리 지방에서는 뉴스도 타지 못하고 향토 50사단에 들어가서 글자 그대로 빡빡 기었다(죽도록 고생했다).
6일간의 훈련이었지만 너무도 고되어서 6일 후 퇴소하고 나오니 천지가 새롭게 보이고 한 몇년은 흘러간 기분이었다. 한 친구 녀석은 6일 동안 대변이 나오지 않았는데 집에 가서 누니까 까만 염소똥 같은 것이 똑똑 떨어지더라나.... 똥까지 다 타서 없어져 버릴 정도로 호되게 훈련시킨 것은 유신 정귄의 '대학생 데모방지' 작전이었다.
나중에 필자가 입영통지서를 받고 논산 훈련소에 가서 5주간 신병훈련을 받게 되는데 차라리 50사단에서의 6일간 집체훈련이 더 고통스러웠던 것으로 추억되고 있을 정도니....
자 문제는 이제부터다.
"주님 대학에만 합격시켜 주시면..."하면서 심지어 새벽기도까지 나가서 부탁부탁했었는데 막상 대학에 붙고 나서는 너무도 급속도로 주님을 잊어 가고 말았다. 우리 속담에 '똥누러 갈 때만 바쁘다'는 것이 우리의 신앙생활에도 마찬가지다.
대학 들어가서 자취방 잡아놓고 각종 환영회 마치고 한가해져서는 그래도 신앙생활하던 가락이 있어서 주일날 가까운 교회로 어슬렁어슬렁 가보니 마침 신학교를 갓마친 젊은 전도사가 교회를 시작하고 계셨는데 새 신자 하나 왔다고(그것도 대학생이!) 얼마나 반가워하시는지.... 그뒤 내가 점점 주일성수를 게을리 하니까 몇 번이나 자취방에 심방 오셔서 기도해주고 가셨지만 말씀은 들을 귀는 점점 막혀져가고....
심지어 내가 속으로 '저 전도사 내보다 수학정석 덜 풀어보았을 텐데...'하는 싸구려(값싸고 천한)교만이 자라기 시작하고... 거기에다 각종 모임(회식), 동문회, 서클, 행사...등에 쫓아다니면서 술에 취하고 담배에 찌들고 화투(또이또이 노름)에 멍들고....
[청년이 무엇으로 그 행실을 깨끗케 하리이까 주의 말씀으로 따라 삼갈 것이니다 (시편 119: 9)]라고 기록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드디어 2학기가 되어서는 아예 교회에 발길을 끊고 말았다. 기도할 것(제목)도 별로 없고 예수님 없이도 살 것만 같았고 나 혼자서도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나 혼자 몽땅 뒤집어쓰고 살아가는 어리석은 삶을 스스로 좋다하고 시작하다니....
그때부터 하나님께 대한 도전과 하나님의 나에 대한 응전(Challenge & response)의 역사가 시작되었다고나 할까.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에 대한 철저한 간섭과 섭리로 인해 필자는 그 뒤 행한 인생의 수고가 '헛수고'로 끝나는 처절한 실패를 경험하였으니 만일 낱낱이 기록한다면 주간시티 몇년동안 쓰고도 남음이 있겠다.
끝으로 잠깐, 필자는 한창 피끊는 젊은이들을 볼 때마다 '청춘예찬'이 아니라 도시락 싸들고 따라다니면서 [너는 청년의 때 곳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때가 가깝기 전에 너의 창조자를 기억하라(전도서 12:1)]
이 말씀을 외쳐주고 싶다. `끝`
꾀 긴 글이지만 끝까지 일거 주셔서 감사합니다.[단 일찌안코 그대로 쭉 내려왔으면 다시 끌고 올라가서 일거야됨! [must+ have to!!]
필자의 Freshman 시절 이야기를 재밋게 써봤어요.
읽는 이마다 은혜되시길 기원합니다. [글쓴이; 조슈아리]
오늘은 3월 5일, 한국에서는 일제히 입학식과 함께 새학기가 시작되는 날이다.
몽매(夢寐: sleeping & dreaming)에도 그리던 대학... "이제는 지겨운 공부가 끝났다, 해방이다, 자유다!" 하면서 입학식을 기다렸는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 신입생은 전원 입학식 날부터 정해진 색깔과 모양의 교복을 입고 등교해야 된다나...
당시는 유신(박정희 대통령) 말기라(end) 정부에서 대학생들의 반정부 데모를 막기 위해 입학 초기부터 때려 잡으려고(기를 꺾으려고) 온갖 묘책을 쓰던 중에 있었고 교복 입지 않으면 교수가 출석 인정을 해주지 않도록 되어 있었으며 교수 또한 반드시 강의시간 마다 출석을 부르도록 지시받고 있었기에 우리로선 꼼짝 없는 고등학교 4학년짜리 싸구려 대학생의 신세가 되고 말았다.
또한 교련(군사훈련)이 엄청나게 강화 되어서 주당 4시간씩 논산훈련소 수준에 버금가는 군사훈련을 매주 받았는데 교육시간에 복장이나 태도가 불량하면 교관(대위)이 언제든지 출석을 인정하지 않을 수도 있었고 거기에다 결석 2회(4*2=8시간)만 하면 즉시 입영통지서가 날라 오도록 되어 있기에 언제 군대로 끌려갈지 모르는 평화 속의 긴장이 계속 되었으니....
어떤 정신없는 녀석들은 벤치에 않아 담배 물고 잡담하다가도 교관이 지나가면 벌떡 일어나 ROTC도 아니면서 "충성!"을 연발할 정도니 Campus 분위기가 이거 뭐 김일성 대학쯤 되었다고나 할까....
입학식하고 얼마 지나서 사대(Collage)의 고교 선배들이 신입생환영회를 해주는데 장소는 큼지막한 짜장면집, 짜장면 1그릇으로 저녁을 때우고 2차는 막걸리 일 잔씩 돌리면서 안주는 두루치기(된장 두부찌개?). 술이 조금씩 되어서는 모두들 젓가락 두드리면서 당시 잘나가던 '고래사냥(송창식)'을 목이 터져라 불러댔다.
술마시고 노래하고 춤을 춰봐도
가슴에는 하나가득 슬픔뿐이네에
무엇을 할 것인가 둘러보아도
보이는 건 모두가 돌아앉았네
자아~ 떠나자 동해바아-다로오~
삼등삼등 완행열차 기차를 타고오~오오오~
신화처럼 소리치며 고래 잡으러어~어어어~
(그목소리 가지고 복음성가나 불렀더라면 얼마나 좋았겠나. 이 미련둥이야!)
어느 곳에나 짜장면집 긴 식탁 모서리는 젓가락 자국이 무수히 패여 있었는데 나중에 가라오케(자동 반주기) 나올 줄을 그때는 몰랐었지....
술이 알쏭달쏭 되어서 분위기가 무르익어 가는데 한 시커먼(black) 선배가 일어나서 "자 우리 사대 교가 부르자!"하기에 '대학에도 교가가 있나' 하고 귀를 기울였더니 웬걸 젓가락 소리에 '섬마을 선생님'이 터져 나오고 있으니....
주간시티 독자들을 위해서 잠깐 가사와 해설을 적어볼까나
해당화 피고 지는 섬마을에
(海棠花:sweet brier는 바닷가 양지바른 곳에 잘 자란다고 해요.)
철새 따라 찾아온 총각 선생님
(3월달에 신규 발령 받아왔다나. 그런데 진짜 '총각'인지 어떻게 알지?)
열아홉살 섬색시가 순정을 바쳐
(아따! 스무 살도 안된 계집애가 벌써부터 '끼'가 있기는...
바치긴 무얼 바쳐!)
사랑한 그 이름은 총각 선생님
(뭐 한번 그랬는거 갖고...영 부담스럽네...)
서울엘랑 가지를 마오 가지를 마오
(고마 가지 말고 살림하자는 뜻입니다.)
에라 모르겠다. 내친 김에 2절까지 적어보자.
구름도 쫓겨가는 섬 마을에
(원래 구름은 바다에서 생겨서 육지로 이동합니다-유식하기는 !)
무얼 하러 왔느냐 총각 선생님
(연애하러 왔지 머! 그리고 나 사실은 대학 때 과(科) 후배 계집
애 하고 좀 놀았걸랑...)
그리움이 별처럼 쌓이는 바닷가에
(별빛이 총총한 해변에서 "선상님 싸랑해요!"를 듣는다!)
시름을 달래 보는 총각 선생님
(이거 어떡해야 되나...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서울엘랑 가지를 마소, 가지를 마아아소~~~
이 노래는 당시 가사가 너무 퇴폐적이고 특히 교직(교사)에 대한 천박한 인상을 심어준다 해서 금지곡으로 묶여 있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nevertheless) 사대생들이 먼저 '교가'라고 애창하고 다녔으니 반항심리에서 나온 irony일테다.
이야기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여름방학 때는 전국 대학 1년생들이 모두 일주일간 병영집체훈련을 받게 되었는데 서울에서는 문무대인가 어딘가 하는 곳에 입영한다고 TV에까지 입소식을 중계해주고 요란했었지만 우리 지방에서는 뉴스도 타지 못하고 향토 50사단에 들어가서 글자 그대로 빡빡 기었다(죽도록 고생했다).
6일간의 훈련이었지만 너무도 고되어서 6일 후 퇴소하고 나오니 천지가 새롭게 보이고 한 몇년은 흘러간 기분이었다. 한 친구 녀석은 6일 동안 대변이 나오지 않았는데 집에 가서 누니까 까만 염소똥 같은 것이 똑똑 떨어지더라나.... 똥까지 다 타서 없어져 버릴 정도로 호되게 훈련시킨 것은 유신 정귄의 '대학생 데모방지' 작전이었다.
나중에 필자가 입영통지서를 받고 논산 훈련소에 가서 5주간 신병훈련을 받게 되는데 차라리 50사단에서의 6일간 집체훈련이 더 고통스러웠던 것으로 추억되고 있을 정도니....
자 문제는 이제부터다.
"주님 대학에만 합격시켜 주시면..."하면서 심지어 새벽기도까지 나가서 부탁부탁했었는데 막상 대학에 붙고 나서는 너무도 급속도로 주님을 잊어 가고 말았다. 우리 속담에 '똥누러 갈 때만 바쁘다'는 것이 우리의 신앙생활에도 마찬가지다.
대학 들어가서 자취방 잡아놓고 각종 환영회 마치고 한가해져서는 그래도 신앙생활하던 가락이 있어서 주일날 가까운 교회로 어슬렁어슬렁 가보니 마침 신학교를 갓마친 젊은 전도사가 교회를 시작하고 계셨는데 새 신자 하나 왔다고(그것도 대학생이!) 얼마나 반가워하시는지.... 그뒤 내가 점점 주일성수를 게을리 하니까 몇 번이나 자취방에 심방 오셔서 기도해주고 가셨지만 말씀은 들을 귀는 점점 막혀져가고....
심지어 내가 속으로 '저 전도사 내보다 수학정석 덜 풀어보았을 텐데...'하는 싸구려(값싸고 천한)교만이 자라기 시작하고... 거기에다 각종 모임(회식), 동문회, 서클, 행사...등에 쫓아다니면서 술에 취하고 담배에 찌들고 화투(또이또이 노름)에 멍들고....
[청년이 무엇으로 그 행실을 깨끗케 하리이까 주의 말씀으로 따라 삼갈 것이니다 (시편 119: 9)]라고 기록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드디어 2학기가 되어서는 아예 교회에 발길을 끊고 말았다. 기도할 것(제목)도 별로 없고 예수님 없이도 살 것만 같았고 나 혼자서도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나 혼자 몽땅 뒤집어쓰고 살아가는 어리석은 삶을 스스로 좋다하고 시작하다니....
그때부터 하나님께 대한 도전과 하나님의 나에 대한 응전(Challenge & response)의 역사가 시작되었다고나 할까.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에 대한 철저한 간섭과 섭리로 인해 필자는 그 뒤 행한 인생의 수고가 '헛수고'로 끝나는 처절한 실패를 경험하였으니 만일 낱낱이 기록한다면 주간시티 몇년동안 쓰고도 남음이 있겠다.
끝으로 잠깐, 필자는 한창 피끊는 젊은이들을 볼 때마다 '청춘예찬'이 아니라 도시락 싸들고 따라다니면서 [너는 청년의 때 곳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때가 가깝기 전에 너의 창조자를 기억하라(전도서 12:1)]
이 말씀을 외쳐주고 싶다. `끝`
꾀 긴 글이지만 끝까지 일거 주셔서 감사합니다.[단 일찌안코 그대로 쭉 내려왔으면 다시 끌고 올라가서 일거야됨! [must+ have to!!]
22 years 4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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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슈아리 칼럼
* 독자들께선 고딩때 지구과학[Earth Science] 시간에 Aurora[극광]에 관해 배운 적이 있을거에요. `기억이 안나는데요...어쩌구...` 하면 수업시간에 졸았던 `불량학생[?]으로 생각할께요.
이곳 캘거리 주변에서도 달없는 깊은 밤에, 운 조은 날에 오로라를 볼 수 있어요. 하나님께서 `특별히[?]` 저에게 자세히 학실히 오랬동안 분명히 보여 주셨던 것을 소재로 쓴 글이오니 많은 은혜 나누시길 바래요!
[캘거리 실협회보`에 게재된 글인데 약간 수리했어요]
오늘은 금요일, 철야 예배가 있는 날이다. 보통 때 같으면 저녁 7시에 가게 문 닫고 신나게 밟아서 철야예배 가겠는데 오늘은 실협에서 지난해 회원들에게 1정씩 무료로 나누어준 6 Dit. Pricegun의 실탄(라벨)을 구입해야겠기에 부득이 일찍 나섰다.
장사하고부터 지금까지 2년 가까이 집(가게)-홀 세일(슈퍼스토어)-교회만 삼각형으로 맴돌았는데 오늘은 정규코스를 벗어나서 강 건너 North East까지 가려니 뭔가 좀 찜찜, 어색하다.
#1 Convenience Store를 다행이 바로 찾아서 들어갔더니 이거 뭐 바닥부터 천장까지 빛가번쩍, 사람들이 들락날락, 자동차 소리, 냉장고 모터소리 윙윙‥‥‥‥
고맙고 죄송한 마음으로 Price label을 몇 개 사고서 주인께 실협 물품을 수익도 없이 판매하시느라 고생이 많으시다고 위로(?)의 말씀을 누차 드렸더니 사연인즉 전임 회장님 가게에서 Plastic bag하고 여러가지를 몽땅 빌린 트럭으로 3차분을 실어왔는데 산더미같은 물량을 보관할 곳이 없어서 아는 사람 집에 부탁해서 그 집 Basement에 겨우 갖다 놓았는데 지하실이 꽉 차 버렸다나‥‥‥
그 많은 무거운 Box를 트럭에 싣고, 내리고, 지하실에 재고, 분류하고, 또 때마다 수십 박스씩 자기 Van에 옮겨 실어와 가게 창고에 갖다 놓고 그러고 나서 실협회원이 사러 올 때마다 창고 가서 꺼내오고‥‥‥ 이거 뭐 마진이 푹푹 솟아진다 해도 골병 들어서 못하겠다. 그래도 사장님 말씀이 더 가관이다. 담배 한대 다 빨 때까지 사연(애로사항)을 이야기하고선 "뭐, 어떻합니까 맡기니까 해야죠‥‥‥이 말씀에 얼마나 가슴이 뭉클한지, 머나먼 쏭바강 아니 이국 땅 캘거리에서 한국사람이 아니면 누가 한국사람을 이처럼 도와주겠노‥‥‥!
(시간은 흘러‥‥) 철야예배 끝나고 돌아가는 길이다.
AM 12:30경 캄캄밤중 교회를 출발하여 2번 하이웨이를 타고 겁나게 밟아 내려간다. 오늘은 그동안 몇 번이나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하늘의 이상한 형광 구름 같은 현상에 대해 자세히 관찰하여 뭔가 후대에 남길 기록을 해 두어야지‥‥하면서 '하나님 오늘은 저 번에 몇 번 보여주신 거 - 하늘에 이상한 빛, Aurora인지 뭔지 - 좀 더 학실히 보여주세요'라고 중얼중얼 기도하면서 내려가던 중 AM 1시 지나서 Calgary City Limit 남방 30km정도 지났을 때 서쪽 하늘에 흰구름 같은 것이 서서히 형성되더니 차의 진행방향과 같이 남쪽으로 사선 (斜線)으로 이동하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참 이상하다 저건 마치 온난기단(Warm air mass)이 한랭기단(Cold air mass)위로 이동해가는 온난전선(Worm front)모양 인데 온난전선이, 그것도 한밤중에 시야에 보일 수 있단 말인가‥‥‥이상하다' 하면서 계속 내려갔는데 계속 그 구름이 더욱 밝아지고 있기에 '달빛 하나 없는 밤하늘에 더욱 밝아지는 구름이 있을 수는 없는 일... 저건 구름이 아니고 뭐 구나!'하고 짐작하던 중 이제 2번 Highway를 벗어나 23번 Highway를 따라 정서쪽으로 달리기 시작하니 그 동안 차 방향으로 남진[南進]하던 그 하얀 구름의 전면(Front)을 따라 내가 달리게 되었는데 이제부터는 참으로 기가 막힐 壯觀 (Magnificent view)이 내 눈에 보이지를 않는가?
차의 오른쪽 하늘에서 흰빛 Aurora가 상공에서 지상 가까이 까지 커튼모양으로 쫙 펼쳐져서 조금씩 넘실넘실 움직이고 있지를 않는가! 예수 안 믿었으면 간도 적은 내가 무서워서 쳐다보지도 못하고 벌벌 떨었겠지만 이미 3500년 전쯤에 하나님께서 나에게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고 말씀해 주시지 않았던가!
왕년에 학생들에게 지구과학(Earth Science) 가르칠 때 Aurora에 관해서는 태양풍(전기입자)과 지구자력의 상호작용으로 인한 대기의 이온화 현상‥‥어쩌구 하면서 그것이 극지방에 생기는 거라고 가르쳤는데 이거 뭐 극지방도 아닌 South Alberta에서도 생기다니‥‥그것보다 내가 생전에 Aurora보리라고 언제 상상이나 했던가?
내가 다시 아이들 가르친다면 "야 내가 Aurora 봤따. 바로 이건 기다"하면서 목에 힘 빡 주겠는데 세월은 역류할 수가 없고‥‥‥. 그나 저나 23번 Highway 끝날 때까지 40-50분 동안 계속 Aurora를 보면서 하나님과 많은 대화(?)를 나누었으니 더욱 감사할 일‥‥
'주님 달빛 하나 없는 밤하늘에 저렇게 밝고 기이한 Aurora를 병풍처럼 끝없이 펼치사 오늘 밤 제 눈에 보이게 하시니 참으로 주님은 창조주 십니다. 저걸 보고도 이세상에 조물주가 없다고, 모든 것이 저절로 생겼다고 생각하는 어리석은 인생들을 주님 어떡합니까‥‥!'하면 주님께서는 '그럼 그러니까 너희가 전도해야지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전해야지 그 다음은 내가 할께'라고 대답하신다.
'주님 주님께선 매일 수백 개씩 나고 빠지는 인생들의 머리카락을 세신다고 하셨는데 저의 처지, 형편 다 아시고 근심, 걱정거리도 다 아시지요. 한동안 주님께 맡기지 않고 혼자 근심, 걱정 많이 했는데 용서해 주세요'하였더니 '그럼 내가 다 안다. 내가 세상에 있을 적에 마르다 에게 그랬잖니.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몇 가지만 하든지 혹 한가지만이라도 족하다고 말이야' 그러면서 주님은 계속 말씀하신다.
'자 봐라 세상사람 들은 일주일에 칠일이 모잘라 하루도 쉬지 않고 열심히 노력하지만 내 나라에 재물 갖고 오는 사람은 없단다. 또 봐라 건강 믿고 사는 인생도 있지만 그건 때가 되면 무너지고 마는 거 잖아. 자식 믿고 보람 삼아 사는 인생도 있지만 때가 되면 고통과 슬픔의 날이 이른다는 것을 저네들은 모르잖아. 세상에서도 그렇고 나중에 가서도 그렇고‥‥'
'그래요 주님 저희가 세상에 내려오기 전에 이미 창세기 전에 생명책에 저희 이름이 기록되어 있더라고 한 천사가 일러 주더군요. 아담의 후손들인 저희가 뭐 잘난 거 있겠어요. 그래도 예수님의 이름을 주시니 그저 감사할 뿐‥‥‥'
'그럼 내가 이 캄캄한 밤하늘에 끝없는 Aurora를 펼쳐 보이잖아. 내 능력을 믿어. 내가 너를 도와줄게!'
'그래요 주님 사실 국민학교 동창생들도 그리워 만나고 만나면 재잘재잘 옛정을 나누지만 그래도 제 인생을 저들에게 맡길 수야 있나요. 중 고등하교 동창생들도 그렇죠. 만나면 밤새껏 쇠주야 맥주야 마시고 우르르 노래방에 몰려가서 `인생은 나그네길...` 하면서 가슴 시리게 불러 보지만 그렇다고 저들에게도 제 인생을 맡길 수가 있나요. 대학 동창들요? 포커치고 미팅하고 레포트(숙제) 베껴 쓰던 녀석들요? 지금은 어데 가서 무얼 하는지 소식 끊어진 녀석이 너무 많아요. 저들에게 어떻게 제 인생 더욱이 제 영혼을 맡기겠어요. 이민 동기 말이예요? 만나면 비즈니스 이야기하기 바빠요. 얼굴 하얀 Canadian들요? 말이 잘 안 통해요. 무슨 생각들을 하고 있는지 도무지 갈피를 못 잡겠어요. 그래 저래 의지할 곳도 주님밖에 없어요'
'그럼 내가 너 마음 다 안다. 너 기도하는 것마다 내가 응답하겠으니 염려하지마. 너 기도하기 전에 이미 다 주었노라‥‥‥!'
차는 방향을 돌려서 (우회전하여) 다시 남쪽으로 내려간다. Aurora는 등뒤로 점점 멀어지고 있다. 야간운전은 언제나 서행 (80km이내/h)하기에 2시간 30분 더 걸린다. 그래도 무사히 도착했으니 감사하고 차에서 내린다.
Wholesale에서 산 물건 -- 채소, 냉장, 냉동제품 같은 것만 대충 내려놓고 잠자리에 들면 새벽 3시 넘는다. 한국 친구들께온 이메일 체크도 못해보고 자야 한다.
몸이 너무 피곤할 때면 잠자리에서 생수를 부어 주시기도 한다. 머리에서부터 부어 주시는데 점점 내려가 발끝까지 시원해진다. 그런 날은 다음날 종일 피곤하지 않다. 할렐루야다. `끝`
PS: 휴~~ 쫌 진[long; 구개음화!] 글이지만 그래도 재밋써서 다 일것따!
30대 이상 독자들은 제목 `별 헤는 밤에` 하면 생각나는 시인 있을거에요. 시인은 일제하 1917년 만주 북간도에서 태어났고, 연희전문[지금 연세대]과 일본 릿꾜[立敎]대학에서 영문학을 공부하였으며 이후 독립운동에 가담한고로 1943년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해방되기 직전인 1945년 봄에 29세의 젊은 나이로 일본 큐슈[九州]형무소에서 시인이 그렇게도 바라던 해방을 보지 못한 채 옥사하고 말았습니다.
이 시인이 부르짖은 ...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와했다...` 에서 보이는 그 마음처럼 우리도 신앙적 결백성과 순수성을 지니고 살아야 겠습니다.
첨부; 혹시 아직 이 시인의 이름과 대표작들이 생각나지 않으시다면 크게 회개하시고 부끄럼 무릅쓰고서 저에게 메일 보내시면 친절히 가르쳐 드리께요! 나무라지는 않을께요!
이곳 캘거리 주변에서도 달없는 깊은 밤에, 운 조은 날에 오로라를 볼 수 있어요. 하나님께서 `특별히[?]` 저에게 자세히 학실히 오랬동안 분명히 보여 주셨던 것을 소재로 쓴 글이오니 많은 은혜 나누시길 바래요!
[캘거리 실협회보`에 게재된 글인데 약간 수리했어요]
오늘은 금요일, 철야 예배가 있는 날이다. 보통 때 같으면 저녁 7시에 가게 문 닫고 신나게 밟아서 철야예배 가겠는데 오늘은 실협에서 지난해 회원들에게 1정씩 무료로 나누어준 6 Dit. Pricegun의 실탄(라벨)을 구입해야겠기에 부득이 일찍 나섰다.
장사하고부터 지금까지 2년 가까이 집(가게)-홀 세일(슈퍼스토어)-교회만 삼각형으로 맴돌았는데 오늘은 정규코스를 벗어나서 강 건너 North East까지 가려니 뭔가 좀 찜찜, 어색하다.
#1 Convenience Store를 다행이 바로 찾아서 들어갔더니 이거 뭐 바닥부터 천장까지 빛가번쩍, 사람들이 들락날락, 자동차 소리, 냉장고 모터소리 윙윙‥‥‥‥
고맙고 죄송한 마음으로 Price label을 몇 개 사고서 주인께 실협 물품을 수익도 없이 판매하시느라 고생이 많으시다고 위로(?)의 말씀을 누차 드렸더니 사연인즉 전임 회장님 가게에서 Plastic bag하고 여러가지를 몽땅 빌린 트럭으로 3차분을 실어왔는데 산더미같은 물량을 보관할 곳이 없어서 아는 사람 집에 부탁해서 그 집 Basement에 겨우 갖다 놓았는데 지하실이 꽉 차 버렸다나‥‥‥
그 많은 무거운 Box를 트럭에 싣고, 내리고, 지하실에 재고, 분류하고, 또 때마다 수십 박스씩 자기 Van에 옮겨 실어와 가게 창고에 갖다 놓고 그러고 나서 실협회원이 사러 올 때마다 창고 가서 꺼내오고‥‥‥ 이거 뭐 마진이 푹푹 솟아진다 해도 골병 들어서 못하겠다. 그래도 사장님 말씀이 더 가관이다. 담배 한대 다 빨 때까지 사연(애로사항)을 이야기하고선 "뭐, 어떻합니까 맡기니까 해야죠‥‥‥이 말씀에 얼마나 가슴이 뭉클한지, 머나먼 쏭바강 아니 이국 땅 캘거리에서 한국사람이 아니면 누가 한국사람을 이처럼 도와주겠노‥‥‥!
(시간은 흘러‥‥) 철야예배 끝나고 돌아가는 길이다.
AM 12:30경 캄캄밤중 교회를 출발하여 2번 하이웨이를 타고 겁나게 밟아 내려간다. 오늘은 그동안 몇 번이나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하늘의 이상한 형광 구름 같은 현상에 대해 자세히 관찰하여 뭔가 후대에 남길 기록을 해 두어야지‥‥하면서 '하나님 오늘은 저 번에 몇 번 보여주신 거 - 하늘에 이상한 빛, Aurora인지 뭔지 - 좀 더 학실히 보여주세요'라고 중얼중얼 기도하면서 내려가던 중 AM 1시 지나서 Calgary City Limit 남방 30km정도 지났을 때 서쪽 하늘에 흰구름 같은 것이 서서히 형성되더니 차의 진행방향과 같이 남쪽으로 사선 (斜線)으로 이동하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참 이상하다 저건 마치 온난기단(Warm air mass)이 한랭기단(Cold air mass)위로 이동해가는 온난전선(Worm front)모양 인데 온난전선이, 그것도 한밤중에 시야에 보일 수 있단 말인가‥‥‥이상하다' 하면서 계속 내려갔는데 계속 그 구름이 더욱 밝아지고 있기에 '달빛 하나 없는 밤하늘에 더욱 밝아지는 구름이 있을 수는 없는 일... 저건 구름이 아니고 뭐 구나!'하고 짐작하던 중 이제 2번 Highway를 벗어나 23번 Highway를 따라 정서쪽으로 달리기 시작하니 그 동안 차 방향으로 남진[南進]하던 그 하얀 구름의 전면(Front)을 따라 내가 달리게 되었는데 이제부터는 참으로 기가 막힐 壯觀 (Magnificent view)이 내 눈에 보이지를 않는가?
차의 오른쪽 하늘에서 흰빛 Aurora가 상공에서 지상 가까이 까지 커튼모양으로 쫙 펼쳐져서 조금씩 넘실넘실 움직이고 있지를 않는가! 예수 안 믿었으면 간도 적은 내가 무서워서 쳐다보지도 못하고 벌벌 떨었겠지만 이미 3500년 전쯤에 하나님께서 나에게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고 말씀해 주시지 않았던가!
왕년에 학생들에게 지구과학(Earth Science) 가르칠 때 Aurora에 관해서는 태양풍(전기입자)과 지구자력의 상호작용으로 인한 대기의 이온화 현상‥‥어쩌구 하면서 그것이 극지방에 생기는 거라고 가르쳤는데 이거 뭐 극지방도 아닌 South Alberta에서도 생기다니‥‥그것보다 내가 생전에 Aurora보리라고 언제 상상이나 했던가?
내가 다시 아이들 가르친다면 "야 내가 Aurora 봤따. 바로 이건 기다"하면서 목에 힘 빡 주겠는데 세월은 역류할 수가 없고‥‥‥. 그나 저나 23번 Highway 끝날 때까지 40-50분 동안 계속 Aurora를 보면서 하나님과 많은 대화(?)를 나누었으니 더욱 감사할 일‥‥
'주님 달빛 하나 없는 밤하늘에 저렇게 밝고 기이한 Aurora를 병풍처럼 끝없이 펼치사 오늘 밤 제 눈에 보이게 하시니 참으로 주님은 창조주 십니다. 저걸 보고도 이세상에 조물주가 없다고, 모든 것이 저절로 생겼다고 생각하는 어리석은 인생들을 주님 어떡합니까‥‥!'하면 주님께서는 '그럼 그러니까 너희가 전도해야지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전해야지 그 다음은 내가 할께'라고 대답하신다.
'주님 주님께선 매일 수백 개씩 나고 빠지는 인생들의 머리카락을 세신다고 하셨는데 저의 처지, 형편 다 아시고 근심, 걱정거리도 다 아시지요. 한동안 주님께 맡기지 않고 혼자 근심, 걱정 많이 했는데 용서해 주세요'하였더니 '그럼 내가 다 안다. 내가 세상에 있을 적에 마르다 에게 그랬잖니.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몇 가지만 하든지 혹 한가지만이라도 족하다고 말이야' 그러면서 주님은 계속 말씀하신다.
'자 봐라 세상사람 들은 일주일에 칠일이 모잘라 하루도 쉬지 않고 열심히 노력하지만 내 나라에 재물 갖고 오는 사람은 없단다. 또 봐라 건강 믿고 사는 인생도 있지만 그건 때가 되면 무너지고 마는 거 잖아. 자식 믿고 보람 삼아 사는 인생도 있지만 때가 되면 고통과 슬픔의 날이 이른다는 것을 저네들은 모르잖아. 세상에서도 그렇고 나중에 가서도 그렇고‥‥'
'그래요 주님 저희가 세상에 내려오기 전에 이미 창세기 전에 생명책에 저희 이름이 기록되어 있더라고 한 천사가 일러 주더군요. 아담의 후손들인 저희가 뭐 잘난 거 있겠어요. 그래도 예수님의 이름을 주시니 그저 감사할 뿐‥‥‥'
'그럼 내가 이 캄캄한 밤하늘에 끝없는 Aurora를 펼쳐 보이잖아. 내 능력을 믿어. 내가 너를 도와줄게!'
'그래요 주님 사실 국민학교 동창생들도 그리워 만나고 만나면 재잘재잘 옛정을 나누지만 그래도 제 인생을 저들에게 맡길 수야 있나요. 중 고등하교 동창생들도 그렇죠. 만나면 밤새껏 쇠주야 맥주야 마시고 우르르 노래방에 몰려가서 `인생은 나그네길...` 하면서 가슴 시리게 불러 보지만 그렇다고 저들에게도 제 인생을 맡길 수가 있나요. 대학 동창들요? 포커치고 미팅하고 레포트(숙제) 베껴 쓰던 녀석들요? 지금은 어데 가서 무얼 하는지 소식 끊어진 녀석이 너무 많아요. 저들에게 어떻게 제 인생 더욱이 제 영혼을 맡기겠어요. 이민 동기 말이예요? 만나면 비즈니스 이야기하기 바빠요. 얼굴 하얀 Canadian들요? 말이 잘 안 통해요. 무슨 생각들을 하고 있는지 도무지 갈피를 못 잡겠어요. 그래 저래 의지할 곳도 주님밖에 없어요'
'그럼 내가 너 마음 다 안다. 너 기도하는 것마다 내가 응답하겠으니 염려하지마. 너 기도하기 전에 이미 다 주었노라‥‥‥!'
차는 방향을 돌려서 (우회전하여) 다시 남쪽으로 내려간다. Aurora는 등뒤로 점점 멀어지고 있다. 야간운전은 언제나 서행 (80km이내/h)하기에 2시간 30분 더 걸린다. 그래도 무사히 도착했으니 감사하고 차에서 내린다.
Wholesale에서 산 물건 -- 채소, 냉장, 냉동제품 같은 것만 대충 내려놓고 잠자리에 들면 새벽 3시 넘는다. 한국 친구들께온 이메일 체크도 못해보고 자야 한다.
몸이 너무 피곤할 때면 잠자리에서 생수를 부어 주시기도 한다. 머리에서부터 부어 주시는데 점점 내려가 발끝까지 시원해진다. 그런 날은 다음날 종일 피곤하지 않다. 할렐루야다. `끝`
PS: 휴~~ 쫌 진[long; 구개음화!] 글이지만 그래도 재밋써서 다 일것따!
30대 이상 독자들은 제목 `별 헤는 밤에` 하면 생각나는 시인 있을거에요. 시인은 일제하 1917년 만주 북간도에서 태어났고, 연희전문[지금 연세대]과 일본 릿꾜[立敎]대학에서 영문학을 공부하였으며 이후 독립운동에 가담한고로 1943년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해방되기 직전인 1945년 봄에 29세의 젊은 나이로 일본 큐슈[九州]형무소에서 시인이 그렇게도 바라던 해방을 보지 못한 채 옥사하고 말았습니다.
이 시인이 부르짖은 ...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와했다...` 에서 보이는 그 마음처럼 우리도 신앙적 결백성과 순수성을 지니고 살아야 겠습니다.
첨부; 혹시 아직 이 시인의 이름과 대표작들이 생각나지 않으시다면 크게 회개하시고 부끄럼 무릅쓰고서 저에게 메일 보내시면 친절히 가르쳐 드리께요! 나무라지는 않을께요!
22 years 4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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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슈아리 칼럼
지난 나의 인생을 이제 돌아보니 참으로 감사할게 많더군요
음~~ 왜냐고요?
이렇게 생각하니까 ..그래요!
[1]물질축복 주신거만 생각해도...전세계 30%의 인생들이 밤에 배고픈 채로 잠자리에 들어간다고 하는데...나랑 우리 가족은 단 하루도 먹을 것이 없어서 근심한 적이 없거든요
기도할 때마다 소리높혀 `주여~~~ 물질축복 좀 주시옵소서!!!` 하고 기도해 왔는데 알고보니 주님께서 날마다 넘치는 축복으로 응답해 오셨더군요 ^0^
우리집엔 냉장고 열때마다 먹을 것이 없어서 냉장고를 뒤지는 것이 아니라 뭐부터 먼저 먹어야 음식 상해서 버리지 않게 될까...근심해오고 있었으니...게다가 여름에 냉장고까지 돌려서 늘 시원하고 신선한 반찬까지 먹을 수도 있으니...
냉장고 주신 것도 큰 감사꺼리가 된다고요, 그러니 우리 모두 이미 물질 축복 엄청나게 받은거예요, 아멘?
[2]근데 물질축복이란 상대적이거 있죠?
내맘이 가난하여 늘상 더 가진자를 생각하면 난 늘 부족하게 보이고 물질축복 덜 받은거 같고...그래서 주님이 물질축복 주실 날 기다리게 되고...
여름에 물질축복 달라고 간절히 기도할 때에 주님께서 `내가 이미 다 주었어` 하시기에 그때 크게 깨달았거든요
난 진짜 큰 부자가 되어 있었어요
왜냐고요?
내가 초딩 아래학년이었을땐 자전거 가지는게 소원이었는데 이미 앤~날에 이루어져버렸어요. 오토바이 가지는 꿈도 이미 이루어졌고요.
더우기 어릴땐 자가용을 가진다는 것은 상상도 못했죠
아주 큰 왕부자만이 타는 거로만 생각했는데 난 자가용을 그것도 국산이 아닌 미제차를 맘데로 몰고 다니니 어릴때 소망하던 왕부자가 되어 버린거 있죠!
주님께서 우리의 구하는거 이미 다 이루어주고 계신줄 믿으면 아멘! 하세요[많이 들어본 소리~ ^&^]
그런 의미에서 우린 모두 이미 부자가 되었어요!
[3]물질축복은 불신자도 받고, 지옥갈 영혼도 받고, 교회 안오고 주일 안지키는 사람도 받고, 불교도 이슬람교도도 받고...그래서 이건 감사함으로 받을땐 축복이 되지만 그렇지 않을땐 축복의 반대[?]가 되기도 해요
물질은 사람에 다라서 축복이 되기도 아님 저주가 되기도 하는 거에요.
물질을 사랑하여 물질에 더욱 그 마음을 뺐기게 되니 벌어더 벌어도 그마음을 채울 수가 없꼬...그러니 주님과는 더욱 멀어지고...구래서 차라리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천국가는 것보다 더 쉽다고 하셨잖아요
이말은 거꾸로 해석하면 낙타가 바늘귀에 들어갈수 없는 것처럼 물질에만 마음을 뺏긴 부자도 결코 천국에 못들어간다는 뜻이잖아요
그러니 우린 불신자의 물질축복에 부러워하지 말고 우리의 받은 축복에 감사해야 되는 거에요
`이미 받은 것에 감사하라`...즉 자꾸 감사할때에 더 감사할 꺼리를 주신다는거죠받은 물질축복에 마음 깊이 감사하면 더 감사할 꺼리를 받게 되리라 믿어요
즉, 받은 축복에 감사할때 더 큰 축복도 받게 되는거예요, 아멘?
[4] 물질축복보다 훨씬더 큰 축복은 우리의 마음에 주시는 축복이라고요
우리의 맘이 평안하지 않으면 아무리 돈이 많아도 늘 부족하게 가난한 맘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넘 많아요
먼저 마음이 주님의 주시는 평안으로 차면 그사람이 바로 `부자` 그자체에요
부자`란 마음으로부터오지 물질로부터 오는게 아니란 말입니다[무슨 형이상학적인 말을 하고 있나고요...?]
일단은 우리 캘거리 교민은 지금 가진 물질만으로도 모두 엄청난 `\부자들`이에요
이제는 우리의 맘이 `부자`가 될 차례거든요
진정한 평안은 주님으로부터 온답니다.
주님께 의지하고 살때[말씀데로 살려고 애쓸때] 주님의 주시는 평안이 임하고
물질에서 자유함을 가지게 되고[자유함?] 그래서 물질을 다스릴수 있게 되고[다시린다?]...그러면 만물의 주인이신 주님께서 더많은 것을 맡기시게 되고....요
[5] 참고로 신앙 생활을 열심히 하면, 주님께서 반드시 부요의 축복을 주신답니다. 우리 주변에 허다한 증인들이 있을거예요.
그래서 예수믿는 사람이 많은 사회나 민족이나 국가도 반드시 부강한 나라가 되는 겁니다.
세계사에서 극단적인 예를 하나 찾아볼게요,
유럽에서 작디작은 나라 네덜란드란 나라는 16세기에 유럽 전역에서 타락한 카톨릭에 대항하여 종교개혁의 횟불이 타오르자 유럽 각국에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자 하던 신교도들이 모여들게 되는데... 당시 네덜란드 지방을 지배하던 에스파냐(카톨릭 국가)와 싸워 17세기 초에 독립하여서는 불과 20년도 채 안되어 유럽에서 제일가는 국력과 재력을 가진 강대국이 되었답니다.
이른바 네덜란드 역사에서 가장 빛나는 "황금의 17세기"를 누리게 되는거죠.
17세기 초기까지 당시 세계 최강이였던 에스파냐의 무적함대가 사라지고 아직도 영국이 세계사의 주역으로 등장하기 전에 네덜란드는 세계 최강의 해군.해양국가로 당당히 등장하게 된것 입니다.
17세기 네덜란드는 학문과 문학과 예술에 위대한 인물이 숱하게 탄생하였고, 네덜란드 함대는 세계의 바다를 안방처럼 누비고 다니면서 지리상의 중요한 발견도 수없이 하게 된거죠.
이후, 세계역사의 주역은 청교도들이 등장하는 영국으로 바톤이 넘어가게 됩니다.
개인의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 의지할때는 반드시 만물의 주인되시는 주님께서 흘러 넘치는 축복으로 우리에게 채워 주시는 겁니다, 아멘?
우리 교회에 물질이 부요하고 마음도 함께 부요하고 그러면서도 겸손이 흘러넘쳐서서 주님이 기뻐하시는 부자들로 꽉차길 기대합니다
모두 천국에 들어갈 수있는 부자들로요...!
우리 성도님들 , 모두 넘치는 부요한 마음과 부요한 삶의 주인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다시한번 부탁합니다, 할렐루야!
음~~ 왜냐고요?
이렇게 생각하니까 ..그래요!
[1]물질축복 주신거만 생각해도...전세계 30%의 인생들이 밤에 배고픈 채로 잠자리에 들어간다고 하는데...나랑 우리 가족은 단 하루도 먹을 것이 없어서 근심한 적이 없거든요
기도할 때마다 소리높혀 `주여~~~ 물질축복 좀 주시옵소서!!!` 하고 기도해 왔는데 알고보니 주님께서 날마다 넘치는 축복으로 응답해 오셨더군요 ^0^
우리집엔 냉장고 열때마다 먹을 것이 없어서 냉장고를 뒤지는 것이 아니라 뭐부터 먼저 먹어야 음식 상해서 버리지 않게 될까...근심해오고 있었으니...게다가 여름에 냉장고까지 돌려서 늘 시원하고 신선한 반찬까지 먹을 수도 있으니...
냉장고 주신 것도 큰 감사꺼리가 된다고요, 그러니 우리 모두 이미 물질 축복 엄청나게 받은거예요, 아멘?
[2]근데 물질축복이란 상대적이거 있죠?
내맘이 가난하여 늘상 더 가진자를 생각하면 난 늘 부족하게 보이고 물질축복 덜 받은거 같고...그래서 주님이 물질축복 주실 날 기다리게 되고...
여름에 물질축복 달라고 간절히 기도할 때에 주님께서 `내가 이미 다 주었어` 하시기에 그때 크게 깨달았거든요
난 진짜 큰 부자가 되어 있었어요
왜냐고요?
내가 초딩 아래학년이었을땐 자전거 가지는게 소원이었는데 이미 앤~날에 이루어져버렸어요. 오토바이 가지는 꿈도 이미 이루어졌고요.
더우기 어릴땐 자가용을 가진다는 것은 상상도 못했죠
아주 큰 왕부자만이 타는 거로만 생각했는데 난 자가용을 그것도 국산이 아닌 미제차를 맘데로 몰고 다니니 어릴때 소망하던 왕부자가 되어 버린거 있죠!
주님께서 우리의 구하는거 이미 다 이루어주고 계신줄 믿으면 아멘! 하세요[많이 들어본 소리~ ^&^]
그런 의미에서 우린 모두 이미 부자가 되었어요!
[3]물질축복은 불신자도 받고, 지옥갈 영혼도 받고, 교회 안오고 주일 안지키는 사람도 받고, 불교도 이슬람교도도 받고...그래서 이건 감사함으로 받을땐 축복이 되지만 그렇지 않을땐 축복의 반대[?]가 되기도 해요
물질은 사람에 다라서 축복이 되기도 아님 저주가 되기도 하는 거에요.
물질을 사랑하여 물질에 더욱 그 마음을 뺐기게 되니 벌어더 벌어도 그마음을 채울 수가 없꼬...그러니 주님과는 더욱 멀어지고...구래서 차라리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천국가는 것보다 더 쉽다고 하셨잖아요
이말은 거꾸로 해석하면 낙타가 바늘귀에 들어갈수 없는 것처럼 물질에만 마음을 뺏긴 부자도 결코 천국에 못들어간다는 뜻이잖아요
그러니 우린 불신자의 물질축복에 부러워하지 말고 우리의 받은 축복에 감사해야 되는 거에요
`이미 받은 것에 감사하라`...즉 자꾸 감사할때에 더 감사할 꺼리를 주신다는거죠받은 물질축복에 마음 깊이 감사하면 더 감사할 꺼리를 받게 되리라 믿어요
즉, 받은 축복에 감사할때 더 큰 축복도 받게 되는거예요, 아멘?
[4] 물질축복보다 훨씬더 큰 축복은 우리의 마음에 주시는 축복이라고요
우리의 맘이 평안하지 않으면 아무리 돈이 많아도 늘 부족하게 가난한 맘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넘 많아요
먼저 마음이 주님의 주시는 평안으로 차면 그사람이 바로 `부자` 그자체에요
부자`란 마음으로부터오지 물질로부터 오는게 아니란 말입니다[무슨 형이상학적인 말을 하고 있나고요...?]
일단은 우리 캘거리 교민은 지금 가진 물질만으로도 모두 엄청난 `\부자들`이에요
이제는 우리의 맘이 `부자`가 될 차례거든요
진정한 평안은 주님으로부터 온답니다.
주님께 의지하고 살때[말씀데로 살려고 애쓸때] 주님의 주시는 평안이 임하고
물질에서 자유함을 가지게 되고[자유함?] 그래서 물질을 다스릴수 있게 되고[다시린다?]...그러면 만물의 주인이신 주님께서 더많은 것을 맡기시게 되고....요
[5] 참고로 신앙 생활을 열심히 하면, 주님께서 반드시 부요의 축복을 주신답니다. 우리 주변에 허다한 증인들이 있을거예요.
그래서 예수믿는 사람이 많은 사회나 민족이나 국가도 반드시 부강한 나라가 되는 겁니다.
세계사에서 극단적인 예를 하나 찾아볼게요,
유럽에서 작디작은 나라 네덜란드란 나라는 16세기에 유럽 전역에서 타락한 카톨릭에 대항하여 종교개혁의 횟불이 타오르자 유럽 각국에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자 하던 신교도들이 모여들게 되는데... 당시 네덜란드 지방을 지배하던 에스파냐(카톨릭 국가)와 싸워 17세기 초에 독립하여서는 불과 20년도 채 안되어 유럽에서 제일가는 국력과 재력을 가진 강대국이 되었답니다.
이른바 네덜란드 역사에서 가장 빛나는 "황금의 17세기"를 누리게 되는거죠.
17세기 초기까지 당시 세계 최강이였던 에스파냐의 무적함대가 사라지고 아직도 영국이 세계사의 주역으로 등장하기 전에 네덜란드는 세계 최강의 해군.해양국가로 당당히 등장하게 된것 입니다.
17세기 네덜란드는 학문과 문학과 예술에 위대한 인물이 숱하게 탄생하였고, 네덜란드 함대는 세계의 바다를 안방처럼 누비고 다니면서 지리상의 중요한 발견도 수없이 하게 된거죠.
이후, 세계역사의 주역은 청교도들이 등장하는 영국으로 바톤이 넘어가게 됩니다.
개인의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 의지할때는 반드시 만물의 주인되시는 주님께서 흘러 넘치는 축복으로 우리에게 채워 주시는 겁니다, 아멘?
우리 교회에 물질이 부요하고 마음도 함께 부요하고 그러면서도 겸손이 흘러넘쳐서서 주님이 기뻐하시는 부자들로 꽉차길 기대합니다
모두 천국에 들어갈 수있는 부자들로요...!
우리 성도님들 , 모두 넘치는 부요한 마음과 부요한 삶의 주인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다시한번 부탁합니다, 할렐루야!
22 years 4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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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님! 이렇게 글을 올리게 되어 죄송합니다.
생명을 살리기 위함이오니 양해를 바라며,
홈페이지 성격에 맞지 않거나 관리자님께서 원치 않는 글이라면 삭제해 주시기 바랍니다.
○ 제목 : 트남에 있는 뚜 청년의 생명을 살려주세요!
○ 이름 : Duong Hien Tu(드엉 히엔 뚜)
○ 병명 : Hemophilie A (혈우병의 일종)
○ 사연 :
베트남의 크리스챤 가족에 한 생명을 살려 주시기 바랍니다. 베트남의 이 가정은 Duong Hien Vinh(드엉 히엔 빈)부인께서는 쭝럽 교회의 회계집사이시고 남편은 고향 꽝남의 푸란 교회 재건을 위해서 애쓰고 계신 분들입니다. 가족은 부부와 딸 3명 아들 1명입니다.
남편께서는 자기 땅과 건물을 교회로 내놓고 복음전파에 애를 쓰는 분으로 월남전쟁과 공산화가 되면서 여러 차례 교회가 흩어지고 문을 닫을 때도 푸란교회를 지키며 성도들을 다시 모으고 또 다시 모은 교회를 자기 생명 같이 여기고 희생하는 참신한 그리스챤 입니다.
그런데 그의 외아들 Duong Hien Tu(드엉 히엔 뚜)가 지금 심각한 병에 걸려 있습니다. 약 25일 전 학기가 시작된지 얼마 되지 않아(그는 다낭 공업대학의 컴퓨터 전공 2학년입니다.)
현재 그의 병은 그의 팔목과 발목 근육에 피가 계속 흐르고 있고 특히 오른 쪽 골반 쪽이 심각하여 발을 뻗을 수 없는 정도이며 발을 펼 수 없어 오른 발을 왼발에 겹친 자세로 앉아 있어야하고 발을 뻗으면 신경 줄이 굳어지고 피가 계속 흐르게 된다고 합니다. 지난 20일간 그는 밤에도 침대에 등을 기대어 앉아 있어야하고 부모들은 그의 곁을 떠나지 못하고 지켜보고 있습니다.
현재 다낭에서 의학 박사님이 그를 돌보고 계시는데 그분은 오래 전부터 TU(뚜)의 병 증세를 지켜 봐 왔습니다. 뚜의 병은 Hemophilie A 이며 (혈우병의 일종으로 세계에서도 치료가 어렵다는 병입니다.) TU가 어릴 때부터 그 박사님은 13살 이상 살기 어렵다는 판정을 하셨고 부모들에게도 언제라도 출혈이 되면 거의 포기하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가족의 기도로 현재까지 살았으며 어릴 때부터 공부도 잘했습니다. 사이공과 다낭의 공업1계열에 우수한 성적으로 붙었고 건강 문제로 다낭에서 공부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전에 Hoa Khanh병원에서 돌아왔을 때 그가 너무 아파하여 다낭에 있는 큰 병원으로 데려 갔는데 의사들은 그 병에 익숙지 않아 가족들 보다 더 당황하며 강심제만 먹게 했고 그것이 모세 혈관을 파괴하여 현재처럼 상태가 더 심각해졌다고 합니다.
이 학생의 누이는 8월초에 햇불 회관 트리니티 신학원에 외국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한국에 들어와 신학공부하고 있습니다(베트남에서 신학교는 내 보내지 않음. 트리니티 라는 내용에 관하여
담당자들이 잘 알지 못한 것 같음. 하나님이 역사)
이 글을 올리는 저는 인천동문교회 목사 김금옥(남)입니다. 인천에 새로 개척한지 2년 9개월 출석35명되는 작은 교회입니다. 월남 선교를 위하여 기도하던 중 한 선교사의 도움으로 다낭 푸란교회와 결연을 하고 매월 선교헌금을 보내며 여름성경학교 물품지원등 6월부터 시작을 하고 있고 한국에 유학 온 큰딸 THU(트)를 돕고 있습니다. 푸란교회가 지금은 가정집을 교회로 쓰고 있는데 푸란 교회는 월남 교회연합에 등록이 되어있어 교회당을 짖을 수 있기 때문에 교회를 짖어 주는 것을 기도하고 있습니다.
의료기관. 독지가. 교회단체. 교회. 성도님 여러분 TU(뚜)학생의 생명을 살려 하나님은 그 가정에 함께하신다는 사실을 베트남에 알려 복음이 전파되게 한 생명을 살려 주시기 바랍니다.
지금 돈이 필요한 것이아닙니다. 다만 의술이 발달된 한국에 와 Hemophilie A 병이 규명되어 고침을 받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현재로써는 치료의 길이 열려지기를 바랄뿐입니다. 많은 분들의 연락을 바랍니다. 끝까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연락처 주소 / 인천직활시 동구 송현2동 72번지 인천 동문교회
전화.032)763-2250 H.P 011-625-1760 이메일 kko4080@yahoo.co.kr
김금옥목사
생명을 살리는 『한국SOS119구조센터』
http://www.sos119.org
생명을 살리기 위함이오니 양해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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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 트남에 있는 뚜 청년의 생명을 살려주세요!
○ 이름 : Duong Hien Tu(드엉 히엔 뚜)
○ 병명 : Hemophilie A (혈우병의 일종)
○ 사연 :
베트남의 크리스챤 가족에 한 생명을 살려 주시기 바랍니다. 베트남의 이 가정은 Duong Hien Vinh(드엉 히엔 빈)부인께서는 쭝럽 교회의 회계집사이시고 남편은 고향 꽝남의 푸란 교회 재건을 위해서 애쓰고 계신 분들입니다. 가족은 부부와 딸 3명 아들 1명입니다.
남편께서는 자기 땅과 건물을 교회로 내놓고 복음전파에 애를 쓰는 분으로 월남전쟁과 공산화가 되면서 여러 차례 교회가 흩어지고 문을 닫을 때도 푸란교회를 지키며 성도들을 다시 모으고 또 다시 모은 교회를 자기 생명 같이 여기고 희생하는 참신한 그리스챤 입니다.
그런데 그의 외아들 Duong Hien Tu(드엉 히엔 뚜)가 지금 심각한 병에 걸려 있습니다. 약 25일 전 학기가 시작된지 얼마 되지 않아(그는 다낭 공업대학의 컴퓨터 전공 2학년입니다.)
현재 그의 병은 그의 팔목과 발목 근육에 피가 계속 흐르고 있고 특히 오른 쪽 골반 쪽이 심각하여 발을 뻗을 수 없는 정도이며 발을 펼 수 없어 오른 발을 왼발에 겹친 자세로 앉아 있어야하고 발을 뻗으면 신경 줄이 굳어지고 피가 계속 흐르게 된다고 합니다. 지난 20일간 그는 밤에도 침대에 등을 기대어 앉아 있어야하고 부모들은 그의 곁을 떠나지 못하고 지켜보고 있습니다.
현재 다낭에서 의학 박사님이 그를 돌보고 계시는데 그분은 오래 전부터 TU(뚜)의 병 증세를 지켜 봐 왔습니다. 뚜의 병은 Hemophilie A 이며 (혈우병의 일종으로 세계에서도 치료가 어렵다는 병입니다.) TU가 어릴 때부터 그 박사님은 13살 이상 살기 어렵다는 판정을 하셨고 부모들에게도 언제라도 출혈이 되면 거의 포기하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가족의 기도로 현재까지 살았으며 어릴 때부터 공부도 잘했습니다. 사이공과 다낭의 공업1계열에 우수한 성적으로 붙었고 건강 문제로 다낭에서 공부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전에 Hoa Khanh병원에서 돌아왔을 때 그가 너무 아파하여 다낭에 있는 큰 병원으로 데려 갔는데 의사들은 그 병에 익숙지 않아 가족들 보다 더 당황하며 강심제만 먹게 했고 그것이 모세 혈관을 파괴하여 현재처럼 상태가 더 심각해졌다고 합니다.
이 학생의 누이는 8월초에 햇불 회관 트리니티 신학원에 외국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한국에 들어와 신학공부하고 있습니다(베트남에서 신학교는 내 보내지 않음. 트리니티 라는 내용에 관하여
담당자들이 잘 알지 못한 것 같음. 하나님이 역사)
이 글을 올리는 저는 인천동문교회 목사 김금옥(남)입니다. 인천에 새로 개척한지 2년 9개월 출석35명되는 작은 교회입니다. 월남 선교를 위하여 기도하던 중 한 선교사의 도움으로 다낭 푸란교회와 결연을 하고 매월 선교헌금을 보내며 여름성경학교 물품지원등 6월부터 시작을 하고 있고 한국에 유학 온 큰딸 THU(트)를 돕고 있습니다. 푸란교회가 지금은 가정집을 교회로 쓰고 있는데 푸란 교회는 월남 교회연합에 등록이 되어있어 교회당을 짖을 수 있기 때문에 교회를 짖어 주는 것을 기도하고 있습니다.
의료기관. 독지가. 교회단체. 교회. 성도님 여러분 TU(뚜)학생의 생명을 살려 하나님은 그 가정에 함께하신다는 사실을 베트남에 알려 복음이 전파되게 한 생명을 살려 주시기 바랍니다.
지금 돈이 필요한 것이아닙니다. 다만 의술이 발달된 한국에 와 Hemophilie A 병이 규명되어 고침을 받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현재로써는 치료의 길이 열려지기를 바랄뿐입니다. 많은 분들의 연락을 바랍니다. 끝까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연락처 주소 / 인천직활시 동구 송현2동 72번지 인천 동문교회
전화.032)763-2250 H.P 011-625-1760 이메일 kko4080@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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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years 4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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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유학생회
우리 교회 청년유학생 맡은 이승형 입니다
근희 형제님 비행기표는 끊었나요?
도움이 필요하면 운영자나 목사님께 멜 보내주세요
무사히 도착하길 ...우리 모두 기다릴께요, 살롬!
근희 형제님 비행기표는 끊었나요?
도움이 필요하면 운영자나 목사님께 멜 보내주세요
무사히 도착하길 ...우리 모두 기다릴께요, 살롬!
22 years 4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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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운영자 입니다.
캘거리로 오시게 된 것을 환영합니다.
옴니콤은 캘거리 다운타운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저희 교회는 다운타운에서 차로 10분(승용차 5분) 거리로 매우 가깝습니다.
Omnicom School of Languages (AB)
840 - 6th Avenue S.W., Suite 750
Calgary, AB T2P 3E5
주일날 혹은 다른 예배 날(수,금) 교회로 오고 싶으시면 연락 주세요. 이곳 홈페이지로나 혹은 김원효 목사 (자택 243-7927)에게로. 그리고 주일날은 10시 30분에 Mac's 앞(8 St. 7 Ave S.W.)으로 항상 pick-up 차량이 나갑니다.
공항 픽업,홈스테이 등 저희의 도움이 필요하시면 언제든지 말씀해 주세요.
남은 기간 준비 잘 하세요.
그럼 하나님이 늘 함께 하시길...
김근희 wrote:
> 9월 중순부터 캘거리에서 어학연수를 하게되었어요
>
> 캘거리.. 아직 한번도 가보지도 못하고 주변에 간사람도 없고..ㅡㅡ;;
>
> 옴니콤이란 학교랑 여기 순복음 교회 거리가 가까운가요?
>
> 제가 그 학원엘 다니게 되었거든요.
>
> (__);; 잘 몰라서요..죄송합니다.
캘거리로 오시게 된 것을 환영합니다.
옴니콤은 캘거리 다운타운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저희 교회는 다운타운에서 차로 10분(승용차 5분) 거리로 매우 가깝습니다.
Omnicom School of Languages (AB)
840 - 6th Avenue S.W., Suite 750
Calgary, AB T2P 3E5
주일날 혹은 다른 예배 날(수,금) 교회로 오고 싶으시면 연락 주세요. 이곳 홈페이지로나 혹은 김원효 목사 (자택 243-7927)에게로. 그리고 주일날은 10시 30분에 Mac's 앞(8 St. 7 Ave S.W.)으로 항상 pick-up 차량이 나갑니다.
공항 픽업,홈스테이 등 저희의 도움이 필요하시면 언제든지 말씀해 주세요.
남은 기간 준비 잘 하세요.
그럼 하나님이 늘 함께 하시길...
김근희 wrote:
> 9월 중순부터 캘거리에서 어학연수를 하게되었어요
>
> 캘거리.. 아직 한번도 가보지도 못하고 주변에 간사람도 없고..ㅡㅡ;;
>
> 옴니콤이란 학교랑 여기 순복음 교회 거리가 가까운가요?
>
> 제가 그 학원엘 다니게 되었거든요.
>
> (__);; 잘 몰라서요..죄송합니다.
22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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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자매님[?] !
옴니콤엔 우리 교회 나오는 착한 김여진 자매님이 있으니 만나서 우리 교회에 오도록 하셔요.
주일 오전 10:30분께 다운타운 7 ave 의 맥스 앞에서 우리 굫히 차량이 기다리고 있답니다,
모두들 기다리고 있을께요,~~
옴니콤엔 우리 교회 나오는 착한 김여진 자매님이 있으니 만나서 우리 교회에 오도록 하셔요.
주일 오전 10:30분께 다운타운 7 ave 의 맥스 앞에서 우리 굫히 차량이 기다리고 있답니다,
모두들 기다리고 있을께요,~~
22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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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캘거리순복음중앙교회 홈 운영자 입니다.
저희 교회 홈 게시판에는 개인/상업 광고를 게시하실 수 없음을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럼 좋은 하루되세요.
저희 교회 홈 게시판에는 개인/상업 광고를 게시하실 수 없음을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럼 좋은 하루되세요.
22 years 4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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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http://www.visitor.calgary.ab.ca/travel/maps.html
22 years 4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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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님, 초면에 다소 무례하게 메일을 보냅니다.
저희는 서울에서 사역을 하면서 신학을 공부하고 있는 학생 부부입니다.
그리고 저희 남편은 영어를 조금 할 수 있어서 가끔씩 통역을 하고는 있는데 한국에서 있는 것보다 그곳에 가서 공부를 하면 더 좋을 것 같기도 하구요.
기도를 할 때마다 유학을 가라 마음이 늘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가고 싶은 마음도 있구요.
그런데 제정적으로도 그렇고 일할 곳이 없어서 망설이고 있는 중입니다.
혹시 그곳에는 학생들도 아르바이트를 할 수 있는지요.
아니면 한 명은 공부하고, 한 명은 아르바이트를 할수 있는지요?
사역을 할수는 없는지도 궁금하구요.
더 많은 궁금한 점들이 있지만 이만 줄이겠습니다.
꼭 답장 부탁드립니다.
목사님 사역 가운데 늘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기를 중보기도 드리겠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저희는 서울에서 사역을 하면서 신학을 공부하고 있는 학생 부부입니다.
그리고 저희 남편은 영어를 조금 할 수 있어서 가끔씩 통역을 하고는 있는데 한국에서 있는 것보다 그곳에 가서 공부를 하면 더 좋을 것 같기도 하구요.
기도를 할 때마다 유학을 가라 마음이 늘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가고 싶은 마음도 있구요.
그런데 제정적으로도 그렇고 일할 곳이 없어서 망설이고 있는 중입니다.
혹시 그곳에는 학생들도 아르바이트를 할 수 있는지요.
아니면 한 명은 공부하고, 한 명은 아르바이트를 할수 있는지요?
사역을 할수는 없는지도 궁금하구요.
더 많은 궁금한 점들이 있지만 이만 줄이겠습니다.
꼭 답장 부탁드립니다.
목사님 사역 가운데 늘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기를 중보기도 드리겠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22 years 4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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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롬! 반갑습니다. 운영자 입니다.
목사님을 대신하여 제가 아는 부분에 대해 답변을 드리겠습니다. 괜찮으시죠? '사역' 부분이나 기타 저희 목사님께 개인적으로 여쭤보실 것이 있다면 목사님 이메일(pastor@calgarychurch.org)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물론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으시면 두 분이 함께 공부하시면 좋습니다만 한 분만 공부를 하신다면 다른 한 분은 경제적으로 뒷바침을 하실 수 있죠. 일단 두 분 중 한 분이 2년이상의 정규과정(디플로마 이상)의 입학허가를 받아 학생비자를 취득하면 다른 한 분은 취업비자를 신청하실 수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이나 준비서류는 아래 글들을 보시기 바랍니다.
▶주한캐나다교육원
▶캐나다 유학허가서 신청 양식
▶유학 학생비자 신청서 작성방법
기타 저희 '유학/연수정보'게시판의 글들을 참고하세요.
물론 공부하시는 당사자 분도 캠퍼스 내에서는 시간이 허락하는 범위 내에서 얼마든지 일을 하실 수 있답니다.
캐나다에서 일을 해도 되는가?
유학생은 학위를 수여하는 공공 교육기관 내에서는 일을 해도 된다. 고등교육기관의 풀타임 학생은 다음 네가지 조건하에 취업비자도 신청할 수 있다.
첫째, 취업하려는 분야가 학교수업에 필수적이거나 중대한 일부분으로 인정될때(회계학 전공, 의과대의 인턴/레지던트 제외)
둘째, 취업하려는 분야가 인정할 만한 연구 또는 실습 프로그램일때
셋째, 학생이 풀타임으로 등록되어 있는 학교내에서 취업할때
넷째, 캐나다에서 전문대학이나 종합대학을 졸업한 유학생이 전공 관련분야에서 최대한 1년까지 취업을 희망할때
그러나 두 분이 함께 일하신다 해도 학비가 이미 마련되어 있지 않다면 여기에 전적으로 의지하기에는 어렵다고 보시면 됩니다. 두 분 중 한 분이 전문적인 직종에 종사하지 않는다면 말이죠. 렌트비와 생활비 정도만 마련해도 다행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God bless you.
김유진 wrote:
> 목사님, 초면에 다소 무례하게 메일을 보냅니다.
> 저희는 서울에서 사역을 하면서 신학을 공부하고 있는 학생 부부입니다.
> 그리고 저희 남편은 영어를 조금 할 수 있어서 가끔씩 통역을 하고는 있는데 한국에서 있는 것보다 그곳에 가서 공부를 하면 더 좋을 것 같기도 하구요.
> 기도를 할 때마다 유학을 가라 마음이 늘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가고 싶은 마음도 있구요.
> 그런데 제정적으로도 그렇고 일할 곳이 없어서 망설이고 있는 중입니다.
> 혹시 그곳에는 학생들도 아르바이트를 할 수 있는지요.
> 아니면 한 명은 공부하고, 한 명은 아르바이트를 할수 있는지요?
> 사역을 할수는 없는지도 궁금하구요.
> 더 많은 궁금한 점들이 있지만 이만 줄이겠습니다.
> 꼭 답장 부탁드립니다.
> 목사님 사역 가운데 늘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기를 중보기도 드리겠습니다.
> 안녕히 계세요.
목사님을 대신하여 제가 아는 부분에 대해 답변을 드리겠습니다. 괜찮으시죠? '사역' 부분이나 기타 저희 목사님께 개인적으로 여쭤보실 것이 있다면 목사님 이메일(pastor@calgarychurch.org)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물론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으시면 두 분이 함께 공부하시면 좋습니다만 한 분만 공부를 하신다면 다른 한 분은 경제적으로 뒷바침을 하실 수 있죠. 일단 두 분 중 한 분이 2년이상의 정규과정(디플로마 이상)의 입학허가를 받아 학생비자를 취득하면 다른 한 분은 취업비자를 신청하실 수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이나 준비서류는 아래 글들을 보시기 바랍니다.
▶주한캐나다교육원
▶캐나다 유학허가서 신청 양식
▶유학 학생비자 신청서 작성방법
기타 저희 '유학/연수정보'게시판의 글들을 참고하세요.
물론 공부하시는 당사자 분도 캠퍼스 내에서는 시간이 허락하는 범위 내에서 얼마든지 일을 하실 수 있답니다.
캐나다에서 일을 해도 되는가?
유학생은 학위를 수여하는 공공 교육기관 내에서는 일을 해도 된다. 고등교육기관의 풀타임 학생은 다음 네가지 조건하에 취업비자도 신청할 수 있다.
첫째, 취업하려는 분야가 학교수업에 필수적이거나 중대한 일부분으로 인정될때(회계학 전공, 의과대의 인턴/레지던트 제외)
둘째, 취업하려는 분야가 인정할 만한 연구 또는 실습 프로그램일때
셋째, 학생이 풀타임으로 등록되어 있는 학교내에서 취업할때
넷째, 캐나다에서 전문대학이나 종합대학을 졸업한 유학생이 전공 관련분야에서 최대한 1년까지 취업을 희망할때
그러나 두 분이 함께 일하신다 해도 학비가 이미 마련되어 있지 않다면 여기에 전적으로 의지하기에는 어렵다고 보시면 됩니다. 두 분 중 한 분이 전문적인 직종에 종사하지 않는다면 말이죠. 렌트비와 생활비 정도만 마련해도 다행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God bless you.
김유진 wrote:
> 목사님, 초면에 다소 무례하게 메일을 보냅니다.
> 저희는 서울에서 사역을 하면서 신학을 공부하고 있는 학생 부부입니다.
> 그리고 저희 남편은 영어를 조금 할 수 있어서 가끔씩 통역을 하고는 있는데 한국에서 있는 것보다 그곳에 가서 공부를 하면 더 좋을 것 같기도 하구요.
> 기도를 할 때마다 유학을 가라 마음이 늘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가고 싶은 마음도 있구요.
> 그런데 제정적으로도 그렇고 일할 곳이 없어서 망설이고 있는 중입니다.
> 혹시 그곳에는 학생들도 아르바이트를 할 수 있는지요.
> 아니면 한 명은 공부하고, 한 명은 아르바이트를 할수 있는지요?
> 사역을 할수는 없는지도 궁금하구요.
> 더 많은 궁금한 점들이 있지만 이만 줄이겠습니다.
> 꼭 답장 부탁드립니다.
> 목사님 사역 가운데 늘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기를 중보기도 드리겠습니다.
> 안녕히 계세요.
22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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